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날.
정신없는 8월이었다. 7월이나, 8월이나 정신없긴 매한가지.
바쁜 일정에 책탐을 부리느라 필요하지도 않은 스트레스만 생산해냈다.
책더미에 치인 내 모습을 보며 시몬느 베이유를 생각한다.
그녀는 평등한 사회와 이념을 위해 책 사이를 기어다니며 읽었다는데,
나는 고작 리뷰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읽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차분히 앉아 8월을 정리하며 나의 독서 목표를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깜빡해서 이 글은 9월에 올린다...^^;)

1. 정량에 비해 다독,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은
나의 상황에서 리뷰를 고려한다면 책은 한달에 3권정도 읽는게 가장 적당하다. 
물론 읽기만 한다면 4~5권정도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이번달에는 너무 과욕을 부린 탓에 충분히 소화하고 읽지도 못하면서 글쓰다 질려버렸다.

2. 계획 변경이 80%, 계획의 의미가 의심스러운
읽으려고 계획했던 책들도 거의 뒤바뀌어서 <감응의 건축>과 <정의란 무엇인가>는 또 뒤로...
그나마 샌델 교수 초청강연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를 끝까지 읽긴 했지만 
너무 급하게 읽어서인지 리뷰 쓰려면 다시 들여다 봐야 할 듯.

3. 예상밖의 소설 읽기
이번달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을 하나 했다.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 이후 내 돈주고 소설책 산 적이 없었는데,
제목땜에 너무 궁금해서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주문해 읽었다.
더불어 동생이 놓고 간 <친절한 복희씨>까지...한달에 총 2권에 달하는 소설책을 읽었다.



***  책과 뒷 이야기 ***

<일본의 걷고싶은 길 1,2>, <신정일의 신 택리지 : 서울/경기편>
둘 다 도보여행가의 글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일본의...>는 에세이 형식이고,
<...신 택리지>는 역사교과서와 고전의 가치를 겸비한 학술서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진들은 <일본의...>가 훨씬 보기 좋았고, <...신 택리지>는 텍스트에 더 힘을 실어서인지
사진자료 면에서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신의 존재에 대한 유무를 떠나 과학이 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세이건의 저서를 하나 더 소장하고 싶었기에 무리하면서 서평단을 신청했다.^^
그런데 이 책은 1985년의 강연 내용인데 왜 세이건 사후에 출판되었는지 배경이 궁금해진다.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 <감정을 다스리는 사람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
모두 심리학과 자기계발을 조합시킨 책이었는데, <극한의 협상...>은 매우 예제가 풍부하고 사이코패스에
초첨을 맞춘 점이 인상깊었고, <감정을 다스리는...>은 쏠쏠한 팁이 있는 평이한 입문서였다.

<친절한 복희씨>,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우연히도 읽은 소설이 모두 단편집이었다. 그리고 표지 디자인이 매우 매혹적이다.
(<친절한 복희씨>의 표지는 고 김전선님의 작품. 소설의 분위기를 너무 잘 나타내준다.)
박완서 작가의 <친절한 복희씨>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관계들을 개연성 있게 만들어가고
너무나 사실과 같이 섬세하게 묘사하여 그 상황에 흠뻑 빠지게 한다.
반면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은 상상과 은유를 삽입해 낯선 관계들을 만들어내고
탁월한 목소리의 변신으로 각기 다른 색채를 뿜어낸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는...>이 더 재밌기는 했지만 잔향이 짙은 것은 <친절한 복희씨> 쪽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달의 Top3를 꼽는다면?

1. 신정일의 신택리지
2.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3. 친절한 복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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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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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억을 돌이켜 떠올려 본 박완서 작가와의 첫 만남은 사실 썩 유쾌하지 않았다. 작품속에 등장하는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는 갓 스물을 넘긴 청춘이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과중했고, 읽어갈수록 지하창고로 내려가는 느낌을 떨치고 싶어 중간에 페이지를 덮어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친절한 복희씨

팔랑이는 샛노란 치맛자락이 인상적인 표지다. 그리고 친절하다니까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이번엔 뭔가 포근함과 초연함을 기대해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았다. 역시 예전과 같은 손길로 나를 지하창고로 데려간다. 하지만 내게도 그간 쌓아온 세월의 내공이 있다. 어두운 것이 그다지 부담스럽지만은 않아 가만히 적응해본다. 작가는 부산하진 않지만 재빠른 솜씨로 내 눈앞에 많은 것들을 재현해 낸다. 마치 3D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것같은 탁월한 묘사력은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움직임도, 시간의 물결을 오가는 배경들도, 보이고 싶지 않은 속내까지도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그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대조차 지나온 듯 눈에 선했다. 이것은 자세히 묘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섬세하게 흐를 것과 독특하게 꼬집어 낼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이음새없이 재봉하는 숙련된 능력이다.

또 한가지 놀라운 점은 등장인물의 관계들을 엮어가는 방식이었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관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사촌동생을 가정부처럼 고용하는 여자(그리움을 위하여), 바깥사돈과 살아가는 여자(대범한 밥상), 남자와 동거하다 대학선배의 별장지기로 전락하는 여자(거저나 마찬가지) 등 사회속에서 일반적이고 튼튼한 관계를 상실한 이들은 예외적이고 우발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마치 한 짝씩 남은 신발들을 맺어 한 컬레가 된 모양새다. 그럼에도 짝짝이 신발로 자신있게 이야기를 걸어가는 작가의 연륜이 상당히 돋보인다.

책 속에서 만난 노년들은 누구 하나 인생을 달관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예전의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사랑에 목말라하고, 여전히 갈등하며, 흔들리고, 응어리지고, 가식적인 노년의 모습. 나름대로의 감추기와 해법이 있어 그런대로 살아가지만 아무도 어린이 프로에 등장했던 이상적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되어주지 않았다. 때론 아들 내외에게 외면당하고 부부만의 시간을 위해 촛불을 사는 노인(촛불밝힌 식탁), 디카를 들고 손주에게 보낼 사진을 찍는 경실(대범한 밥상)과 같이 다독이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아이와 같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의연해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작가는 노년의 주인공들에게 절뚝거리는 삶을 살게 한 대신 해탈하라는 무거운 짐은 지워주고 싶지는 않았나보다. 

<친절한 복희씨>는 가보고 싶지 않은 시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부드럽게 일러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보다는 이렇게도 살아진다..라는 소극적인(?)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격려하는 것 같다. 팔랑이긴 하지만 나부끼지는 않는 노란 치맛자락처럼 그리고 그 아래 드러난 굳센 두 다리처럼, 그치지 않는 흔들림과 동행하며 묵묵하게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 아직은 이 소극적인 희망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스무살 때처럼 지레 밀쳐내지는 않았으니 살다보면 그녀의 책을 읽은 효력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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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신 택리지 : 서울 경기도편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4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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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인구밀도 도시에 번번히 등극하고, 50년새 4배의 인구증가와 17배의 고령인구 증가, 2배의 면적 증가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서울. 아침저녁 도로위엔 진득한 자동차의 물결이 차오르고 늘 그렇듯 무표정한 대열을 이루며 저마다의 목적지와 하루의 수당을 향해 종횡한다. 그런가하면 도로주변에선 늘씬늘씬한 건물들이 콧대를 세워 도도히 자라나고 한밤의 어떤 어둠도 네온사인의 욕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사람들은 서울에 대해 그리 온정어린 눈빛을 보내지 않는다. 서울 앞에는 항상 '강팍한'이나 '삭막한', 또는 '비인간적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며, 서울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이런 표현을 별 이의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이런 피상적인 동의에 반대하기 위해 이 책을 들었다. 왜냐하면 난 서울이 좋으니까. 그리고 내 고향인 서울을 좀 더 음미하고 싶어서.

여기서 '음미'라는 것은 이미 같은 시리즈의 '살고싶은 곳'편을 읽었기에 주저없이 선택한 단어이다. 또한 20년이 넘는 세월을 국토기행에 바친 이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내겐 일상인 서울을 멋진 가이드와 함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양 설레임이 가득하다.

서울의 '서'는 수리, 솔, 솟의 음과 통하는 말로 '높다' '신령스럽다'는 뜻이 있으며, '울'은 벌, 부리에서 변음된 것으로 '벌판' '큰 마을' '큰 도시'라는 뜻을 가진 말이었다. 서울은 한자로 경京과 도都로 표시되는데, 경은 크다는 뜻이고 도는 거느린다, 번성한다는 뜻이다.(p.27)


서울의 음미는 그 이름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름의 의미를 증명이라도 하듯 신령스런 용출봉이 첫 페이지를 가득 메운다. 온 나라 산수의 정기가 모여 도읍지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서울의 이야기는 빌딩숲과 너른 차도를 묘하게 가로지르는 저자의 인도 속에서 시(詩)로 엮이고 풍경으로 어우러져 역사 속에서의 각축의 흔적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여기에는 도읍지로서의 면모를 기려 우리의 궁과 정치, 행정에 관한 이야기들과 예로부터 이어져 온 서울지향의 일화들이 가득한데, 서울에 관한 속담같은 곁다리 이야기조차도 인심을 담고 있어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서울의 길을 담고 있는 두번째 이야기는 우리 세대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옛 성곽을 따라 걸으며 여전히 옛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생활속에서 흔히 지나치는 청계천, 남산, 동대문, 인왕산 등을 만나기에 별도로 유적지를 찾은 느낌이 아니다. 게다가 카메라를 담는 이의 눈썰미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풍경을 포착하고 있어 마치 일상 속에서 서울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는듯한 감흥으로 다가온다.

본격적인 근,현대사의 이야기들은 한강과 함께 굽이쳐 등장한다. 한국전쟁으로 폭파시켰던 다리, 개발을 명목으로 희생당한 밤섬,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등장했던 아파트촌들...우리의 부모님과 조부모님 세대가 시간 속에서 체험하셨을 친근한 이야기들이 이중환의 <택리지>와 역사적 사료에 겹쳐져 더욱 깊이있게 살아나는 이 부분은 서울 이야기 중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기나긴 여정은 도심 한가운데의 몇몇 기념비적 건물들을 지나더니 서대문 형무소앞에 멈춰서며 광복과 민족을 숙제인양 남겨주었다.

2부의 경기도 이야기들은 내게있어 생소할뿐만 아니라(서울에 대해서도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경기도야...) 비춰지는 사진의 풍경도 서울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서울의 사진들이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모습들을 주로 담고 있다면 경기도의 사진들은 훼손되지 않아 보이는 자연의 경관과 아직도 개발이 미흡한 듯 소박한 모습 그리고 서울 주변에 이런 역사적 흔적들이 있었나 놀랄 정도로 많은 유적들이 등장한다.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의 무거움을 탁트인 남한강 앞에서 털어내고 신선한 공기가 느껴지는 여주, 성남, 구리 등의 마을을 돌아보니 마음이 차분해 진다. 그러나 역시 남한산성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 탓인지 진행되는 이야기들은 가볍지 않다. 인천, 강화도, 이천, 안성 등의 고장 역시 이중환의 지리적 묘사와 얽힌 옛 이야기가 많아 수월치는 않았지만 특산물 이야기 덕에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졌고, 다산의 태 자리가 있는 남양주시에 가서야 겨우 자연 경관을 돌아보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서울뿐만 아니라 경기도 곳곳에 쌓여있는 시간의 두께와 이를 한켜 한켜 들춰내는데 지치지 않는 저자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양주시에서는 서거정이 동방 사찰 제일의 전망이라고 극찬한 수정사를 전망없는 풍경으로 보여준 점에 약간 실망했지만 포천에서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경순왕릉과 한탄강을 바라보자니 임진강을 향해 떠날 기운이 생기는 듯 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임진강 너머의 북한땅과 파주. 이중환이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여 살만한 곳이 못된다"고 평했던 파주가 출판도시와 예술가 마을로 성장하고 통일 염원의 기념비가 서있는 모습은 이 책이 우리에게 넌지시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일까? 북한땅에 대해서는 판문점 이야기만 잠깐 비췄지만, 어쩌면 저자는 이곳에서 넘을 수 없는 저 선이 언젠가는 사라지고 밟지 못한 국토의 나머지 반을 신명나게 누빌 그날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는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의외로 많은 지역들을 탐색하며 도시읽기의 즐거움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원했던 대로 서울에 대한 피상적인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을 챙겨넣었기에 매우 만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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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신의 존재에 관한 한 과학자의 견해 사이언스 클래식 16
칼 세이건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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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혹은 불가지론까지도 모두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변 중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말이다. 인간이란 각기 다른 성향과 관심, 논리구조를 가진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자신을 만족시키는 어떤 논지를 옳다고 택하게 마련이며 선택이란 의지에 기반한 것이므로 어느 한쪽을 주장하든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을 위배하기 힘들다. 따라서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도 신의 존재여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그가 증거로 삼는 과학적 사실들을 살펴보고 한 과학자로서 자신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유지하는가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읽고자 했다.

또한 이 책은 수많은 과학, 철학, 신학자들이 열띤 주장을 펼쳤던 '자연 신학에 대한 기퍼드 강연'에서 1985년 칼 세이건이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자연 신학이란 기적이 아닌 과학의 뒷받침을 받는 신학을 의미하고 신이란 기독교의 하나님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신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출발하도록 한다.

총 9강으로 이뤄진 세이건의 강연은 일반 천문학뿐만 아니라 전파 천문학, 분자 생물학, 진화 생물학, 물리학 등 과학의 다양한 분야들을 섭렵하며 다각적인 관점으로 신의 존재 여부에 접근해 나간다. '미신이란 증거없는 믿음이다'라는 명제를 필두로 시작하는 1강은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한 믿음을 역설하기 위해 종교라는 단어의 어원을 추적한다.

종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religion은 '함께 묶는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중략)...표면적으로는 따로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 사이의 근원적인 상호관계를 추구한다는 종교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에서 보건대, 과학과 종교의 목표는 결국 동일하다고, 또는 거의 동일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두가지 분야에서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과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의 신빙성을 입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p.22)

동일한 목표를 가진 과학과 종교. 그러나 신빙성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과 그렇지 못한 종교.
세이건은 입증할 수 있는 과학으로 종교적 감성을 불러일으킬만한 놀라운 우주의 진실을 눈으로 경험케 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태양계와 은하수 은하를 뛰어 넘어 수천 수만개에 달하는 이웃 은하들이 어둠과 혼돈을 기반으로 하는 우주 안에 존재함을 보여주는데, 지구뿐 아니라 태양계는 우주의 중심도 아니며 어떤 중요한 역할도 맡고 있지 않음을 실감하며 그의 말대로 겸허과 겸손의 마음이 절로 솟아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감성은 수많은 종교들이 신을 크게 만들어 우리 스스로를 작게 느끼도록 했던 노력의 결과물과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서양의 신학이 말하는 신은 우주를 다스리기에 너무 작게 묘사되어 있음을, 따라서 그 시대 그 사람들의 지적 상상력 수준에 머물고 있음에 동의할 수 있었다.

2~4강에 이어지는 과학적 증명들은 이 책의 목적에 가장 충실한 부분들로 다윈의 진화론과 자연선택설, 우주의 탄생과 궤도의 안정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 생명의 탄생 조건과 외계 생물의 가능성 등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성서를 통해 추정한 지구의 나이와 실제 측정한 지구의 나이에는 큰 차이가 있으며 실제 측정된 지구의 나이를 토대로 하면 진화론의 주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생명들의 유기물질 구성과 발생에서의 유사성들을 밝히는 부분을 읽어보면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까지도 인간의 친척뻘이 된다는 것에 크게 반발할 여지도 없다. 또한 토성의 고리를 통해 설명한 현재 태양계의 안정적 궤도 운행의 형성 과정을 보아도 이러한 질서를 신이 만들었다는 일명 설계논증이 크게 신뢰를 잃는다. 그러나 원시바다에서 유기물질로부터 생명이 되는 과정을 설명한 부분은 활성부위 아미노산이 5개만 제자리여도 생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이때 활성부위 5개만으로도 생명을 가능하다는 확률적 논리는 이해할 수 있어도 그렇게 간단히 이루어진 생명이 어떻게 다양한 동식물로 분화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어 아직 의문이 남는다. 더불어 외계 생물의 가능성에 대한 드레이크 방정식도 이 방정식을 구성하고 있는 7개의 변수가 아직 완전히 정제된 것은 아니며 특히 변수 중 '기술문명의 수명'에 대해서는 세이건 또한 가장 불확실성이 큰 변수라는 것을 솔직히 말한다.

5~7강은 이전 강연들과는 달리 과학자의 눈으로 종교와 신의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5강은 고대 우주인이나 UFO에 대해 다루고 있어 사실상 동양인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문화적으로 크게 와닿는 주제는 아니다. 그리고 신에 대한 믿음을 우주인이나 UFO에 대한 믿음과 동일시하여 분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6강은 하느님의 가설들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는 문화적으로 형성된 관념들이나 칸트의 도덕적 논증, 의식으로부터의 논증(내적 지각), 경험으로부터의 논증 등에 대해 간단히 반박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나 종교적 경험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한 이 부분에 대한 반증은 개인적 견해에 불과해 보인다. 예를들어 "하느님의 형상대로"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하느님이 인간처럼 콧구멍이며 머리카락, 맹장, 발가락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진화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반어법일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의미하고자 하는 형상이 단지 외관을 묘사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면 이와같은 논지를 펴지 않았을 것이다. 이어지는 7강은 종교적 경험을 호르몬과 이를 구성하는 분자를 통해 분석해 나간다. 물론 인체의 신비는 이렇게 호르몬을 통해 감정이 달라지거나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렇다고 종교적 경험을 산출하는 분자가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이 결국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적 안정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신뢰도 있는 과학적 증명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마지막 8강과 결어에 해당되는 9강은 198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때문인지 의외로 종말론과 환경문제, 핵전쟁에 대한 내용들이 많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우주의 유일한 생명체일지도 모르는 인간과 그 터전인 지구를 위해 종교가 해야할 일들을 역설하며 과거처럼 우주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할 것이 아니라 지성을 통해 그대로 맞서며 끝없이 탐험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이러한 결론은 과학에는 과학의 역할이, 종교에는 종교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중립적인 자세가 엿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주를 비롯한 만물은 과학이 맡을 터이니 종교는 인류의 도덕과 화합을 지키라는 과학 우월적 입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듯 하다.

결론이 어느 쪽으로 기울든 칼 세이건은 자연법칙으로서의 신, 일명 아인슈타인의 신이라면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논지를 명료히 전달했으며 과학자로서의 객관성도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간절히 바랬던 외계생물과의 만남은 현재 어떠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것이 신의 존재에 대한 논쟁에 마지막 열쇠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연 신학'을 처음 만나 과학으로 이해되는 인간 존재의 다각적인 모습들을 깨닫고, 비대해진 신의 허울(미신적 요소를 의미함)에 대해 생각하며, 잠시나마 넓은 우주에서 더 큰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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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 규슈.시코쿠 -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일본의 걷고 싶은 길 2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총 서평>
'길'이란 미지의 세계에 대한 아련한 동경으로 한껏 부풀어 발가락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단어이다. 길을 떠올리면 인간으로서 갖지 못하는 더듬이가 생겨나고, 도시인으로 퇴화된 관절에 생기가 가득차 축지법이라도 가능할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걷고싶은 길>은 제목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왠지 이 책과 함께하면 그동안 무뎌졌던 걷기본능이 충만해지면서 마음으로부터 소요하는 기쁨이 가득찰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보여행가의 걷기 여행은 내가 상상했던 수준이 무색하게 씩씩한 행군과 탐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유를 잡고자 늘어진 마음을 조금 끌어당기지 않으면 이 발랄한 여행가의 전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작 본인은 최악의 길치에 지도를 잘 볼줄 모르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너스레를 떨지만 2년 동안 9번이나 일본을 넘나들은 열정과 탐색지에 대한 사랑은 마치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인양 거칠 줄을 몰랐다. 이에 더해 순간을 포착해 내는 사진 솜씨와 가는 곳마다 사람들과 어우러져 여행을 더욱 풍성히 만드는 재주는 타고난 여행유전자를 물려받은 그녀임을 실감하게 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대도시들과 관광지를 벗어나 보다 깊은 멋과 맛으로 이어가는 <일본의 걷고싶은 길>은 이렇게 그녀만의 유쾌함과 훈훈함으로 가득하며, 그 가운데 자연과 생태계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하는 사뭇 진지한 시간들을 제공한다.


<2권 서평>
삶이란 절제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노엘 베스페르

모험...2권은 모험가다운 기량을 발휘하여 정령들이 가득할 것 같은 '신들의 정원'에서 출발한다. 친환경 애니메이션 '월령공주'의 배경지기도 한 이곳은 7,200년이나 살아온 야쿠시마 최고령 산신목 '조몬스기'의 초상이 인상깊게 남는 조금은 으시시한 장소이다. 또한 이렇게 오래 살아온 나무들이 더 많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며, 일본의 미신 풍습에 일조하려는 듯 묘한 염력을 뿜어내는 것이 신비스럽다. 아마 이 장면은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이한 풍경일지도... 

약간의 충격을 주려는 듯 독특한 느낌으로 시작한 규슈 여행은 이내 역사의 상흔이 담겨있는 소박한 소도시들로 옮겨간다. 역사가 깃들인 마을들은 모두 이럴까? 묵묵히 시간을 담아 사색에 잠긴 벽들은 오가는 인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 초월의 자태로 서있다. 그리고 조용한 마을을 지나 당도하는 곳은 다케토미섬. 이 바다의 풍경은 어찌나 카메라를 잘 잡았는지 해변으로부터 뻗은 데크가 허공에 떠 있는 듯 수평선을 가리키며 그리움으로 뻗어있다.  

규슈의 여정을 보면 홋카이도나 혼슈에 비해 산행이 적고, 보다 다양한 장소와 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또한 맛깔스런 음식들이 속속 등장하며 사람들과의 어울림도 잦아진다. 이러한 다양함의 절정은 시코쿠의 순례자의 길에서 빛을 발하는데, 여행자들은 순례자가 되어 천년의 옛길을 걷고 또 걸으며 일본의 미에 흠뻑 젖어든다. 또한 순례자의 길을 택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 조우하고 공감하는 저자의 개방성이 빛을 발한다. 

<일본의 걷고싶은 길>은 단순히 일본의 멋들어진 도보여행 코스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일본의 아름다움을 지탱하고 있는 생태계를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담고, 발걸음마다 따스한 사람과의 만남을 그려, 여행자들로 하여금 길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친절한 교훈서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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