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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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지성인들이 있고 그 앞에 붙일 수식어 또한 다양하겠지만 '행동하는 지성인'이라 불리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만큼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란, 그것도 매우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으로 실행하기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누가 감히 전시(戰時)에 권력에 맞서 반전을 논하며, 누가 감히 기득권자에 맞서 약자의 편을 들까? 누가 감히...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포기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까?

버트런드 러셀. 그는 철학, 사회학, 정치뿐만 아니라 과학, 교육, 예술, 종교에 이르는 방대한 지(知)의 힘을 동력으로 이념의 갈등을 떠나 이상 사회를 향해가는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백작출신으로서 순탄한 삶을 누릴 수 있었지만 투옥도 마다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서 행동했으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통해 그 의지를 멈추지 않았다.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 또한 책상 앞에서 펼쳐나간 지(知)의 세계가 아니였다. 원제가 <사회 재건의 원칙>이었던 이 책은 세계 제1차 대전 중 러셀이 대중 앞에서 강연했던 원고를 모아 엮은 것으로 그의 반전과 사회재건에 대한 신념이 총 집결된 저술일뿐 아니라 무너져가는 종전(終戰)에 대한 희망에 회복의 바람을 불어넣었다. 다만 반전론자라는 이유로 조국인 영국에서는 거절당해 미국에서 출간되었는데, 러셀의 동의없이 <왜 사람들은 싸우는가?>라는 (다소 지엽적인) 제목이 붙게되었음에도 동시대 수많은 양심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전쟁 당시 국가권력의 압박에 저항하며 자신의 신념을 행동에 옮긴 용기를 기억해야 하며,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으려하기 보다는 '행복한 사회 재건의 원칙'이라는 부제에 초점을 맞춰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러셀은 먼저 전쟁을 옹호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욕구'와 '충동'을 대조하여 설명한다. 이는 '욕구'를 인간 행동의 원천으로 보았던 기존 정치철학의 미비한 점을 '충동'을 통해 풀어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욕구'란 이성에 의해 어떤 득이 된다고 판단한 뒤 취하는 행동이며, '충동'은 바람직한 결과에 상관없이 그저 본능에 따르는 행동이라 한다. 전쟁의 경우도 충동이 표출된 극한 사례로, 이는 오래전부터 기독교를 포함한 권력에 억압되왔던 충동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고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충동은 창조를 낳는 중요한 원동력이기에 억압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러셀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교육이라 생각했으며, 이 책에서 교육에 대한 신념을 역설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권력에 순응하는 수동적 지성인만 육성해왔던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보다 인간 본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당부하는 5장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참고해도 좋을만한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이어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논하는 6장도 역시 오늘의 현실에 유효하게 적용된다.

비록 러셀이 교육과 여성문제를 포함해 사회 재건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해도 이 책에는 그의 무정부주의자적 성향과 무신론자적 성향이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2~3장에 걸친 '왜 사람들은 국가에 순종하는가?', '전쟁은 제도다'에서는 애국심에 깃든 종교적 성향을 비판하고 국가에 대한 희생(참전을 의미함)을 지지하는 행동을 우둔하게 묘사하며 매우 강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치안, 보건, 의무교육, 경제적 격차 해소와 같은 몇 가지를 국가의 권한으로 꼽아 과도한 권력을 경계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주목할 것은 생디칼리즘(syndicalism)이다. 러셀이 사회재건의 방법으로 지지한 생디칼리즘은 '공장이나 사업체 등의 조직이 그 속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해 소유되고 운영되는 주의(p.47)'를 일컫는데, 이는 단독으로 시행될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협동조합의 문제점을 보완하며 그와 함께 병행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함께 사회주의의 폐단도 지적했던 러셀은 협동조합과 생디칼리즘을 통해 두가지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경제적 공동체를 구상했으며 결론적으로 이러한 체계가 억압적인 현대 국가를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라 믿었다.

러셀이 제시한 사회재건의 원칙은 오늘날 우리의 사고체계로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면이 많다. 어쩌면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가 선뜻 실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같이 전쟁과 군사정권의 시대를 겪고 세계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면, 비록 100년전 한 정치철학자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오는 울림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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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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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를 담아두기에 매우 안전하면서도 위험한, 그리고 은밀한 장소이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기록하여 남길 수 있기에 안전하며, 시대에 따른 풍경과 문화, 의식을 그대로 반영해 후세에 생생히 전달할 수 있기에 안전하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까닭은 왜곡이 쉽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작되거나 통제가 따를 때, 혹은 만든이의 치우친 견해로 사실이 타격을 받을 때 역사는 영화속에서 해야할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의미없는 이미지들만 남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영화는 전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역사적 인식을 스토리 안에 표출할 수 있다. 쉽게말해 <동물농장>이나 <걸리버 여행기>같은 소설처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의 상황과 논점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의 이러한 특성을 짚어보는 이유는 영화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까닭이다.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동일하게 역사를 다루지만 관객이 몇 백만이나 되는 영화에 비하면 그 파급효과가 미치지 못하니, 가장 대중적 장르인 영화에서 역사를 바로 그려내지 못한다면 관객들은 은연중에 우리의 과거를 왜곡해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화는 역사다>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영화에서의 과거와 현재 간의 소통 문제를 면밀히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재해석해 온 우리 영화의 발전사를 살펴가며 관객들이 영화에서 역사적 진실을 만나는 과정이 얼마나 힘겹게 진행되어왔는지 고스란히 들려준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분단과 한국 전쟁을 그린 영화들'을 보면, 철저한 반공영화에서 북한군을 적대시하는 경향의 영화를 거쳐 북한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한 <공동 경비구역 JSA>가 탄생하기까지 종전(終戰) 후 무려 50여년이나 걸렸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베트남전 영화에 있어서도 반공영화의 일환에서 멜로영화 수준에 그치지 못했던 것이 최근 <알 포인트>에 이르러 미국 용병으로서의 우리 위치를 본격화한다. 이처럼 한국 영화사 100년은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정권, 민주화 항쟁 등 수많은 질곡의 시간을 건너왔기에 권력의 통제 안에 오래도록 남아있다가 불과 10년전부터 위축된 날개를 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간의 통제에 반작용인 듯 한국 영화계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던 영화는 대부분 분단과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다. 영화 매니아가 아닌 내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영화들이 친숙했던 까닭도 내가 영화를 많이 보아서가 아니라 흥행의 물결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문화연구가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에 따르면 이런 상황을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 풍유)'라고 하는데, 민족이 집단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사적 경험이 문화적 텍스트를 통해 알레고리로 드러난다(p.109)는 의미이다. 즉,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소재이기에 <쉬리>가 <타이타닉>의 관객수를 앞지르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비춰볼 때 조금은 조바심이 생긴다. 전쟁과 이념 갈등을 절감했던 세대들이 주류를 떠나기 전에 더 분주히 이에 대한 재조명이 시도되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정립해야 할 역사적 관점들을 함께 나눴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한편 관객 동원에 있어서는 크게 성과를 올리지 못했음에도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영화속에 그려내려는 노력은 그 흔적을 뚜렷이 남겨왔다. 이 영화들은 4.3항쟁, 조총련, 비전향 장기수 등과 같이 보다 소수의 입장을 다뤘지만 전쟁과 분단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왔고, 때론 희생자들의 문제를 고발하면서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 역할을 했다. 역사 영화를 집중적으로 탐구해 온 저자는 더 다양한 역사 영화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일반 관객에 불과한 나로서는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해도 이 책에 등장한 역사 영화의 다양성에 내심 놀랐다.

저자는 특정 주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현되었는가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면서도 주제가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어 전반적인 연대사에 통사를 겸비해 읽은 것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주관적 예술론이 아닌 사실적 기술을 바탕으로 했기에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 좋았고, 소개된 영화들도 친숙한 것들이 많아 읽는데 공감이 더욱 컷다. 처음에는 막연히 영화를 가미한 역사 이야기일거라 짐작했었는데, 읽어보니 (예상을 깨고) 역사 영화와 그에 담긴 관점에 주목하고 있어 사뭇 진지해졌고 덕분에 관객으로서의 시선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매우 흡족하다. 우리 역사에 대해서라면 영화인의 책임도 중요하겠지만 관객으로서의 책임 또한 중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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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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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지도 어언 5주년이 되어간다. 보다 친근하고 현대적인 건물에 새둥지를 틀고 대중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기울여서인지 가끔 주말에 지나쳐보는 어림으로는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듯하다. 박물관에 들고 나는 사람들을 보며 지척에 두고도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바쁜 일상에 돌리고 있을 때,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소파에 기대어 쉽게 읽을 수 있는'이라는 책 소개에 너무 간략한 입문서 아닐까라는 의심도 해봤지만 책을 읽어보니 내 생각은 완전히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변신으로 대중과 우리 전통 사이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맺어가는 중앙박물관처럼 이 책도 그러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는 주옥같은 우리 미술품들을 선별해 이해가 쉽도록 평이하게 서술했을 뿐 아니라 미술사를 풀어나가는 구성부터 색다르게 시도했다. 유홍준 교수는 우리의 미술사를 연대순이 아닌 통사(通史)로 엮어 '동아시아 미술사 전체의 흐름'속에서 바라보았다고 설명하는데, 이를 중국의 영향에 의한 정체성의 미숙함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 수용의 자세로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또한 대체적으로 미술사는 건축, 조각, 회화, 공예 순으로 기술되지만 이 책은 기존 양식을 따르지 않고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 열두 주제로 나누어 우리 미술에 맞는 방식으로 풀어갔음을 덧붙인다. 이렇게 재구성된 방식으로 만나 본 한국미술사는 우리의 역사와 미술품들의 성격을 훨씬 잘 반영해 주었고 우리 고미술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삼국시대의 고분미술은 지금까지 역사 교과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체계와 깊이가 느껴져 읽고난 후 잔향이 짙게 남는다.

토기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선사시대로부터 고조선, 청동기 시대의 미술에서는 삶의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빗살무늬 토기로부터 탄생한 우리의 토기들은 아름다움과 상징성, 제작 기술의 다채로움이 빛을 발하며 그 안에 담겼을 수확의 풍요로움과 함께 문화 성장의 풍요로움을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 주식의 풍요와 원활한 사냥을 기원하며 생선뼈 모양의 빗살을 한땀 한땀 정성스레 새겼던 선사시대의 조상들은 고조선시대에 이르러 지역성을 띄는 다양한 기형(器形)의 민무늬 토기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때 이미 훗날 삼국시대의 도기를 연상케할 만큼 미감이 돋보이는 토기들을 만들어 냈으니 세계 최고의 백자와 청자도 다 같은 솜씨에서 나온 것이리라. 이후 삼국시대에 가까와질수록 도기들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독특한 모습들로 발전했고, 동물의 모양을 상징화, 추상화하는 아이디어는 오늘날의 도예가들 못지않게 창의적이었다.


삼국시대로 들어가면 화려한 금관과 금공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특히 신라는 금 생산이 많아 일찍부터 금세공기술이 발달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초록빛 곡옥 장식의 신라 금관은 5세기 후반에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완벽한 구성미를 갖춘 왕관이라 인정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로부터 많은 문화를 유입했던 일본도 신라를 가리켜 '눈부신 금과 은의 나라'라 기록하고 있다니 그 당시 신라의 문화가 얼마나 화려하고 뛰어났는지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신라의 금관을 살펴보면 산(山)자 모양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산(山)자형에 더해진 세움 장식은 나뭇가지와 사슴뿔을 상징하는 시베리아 풍의 샤먼적 요소로, 어떻게 북방풍이 신라에 건너왔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역시 이러한 설명을 더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흐름 속에서 우리 미술을 파악하려는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금관을 비롯 다양한 금장식 유물들은 그 정교함과 기품이 오늘날의 명품 악세사리로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이 유물들의 대부분은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이 아니라지만 허리띠드리개의 경우 생전에도 착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지배층들이 상당한 고급문화를 누렸음에는 틀림이 없다.


신라의 금공예품도 뛰어나지만 고분미술하면 역시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빼놓을 수 없다. 저자가 설명하기를 무덤 양식은 오랜 세월에 걸쳐 거의 변화가 없는 부분으로 무덤이 바뀌면 삶의 모든 양식이 바뀌었다고 간주해도 좋다니, 삼국시대 고분미술의 변화를 통해 그 당시 우리나라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변화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고분벽화에서도 피장자의 초상화를 담던 것이 생활풍속화로 변하고 나중에는 사신도로 귀결되었는데, 이를 보면 무덤의 개념이 개인의 공간에서 영혼이 안주하는 곳으로, 현세의 재현에서 내세를 향한 동경심으로 전환되 인간 내면의 성장을 반영하는 듯하다. 여기서 주목하여 보아야 할 것은 단연 통구사신무덤과 강서큰무덤 벽화이다. 자웅합체인 현무에 음양의 조화와 남녀간의 사랑을 담아 격정적으로 표현한 통구사신무덤, 수려한 곡선이 춤추는 가운데 묘한 붉은 기운이 주술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강서큰무덤 벽화는 가히 우리 고분벽화의 최고봉이라 부를만하다. 다만 도굴로 인해 백제의 고분미술을 충분히 감상할 수 없어 안타까왔지만 그나마 온전히 살아남은 무녕왕릉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고분미술은 도굴을 제외하면 그나마 땅속에 보존되어 있었기에 비교적 후세까지 전달된 편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야 했던 삼국시대의 건축물들은 백제의 만하루와 신라의 산성 그리고 약간의 건축부재 등에서 겨우 비춰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중 '치미'는 지붕의 용마루 끝에서 왕의 권위와 화재예방의 기원을 담아 궁궐을 지켰던 상징적 건축부재로, 비록 건물 본체는 사라졌지만 날쌔게 쳐올라간 그 모습에서 아직도 당당한 위용이 느껴진다. 그리고 참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와당을 비교한 도판이었는데, 섞어놓아도 각 나라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특징이 있어 고구려의 와당에서는 힘찬 기상이, 백제에서는 우아함이, 신라에서는 화려함이 돗보이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은 삼국시대의 미술을 크게 고분미술과 불교미술로 나눈다. 그 이유는 현전하는 삼국시대 미술품의 주제가 6세기를 전후로 고분에서 불교로 전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홍준 교수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마친 후의 느낌도 사물중심의 이야기를 읽었다기 보다는 내재된 관념의 흐름을 읽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또한 나는 불교미술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지만 이 책을 통해 불상에 반영되고 있는 인간 내면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한지 새삼 놀랐다. 그리고 성불한 고귀함이 돗보이는 불상들보다 어쩐지 너그러운 인간미가 배어있는 백제의 6시 5분전 불상(본 명칭은 '납석여래좌상'), 고뇌하는 화랑의 모습을 담은 듯 고개를 깊이 숙인 '금동반가사유상'이 더 마음깊이 와닿는다.


이 외에도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는 짧은 기간 존속해 희미하게 잊혀졌던 가야나 발해까지도 자부심이 느껴질만큼 그 위용을 상세히 담고 있으며, 유적 발굴에 얽힌 사연과 미술품을 둘러싼 학계의 분분한 의견들까지도 곁들여 있어 읽는 맛이 쏠쏠하다. 아마도 이 책을 '한국 미술사'라 하지 않고 '강의'라는 단어를 붙여 이름지은 것은 이처럼 강의실에서나 들을 수 있을법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뒷부분에는 마치 깜짝 선물처럼 불교미술의 기본 원리와 미술사학의 방법론까지 수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한국 미술사를 좀 더 깊이 공부하라는 숙제로 남겨주신 듯 하다.

그동안 우리는 주입식 교육을 통해 우리 전통에 대한 자부심마저 같은 방식으로 심어왔다. '여백의 미', '곡선의 아름다움'은 알겠는데 그것이 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세계 최초로 발명된'은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이 역사상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과 같은 슬로건을 당연시 여겨왔다. 하지만 이 책은 미술사를 온전히 서술할 뿐 아니라 인문학적, 역사적 고견을 담고 있어 깨닫고 이해하는 가운데 저절로 경외심과 자부심이 솟아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 미술사와 자부심에 대한 근원의 깊이를 더하길 바란다.

책을 마치고 나니 그동안 박물관에 가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이 뿌듯하게 채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미술사의 기본은 현장답사라는 저자에 말에 뜨끔하며 현장에는 가지 못해도 다시 중앙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는 결심이 새롭게 돗아난다.


<본 이미지의 저작권은 해당 출판사에 속해 있으며 무단도용이나 상업적 목적의 사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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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0-11-1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네요.. 강조할 부분은 조금 강조해 주신다면 읽는 이들에게는 참 좋겠습니다.

탄하 2010-11-13 20:47   좋아요 0 | URL
밑줄이나 굵은 글씨를 말씀하시는 건지?
고건...그냥 줄글쓰기를 나름 원칙으로 정했기에 안하고 있답니다.^^
그거이 아니라면 좀 더 글을 명료하게 쓰는 연습을 해야겠네요.
어쨋든, 조언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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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키란 미술에서 사물의 특징을 잡아 빠르게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그림 그리기에 익숙한 사람의 손놀림을 보면, 먼저 중심선을 재빠르게 잡고난 다음 특징이 잘 드러나도록 선의 강약을 조절하며 한 호흡에 그려낸다. 그렇기에 코끼리의 발을 다 그리지 않아도, 음영을 세밀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긴 코나 큰 귀, 우람한 몸통만 잘 그려낸다면 누구나 코끼리임을 알아챌 수 있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은 이렇듯 세계사의 주요 장면에 대한 크로키와 같다. 저자는 방대한 세계사에서 욕망, 근대화,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의 5가지를 주 원동력으로 뽑아내고, 통사(通史)적 방법으로 굵직하게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그리고 곳곳에 스타벅스나 마이크로소프트, 테러 등 현대 사회의 요소들을 등장시켜 역사와 현실과의 유사성 혹은 인과관계 등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먼저 세계사를 움직이는 첫번째 원동력 '욕망'은 우리에게 친숙한 커피와 홍차로 시작한다. 이 은은하고 우아한 기호식품이 대체 욕망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더욱이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의 원동력이라니, 커피와 홍차에 붙은 수식어 치곤 너무 대단한 듯 하다. 처음엔 그저 커피생산과 식민지에 대한 이야기 정도겠거니하고 페이지를 넘겼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관점들이 눈에 뜨인다. 저자는 커피의 '잠들지 않는'속성, 즉 각성 효과가 근대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몰고 간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서구인들이 커피를 많이 마셔 일을 더 많이 할수 있었다는 단순한 해석이 아니다. 커피를 자주 마시게 된 프랑스인들은 '커피 하우스'를 통해 정보 교환에 몰두함으로 정보 자체가 힘이 되는 근대적 구조를 만들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커피의 힘은 보스턴 차사건을 계기로 비싼 차를 수입할 수 없게 된 미국에서 더욱 꽃피워 오늘날의 월스트리트에 이르렀고, 차를 마시는 우아한 성향은 유럽에 남아 문화와 예술의 바탕이 되었다 하는데, 이들의 부유함을 떠받치기 위해 땡볕아래 스러져간 '니그로의 땀(흑인 노예들의 노동)'이 애처럽기 그지없다.

'근대화'라는 두번째 원동력에서는 원근법을 통해 오늘날로 이어지는 시각의 힘을 논한 점이 흥미로웠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원근법은 중세의 신(神)에서 벗어나 인간의 시점으로 세계를 파악하려 했던 우리들의 노력이었다. 그리고 중세에서 '성서'의 지식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으로 이어졌듯 근대에서는 '시선'의 지배가 권력의 지배로 이어졌다. 여기서 저자는 감옥을 통해 '보다-보여지다'의 지배구조를 논했던 근현대 철학자 벤담, 푸코를 등장시켜 르네상스로부터 이어져온 시선의 지배의 계보를 설명하며 이어 인공위성과 인터넷을 연결시켜 '정보'의 지배가 오늘날 막강한 힘을 갖게 되는 원리까지 도출해 나간다. 그리고 이토록 시각의 영향력이 막강한 사회에서 아로마테라피나 마사지가 각광받는 현상은 그동안 등한시되었던 시각 이외의 신체감각을 되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이라 지적한 점도 신선한 견해였다.

이어지는 세번째 원동력 '제국주의'에서는 현대판 제국주의인 '글로벌리즘'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네번째 원동력인 '몬스터'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중세 교회의 유사성, 파시즘을 계승하고 있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등을 언급하며 꾸준히 과거가 반영된 오늘날을 이야기해 준 점이 인상깊었는데, 워낙 방대한 분량인지라 각 주제에 대한 설명을 진지하게 다루기엔 조금 지면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원동력인 '종교'는 근래 종종 볼 수 있는 중세 다시보기와 아직 우리에게는 미지의 세계인 이슬람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의 요지는 르네상스가 중세 이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며 십자군 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흘러들어온 이슬람 문화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발현한 것이라는 점인데, 이를 통해 이슬람의 연금술에서 시작된 과학, 즉 마법의 돌을 꿈꾸던 순진한 과학이 오늘날 생명 공학으로 이어져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음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었다. (이는 아마도 최근 과학자들이 부단히 주장하는 무신론의 대세에 반하는 것이기에 그리 느껴졌던 것 같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은 세계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고 연대적으로 공부하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내게 통사(通史)적 묘미로 다가온 책이었다. 크로키처럼 굵직한 사건들만 추려낸 덕에 오랫동안 세계사에서 멀어졌음에도 부담없이 읽어갈 수 있었으며, 역사를 재해석하고 현대의 사건 속에서 반추해가는 과정을 통해 경직된 상태로 기억속에 산재되있던 세계사를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즐거웠다. 이 책을 통해 좋은 워밍업의 시간을 가졌으니 세계사는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내가 다가가기 쉬운 통사적 책들부터 다양하게 시도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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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0월에 출간된 예술/대중문화 서적들을 둘러봤더니 건축 서적들의 대세였다. 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이 점점 활발해지는 듯 여행과 접목시킨 건축서적, 에세이와 접목시킨 건축서적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반면 다른 분야의 서적들은 비교적 균등한 비율로 출간되었고 예술일반 서적들만 찾아보기 힘든 것 같았다. 미술 서적에서 한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역사 분야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가지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이번엔 명화에 대한 책을 썼다는 점이다. <세계사를 움직이는...>에서 백과사전형 지식인의 시대가 다시 올거라 말하더니, 이 사람이 바로 백과사전형 지식인인가보다. 하지만 전작을 읽은 경험에 비춰 보면 청소들에게 적합할 듯...

결국 이번달은 대세를 이룬 건축분야의 책들과 예술일반, 그리고 조금은 만나기 힘든 주제의 사진책을 골라보았다. 영화분야에도 좋은 책들이 눈에 띄여 한참 고민을 했지만 역시 에세이나 기술서가 대부분인 사진책 가운데 이런 주제를 만나는 일은 드물거라는 생각에 사진책을 선택한다.

10월의 예술분야 도서중 단연 1순위로 눈에 들었던 책이다. 원로, 중견, 신세대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다양한 예술분야를 대화형식으로 풀어간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생관이 많이 뭍어나 있다는 점에서 가을의 끝자락에 여운이 될 것 같아 감성의 양식을 위해 골라본다.
 

 


현재 학계와 실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건축가들의 글이 담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눈에 띄는 몇몇 저자들을 제외하면 새로운 저자들을 접할 기회가 드문 건축 분야이기에 다양한 생각들을 엿보고픈 욕심으로 챙겨본다. 일반 대중을 위한 건축 서적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생태'와 '디지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점도 특이할만하다. 
 

 

왠지 나는 낯선 이미지들이 좋다. 그들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일으켜 상상해 보는 일들이 즐겁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난해한 현대 사진들을 '극과 극'이라는 컨셉을 통해 소개하고, 각 작품들을 읽어나가는데 초점을 맞췄기에 그동안 낯선 이미지들을 감상하다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 같아 기대된다.
 



어쩌면 이 책은 전공자들을 위한 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전 건축과 음악에 대한 논문을 흥미있게 읽었기에 그동안 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건축과 음악뿐 아니라 '수'가 등장하고 건축계의 거장 르 꼬르뷔지에의 음악적 건축언어를 다루고 있는 점도 무척 흥미진진하다.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그렇다면 중국의 대표도시 북경을 둘러보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일 아닌가. 이 책은 여행과 건축을 접목시킨 소재를 통해 북경 올림픽 전후로 왕성하게 성장한 그들의 도시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중국'하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미래로 향한 도시 북경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이밖에도 마지막까지 선정여부를 고민하게 했던 호러관련 영화서적 <죽음의 무도>, 흔히 접할 수 없는 트롱푀이유 작품들이 풍부하게 수록된 미술서적<눈속임 그림>, 역시 미술서적으로 참신한 젊은 작가들의 현대미술이 돗보이는 <미술의 빅뱅>, 개정판이라 선택하지 않았던 <사고와 진리에서 태어나는 도시>, 영화와 영화 이면의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는 <영화, 영화인 그리고 영화제> 등도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이번 달엔 건축 책을 읽으며 찬 바람 속에 우뚝 서있는 콘크리트 벽에 기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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