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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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 '별그대(별에서 온 그대)'가 한창 인기다. 허당에 천방지축으로 똘똘 뭉친 전지현의 연기도 재미있고, 냉정한 척은 혼자 다 하지만 알고보면 지고지순 순정파인 김수현의 캐릭터도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의 시그널(확실한 용어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짧은 영상)도 인상적인데, 갓과 도포 차림의 '젊은' 남자(김수현)가 너른 갈대밭을 돌아보면 그때부터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도시의 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찬란한 오늘날의 야경과 함께 수트를 입은, '여전히 젊은' 현대인의 모습으로 맺어지는 영상이다. 그래서 이 짧은 영상을 보고 있으면 세월은 이토록 덧없는가, 라는 감상에 젖기도 하고, 덧없는 세월 속에 변해 버린 세상과 변치 않는 인간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극중 김수현은 외계인이라는 설정 때문에 변치 않았지만 이것은 함축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이라 바라봐도 좋을 듯하다.


<신참자>를 읽으면서 '별그대'의 짧은 영상이 떠올랐다. 에도시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니혼바시의 살인사건은 변화무쌍한 세월을 겪은 어느 도에서 변치 않고 남아있는 인간 본성의 아름다움을 추적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잔혹하다'든가 '추악하다'라는 설명이 동반되는 살인사건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이 발견될 수 있는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그보다 먼저 왜 <신참자>를 읽게 되었는지 말해야 하니까.


<신참자>는 뭉뚱그려 말하면 히사가노 게이고의 유명세 덕분에 읽은 책이다. 나는 홈즈나 포와로, 마플 할머니가 등장하는 고전 추리소설은 즐겨 읽었지만 이후로는 추리소설에 거의 문외한이 되었기에 가장 지명도 높은 히사가노를 선택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그 앞에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라는 수식어가 없었다면 관심도는 반감되었을지도 모른다. 사회파? 난생 처음 듣는 말이다. 찾아보니 사회적 문제가 반영된 추리소설이라고 하는데, '추리와 트릭만 중요시하기 보다는 범죄의 사회학적 동기까지 파고든다'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설명이 더 명확한 듯 하다. 그래서 잠시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조격인 마쓰모토를 읽을까 했다가 <신참자>라는 제목이 너무 끌려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가가형사가 니혼바시에 막 부임한 신참자이듯 나 또한 2000년대 추리소설계에 발을 들여 놓은 신참자가 아니던가. 어쨌든, 새 마음 새 뜻으로(?) 추리소설을 읽기에 <신참자>라는 제목은 꽤나 의미심장했다.

 

히사가노가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문제는 복잡하게 얽힌 정치계의 비리도, 자본주의의 모순도 아닌 우리에게 친근한 가족문제이다. 사실 가족문제라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중년 이혼, 동거, 결손가정, 외도, 부모 자식간의 갈등, 고부 갈등 같은 전형적인 가족 문제들이 있는가 하면 젊은이들의 취업 실태, 기업을 통한 개인의 비리 등 보다 다양한 이슈들이 담겨 있어 그냥 전반적인 사회상을 담고 있다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히사가노는 이 시대에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각 가정에 담으면서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이 추리소설도 뭔가 다른 역할을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낀 첫 번째 요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추리소설들은 명작임에 틀림이 없지만 모든 관심은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소설이 주는 교훈이라든지 전체적인 주제를 발견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기묘한 트릭, 의외의 범인, 반전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신참자>를 읽고 난 후 기억 속에 짙게 배인 것은 따스한 사랑과 희망이다. 완고한 시어머니와 신세대 며느리 간의 사랑, 집 나간 아들에 대한 사랑,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 친구에 대한 우정, 미래를 위해 열심히 몰두하는 젊은이의 희망...이 모든 것들은 우습지만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쫓으며 발견되고 맺어지고 해결된다. 어쩌면 한 사람의 죽음은 이렇게 많은(그리고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 이것은 히사가노의 희망사항의 반영이다. 현재 일본은 가족이 와해되고, 경제위기와 실직 이후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며 이런 문제에 관해 냉담하다면 냉담하고 쿨하다면 쿨한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일본 영화제의 출품작들도 결손가정과 왕따, 실직자와 판타지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을 담은 내용이 많았는데 대다수 영화의 결론은 소극적으로나마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는 것으로 끝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보면 히사가노는 보다 강력하고 밝은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하다. 세대간의 갈등이 화해하는 모습도, 젊은이들에게 신뢰와 격려를 보내는 모습도, 무척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이 책은 아홉 가지의 단편 같은 에피소드들이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동시에 전체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각 에피소드의 끝에서는 늘 따스하고 희망 넘치는 메시지들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사건의 실마리를 하나씩 해결하는 것만큼 놀랍고도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꽤 쓸만한 아이예요. 요리 솜씨야 얼마든지 갈고닦을 수 있는 거지만 입이 무거운 것은 손님을 상대할 사람에게는 큰 재산이지요."
"그럼, 마쓰야를 짊어질 미래의 요리사를 위해 건배할께요."(P.100)

 

다음에 형사를 만나면 알려 줘야지. 그리고 야마후키는 생각했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라고.(p.188)

 

 

<신참자>가 17세기 에도시대의 정취가 남아있는 도쿄의 니혼바시를 현장으로 택한 것도 히사가노의 긍정 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먼저 이 책의 근간이 되는 구세대 대 신세대간의 갈등과 화합을 그려내기에 매우 적합한 배경이기도 하고, 예로부터 변치 않고 이어져 온 아름다운 전통과 가치들, 이를테면 가족간의 사랑, 우정, 희망, 성실, 신뢰와 같은 것들이 이 사회를 어떻게 유지해 왔는지 돌이켜보게 하며, 앞으로도 그것들이 미래를 지켜가리라는 소망을 담기에도 제격이다. 이것은 물론 나만의 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센베이나 닌교야키, 젓가락, 팽이, 식사가위 같은 다양한 전통품들을 트릭의 도구로 삼고자 니혼바시를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따스하고 긍정적인 것이 이 책의 첫 놀라움이었다면 두 번째는 가가 형사라는 인물의 캐릭터였다. 이 사람, 날카로우며 비상한 사고력을 갖춘 것도, 관찰력 뛰어나고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작은 것이라도 끈질기게 추적하는 뚝심을 가진 것도,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흔하디 흔한 특별한 형사 가운데 한 부류임에 틀림 없는데 그들과는 차별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말 정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어떤 때는 좀 무례하게 막아서기도 하지만 타인을 배려해 비밀에 부치는 센스도 있고, 사건 관계자들을 위해 의미 있는 먹거리나 물건들을 사다 주기도 한다(때론 사건을 위해 의도적으로 사주는 적도 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가 너무 오지랖이 넓다는 점이 독자들을 지극히 감동시킨다.

 

<신참자>는 몇 가지의 에피소드들이 모여 전체 살인사건을 구성하지만 사실 각 에피소드에는 어떤 비밀이 하나씩 감춰져 있어 그 비밀을 푸는 것이 곧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형사로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하며 여러 가족에게 행복과 미소를 되찾아 줄 의무는 없는 것 아닐까? 이에 대해 우리의 오지랖, 가가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가 씨는 사건 수사를 하는 게 아니었나요?"
"물론 하고 있죠.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P.278)

 

세상에 다양한 종류의 탐정과 형사가 있겠지만 피해자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형사는 처음이다. 그 때문인지 가가형사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 이것은 관할 경찰서에서 윗사람들을 대할 때의 자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니혼바시의 여러 전통상점에서 작은 사건들을 해결해 나갈 때도 가가형사의 비범한 추리력과 관찰력에 의해 놀라긴 하지만 그것에 의해 드러나는 관련 가족들의 평범한 마음씨가 이내 부각되며 그의 비범함은 평범함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물러난다. 왜 번번이 이런 사랑스런 반전이 일어났을까? 생각해 보니 히사가노는 가족들의 보이는 모습 속에 비밀을 심고 독자들을 그 비밀에 몰두하게 했다가 가가형사의 비밀 해결에 놀라게 한 다음 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모습을 곧 드러나게 하여 살짝 반전의 형태로 이끈 것이다. 그러니 가족들 사이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들이라도 아주 새롭고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처럼 평범함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의 가치가 비범함을 너머서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평범함이 비범함 가운데 더 빛나는 모습은 추리소설인 <신참자>가 처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추리소설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가 느낀 세 번째 놀라움이었다. 


<신참자>는 한 여인의 살인사건을 통해 변함없이 지켜져 온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드러낸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 중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비밀을 풀어가는 가운데 우리가 지키고 싶은 본성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살인자가 가진 비밀 역시 추악함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라도 지나치면 빗나가고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뿐이다. 충성은 분명 좋은 가치이지만 지나치면 맹종이 되고 그 맹종이 화를 부르듯,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신참자>의 긍정적인 교훈이나 낙관적인 방향성에 대해 혹자는 (노래로 치면) 너무 장조(major)가 아닌가 불평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이라면 어쩐지 시니컬한 면도 있고 스산한 것이 단조의 색채가 더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추리소설계의 신참자가 본 <신참자>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살인사건 속에 엮어 나가 더욱 신선하고 다가가기 쉽게 느껴졌다.
게다가 살해당한 그 여인 조차 희미한 미소를 띄며 죽어있었다니...이렇게 독특하고 온화한 추리소설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분명 그 여인의 마지막 미소도 우리들이 변함없기를 꿈꾸는 화목한 가정과 희망찬 젊은이들의 미래를 향한 긍정의 사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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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강 - 2012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작 Dear 그림책
마저리 키넌 롤링스 지음, 김영욱 옮김, 레오 딜런.다이앤 딜런 그림 / 사계절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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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흙 밟고 물 스치며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무언지 모를 특별함이 있다. 물론 아이들이야 다 저마다의 특별함이 있겠지만 시골아이들에게는 유독 더 투명한 천진함과 소박함, 자유로움이 한껏 묻어난다. 이것은 분명 산과 들에서 놀고 배우며, 땅을 일구고 거기서 난 것들을 먹고 자라는 생활 덕분일 것이다. 이렇게 자연의 품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연을 닮아 넉넉하고 바라보는 사람마저도 평온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밀의 강>의 당찬 소녀 칼포니아도 예외는 아니다. 숲으로 둘러싸인 외딴 집에서 엄마와 아빠,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강아지 버기 호스와 함께 사는 칼포니아의 하루는 시작부터 활기차고 여유롭다. 이 꼬마 아가씨가 무슨 좋은 일을 예감하는지 모르겠지만 단정하게 리본을 동여매는 그녀의 모습에서 이른 아침의 평온, 그 자체가 느껴진다.

 

 

 

아침식탁에서 맞은 소식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불경기가 무엇인지,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칼포니아는 잘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엄마, 아빠가 매우 걱정하신다는 것과 생선을 잡아야 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설사 불경기와 가난의 뜻을 알려준다 할지라도 소녀의 잔잔한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 단어들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 만족할 줄 알고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기특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칼포니아가 불경기와 가난에도 굴하지 않을 소녀라는 것은 그녀의 시에서도 잘 나타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무너무 좋은 날.(이하략, p.8)

 

생선이 있다면 참말로 좋겠어.
그럼 어려운 시절도 끝날텐데.
하지만 난 티끌만큼도 걱정은 안 해.
모두와 북적북적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니까.(P.11)


칼포니아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좋은 날이라고 했다. 이것은 비록 나쁜 일이라도 좋은 날을 망칠 수 없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 대해서도 '티끌만큼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리지만 대단히 낙천적이며 당찬 모습이다. 이렇게 흔들림 없이 밝은 마음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감동시키기에도 충분하다. 아니, 자연이 다 뭔가! 우주, 운명, 이런 거대한 힘들마저 감동시킬 만큼 충분하다. 칼포니아는 당차고 시도 잘 지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씨도 뛰어나다. 물고기를 잡아야 하는데 지렁이가 유리병에 갇혀있는 것이 싫을 거라고 생각해 다른 미끼를 찾아본다. 물고기는 무엇을 좋아할까? 그녀가 열심히 고민한 끝에 떠 오른 것은 아름다운 장미. 칼포니아는 분홍 종이를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곱고 정성스런 미끼를 만든다. 칼포니아가 '내가 물고기라면'하고 물고기의 마음을 상상하는 장면은 자연을 공감하고 배려하려는 소녀의 선한 마음과 더불어 신비롭고 따스하게 펼쳐진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어른인 나로서는 '풋'하는 웃음과 함께 '과연 물고기가 장미를 좋아할까?'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자연에 대한 배려와 상상이 어우러진 그림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한동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비밀의 강>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가 자연과 교감하며 그것을 통해 어려운 세상을 헤쳐나가는 신비스런 경험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칼포니아의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나무들의 변화가 상당히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 또한 이야기의 신비스러움을 한껏 더해준다. 칼포니아가 물고기를 잡는 문제로 고민할 때는 나뭇가지와 나뭇잎도 물고기 형상으로 나타난다. 마치 나무도 함께 물고기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가 삼나무 밑동에 걸터앉으며 '네 무릎에' 앉아도 되겠냐고 하면 나무는 등 뒤에 앉아있는 사람의 자세가 되어 얼굴을 드러낸다. 어두운 밤길에 대한 두려움은 나무에게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귀신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뭇잎마저 무시무시한 누군가의 눈길 같아 더 으스스하다. 소녀의 마음이 표현되는 나무, 그리고 꿀벌, 꽃, 물고기와 겹쳐지는 소녀의 얼굴. 이 모든 것들이 칼포니아가 가진 자연과의 공감력을 아름답게 잘 드러낸다.

 

 

 

칼포니아는 당차고 낙천적인 아이지만 당면한 것은 오직 어린 소녀에겐 버거운 현실뿐이다. 하지만 구하는 자에게 길은 열리는 법. 마을의 지혜로운 아주머니로부터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곳, 바로 비밀의 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칼포니아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비밀의 강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지만 그 어딘가를 알 수 없는 비밀의 강. 아주머니가 매우 애매한 힌트를 주긴 했지만 혼자서 강을 찾아낸 것은 칼포니아이다. 이리저리 이끌려 부지불식간에 도달할 수 있었던 비밀의 강을 생각하면 자연은 그를 찾는 이에겐 언제든지 열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너무 많이 갈취하는 것이 문제지, 자연이 우리에게 등돌려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비밀의 강에 도착할 수 있었던 비밀은 어쩌면 칼포니아가 가진 간절한 사랑, 그 하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은 사랑으로 구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반겨 맞아주니까. 비밀의 강은 칼포니아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물고기를 가득 품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찌나 물고기가 크고 많던지 오히려 낚시를 하는 칼포니아의 배가 아주 작게 보인다. 세상에 가득한 자연의 생명력이 물고기의 힘찬 꿈틀거림을 통해 한껏 펼쳐지는 것 같다. 그리고 고맙게도 물고기들은 칼포니아의 종이 장미를 마다하지 않고 덥썩 물어준다. 어린 소녀나 좋아할 분홍 종이장미를 물고기가 덥썩 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만선으로 환호를 지르는 칼포니아. 풍요로움이 넘치고 또 넘친다.

 

 

 

이 책의 묘미 중 하나는 비밀의 강으로 향하는 길과 비밀에 강에서 돌아오는 길의 대조이다. 가는 길은 자연이 이끌어주는 듯 어찌보면 너무 쉽고 홀린 듯이 금방 이르렀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라고 하는 듯 어린 칼포니아 홀로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사뭇 긴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도 칼포니아의 긍정적이고 순수한 마음씨는 무서운 동물들의 마음을 다독이며 길을 열어간다. 그녀 특유의 최고의 배려가 숲속의 험악한 동물들에게도 통했던 것이다. 기분좋게 일어났던 아침을 위해 가장 좋아하는 리본을 정성스레 매고, 물고기를 잡기 위해 물고기가 제일 좋아할만한 아름다운 것(분홍 종이 장미)을 골랐던 것처럼, 그리고 나무와 배와 물고기에게도 예의바르게 대했던 것처럼, 칼포니아는 자신을 겁주는 무서운 동물들에게도 최상의 것을 최고의 정성으로 기꺼이 나눠줬다. 그녀가 무서운 동물들에게 물고기를 나누줄 때마다 볼 수 있었던 '깨끗한 풀밭'에 내려놓았다는 표현은 꺼려하는 상대라도 마음을 열어 대하고자 하는 작은 소녀의 넉넉한 마음씨가 담겨있다. 소녀가 잡은 수많은 물고기는 먼저 배고픈 숲속의 동물들에게, 그 다음으로는 도움의 손길을 주신 아주머니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그리고 결국엔 아빠의 생선가게로 가서 힘없고 배고파 일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한테로까지 이어진다. 비밀의 강의 풍요가 작은 소녀로부터 마을 전체에 전해진 것이다. 결국 한 소녀의 간절한 사랑이 자연을 감동시키고 어려운 시절까지 이겨내게 해 주었다.

 

 

 

비밀의 강은 지금도 도처에 있다. 다만 우리가 그곳을 알고자 하지 않을 뿐이다.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채운 마음은 비밀의 강을 볼 수 없다. 지혜로운 아주머니께서도 말씀해 주셨지만, 비밀의 강은 바로 우리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디 비밀의 강 뿐일까? 비밀의 산도, 비밀의 선물도, 비밀의 약도 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감추어진 것, 그래서 비밀이다. 또한 비밀의 강은 순수한 마음이 간절한 필요와 맞닿았을 때 열린다. 어려운 시절을 넘기자 더 이상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것은 대자연과 세상이 우리들에게 작용하는 원리를 담고 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필요할 땐 기적처럼 나타나는 자연과 세상의 이치. 이것 역시 비밀이 가진 또 다른 의미이다. <비밀의 강>은 사랑의 마음이 해낼 수 있는 위대한 일과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요즘처럼 내 손안의 작은 화면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이라고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눈을 들어 옆 사람을 바라보고, 저 앞의 나무를 바라보고,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면 비밀의 강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가 뭐라해도 자연에서 태어난 자연의 일부가 아닌가! 우리가 순수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자연으로 눈 돌릴 때 자연은 언제든지 두 팔을 벌려 반가이 맞아준다. 그런 다음 눈을 감고 가만히 느껴보자. 칼포니아가 이렇게 응원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네 마음에도 강물이 흐를거라고...

 

 

 

 

 

 

 

* 상기 이미지들은 해당도서의 부분, 혹은 전체를 발췌하여 재조합되었으므로 원본과는 크기와 순서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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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3-03-24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 때 이 동화책을 읽는다면, 커서 문득 어려움에 처했을 때 떠올리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줄 것 같아요. 어른인 나는 이미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위기 극복도 많이 해봤지만, 그리고..신비한 경험도 꽤 했거든요.
소녀의 비밀의 강 처럼 말이죠.

아..아이들이 이 책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비밀의 강의 힘을, 소녀의 믿음을, 나눠 갖도록요.

탄하 2013-03-25 12:49   좋아요 0 | URL
웅? 어떤 신비스런 경험을 하셨을까? 그것이 꽤 궁금해집니다.
역시 '신비한'이라는 것에 대한 설렘은 나이가 들어도 어쩔 수 없네요.^^

이 책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이상적이고, 순조로운 내용이지만
'애들 책이니까 그렇지..'하기엔 그 이상의 순수함과 맑음이 있네요.
아마 이 시대가 실제로 대공황 시대라 다음 세대들이 이것을 용감하게 헤쳐가길 바라는
작가의 간절한 마음이 바탕이 되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들만넷 2014-10-15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멋지네요~ ^^

탄하 2014-10-29 23:38   좋아요 0 | URL
네, 이국적이고 독특해요. 특히 주인공의 상상력을 표현하느라 더욱 신비스러운 것 같아요.
아..`아들만넷`이라니... 그것도 참, 멋지십니다.^^
 
특별한 배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7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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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에 숨을 죽이고 천천히 나선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몇 개의 둥글고 커다란 거울들이 있었고 거울 앞에는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내 모습과 저 아래 풍경들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낯선 곳에서 한참을 내 모습만 바라보다가 다음에는 동선이 이끄는 대로 좁고 어두운 통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둥근 방이 있었는데, 저 멀리 태아가 보이는 게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동선에 발걸음을 맡겼고 마지막으로 엄마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며 짧은 탐험을 마쳤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내가 올라갔던 그 탑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I do, I Undo, I Redo라는 설치작품이었다(물론 제목과 자궁 속의 생경했던 느낌은 잊지 않았지만). 그리고 특별한 배달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이 작품을 다시 떠올렸다. 두 작품 모두, 새로운 삶을 출발하는 듯한 개운한 마음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I do 그렇게 살아가다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등생에게나 있고 모든 권력은 성적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학생들을 시험기계로 여기는 청년 사회의 암묵적인 헌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도 경쟁에 경쟁을 거듭하고 각종 스펙과 커리어를 쌓아야 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우리 모두의 헌법이 될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뛰어난 사람과 무능력한 사람으로 나뉘며 그 밖에도 또 다른 이분법의 잣대들에 의해 언제나 우열로 가려진다. 열등한 축에 속한 사람들은 주권도 권력도 없으니 이 사회에서 존재감을 잃은 셈이다. 그래서 장래희망을 잉여인간이라 적어내는 태봉이의 행동이 그리 엉뚱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태봉은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머물면서 원망과 분노를 오토바이에 실어 달린다. 그는 그렇게 살아간다. 한편, 우월한 축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슬아의 삶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1등을 고수해야 하고, 모든 것에 완벽해야 하며 엄마가 꿈꾸는 명품가정의 품위를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다들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것은 허브 오일로 잠을 쫓아가며 독하게 버티는 탓이다. 그녀는 그렇게 살아간다.

 

두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쏟아놓는 고민, 불만, 초조함, 분노를 통해 우리는 그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다. 늘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삶. 아무런 변화는 없고 무언가를 탓하며 분노만 늘어가는 삶. 태봉과 슬아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내 앞의 둥근 거울처럼 나를 비추고 또 나의 살아가는 이 현재를 가만히 응시하게 한다.

 

 

 

 

I Undo 시간을 애도하다

가끔 인생에 대한 질문들을 빽빽이 채워놓은 책을 만난다. 이런 책 속에는 종종 등장하는 질문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만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은가?이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은 대략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고 또 하나는 인생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다. 이 중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가고 싶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어떤 선택을 후회하고 있으며 그것을 되돌린다면 현재가 더 만족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을 바꿔 현재를 만족하게 만든다 해도 그만큼 잃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후회를 통한 성숙함이다. 인생은 성공하고 만족하기 위해 꾸려가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더 큰 의의는 성숙하는데 있다.특별한 배달 이 점을 잘 지적해준다. 후회할 일도 내 인생이고 내 선택이라는 삼촌의 멋진 한 마디와 함께.

 

슬아와 태봉이 평행우주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와 만나는 시간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애도의 시간과도 같이 느껴졌다. 애도의 시간이란 상처 입었던 과거,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그 장면으로 돌아가 그 때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상황에 대한 책임을 형평성 있게 생각하고, 담담하게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내가 겪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에서는 Undo의 경험에 해당된다. 여기서 Undo는 과거의 do들을 하나씩 제거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행동들을 충분히 되새기고 원망과 집착으로부터 홀가분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행선지가 Redo일리 없다.

 

 

 

 

I Redo 새롭게 변화하다

자신의 과거, 정확하게는 나를 만들어왔던 선택과 나의 내면과의 치열한 대화를 거친 후,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살아가는 시간은 달력 속의 날짜를 따라가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들이 아니라 새롭게 변화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들이다. 사람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세상 속에서 탈피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 원리를 슬아는 매우 정확하게 설명해 준다.

 

한번쯤은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가 있는 거 같아. 자신을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다른 형태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거라고 생각해. 자꾸 그렇게 점검하며 길을 내는 게 제대로 사는 거 아닐까?(p.138)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형태의 기회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후회할 것을 받아들이며 성숙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돌아봄으로 인한 변화가 없다면 새로운 기회 또한 없다. 언제나 후회라는 단어를 회피하고 선택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했던 나였지만, 특별한 배달』을 읽고 나니 용기가 움찔 솟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로이 태어난 아기, 그것이 평행우주 저편에서 삶을 시작한 또 다른 나인지 모르겠지만(이론적으로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새로운 시간을 아장아장 걸어보라고 희망을 주는 이 책의 특별한 배달이었다.

 

 

 

* 글 제목은 위에서 언급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설치작품 『I do, I Undo, I Redo』에서 차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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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책세상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 시대는 행복의 추구가 보편적인 시대이다. 아니, 그보다는 보편적인 행복의 추구가 상식이 되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는지도 모르겠다. 미디어에서는 상업화된 아름다운 행복상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범람하는 행복 교과서들은 표준화된 몇 가지 요소들을 나열하며 이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이들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부와 성공같은 외적인 요소를 뛰어 너머 내면의 건강을 중시하고 일상의 사소한 일들과 인간관계에서 기쁨을 얻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향한 손길을 내밀 때 주어진다고 한다. 행복이 유행처럼 통용되는 현상만 제외한다면 사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이 보편적인 행복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느끼는 행복이란 반대로 우리에게 낯설고 기묘한 상황이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느꼈다.(p.138)

 

어째서 사랑이 아닌 분노가 고뇌를 씻어주고 그것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가시게 해 주었는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어째서 세계의 정다운 관심이 아니라 무관심에 마음을 열게 되었는데 거기서 형제애를 느끼고 행복하다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는 분노를 통과해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세계로 가 닿은 듯하다. 여기서의 무상이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며 지속적이지 않음을 의미하며 '인생무상'에서의 허망함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무상의 가르침은 변화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대상에 전도된 집착을 끊을 수 있으며 그때 나와 나 아닌 것이 비로소 참다운 관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뫼르소의 경우 삶에 대한 집착을 끊음으로써 세계와의 참다운 관계, 즉 형제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무관심이 정답게 느껴졌던 것이다. 오랜 지속을 너머 영원을 꿈꾸는 우리들에겐 낯선 행복. 뫼르소는 어떤 이유로 이러한 행복과 만나게 되었을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p.7)

 

이야기의 시작은 엄마의 죽음이다. 누군가의 엄마가 죽는다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이에 대한 뫼르소의 반응은 상당히 이상하다. 그는 엄마가 죽은 날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의 나이도 모르며, 눈물을 흘리기는 커녕 마지막 얼굴을 보는 것 조차 관심이 없다. 그저 담배를 피우고 밀크커피를 마시며 다른 조문객들을 바라만 볼 뿐. 이정도면 무관심이 정도를 지나쳐 진정 아들일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때 뫼르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행동들이, 지나치게 솔직한 답변들이,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커피잔과 담배가, 나중에 그를 얼마나 큰 곤경으로 몰고갈지. 그의 앞날에 드리운 불행의 그림자인 듯 어머니의 장지로 향하는 영구차의 모습이 육중하고 검기만하다.

 

 

* <일러스트 이방인>은 카뮈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된 특별판이다. 흑백대비가 강렬한 일러스트와 더불어 여백을 달리한 문단들의 배치, 공간의 이동과 뫼르소의 시선, 심경 등에 촛점을 맞춰 부각시킨 짤막한 문장들이 눈에 띈다.

 

 

평론가 신형철은 "캐릭터 기념관이라는 게 있다면 뫼르소는 특실에 전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뫼르소는 역대 소설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특별 대우를 받는 인물인 것이다. 일상에서의 그는 남들처럼 직장에 다니고, 요리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린다. 겉으로 봐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그 와중에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첨예하게 다르다. 먼저 그는 자신의 본능에 상당히 집중한다. 뫼르소의 의식을 서술한 문장들을 보면 먹는 것이나 잠에 초점을 둔 부분들이 상당히 눈에 띄는데, 어머니의 죽음과 꺼림칙한 이웃사람이 접근하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갖는 어떤 신분이나 직업에 대한 편견도 거의 없다. 소문이 안 좋은 이웃 레몽과도 친구가 될 수 없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친구가 되고, 자신에게 시간의 여유가 있거나 잠이 오지 않거나 특별히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순순히 위험한 부탁마저 수락한다. 이 모든 것은 뫼르소가 외부세계에 대해 길들여져 있지 않고 더 나아가 상당히 단절되어있음을 의미한다. 비록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있어도 그의 내면 세계는 평범한 사람의 그것이 아니다.

 

 

 

뫼르소에게 한 가지 낙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여인과의 육체적 관계일 것이다. 한 여인을 사랑하지도 않거나,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잘 모르거나 혹은 자신의 감정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그녀와 관계를 맺는 일에는 꽤나 열정적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바로 다음 날에도 뫼르소는 마리라는 여인과 수영을 하고,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잠자리를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녀의 청혼을 매우 쉽게, 아무런 계산 없이 받아들였다.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면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아니, 사랑한다는 것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으면서, 단지 그녀가 원한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그가 가진 특유의 쿨함은 여느 바람둥이나 색광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마음의 자세이다. 죽음에도 사랑에도 반응하지 않는 이 남자. 그런 남자가 정욕으로 인해 고통 받으며 감옥 생활에 적응해 간다. 실상 무료함이나 무의미함에서는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에게도 박탈당할 기쁨의 한 조각이 존재하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탈을 통해 감옥에 적응해 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뫼르소가 부조리한 세상을 가로지르는데 커다란 힘이 된다.

 

 

이 책은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와 질서와 전통을 부정한다. 판사와 십자가 앞에서 참회하지 않는 뫼르소, 형무소 부속 사제의 면회를 거절하며 구원에의 권유를 끝까지 거부하는 뫼르소는 카뮈가 지향하는 '반항적 인간(l'homme revolte)'의 자세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에 대해 카뮈의 철학이 20대의 철없는 주장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지만 부조리한 세상에 항변하고 신의 구원이 아닌 인간 의지의 탈출구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당시 극도로 도발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지금도 역시 그러하지만). 권위에 복종하라는 경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감옥같은 세상, 그곳에서 무의미와 무목적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 우리의 현실과도 다를 바 없는 이 세 가지 모습은 거칠고 건조한 흑백의 일러스트에서도 그대로 반영돼 문득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주인공 뫼르소의 모습은 카뮈와 무척 닮았다. 아니, 그를 카뮈라 불러도 좋을 만큼 카뮈의 초상 그 자체다. 이는 분명 카뮈탄생 100주년을 맞아 뫼르소의 모습에 카뮈를 담으려는 일러스트레이터 호세 무뇨스의 특별한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러스트 이방인>은 카뮈가 읽어주는 자신의 철학 책 같다. 작가로 숨어있던 카뮈가 뫼르소로 나타나 그의 고뇌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인물들의 표정이 매우 강렬하게 나타난 것이 이 책의 특징이지만 그 중에서도 죽음 앞둔 뫼르소의 표정 변화는 그의 갈등에서 깨달음의 순간까지 상당히 섬세하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자신의 방에서 뜬눈으로 새벽녘을 기다리며 심장의 소리를 듣고 또 들리지 않는 순간을 상상해보려던 초조한 모습, 뜻하지 않은 부속사제의 방문에 은근히 겁이 난 모습, 그리고 부속사제에게 화를 내다가 순간 뭔가 '툭 터지는 느낌'을 받았던 깨달음의 모습. 마지막으로 결단의 순간,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게 된 뫼르소의 모습이자 카뮈의 모습. 이 모든 얼굴 하나하나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 한 인간이 거쳐야 했던 고뇌와 갈등의 여정을 오롯이 담아낸다.

 

 

 

뫼르소는 살인을 했다. 우연이었지만 이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 역시 공정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기에 살인이 쉬울 만큼 냉혈한이라는 논리는 살인자였지만 억울한 누명이었다. 만일 그가 세상의 권위와 질서 순응하는 보편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면 이처럼 극심한 판결을 받았을까? 여론몰이를 위해 형평성을 저버리고 그를 희생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 이 세상이라면 그것이 구축해 온 보편적인 정의, 행복, 사랑이라는 가치들이 과연 순순히 신뢰할만한 진리인가? 뫼르소의 살인과 세상의 판결을 통해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가치들은 어쩌면 당의정에 씌워진 달콤한 사탕표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쓰디 쓴 당의정의 진실을 알고 있는 뫼르소는 사랑도 행복도 정의도 그리 의미있는 것들이 아니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은 한 아랍인을 쏘기 직전 더위와 땀과 눈물과 긴장감으로 얼룩진 뫼르소의 얼굴이다. 처절하지만 살아있음이 진하게 전달돼 오는 얼굴. 무심하고 담담한 평소의 뫼르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이 순간이 바로 부조리한 세상의 가치를 저버리고 반항적 인간으로 들어서는 선전포고의 시작이기도 하다. 강렬함이 살아있는 뫼르소의 얼굴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그대는 이 씁쓸한 세상의 본질에 대항해 이방인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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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out 2013-02-2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생각보다 훨씬 커서 구입하기가 망설여져요.
작은 사이즈로 나오길 기대하는건 무리일까요..

탄하 2013-02-28 12:56   좋아요 0 | URL
저는 사이즈는 생각도 못하고 샀다가 너무 놀랐어요.
이것보다 좀 작은 사이즈로 나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크게 만들었는지..
카뮈 150주년 즈음엔 기대를 해봐도 좋을까요?^^

transient-guest 2013-02-28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러스트가 눈에 친숙한게 꼭 Sin City같은 스타일의 미국 만화의 그림같아요. 호세 무뇨스가 어떤 커리어를 가졌는지 모르지만요.

탄하 2013-02-28 13:02   좋아요 0 | URL
호세 무뇨스 대단히 유명한 일러스트인 것 같아요. 저도 그래픽노블은 잘 모르지만 이 사람의 그림이 Sin City의 프랭크 밀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네요. 트란님께서 Sin City말씀하신 덕분에 무뇨스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마립간 2013-02-28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은 문고판 '이방인'을 갖고 있는데, 일러스트 때문에 이 책을 갖고 싶군요.
어머니의 죽음과 꺼림칙한 이웃사람이 접근하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는 감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뫼르소는 감각이 아니라 생각에 몰두하는 모습이 아닌가요? 아, 책을 읽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탄하 2013-02-28 13:12   좋아요 0 | URL
그림이 있는 <이방인>을 펼쳐들면 누고가 옆자리를 쏙 파고 들어올지도 몰라요.^^

살인 후에는 좀 더 상념이 많아지고 그 전에는 감각(졸음이 와서, 점심에 OO를 먹었으므로 배가 고프지 않아)에 관한 이야기가 의외로 많아요. 그리고 자질구레하고 사소한 것에 집중하는 면도 있구요. 아마 지극히 무료하고 단조로운 삶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서술이 종종 비췄는지도 모르겠네요.

달사르 2013-03-27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읽으셨군요. 저는 책으로 '이방인' 읽고 나서, 하도 먹먹해서 '그림이 있는 이방인'을 샀는데요. 그림의 도움을 얻으면 그 먹먹함이 좀 해결될려나 싶어서요. 근데 여전히 먹먹하고 답답하고 그러네요.

겨우 발 딛고 서 있는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사람을 굉장히 불안하게 만드는 책 같아요. 근데 동시에 이 고비만 넘기면 한 단계 올라설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쉽게 놓지도 못하게 만들고 말이죠.

아고..저는 '오늘 엄마가 죽었다' 첫 문장 만으로 기함하게 놀라운지라..ㅠ.ㅠ

탄하 2013-03-28 21:49   좋아요 0 | URL
'그림이 있는 이방인'이란 이 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그런 제목을 가진 또 다른 책이 있나 싶어 찾아봤는데, 없네요.
이거 정말 그림이 격해요. 게다가 흑백이라 아주 건조하기까지...

저도 그랬어요. 굉장히 불안하게 만드는 거, 그 느낌이 딱 맞네요.
근데 저는 다행히도 아주 미남인 뫼르소가 나오는 영화를 먼저 본 덕에 조금 덜했어요.
조각같은 외모에 미소년같은 꽤나 멋스러운 남자가 주연이였죠.
이 책 리뷰쓰기 전에 그 영화 찾아봤는데 못 찾겠더라구요. 배우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ㅠ.ㅠ

저는 이거 읽고 나서 다시 글자로만 된 <이방인>을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책이 워낙 커서 거의 이방인이라는 잔디밭에서 뒹군 느낌인데
좀 (포맷이) 단정한 책으로 보면 더 몰입이 잘 될 것 같더군요.

하여간 <이방인>은 여러모로 논란도 많았고 읽고 또 읽어도 생각의 여지가 많은 책인 것 같아요.

달사르 2013-03-27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확실히 분홍신 님의 리뷰, 좋은데요.
그냥 불안한 느낌, 만을 느끼는 저와 달리 분홍신 님 리뷰를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요.
담에 '그림이 있는 이방인' 한 번 더 보고 나서, 분홍신 님 리뷰 다시 또 읽어 볼래요.

아..단정한 리뷰..좋아요. ^^

탄하 2013-03-28 22:00   좋아요 0 | URL
음음..감사합니다.^^
불안이 조금 가시게 되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르실거라 믿어요.
저도 그런게 다 정리가 안됐는데, 나중에 텍스트로만 된 책을 읽게 되면
카뮈에 대해 조끔 더 공부하고 다른 글을 써 볼 생각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