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상반기와 하반기 모두를 돌아보며 올해 제게 있어 어떤 책들이 가장 감동깊었는지 꼽아봤습니다. 
에거...좋은 책들을 많으니 10권만 꼽기가 쉽지 않네요.


1위>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이야기는 주인공이 질(Quality)의 정의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사색의 모험과 자아를 찾으며 관계를 회복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모험이 함께 펼쳐진다. 천재이지만 우울증으로 전기충격요법까지 경험했던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기에 더 충격적인 이 책은 기존 가치의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전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남을 것이다.




2위> 정의란 무엇인가
올해 우리나라에 정의의 열풍을 몰고온 이 책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철학적 질문과 답변을 통해 정의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지성의 여로이다. 또한 자유지상주의로 치닫는 현대의 여러가지 단면들에 대해 다시금 깊이 돌아보게 하는 좋은 계기도 될 것이다.





3위> 철학, 도시를 디자인하다 1,2
철학입문서처럼 쉽게 쓰여진 내용이지만, 목적이 분명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뛰어나다. 치밀하게 기획하고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이 읽을수록 드러나는, 앞으로 철학이 가야할 방향을 은밀히 제시하는 책이다.






4위>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1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문화재 전문가의 평생 연구 결과물인만큼 빼어난 수작이며 소장가치 100%의 책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우리나라 문화재에 맞는 새로운 구성으로 엮어진 이 책은 3권까지 모두 갖춰 읽게 된다면 우리의 미술품에 관한 또다른 안목을 갖게 될 것이다.





5위> 신정일의 신 택리지-살고싶은 곳
점점 거주지를 결정하는 요소들이 세속적 이익과 상업적 기치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 속에서 삶의 터전을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과 이에 관한 옛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6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서구 선진국들이 주도해 온 이기적 자본주의와 경제 이면에서 작용하는 정치, 제도적인 것들에 대해 올바로 눈뜨게 하며 세계 경제를 보다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현실에 맞게 대처하는 힘을 제공할 것이다.






7위> 건축을 묻다
건축이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을 탐색하며 그 의미를 찾아간다. 외관장식 위주의 평면적 건축에서 기능을 강조한 공학적 건축, 그리고 공간과 미적 추구의 길목에 있는 현대의 건축을 되새기며 미래의 건축의 아이덴티티를 묻는다.





8위>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책과 신변적인 기록을 담은 지난 7권의 독서일기와는 달리 서평 형식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간단하면서도 할말은 다 하는 그의 명료함이 돗보이며 그의 독서관이나 책에 얽힌 사소한 이야기들까지 들어볼 수 있어 읽는 맛이 쏠쏠하다.





9위> 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나라 선조들의 자서전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을 배운다. 이 책은 ’내면기행’이라는 책의 후속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철저한 고증과 저자의 혜안이 눈에 띄는 책이다.






10위>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죽음 앞에서 기억할 것은 사람과 그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준, 연초부터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했던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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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 어느해 보다도 많은 책과 만났다.
수많은 만남이 있으면 거기엔 항상 특별한 사연이 따르게 마련.
사람과의 인연보다도 더 진하고 감동깊었던 책과의 인연 280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를 꼽아 소개해 본다.

내년에도 역시 뜻깊은 사연으로 만나는 책들이 많기를 기대하며...


1. 오직 너 뿐이야......<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 책을 사려고 리뷰를 탐색하던 중 누군가가 ’곽복록의 번역이 최고다’라고 쓴 것을 보고는 꼭 이 책으로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매달 책을 살 때마다 장바구니 액수가 맞지 않아 피일차일 미루게 되었는데, 설마 이렇게 오래된 고전을 누가 사랴..하는 생각에 너무 느긋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열심히 장바구니를 위한 산수를 마치고 드디어 이 책을 산다는 감동에 클릭을 하려니까..어? 이게 뭐야? 품절? 일시품절도 아니고 빨간 색의 달랑 두 글자 품.절.이 내눈에 덜컥 들어왔다. 하지만 괜찮아, 다른 서점도 있으니까...나는 품절이라는 말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주 지나고 나니까 각종 서점에서 이 책이 모두 품절되어 있는 것이다! 딱 한군데만 빼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 없어지기 전에 사야겠다는 일념으로 즉시 구입, 그리고 안심. 그런데 며칠동안 재고확보 중이라는 표시만 뜨고 책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급기야 전화벨이 울리고..."고객님, 죄송합니다. 구입하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품절되서 더이상 구입하실 수 없습니다." 기가막혔다. "품절이라는 표시 전혀 없었어요. 꼭 그 책으로 사야하는데 남은 서점이 여기밖에 없단 말이예요." 친절한 고객센터 아가씨는 현명하기까지 했다. 오프라인 서점에 재고를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후 이틀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전국 오프라인 서점에 딱 한 권, 그것도 매대 앞에 전시해 놓아 약간 손상이 간 것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래도 구입하겠냐는 것이다. 대답할 것도 없이 당근이였다.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 온/오프 서점에 유일하게 딱 한 권 남은 이 책은 내것이 되고 말았다.

2. 운명은 예감하는거야......<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처음부터 초록빛 표지가 눈에 띄였다. 제목도 독특했다. 상세설명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출간시부터 유독 내 맘을 끌어당겨 이상하다 했더니 그것이 운명을 위한 예감이었다. 너무 읽고 싶어 클럽에 있는 읽고 싶은 책 신청 게시판을 처음 써봤다. 이전에도 딱 두번,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책을 올린 것에 나두요...정도로 댓글을 단 것을 생각해 보면 꽤 적극적인 액션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주에 이 책이 리뷰어 선정 도서로 올라왔다. 도서가 선정되기 전에 책을 신청한 사람은 자동당첨인데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우스운 것은 운명이라는 것을 한 번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출판사에서도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확정된 당첨을 뒤로 한 채 다시 도전. 역시 또 당첨되었고, 출판사로부터 직접 받아 클럽에서보다 먼저 받아 읽었다(물론, 클럽에선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3. 열렬함의 댓가로 만나다......<엘제 아씨>
이 책은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행운에 덤으로 딸려 온 행운이다. 나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보자마자 정말 ’열렬히 궁금해지는 책’이라는 문구와 함께 블로그에 메모를 했었는데, 이것이 출판사에 발탁되어 홍보문구로 쓰이게 되었고, 출판사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이 책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예감과 열렬함으로 좋은 책을 한꺼번에 만나다니...정말 대박 아닌가!
 

 

4. 최상의 너를 만나다......<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님은 소설가 보다는 독서가로 먼저 알게 되었고 그의 칼럼을 읽은 후 상당히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정작 7권이나 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독서일기 8권에 해당하는 이 책이 등장. 바로 구입해 서문을 읽던 중 친구가 이 책을 탐낸다는 사실을 알고 마침 축하할 일도 있고 하여 선물로 줘버렸다. 그런데 일주일 후, 역시 클럽에서 이 책의 리뷰어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이미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글에 동의하는 댓글을 달았기에 자동당첨!(하지만 그때는 자동당첨인 것을 몰랐다.) 다 읽고 리뷰를 썼더니 모 서점의 이벤트 대상 도서라 한달 후 또 당첨되어 선물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비롯 <허수아비 춤>, <열네살이 어때서?>까지 모두 저자 친필 사인본으로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좋아하는 독서가 장정일님의 친필 사인이 꼭꼭 눌려박힌 그의 독서일기를 소장하게 된 것이다. 평소 칼날같은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싸인도 역동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싸인은 모범생 글씨체처럼 또박또박 단정했던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아마도 나를 거쳐간 세 권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중 가장 최상의 책이 아닐까 싶다.

5. 니가 나를 찍었어......<나는 어떤 사람인가>
늘 내가 책을 찍는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가끔은 책이 나를 찍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 이런 느낌이 드는가 하면(물론, 이런 느낌은 지금까지 한 번밖에 못 겪었지만) 당첨자가 딱 한사람이며, 경쟁자가 무지 많고, 동시에 그것이 이벤트인지도 모르고 댓글을 달았다가 당첨되었을 때이다.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되었다. 마치 책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너야!’하는 것처럼 나는 책한테 딱 찍힌 것이다. 전혀 뜻밖의 책이었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고, 책도 너무 좋아 몇 배 더 행복했다. 언젠가는 이 도서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내면기행>도 읽어보고 싶다. 


6.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진다......<강산무진>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위시리스트에서 꺼내 좀처럼 장바구니로 옮기기 힘든 책이 바로 소설분야의 책들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문학 이외의 책들을 읽기로 작정했기에. 그래서 난 아직 김훈님의 책을 단 한권도 읽은 적이 없다. 그리고 요즘 인기 있는 책들보다는 그의 처녀작이 담긴 <강산무진>이 가장 읽고 싶었고, 이번에 <내 젊은 날의 숲>이 출간되었을 때도 숲에서 강산을 연상하며 다시 위시리스트 속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이 책을 기억해 냈다. 그런데 또 이게 왠일인가? 문학동네에서 <강산무진>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연 것이 아닌가!(물론, 이것은 신간인 <젊은 날의 숲>을 홍보하기 위한 리뷰대회 부속 이벤트였다.) 그래서 나는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써서 댓글을 달았고 지금 이 책은 위시리스트가 아닌 내 책장속에 있다.

7. 축복은 신이 강림할 때 즉시 받아라......<헤로도토스의 역사>
평소 오늘의 반값도서를 주목해보지 않는 편이다. 반값도서에 올라오는 책들은 대부분 관심밖의 분야인 경우가 많고, 가끔 맘에 드는 책이 뜬다해도 이미 지난 다음 뒷북 두드리는 소리로 알게 되니 아예 관심을 끄는게 속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앗! 이게 왠일인가!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며 온라인 서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고전에 명작에 무슨 이름을 갖다붙여도 시원치 않을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오늘의 반값에 등장한 것이 아닌가! 거의 자비의 신이 내린 듯한 감동...삼만원을 윗도는 고가 명작이 반값이라니, 게다가 난 마일리지도 풍부했다. 이런 축복은 그대로 질러 받아야 정상이다.  


8. 때론 실수도 좋은 인연을 부른다......<성찰적 근대화>
가끔 개정판과 구판을 동시에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런 경우였는데, 내 전공분야도 아니고 저자, 역자, 출판사, 표지까지 똑같은데다 개정판과 구판 사이의 간격도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난 구판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같은 책인 것 같은데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입한 후 감감 무소식...고객센터에 연락을 했더니 구판은 절판이라고 한다. 절판 표시가 없었다고 하니까 출판사와 연락 후 답변해주겠다고 했는데, 역시 짐작대로 난 이 책을 구판 가격에 개정판으로 갖게 되었다. 흣~ 도서정보 업데이트가 늦은 것도 때론 쓸모가 있단 말이지...


9. 소신은 결실을 맺는다......<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이 책이 아니였더라면 올해 나의 행운의 도서를 마감하는 책은 <강산무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강산무진>을 받는 행운이면 날짜도 얼마 남지 않은 2010년에 또다른 행운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론은 있었다. 클럽에서 매주 금주의 선정도서를 예측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무려 10권이나 되는 책에서 정답을 고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또한 정답을 맞춘다 해도 정답자 중 5명을 다시 뽑기에 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만큼 희박한 확률인 것이다. 사실 그 주에는 설문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이 아니였다. 이 책을 제외하곤 딱히 읽고싶은 책이 없었는데, 이 책은 너무 고가라 설문 이벤트에 등장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떨어질 것을 99% 확신하며 그냥 클럽에서 회원들의 선호도 조사하는데나 보탬이 되자는 생각으로 소신껏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는 결과! 난생 처음으로,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행운으로 이 책은 내것이 되었다.

10. 행운은 홀로 오지 않는다......장바구니 이벤트 도서들 : <우연의 법칙>, <행복의 시학/제강의 꿈>,<김수영전집(시)>, <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하이데거>,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사랑받을 권리>, <로쟈의 인문학 서재>, <건축과 내러티브>, <1Q84 3>, <세한도>, <예술과 다중>, <철학을 위한 선언>
올해는 내 장바구니를 대신 결제해 주셨던 고마운 물주들이 너무나 많았다. 엄청난 경쟁률인데도 뽑히고, 연이어 2회 뽑히고, 그래서 한자리에 다 모아보니 책이 이렇게 많다. 올해는 정말 운이 붙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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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한 해의 끝과 만나는 것에 익숙해졌기에 무심코 달력을 바라보며 벌써?라고 놀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 해 한 해가 떠나가는 것이 아쉬움에는 적응되지 않는 까닭이 무얼까? 특히 2010년은 본격적으로 독서를 했고, 바쁜 와중에서도 꼬박꼬박 서평을 써 온 추억때문인지 더욱 보내기가 싫다. 아직...읽지 못하고 남아있는 책의 무게만큼, 그만큼의 무게가 나를 붙잡는다.

마지막 달 12월. 계획한 책들 중 2권을 읽지 못했다. 하긴, 막바지라고 욕심내어 한달에 몰아쳐 읽는다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욕심이지. 게다가 엄청 두꺼운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읽고 나니 책 3권은 읽은 느낌이다. 그래도 벼르고 벼르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그런대로 다 읽었는데 더이상 리뷰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 좀 아쉽다.

                          *                                *                                 *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은 처음부터 눈에 띄였고, 읽기 전부터 마음에 쏙 든 책인데다가 특별한 행운과 사연까지 겹쳐 정말 잊지 못할 책이 되었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에 철학과 불교까지 아우르는 이 방대한 책은 오래전 <선을 찾는 늑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는데, 소설이라기 보다는 철학서적에 가까운듯한 느낌이다. 어쨋든, 재 출간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올 해 이 책이 아니였더라면 독서생활에서 최고의 책을 선뜻 꼽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적어도 독서가라면...). 베스트셀러이기에 대중적으로 이해할만큼 쉽지만 내용만큼은 깊이있고 구성도 잘 되어 있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장하준 교수의 책은 정말 정교하게 짜여진 기획서 같기도 하다. 만일 이런 구성상에 영민함이 없었더라면 같은 내용이라도 공감대나 흥미가 반감되었을지 모른다. 무튼...수작은 수작이다.

<열네살이 어때서?>는 리뷰 이벤트 상품으로 받은 저자 친필 사인본이다. 사실 성장소설을 읽을 나이도 아니고, 이 나이 또래의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 전혀 계획에 없던 책이었는데, 훑어보고 친척 동생에게나 줘야겠다는 생각에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반항적이거나 조숙한 주인공이 대부분인 다른 성장소설에 비해 평범한 소녀의 일상을 다룬 것이 좀 특별했던 것 같은데, 사실 최근 등장하는 다른 성장소설은 읽은 것이 없어 이것이 진정 특별한 점인지는 모르겠다.

<건축 콘서트>는 12인의 건축 실무자와 학계의 교수들이 모여 만든 책이다. 다른 학문과 비교해 볼 때 여기저기 걸쳐진 부분이 많은 분야(공학, 예술...그리고 요즘에는 인문학까지)라 입문서를 쓴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 그래도 의기투합하여 만든 하나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조금 들쭉날쭉한 느낌은 있지만 최근 건축학과에서 배우는 내용이나 건축계의 이슈들을 살펴보기에는 좋은 것 같았다.

<사진의 극과 극>은 대조되는 두 주제의 사진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신선했다. 일반 사진 에세이가 저자의 감상이나 단상을 중심으로 써내려간데 비해 이 책은 객관적 사진 읽기와 주관적 감상이 어우러져 있어 좀 더 사진을 감상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더불어 소개된 사진들도 최근 각광받는 작가들의 작품이라 현재의 사진 동향을 개괄할 수 있어 좋았고, 작가들의 역설과 풍자에 담긴 재치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다.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은 충동적으로 선택한 책이다. 사진과 소소한 단상을 담은 책들은 잘 읽지 않는 부류인데, 한 해를 돌아보기에 좋을 것 같고 서평단을 모집하니 기회도 좋아 신청해 버렸다. 이 책은 희망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울한 것도 아니고, 그저 평소 우리 모습 그대로를 반영하는 듯 모든 희노애락이 담긴 매우 솔직한 책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마음을 차분히하고 내년을 위해 기분전환을 하는데는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12월에 읽은 책에는 꽤 괜찮은 책들이 많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3권을 꼽아 본다.

1.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2.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3. 사진의 극과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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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극과극>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진의 극과 극 -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최현주 지음 / 학고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영화 <트레인 스포팅>을 보면 주인공이 '아일랜드에서 가장 더러운 화장실'을 통해 가장 고결한 세계를 체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물이 잔뜩 쌓인 변기 속으로 자신의 몸을 구겨 들어간 그는 결국 오물층 이편에 있는 맑고 푸른 물과 맞닿았는데, 최악의 더러움 직후 만나는 최선의 순수함은 묘한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함께 영화를 봤던 이가 이렇게 말했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그때 그의 말이 꽤나 인상 깊었던지 극과 극에 대한 상념은 후일에도 어떤 사건이나 이미지를 통해 간혹 떠오르게 되었고, <사진의 극과 극>을 읽으면서도 이 습관은 여지없이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의 극과 극은 영화에서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영화에서의 극과 극이 어떤 한계를 넘었을 때 만나게 되는 통함이라면 여기서의 극과 극은 상반된 주제의 두 이미지가 서로 교류하는 공유로서의 통함이다. 예를 들어 흐름과 멈춤의 비교에서 소개된 천경우의 <VERSUS #4>(좌)와 이일우의 <Lamb/박제의 초상 시리즈>(우)를 비교해 보면, 장시간 노출과 아웃포커스로 교차된 두 사람의 흔들림을 숨죽여 담은 <VERSUS #4>는 흐름을 표현한 것이지만 너무도 끈끈한 흐름 때문에 멈춤의 요소가 느껴지고, 박제된 양의 상반신이 빛으로 부각된 채 주변은 암흑으로 처리한 <Lamb/박제의 초상 시리즈>의 경우 멈춤을 표현한 것이지만 오히려 영원을 떠올리게 하며 흐름의 요소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극과 극의 이미지에서 서로 공유되는 요소들이 발견되는 것일까? 만일 그 이유를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게 구한다면 그는 '존재는 다양체이기 때문'이라 답할 것이다. 들뢰즈에 관한 한 입문서를 보면 이 다양체를 음악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어떤 음이건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배음과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이는 우리가 '도'를 듣는다 해도 '도'와 더불어 그 속의 배음까지 듣고 있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피아노 건반의 '도'를 누른 상태로 '솔'을 누른다면 잠시 후 두 소리가 겹쳐져 같은 소리로 들리는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 이미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침묵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해도 침묵 이외의 다양한 느낌들이 함께 존재하며, 같은 침묵 내에서 조차 아늑한 침묵, 굳건한 침묵, 더 나아가 반대 속성인 외치는 침묵까지 선택될 수 있는 무한한 특성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극과 극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무수한 느낌들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과정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확장시키고 세상의 절대적 가치가 부여한 낡은 틀의 외부로 걸어나가는 새로운 모험의 기회로 다가온다.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진가들은 전통적인 촬영기법을 넘어 장면의 연출, 독특한 인화과정, 디지털의 사용 등과 같이 이미지의 숨겨진 속성을 드러내는 실험들을 꾸준히 진행해왔으며, 여기에 풍자, 역설, 폭로와 같은 도발적인 시선을 담아 기존 세상에 대한 무수한 질문들을 불러내 왔다. <사진의 극과 극>에 소개된 사진들 역시 끊임없이 질문들을 생성시키는 가운데 상반된 주제의 이미지가 서로 답하기도 하고, 제 3의 질문이나 감흥이 보충되기도 하면서 절대세상 이면의 가치를 탐닉케하는 풍부한 재료들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사진가 주도양과 김정연의 작품을 통해 좀 더 설명해 보면, 주도양의 <Root 2>(좌)는 사물을 360도로 나누어 촬영한 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합해 곤충의 눈을 모방하고, 김정연의 <romantic Package>(우)는 고공에서 저해상도로 디지털 촬영을 한 후 모자이크 처리를 하여 새의 눈을 상징한다. 그런데 가장 낮은 곳에서 본 곤충의 눈이나 가장 높은 곳에서 본 새의 눈에서 인간의 이기심이나 우월감에 대한 비판이 엿보인다. 인간 없는 세상을 360도의 완전 무결한 시각으로 둘러본 곤충과 인간 가득한 세상을 희미한 픽셀로 감지하며 그들의 개성을 무시하는 새는 이렇게 서로 공모하는 가운데 '인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절대 가치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다.

<사진의 극과 극>은 그동안 단일한 주제 안에서 사진과 일대일로 대면해왔던 관찰자들에게 새로운 사진읽기의 방법을 제시한 점에서 매우 신선했다. 또한 하나의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히 강렬한 수작(秀作)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니 관찰자는 더욱 귀기울여 들을 수 밖에 없었고, 두 이미지들이 예기치 못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까닭에 감동 또한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저자가 들려주는 단상들과 인용된 사진가들의 작품 설명은 이미지들의 대화에 동참하는데 편안한 통로가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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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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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세계의 내부인이 바라 본 건축과 외부인이 바라본 건축에는 너무도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외부인으로서 한 분야를 잘 모를 수밖에 없는 당위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지난 역사 속에서 건축에 대한 시선을 왜곡시켜 온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다. 1970년대 우리나라가 경제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무렵 우리는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이라는 서구의 건축양식을 너무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값싼 시공비에 대량생산을 가능케했던 이 양식은 판자집 즐비한 가난한 나라가 우뚝 솟은 고층건물의 성과를 단기간 달성하는데 최대의 장점을 제공했으나 결국 '건축'하면 의례 획일적인 격자건물을 떠올리게 했고 이에 가세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내 집'에 대한 애착이 건축을 부동산의 일부로 여기게 하는데 한 몫했다.

최근들어 초고층에 펜트하우스까지 갖춘 고급 아파트들이 붐을 이루고, 해외 거장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물들을 우리 거리에 선사하는 현상도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답을 선뜻 보여주지 않는다. 너무 화려하고 눈부신 탓에 자칫 건축을 고급 예술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건축 콘서트>는 외부요인에 의해 가려져왔던 건축의 본모습을 소개하는 건축세계 내부로의 초대이다. 현직 실무자와 학계의 12인이 모여 준비한 콘서트이기에 현재 건축계가 부르는 노래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며, 저마다 개성있게 표현한 주제는 크게 '건축가와 공간', '건축의 현 이슈와 미래'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건축가와 공간'에서는 건축가들이 펼치는 상상의 세계와 디자인 과정을 소개하고, 공간의 의미와 경험, 공간과 인간, 공간에서의 빛과 색 등 건축가들이 고민하는 과제와 건축의 본질인 공간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건축의 현 이슈와 미래'에 해당되는 부분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모더니즘에 대한 건축적 저항과 삶의 가치를 풍요롭게 하는 자연과의 조우, 미래 지향적인 인터랙션 디자인과 디지털 건축까지 건축계의 실험정신과 더불어 친환경적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들이 들려주는 공간이라는 것은 뜻밖의 개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공간을 벽면으로 둘러싸인 곳, 혹은 X,Y,Z로 구성된 3차원의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공간은 의외로 탄력적이고 유동적이며 인간의 경험, 때론 심리상태까지 포함하는 보다 고차원적 개념이다. 그렇기에 건축은 단지 물성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아닌 인간과 교감하며 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의 경험까지 내포하고 있다. 건축물이 가진 켜(Layer)와 켜 사이를 거닐며 시시각각 펼쳐지는 공간의 이야기를 듣는 것, 우연히 발생할 수 있는 사람들의 사건 혹은 시뮬라르크(존재하지 않는 실재, P.157)를 위해 여지를 남겨놓는 공간...일상에서 의식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공간과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매우 친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인터랙션 디자인과 디지털 건축은 건축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매우 흥미진진한 측면이다. 인터랙션 디자인(Interaction Design)이란 이미지, 사운드 등과 같은 멀티미디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건축을 포함한 디자인을 의미한다. 아직 공공건물이나 대기업에 속한 건물에서 일부 인터랙션 디자인을 맛볼 수 있지만 만일 이러한 디자인이 상용화된다면 화가 나 벽에 대고 소리를 질렀을 때 기분 좋은 색으로 벽면이 바뀌는 꿈같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컴퓨터를 활용해 실현하기 힘든 건축 아이디어를 구상하거나 자연 환경을 유지, 활용하는 첨단 디지털 건축의 모습에서도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미래도시를 예감하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건축콘서트>는 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사색과 미래 건축을 향한 공학적 열정이 가득한 콘서트이다. 음악 감상평으로 표현하자면 전통 악기의 깊은 선율 속에 맛깔스러운 전자음향이 뭍어나는 콘서트라고나 할까? 콘서트를 준비한 사람들은 건축의 본 모습을 알리고 더불어 건축계가 지향하는 미래관을 공유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바라본 미래의 건축에서 긍정적인 마음과 더불어 자신감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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