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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화가 - 2page로 보는 畵家 이야기 디자인 그림책 3
하야사카 유코 지음, 염혜은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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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화가의 생애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중요하다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떤 면에서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로뎅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에콜 드 보자르에 세번이나 낙방했던 사실이 <생각하는 사람>을 감상하는데 영향을 미칠까? 폴록이 시케이로스(멕시코 화가)의 벽화작업에서 액션페인팅을 착안했다는 사실이 현란하게 춤추는 <가을 리듬>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될까? 쇠라가 인상파전에서 감동을 받아 빛과 색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을 알고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실상 미술가들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감상할 때에는 그들의 생애나 성격에 대한 지식이 크게 영향을 미치치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그림이나 정치적 성향을 띤 그림 등에서는 미술가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야 더 충실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작품 자체의 감상에 화가 개인의 생애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반면 한 사람의 미술가가 가지고 있는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작품 변화의 계기와 요소, 반영된 관념이나 심리적 상태 등을 추적해 보다 심도있게 연구하고자 할 때에는 그 삶의 흔적이 무척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건이나 일화와 그렇지 않은 것들이 구분되며, 대체적으로 미술사조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활약한 내용을 그의 생애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2페이지 속에 담긴 각 화가들의 대표적 특징과 다양하고 사소한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더욱이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사이즈가 작게는 우표에서 크게는 명함판 사진 정도의 크기라면 이 책을 통해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단적으로 말해 그렇지 않았다. 축소될대로 축소되 빽빽한 만화 틈새에 배치된 그림들은 화가의 일대기 속에 등장하는 조연으로 비춰졌으며, 대략 이런 것을 그렸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이지 결코 감상용 이미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보다는 인물분야로 먼저 분류되어야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목도 <101점의 그림>이 아니라 <101명의 화가>가 아니였던가!

책 속에 소개된 화가들의 인생은 (당연하겠지만) 십인십색, 백인백색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고, 정신적인 고통을 겪은 사람도 있으며, 불같은 사랑을 한 사람, 아쉽게 절명한 사람, 특이하고 개성적인 사람, 그리고 별다르지 않은 평이한 삶을 산 사람까지 모두 미술사를 빼곡히 채워온 인물들이었으며 그 안에 살았던 흔적을 남겼다. 이것은 단지 인생 그 자체뿐만 아니라 작품세계나 화가의 성향 면에서도 여러가지 사람들로 나눠질 수 있었는데, 그것이 충분히 나타나지 못하고 수많은 색채의 화가들이 가나다 순으로 묻혀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또한 특정한 의도 없는 가나다순 배열과 만화로 풀어간 형식, 매우 기술적인 일대기의 묘사는 주입식 미술교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만화 학습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한 사람의 화가 이야기를 두 페이지에 담는다는 것에는 극과 극의 경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 인물과 그의 작품을 심도있게 이해한 바탕위에 저자만의 관점과 통찰력을 담아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는 고도의 경지이며, 다른 하나는 다양한 정보 중에서 중요한 사건을 뽑아 나열하고 배치하는 매우 손쉽고 일반적인 경지이다. 그런데 <101명의 화가>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성격이 더 강한 책이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잘 파악이 되지 않았다.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중학생에게 밀레에 관해 A4 한 장으로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해도 이 책의 2페이지에 담긴 내용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물론 화가의 생애를 중심으로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일화와 작품활동에 대해 간략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이 책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화가의 생애에 대해 새롭게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유익했지만 '놓칠 수 없는 최고의 추천 작품'을 찾느라 작은 글씨와 다닥다닥 붙은 그림 사이를 헤매야 했던 어려움과 끝내 그것이 두 페이지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찾다 포기한 것이 아닌, 애초부터 삽입되지 않았다는 의미) 당혹스러움이 종종 발생해 결국 아쉬움을 더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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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지난 1년 몇개월 동안 거의 음악을 듣지 않고 지냈던 탓인지 '짐 모리슨'과 '커트 코베인', 그리고 지난달에 이어 다시 보이는 '음악과 삶'이라는 주제가 유독 눈에 뜨인다. 물론, 추천도서에는 이 책들을 꼽지 않았지만 음악 아니면 죽고 못살던 시절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한 자극이었다. 전영혁의 25시(이후 '전영혁의 음악세계'로 타이틀이 바뀌었다)의 시그널 뮤직을 손꼽아 기다리던 그 때, 잠들기 직전까지 음악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던 그 때, 눈보라가 휘날리는 겨울일지라도 음반 하나 사기 위해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헤메던 그 때... 봄을 타나? 다시 음악이 그리워지는 듯하다.

무튼, 이제 서점에서 뒤져본 책들을 추천할 차례.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며칠 전 추천도서 목록에서 한 권을 빼고 이 책을 추천한다. 사실 도면들이 많이 수록되었다는 설명을 보고 전공교재까지는 아니여도 부교재나 참고도서(전공자를 위한)쯤 되리라 생각해서 아무도 추천하지 않을거라 예상했는데, 그래서 추천하고 싶었지만 그냥 삼켜버리고 말았는데, 지금 보니 많은 분들이 선뜻 이 책을 추천하시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함께 밀어본다.^^ 

한국 건축의 공간, 형식, 구조 등 기초부터 차근차근 모두 살펴볼 수 있는 엄청 기대되는 책이다.




 

<사유속의 영화>


이 달에 가장 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다면 5월에는 평가단에서 딱 한권만 선정된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영화 이론에 대해 이렇게 알차게 모아놓은 책이 또 있을까? 물론 각 학자의 이론에 대해 심도 있게 다가가려면 먼 길이며 영화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예술, 인문에 두루 걸치는 방대한 지식임을 간과할 수 없지만 이렇게 한 권으로 영화를 둘러싼 주요 담론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행운이다.





 

<퍼블릭 인티머시>


미디어 아트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고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몸에서 영화적 요소들과의 관련성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방이라는 공간적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신묘한 세계가 미디어 아트라면 한번쯤 푹 빠져 그 방들 사이의 여행에 동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결국, 음악>


이젠 새 세대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야 겠다. 1980년대부터 시작하는 음악 이야기이니 80년대가 가장 오래된 시간이고 따라서 오늘날과 가깝다면 가까울 수 있는 90년대의 음악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TV 생방송에 등장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오늘의 아이돌 스타가 아닌 음악사 속의 아티스트로 만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스타로 주목받지 않았더라도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던 인디밴드들은 지난 30년간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많은 것들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에디토리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잡지 <월간미술>의 편집장 이건수의 글을 모은 책이다. 15년간 한결같이 <월간미술>을 지켜왔다는 것 만으로도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의 내공을 기대하며 이 책을 선뜻 택해본다. 또한 에디토리얼에는 미술계의 각종 이슈에 관한 사색들이 더 두드러지는 편이라 지난 우리 미술계의 대소사를 통해 미술과 사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책소개에서 '신정아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 책의 내용이 그 사건과는 무관하길 바란다(좀 전 내게 유일하게 남아있는 <월간미술> 2007년 8월호를 펼쳐 보았다. 헛! 그런데 그때의 에티토리얼 제목은 '진실게임'...이건 신정아 사건에 관한 이야기였다...ㅠ.ㅠ).
 


그밖에도 4월에는 한 명의 아티스트의 작품과 생애를 집중해서 다룬 책들이 눈에 뜨였다. <반역의 시인, 랭보와 짐 모리슨>은 아주 오래 전 반쯤 읽었던 짐 모리슨의 전기 <Doors>(혹은 <도어스>였을 수도 있다)가 떠올랐다. 물론 이 책은 단순히 짐 모리슨의 전기는 아니고 랭보와 모리슨에서 발견되는 공통성을 주제로 쓰여진 책인데, 두 사람을 비교한 점이 흥미로워 읽고싶긴 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커트 코베인>의 경우 전적으로 그의 전기이다. 미스테리한 죽음은 항상 의문과 관심을 남기는 법. 아기가 헤엄치는 너바나의 앨범 표지가 눈 앞에 아른거리며 그의 부고를 알리는 소식을 듣던 때를 생각해 본다. 저 세상에서는 새로운 영으로 태어났을까? <앤서니 브라운의 나의 상상 미술관>은 영국 최고의 동화작가라 인정받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세계를 담고 있다. 사실 동화와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그의 ‘모양 상상 놀이(Playing the Shape Game)’ 이라는 것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사실 이것은 <마술연필>이나 <마술연필을 가진 꼬마곰>을 보면 약간 엿볼 수 있다. 덧붙이자면,나는 조카 덕에 엿봤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게리와의 대화>는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의 작품세계와 지금까지의 생애를 다룬 책이다. 물론 이와 비슷한 책들이 많긴 하지만 가장 최근 것이니 게리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택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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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활동 종료 페이퍼

작년 처음으로 신간평가단에 도전해 이달까지 활동을 하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책 읽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이번 달에는 어떤 책이 나왔을까 기대하고, 또 이 많은 책들 중 과연 어떤 책이 선정될까 궁금해하는 과정이 즐거움을 더해준 것 같네요. 그동안, 총 6개월에 걸쳐 모두 12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참 다양한 예술분야를 두루두루 읽었군요. 여기서 3권을 꼽으라면 저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 <그림, 문학에 취하다>, <예술의 정신>을 꼽겠습니다.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1>은 우리나라의 미술에 맞게 새로이 뼈대를 구성한 점도 마음에 들었고, 오래전 배우고 잊어버린 빗살무늬 토기에서부터 찬란했던 삼국시대의 불교문화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되돌아볼 수 있어 무척 의미있었습니다. 특히 살아가느라 관심밖으로 빌려나 버린 죽음의 공간(고분미술)을 상기해 볼 수 있었던 점과 드물게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건축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리고 '강의'답게 관련자료와 미술론을 요약한 부분은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림, 문학에 취하다>는 우리나라 대표 화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흔히 접할 수 없는 다양한 그림들이 소개된 점이 매력이었고, 그림과 문학 모두 깊이있게 설명해 주고 있어 무척 뿌듯한 독서였습니다. 그림에서 문자향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인지 처음 맛보았는데, 전부 다 헤아릴만한 혜안은 없지만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나중에 두고두고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예술의 정신>은 마음에 의지가 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뛰기도 하고, 반성이 되기도 하고, 간과하고 있던 것에 새삼 찔리는 것이 마음의 재무장이 되네요. 비록 20세기 초 서양미술의 거장의 가르침이지만 오늘 우리들에게도 깊이 왕 닿는 공감대가 있어 참 좋았습니다.

 



건의할 사항은 별로 생각나지 않네요. 설 연휴 이후 일정이 좀 불규칙했던 것 정도?  
전체적으로 크게 문제가 있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고, 마지막으로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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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깨진 청자를 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 깨진 청자를 품다 - 자유와 욕망의 갈림길, 청자 가마터 기행
이기영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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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깨어진 청자 뿐이었다. 지금까지 청자라하면 적어도 교과서나 도록에 실린 국보급 청자들로 오묘한 빛과 우아한 곡선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 '완제품'들이었는데, 전형적인 대표 작품 몇 점 외에는 한 번도 제대로 구경해 보지 못한 청자를, 이런 청자 저런 청자 감상하기도 전에 모조리 깨어진 사금파리들만 만나고 말았으니 이를 어쩔까나!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시종일관 깨진 청자로 가득 메운 이 책이 적잖이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은 실망에 의한 당혹스러움이 아니라 깨진 청자가 오히려 우리 청자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놀라움에 의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도대체 저자는 무엇을 위해 깨진 청자를 향한 고행아닌 고행길에 나선것일까? 유럽 도자 기행이 무산된 이후 청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청자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닌 역사의 블랙박스라는 사실을 발견한 탓에 청자의 발전사와 땀내 배인 도공들의 삶을 추적해 나갔다지만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도자기에 대한 열정, 그리고 깨진 청자 속에 담긴 조상들의 혼으로부터 힘겨운 마음을 다잡고자 하는 한 고뇌 어린 도공의 독백이었다.

영암 구림을 첫 걸음으로 시작하여 강진, 해남, 장흥, 용인, 서산, 양주, 그리고 다시 강진에서 맺으며 약 20여개에 달하는 가마터를 찾아가는 이 순례기에는 역사를 한창 거슬러 올라 청자가 걸음마를 시작할 삼국시대 무렵부터 다양한 청자가 생산되었던 고려시대까지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러나 제작기술 중심이 아닌 생산규모 중심으로 청자를 추적한 탓인지 흔히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기술을 구가하던 시대의 가마터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청자의 아름다움과 한국의 미에 대한 관록이 주가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물건을 생산하고 사업을 확장하며 정치적 세력이 팽팽히 맞서고 부역하는 백성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도예산업의 이면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겐) 놀랍게도 장보고였다.

우리에게 해상왕으로 잘 알려진 장보고는 해외 무역을 위해 우리나라 자체에서 도자기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원대한 계획을 구상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도자기 기술의 씨앗을 심기 위해 중국의 기술을 비밀리에 유입해 왔다. 비록 장보고는 자신의 산업이 확장되고 커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염장에 의해 살해되지만 그가 뿌린 씨앗은 자라 1세대의 실험청자를 거쳐 점차 성장했으며 다양한 가마가 제작되고 다양한 청자 제품들이 생산되는 5세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저자가 가마터에서 발견하고 우리에게 보여주는 청자들도 충분히 건조시키지 않았던 것이라든지, 유약을 너무 바른 것이라든지, 가마 흙덩이가 떨어져 실패한 것 등 뼈아픈 도공들의 실험과 숙련과정들을 담고 있다. 청자들도 모두 녹색이 도는 것이 아니라 적색, 흑색이 도는 청자로부터 시작해 점차 청색이 도는 청자들도 보이며 백자가 함께 생산되었던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때로 백자가 조각이 나타나기도 한다. 뿐만아니라 가마에서 청자를 구울 때 사용했던 갑발이나 도지미라는 보조물들도 소개되어 청자 생산의 현장이 매우 생생하게 전달된다.

깨진 청자이지만 이를 통해 청자의 상태와 당시의 상황, 도공의 솜씨와 성품, 그가 느꼈던 마음까지 모조리 읽어내는 저자의 관록에 감탄하며 마치 그가 도공의 동료이거나 선생님인 듯한 느낌마져 들었다. 이렇게 깨어진 청자에서 마음을 읽고 그것과 한 마음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저자도 걱정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청자에 대해 무관심하다. 골프장에 밀려나는 가마터들, 어디있는지 찾기 힘들고, 접근하기 조차 어려운 가마터들...그곳에 깨어진 사금파리들이 다시 희망을 꿈꾸며 지금까지 숨쉬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저자가 우리나라 청자의 보고인 강진에서 보여줬던 가마 분포도가 생각난다. 강진에는 188기에 달하는 청자 가마터가 밀집해 있었는데, 붉은 점으로 촘촘하게 표시한 그 지도를 보며 땅바닥에 어지러진 벚꽃잎들이 떠올렸다. 이미 저버린 전성기이지만 또 다른 봄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여행 끝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자유함을 얻었다고 했다. 무명의 도공들을 기리며 그들에게서 희망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데 왠지 나는 그것이 다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깨어진 청자 속에 담겨진 장보고의 원대한 계획을 다시 이 시대에 펼쳐보리라는 희망을, 장보고처럼 살아 생전 보지 못한다 해도 이후에 다시 살아날 청자의 전성시대를 꿈꾸며 그 씨앗이 되는 마음으로 무명 도공을 찾는 겸허함을 엿본 것 같다. 비록 청자에 대해서는 일자도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지만 우리의 청자가 생활과 더 가까와져 다시 밥그릇으로도 오르고, 종지로도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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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 오래된 사물들을 보며 예술을 생각한다
민병일 지음 / 아우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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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벼룩시장이나 앤틱샵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특별히 골동품을 모으는 취미가 있거나 그들을 바라보는 안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옛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진기함에 그저 번번히 유혹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북적이는 길거리에 펼쳐진 벼룩시장이든 어스름한 가운데 알 수 없는 내음이 깃든 앤틱샵이든 옛 사물들은 분주한 일상을 밀어내고 침잠해 있던 아늑한 시공(時空)을 재현하는데 구애받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사이를 서성이다보면 삶의 고단함이 사라지고 마치 할머니의 품에 안긴듯 평온한 시간에 잠겨들 수 있다. 옛 사물들을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은 누군가의 사연이 깃든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서리가 닳고, 빛이 바래고, 반들반들 길들여진 골동품들은 그것에 사람의 흔적이 배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친근해지며 향수라는 강한 감성이 밀려오면서 더욱 특별한 감동을 자아내곤 한다.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은 마치 지면위에 펼쳐진 벼룩시장같은 느낌이다. 여기저기 서성이는 대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긴다는게 다른점이긴 하지만 옛 물건들과 그에 얽힌 잔잔한 향수가 가져다주는 휴식은 현실의 벼룩시장에서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골동품'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타자기, 시계, LP, 라디오, 꽃병들은 저자의 마음 가득 고인 미술과 음악, 문학 이야기과 어우러져 한층 더 특별한 감성을 자아낸다. 이에 더해 독일을 중심으로한 문화 이야기가 풍성해 어느덧 골동품 하나로 먼 나라의 이국적인 정취까지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사실 이 책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골동품의 미적가치나 감정법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룰것이라 예상했었다. 예를들어 램프를 볼 때, 아르누보 시대의 미학을 논하면서 램프를 이루는 곡선이나 그려 넣은 그림의 수준, 공예적 기교와 가치에 대한 평을 할 것이라 짐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골동품 전문가의 시각으로 옛 사물을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예술인으로서 사물에 얽힌 사연와 감동, 그리고 그것을 돋워주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을 접목시켜 사유와 감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옛 물건들의 시각적 감흥에 곁들여지는 은은한 클래식 음악 이야기는 청각을 불러오고, 가끔씩 와인이나 맥주와 같이 미각과 후각을 자극시키는 주제까지 등장하여 공감각의 세계를 한껏 만끽할 수 있다.


저자가 소장한 옛 물건들은 어딘지 모르게 특별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 중에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같은 세계 명품도 있고, 파버카스텔(Faber-Castell)사 창립 222주년 기념 색연필(이 회사의 매니저도 처음 본다고 했던)처럼 희소가치가 있는 물건도 있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그러나 오래된) 단추, 다리미, LP레코드, 꽃병, 시계, 몽당연필들에서도 특별함이 느껴지는 까닭은 분명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대한 남다른 애정, 사물에 부여한 아름다운 의미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색색의 몽당연필을 꺼내 줄을 그으면 희미한 기억이 연필심을 따라 나온다.
할머니는 저 연필을 난쟁이로 만들어가며 생의 무엇을 기록했을까?(p.30)

저자는 벼룩시장의 할머니에게서 한 봉지의 몽당연필을 샀다. 하지만 그가 산 것은 색색으로 예뻐보이는 물건으로서의 몽당연필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 생에 대한 감흥이라는 어떤 의미로서의 몽당연필이다. 그가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에서 더 풍부한 예술적 감성들을 엮어나가는 것을 보며 김춘수의 시 <꽃>이 떠올랐다. 그는 오래된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꽃으로 피워냈으며, 그것에 예술적 사유화를 통해 햇살과 물을 주어 더욱 만개한 아름드리로 가꿔나갔다.

이 책을 읽다보니 범람하는 소비사회의 사물과 소유자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는 과연 내것으로 만드는 물건들에 어떤 의미를 얼마나 부여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까지 무심코 '사용'해왔던 물건들에서 '교감'할 수 있는 온정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비록 골동품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선택한 물건들에서 가격이나 품질, 디자인 이외의 어떤 다른 의미들이 숨어있는지 다시금 물건이 놓여있는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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