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1월의 책방에서 거닐다보니 새해의 감회가 다시 솟아나는 것 같다(좋은거지?^^). 이번달에는 신기하게도 읽고 싶은 책을 고르고 나니 딱 5권! 늘 여러가지 책들 사이에서 뭘 고를까 방황했는데 이번에는 깔끔하게 결정봤다. 그리고 재밌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지난달 후보도서를 고를 때 분명 12월 출간이었던 책들이 이번달에 다시 1월 출간으로 바뀌어 또 등장했다. 이런...지각생들이구낫!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시각 예술을 감상하거나 해석하는데 있어 개인적으로 색채보다는 형태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 까닭은 이미지를 발생시키고 그것에 고유성을 부여하는 것이 색채보다는 형태로부터 기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공간적으로 확장되는 형태의 특성상 이를 이해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태에 관한 9가지 키워드라는 것은 지나칠 수 없는 매혹적인 주제였다. 



  예술은 무엇을 원하는가
2009년 독일에서 출간되어 크게 주목받았던 서양 미술 입문서로 저자의 적극적 개입과 해석이 가해졌다는 점이 눈에 띄여 선택했다. 예술을 사회문화사의 관점으로 보았기에 작품에 얽힌 역사적 분석, 예술가의 의도, 관람자의 시선을 통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매우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마그리트와 시뮬라크르
현대미술사에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마그리트와 그의 파이프. 이미 푸코도 이 작품을 통해 그의 유일한 회화론을 선보인바 있으며 집단무의식을 이루는 '재현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박정자 교수가 이 작품과 시뮬라크르를 엮어 이야기한다니 사뭇 궁금해진다. 플라톤에서 푸코, 라캉,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의 철학자를 아우르며 '위계 없는 차이의 향연'을 보여주는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공간열기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현대 건축물 속에서 한국 전통건축이 어떻게 차용되었는지 보여준다는 의도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적인 것'이라는 구호가 시작된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디자인 속에 전통을 반영하는 안목과 성찰의 깊이가 얼마나 다듬어졌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개념, 배치, 형태, 공간 등 12가지의 측면에서 대표되는 건물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사군자
생각해보니 한국화 혹은 동양미술에서 사군자를 따로 떨어뜨려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책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옛 선비들이 수양을 위해 일상에서 늘 접하던 그림인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 문외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학교 미술시간을 통해 그려본 적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과연 사군자의 참 멋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신년 명절의 분위기 탓인지도 모르지만 마음을 차분히 해주는 사군자를 읽기에 참 좋은 시기인 것 같다. 

그나저나...연휴가 끝났다. 피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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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 고형욱의 영화음악 오디세이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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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없는 영화는 뭐랄까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 같아요.
당신의 음악은 우리 모두를 고양시키고, 우리를 날아오르게
만들어요. 우리(배우)들이 모든 걸 단어로 말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할 때도, 당신은 이미 우리를 잘 표현해주었어요."
(p.122)

오드리 헵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음악을 맡았던 헨리 메시니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저자는 '영화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핵심이 여기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소개하였는데, 잠시 음악이 없는 영화를 상상해 본다면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예를들어 <조스>에서 상어가 나타날 때 그 음산하고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영혼>의 마지막 장면에서 데미 무어의 크고 맑은 눈동자가 스르르 눈물을 떨어뜨리는 순간 애틋하고 순결한 'Unchained Melody'가 함께하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이의 '영혼'과의 이별이라는 환상은 사라지고 그저 흔히 접하는 남녀간의 이별 정도로만 여겨질 것이다. 이처럼 영화에 있어 음악이란 우리를 현실로부터 날아 오르게 하고 무한한 영화적 상상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연료가 된다.

그런데 영화 음악에 대해 햅번이 깜빡 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을 굳이 복잡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의 회고본능을 자극해 감동을 재생시키는 영화음악의 힘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영화의 감동이 유달리 큰 날은 엔드 크레딧(End Credits)에 깔리는 음악이라도 부여잡고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이고, 극장을 나와서는 곧장 음반가게로 달려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 역시 같은 맥락에서 추억 속에 가라앉았던 영화의 감동을 다시 날게 하고픈 욕구를 자극한다.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아름다웠던 장면을 다시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 얼마나 희망이 되는 메시지인가!

책 속에는 빽빽한 CD 전집처럼 50개의 추억의 영화들이 연도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세어보니 50편 중 내가 본 영화는 31편, 보지는 못했어도 대략 내용이나 제목만 알고 있는 영화는 7편이었다. 처음엔 추억의 명화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오래된 영화들이기에 영화 매니아가 아닌 나로서는 이 책을 공감하기 쉽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많은 영화들이 친숙해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더불어 CD에 담긴 음악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익숙한 곡인지라 CD만 듣고 있어도 내 맘대로 영화의 추억과 상상속에 잠기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50가지의 영화를 표현하는 글은 기본적인 영화의 내용에서부터 배우, 수상경력, 작곡가, 관련된 에피스드와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 영화가 담고 있는 시대상이나 관객들의 시선과 같은 분석적인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있으며 가장 주된 것은 (물론) 영화의 장면을 고조시키는 음악에 대한 해석, 그것으로 표현되는 감흥, 인물들의 심리적 묘사, 그리고 원곡, 편곡 등에 얽힌 내용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화들을 소개하다보니 하나의 영화에 깊이 빠져드는 묘미는 상대적으로 덜한 느낌이었다. 고전에 속하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과 도시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을 가하고, 같은 O.S.T지만 LP로 들을 때와 CD로 들을 때의 목차 구성에서 오는 미묘한 감상의 흐름을 짚어내는 저자라면 충분히 신선하고 심도있는 견해들을 더, 더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닥터 지바고'편이나 '라스베거스를 떠나며'편에서 발휘됐던 보다 음악적인 감성과 주관적 해석이 뭍어나는 글들이 참 좋았는데 늘 짤막하여 아쉬웠다.

'라라의 테마'는 라라의 캐릭터를 대변한다. 그러나 라라를 위해서 작곡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 분위기를 아우르는
보편성이 있다. 멜로디는 낭만적이면서도 떨림이 있다. '라라의 테마'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도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러시아 민속악기 발랄라이카를 뜯으면서 내는 울림은 러시아다운 정조와 함께 간절한 사랑의 느낌을 고조시킨다.(p.149/닥터 지바고)

주제곡인  'Ben And Sara'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피아노곡이다. 다른 음악들이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만을 자아내는데 비해 이 곡의 피아노 소리는 밝다. 아직 희망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이 약간 있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욱 절망적이다. 현실은 이제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p.326/라스베커스를 떠나며)

마지막에 단 한편 소개된 한국영화 역시 불만이 되는 요소였다. 다음 저작의 주제가 한국 영화음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우리의 추억'이라 덧붙이고 <별들의 고향>만을 소개한 것은 의외의 마침표이며 어떤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느낌까지 들었다. 전반적으로 추억의 명화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음악을 통해 감동을 되살려본 시간은 즐거웠으나 좀 더 영화속에 깊이 침투되는 맛을 선사했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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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 - 당신을 속여왔던 대중문화 속 주인공들의 엉큼한 비밀, 개정판
마크 슈미트 지음, 김지양 옮김 / 인간희극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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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중문화 안에서 그것을 향유하고 누릴 때 무엇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문화의 소비자로서 영화나 뮤지컬을 관람하고 가요를 따라 부르는 동안 의식이 즐거움에 몰입되고, 어느덧 즐기는 행위로부터 기인한 주체라는 느낌에 사로잡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80년대의 3S(Screen, Sport, Sex)정책을 돌이켜 본다면 대중문화란 우리 손 안에 있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무언의 압력과 왜곡을 가할 수 있는 큰 힘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는 이를 즐기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때로 대중문화 밖에 서서 내가 속해있던 풍경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현명함도 필요하게 되었다.

<마크 슈미트의 이상한 대중문화 읽기>라는 작은 책은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이나 해석에 관한 다양한 책들 중 단연 눈에 들어오는 책이었다. 그 이유를 꼽아보자면, 먼저 유년시절의 향수가 배어있는 스머프가 도마위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마르크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파파스머프가 표지에 나서있다니, 어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두번째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서가 장정일이 자신의 독서일기에서 이 책을 호평했으며, 그의 독서일기에 소개된 책들 중 드물게 절판되지 않은 책이라는 점이다. 세번째는 호주인인 저자가 우리나라에 장기간 머물며 영어학원 강사를 했던 이력과 우리나라의 영화를 보고 남북관계에 대해 논한 글이 한 꼭지 들어있다는 점이다. 과연 우리나라에 꽤 익숙한 외국인에게 남북관계가 어떻게 비칠지 사뭇 궁금했다.

저자는 <개구장이 스머프>에서 드러나는 사회주의 사상과 페미니즘, 동성애에 대한 글로 네티즌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그것을 계기로 이 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스머프 마을은 사회주의에서 이상적으로 꿈꾸는 공동체 코뮌(commune)의 전형이며, 자급자족, 토지의 공동 소유, 폐쇄적 경제 및 직업의 평등성을 모두 반영하고 있었다. 그저 사이좋게 산딸기를 따며 평화롭게 살고 있다 생각했던 스머프 마을에 이런 원리가 숨겨져 있다니! 이에 더해 스머프 개개인에 담긴 의미를 풀어나간 시각도 매우 흥미롭다. 특히 가슴이 밋밋한 체형의 스머페트는 가부장적 질서에 의한 사회적 표준으로 여성을 통제하려는 사고방식을 나타낸다는 점과 늘 거울만 보는 허영이뿐만 아니라 덩치, 편리 또한 동성애를 표현한 것이라는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가가멜은 고집스럽게 욕구에만 몰두하는 자본가를, 구박을 받으면서도 가가멜에게 충성을 다하는 어리숙한 아즈라엘은 자유 시장 체제의 노동자를 나타낸다는 점도 상당히 신선한 관점이었다.

스머프 마을을 이색적으로 바라보던 방식은 슈퍼맨과 개인주의, 사우스파크와 동성애 혐오, 해리포터와 운명 대 유전자의 축, 섹스앤더시티와 요리 등에서도 여지없이 이어져 간다. 물론, 동성애나 페미니즘과 같이 평이한 해석도 종종 등장하지만 우리 사회의 관심사와 기저에 존재하는 의식들을 과감하게 짚어내는 솜씨는 비록 이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감탄할만한 수준이다.

저자의 세밀하고 날카로운 분석은 '한국 영화와 햇볕정책'편에도 잘 드러난다. 그는 우리 영화가 조폭을 의리있고 친숙한 인물로 묘사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고 지적하며 한국영화에서의 조폭은 북한을 은유하는 것으로 읽어내고 있다. 따라서 햇볕정책의 흥망과 조폭 영화의 쇠락이 함께 움직였다는 그의 주장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봤을 때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쉬리>, <친구>,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중심으로 외국인(비록 저자가 한국 장기체류자임에도)에게 비춰진 남북관계를 엿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보다 더 높은 벽, 더 깊은 골을 느끼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대중문화에는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양식을 비롯 다양한 가치관과 사회의 일면들이 담겨있는 보고와도 같다.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로부터 나오며, 어떤 것은 증폭되고 어떤 것은 왜곡되기는 가운데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중문화의 힘이 점점 더 커져가는 현실 속에서 그대로 이끌려가지 않고 진정한 대중문화의 주체가 되려면 어느정도 출입이 자유로운 외부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외부인으로서 과감한 시도를 선보인 이 책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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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 2,000년 동안 서양문명을 이어온 가장 위대한 이야기
김용규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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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작은 땅에 서쪽으로부터 신이 나려온지 어느덧 125년이 흘렀다. 개화에 힘입어 서구문화의 일부로 유입된 기독교는 당시 전통과 권위의 중심지였던 광화문 근처, 정확히 말해 덕수궁 후문과 옛 대법원을 바라보는 고풍스럽고도 아늑한 자리에 거처를 두고 첫 십자가를 꽂았으며 역사와 더불어 때론 독립운동가들의 후원자로, 때론 우파의 기생자로 인식되면서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해왔다. 이제는 밤하늘의 별보다 먼저 눈에 뜨이는 십자가, 새벽 5시를 마다하지 않고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신도들로 그 위력을 짐작케하는 신은 말그대로 도처에 존재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에겐 아직 관심 밖의 이야기이다. 더불어 그들이 마주치는 신이란 대부분 거리에서 '예수 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단들을 통해서이며, 학교에서도 진화론 위주의 교육을 받은 탓에 신에 대해 어느정도 편중된 시선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서두부터 기독교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신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까닭은 이 책에서 말하는 신이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이 아닌) 바로 기독교의 신이며 또한 상당 부분 성경적인 해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신학의 입장이 아닌 철학의 입장으로 말하고 있지만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창조론과 성삼위일체에 대한 가능여부를 설명하며, 기독교가 공격받는 여러가지 사항들에 대해 이해할만한 답변들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기본적으로 신을 옹호하는 편에서 서술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차원에서 읽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은 아니며 좁게는 종교와 과학과의 공존, 넓게는 신과 인간과의 화합을 추구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서구의 문물은 쉽게 받아들이고도 정작 그 기원이 되는 사고체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인문학적 성찰이 보다 근본적으로 서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아직까지도 분분한 과학과 종교의 논쟁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하리라 생각한다.

신의 의미, 신의 존재성과 존재여부, 시간과 창조, 신의 인격성과 섭리, 유일신과 삼위일체 등 크게 5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어나가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신에 대해 궁금했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신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지 않는다면 이는 아마도 신의 존재여부에서부터 회의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우리가 신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거나 신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다해도 고대의 철학자들이나 문학가들의 깨달음에서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하지요. "네가 신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만일, 네가 그분을 파악한다면, 그분은 신이 아니다."(p.85-86)

물론 이것은 조금 선문답같이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신과 우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출발할 때 다른 철학자들이 규명하는 신의 존재가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모세가 어렵게 알아낸 신의 이름이 '야훼(YHWH)'지요...이 이름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존재'입니다. 그래서 만일 신에게 본질이 있어야 한다면...그것은 오직 '존재'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다마쿠스의 요한네스가 "신을 가리키는 그 어떤 명칭보다 더 근원적인 명칭은 '있는 자'다"라고 말한 이유이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모든 피조물은 본질과 존재가 구분되지만 "신의 본질은 그의 존재와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까닭입니다.(p.86)

이처럼 아무런 형상도 갖지 않고 오직 '존재'로만 표현되는 신은 그리스적 사유로보면 영원불변의 어떤 것이었으며 '자기동일성(auto kathahauto)'이라는 속성을 가져 논리적으로는 결코변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존재'에 대한 히브리어인 haya에는 생성, 존재, 작용의 의미를 담고 있어 이를 통해 정적인 신과 역동적인 신의 모습이 공존하게 되었으며 시간을 매개로 '영원히 안식하면서 부단히 활동하는 신'이라는 속성이 가능케 되었다.

존재란 생성과 작용의 '탈시간화'된 모습이고 생성과 작용이란 존재의 '시간화'된 모습에 불과합니다. 불변이란 변화의 탈시간화된 현상이고, 변화란 불변의 시간화된 현상일 뿐이지요. 시간을 매개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념이 하나로 종합된 겁니다.(p.153)

한편, 칸트는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이다"라 유명한 언명을 통해 이성을 감성의 테두리에 가두고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로부터 기독교인들은 신을 종교적 경험의 차원에서 파악하게 되었고 '신의 현존'의 측면에서 보면 이성만으로 신을 파악하려는 신학자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다.

신이 창조주임을 설명하는 3장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성경과 과학이론, 철학을 바탕으로 상세한 설명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경의 천지창조와 천체물리학의 빅뱅이론이 일치하는 점, 도킨스가 내세운 '눈먼 시계공(지적설계론)'이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를 범하는 것에 불과하며 지적설계론이란 정통 기독교 이론이 아니라는 점, 다윈이 진화론의 논리를 맞추기 위해 증거가 될만한 자료들을 수집해왔다는 사실과 진화론자임에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의견 등 보다 창조론을 가능하게 하는 논지를 펼쳐나간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는 과학과 종교의 화합을 위한 설명들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과 종교가 서로 다른 말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이 논쟁은 합의나 일치를 얻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서로의 담론에 대한 이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창조주가 위대하고 전지전능한, 먼 곳에 있는 신을 논했다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인격적인 신은 가깝고 친밀하며 우리 삶의 대소사를 돌보는, 보다 곁에 느껴지는 신을 논하고 있다. 여기서는 신의 섭리, 기도와 같은 보다 종교적인 색채가 많이 드러나며 신의 섭리와 우리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작용하며 세상을 움직여가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의 유일성에 관한 부분은 '삼위일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삼위일체는 플로티노스의 일자 형이상학으로부터 그의 '일자, 정신, 영혼'이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이어져갔지만 초기에는 기독교에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요한복음 1:1)에서 나타나듯 오직 하나로 존재하는 신을 묘사하고 있기에 무려 60여년에 걸쳐 기독교사에서 가장 큰 논쟁으로 기록되었던 '삼위일체 논쟁'을 겪어야 했다. 이 논쟁은 어느 한편의 승리라기 보다는 그들 사이의 차이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기독교 신학은 그리스 철학을 극복하고 보다 자신들에게 합당한 유일신의 개념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신의 유일성에 대한 설명은 '종교적 다원주의'를 맞은 현대 기독교의 난제와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저자의 주장은 신의 유일성이 차별적 배타성이나 폭력성의 근거가 아닌 오히려 무차별적 포괄성과 다양성의 바탕이라는 데 있다. 또한 기독교 입장도 기독교의 속성을 가급적 덜 양보하면서 타 종교를 가능한 한 인정하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신의 유일성을 근거로 다른 종교와의 협력을 이뤄내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여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유일성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리면 본질공동체적, 영원동등적이고, 몰트만의 표현을 따르자면 상화내주적, 상호침투적 사랑이 그 본질이지요. 여기에는 서로 이질성과 다양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통일적인 하나-됨'을 이루는 '이종사랑(heterologous love)'만이 존재할 뿐 그 어떤 배타성이나 폭력성도 침투할 수 없습니다....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이 가진 포괄성과 통일성으로서의 유일성이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만 유일자입니다.(p.800-801)

<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 신화속의 신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의 유일신에 이르기까지 신학, 철학, 과학, 예술 등 다방면의 학문을 아울러 던지는 화두는 결국 '어떻게 화합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비록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한번쯤 함께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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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2011년 신간평가단의 첫 페이퍼군요.
일단, 신간평가단 여러분도, 운영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참! 그리고 제가...새해를 맞아 닉네임을 Kairos에서 이향*으로 바꿨답니다.^^

사실 1월이지만 12월의 책들을 둘러봐야 했기 때문에 좀 맥빠진 기분이었다. 지난 11월에 좀 썰렁했던 기억이 있어, 12월이면 더할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탄탄한 책들이 많아 읽고 싶은 책 목록이 점점 늘어간다. 특히 신년 분위기 탓인지 옛날 미술, 동양 미술책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고, 왠지 옛 정취를 느끼고 싶은 마음이 솔솔~(흠..하지만 그것을 고른 것은 아니고, 후보에만 꼽아놨습니다.)


예술과 생태
박이문님의 철학적 관록이 기대되는 이 책은 12월부터 계속 눈여겨보던 책이다. 예술 부분과 생태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친환경 개념으로 '둥지'를 제시한다. '둥지'라는 개념도 궁금하지만 단토의 예술 종말론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하니 더욱 흥미롭다.
 



상자의 재구성
흔히 네모, 상자라고 하면 규격화를 떠올리고 대량생산과 비인격화를 초래한 근대 디자인의 치명적 단면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각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사각의 아름다움을 공간을 통해 재발견하고 유선형이 지배하는 예술세계에서 사각이 갖는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할 것이다.
 


훈데르트바서
지난달 우리나라에서도 전시회를 가진 바 있는 훈데르트바서. 표피, 의복, 집, 정체성, 생태주의로 대변되는 다섯개의 피부를 통해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예술을 보여줄 것 같고, 미술가이며 동시에 건축가인 그의 이력에서 독특한 안목이 기대된다.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
인문, 사회학자들의 눈을 통해 예술을 보는 것은 항상 새롭고 즐겁다. 이 책은 <구별짓기>라는 저서로 유명한 브르디외의 이론으로 예술을 바라보았으며 우리사회에서 예술과 사회간의 통합을 시도한 예술가들의 예를 함께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공감이 쉬우리라 생각한다.




레논평전
존 레논은 음악가였지만 동시에 우리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사회운동가라고도 할 수 있다. 수많은 그의 음악과 수많은 그의 에피소드들이 전해져 오지만, 이렇게 평전으로 만나본다면 그가 세상으로 보내고자 했던 메시지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엇! 신현준님의 저서네요..!)

 


그 외에...<레논 평전>이 아니였다면 꼭 꼽고 싶었던<할리우드 시크릿>, <예술의 정신>, 왠지 매혹적인 <매혹하는 사진>과 매우 탐나지만 너무 비싼 <예술사진의 현재>(개정판), 처음 보는 도자기 관련 책 <중국의 청화자기>, 무형문화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지난 달에는 왜 못봤지? <폴리아티스트, 소리를 부탁해>..(지난달 책이라 가망은 없겠지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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