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그 어느해 보다도 많은 책과 만났다.
수많은 만남이 있으면 거기엔 항상 특별한 사연이 따르게 마련.
사람과의 인연보다도 더 진하고 감동깊었던 책과의 인연 280여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10가지를 꼽아 소개해 본다.
내년에도 역시 뜻깊은 사연으로 만나는 책들이 많기를 기대하며...
1. 오직 너 뿐이야......<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 책을 사려고 리뷰를 탐색하던 중 누군가가 ’곽복록의 번역이 최고다’라고 쓴 것을 보고는 꼭 이 책으로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매달 책을 살 때마다 장바구니 액수가 맞지 않아 피일차일 미루게 되었는데, 설마 이렇게 오래된 고전을 누가 사랴..하는 생각에 너무 느긋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열심히 장바구니를 위한 산수를 마치고 드디어 이 책을 산다는 감동에 클릭을 하려니까..어? 이게 뭐야? 품절? 일시품절도 아니고 빨간 색의 달랑 두 글자 품.절.이 내눈에 덜컥 들어왔다. 하지만 괜찮아, 다른 서점도 있으니까...나는 품절이라는 말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주 지나고 나니까 각종 서점에서 이 책이 모두 품절되어 있는 것이다! 딱 한군데만 빼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다 없어지기 전에 사야겠다는 일념으로 즉시 구입, 그리고 안심. 그런데 며칠동안 재고확보 중이라는 표시만 뜨고 책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급기야 전화벨이 울리고..."고객님, 죄송합니다. 구입하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품절되서 더이상 구입하실 수 없습니다." 기가막혔다. "품절이라는 표시 전혀 없었어요. 꼭 그 책으로 사야하는데 남은 서점이 여기밖에 없단 말이예요." 친절한 고객센터 아가씨는 현명하기까지 했다. 오프라인 서점에 재고를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 후 이틀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전국 오프라인 서점에 딱 한 권, 그것도 매대 앞에 전시해 놓아 약간 손상이 간 것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래도 구입하겠냐는 것이다. 대답할 것도 없이 당근이였다.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 온/오프 서점에 유일하게 딱 한 권 남은 이 책은 내것이 되고 말았다.
2. 운명은 예감하는거야......<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처음부터 초록빛 표지가 눈에 띄였다. 제목도 독특했다. 상세설명을 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출간시부터 유독 내 맘을 끌어당겨 이상하다 했더니 그것이 운명을 위한 예감이었다. 너무 읽고 싶어 클럽에 있는 읽고 싶은 책 신청 게시판을 처음 써봤다. 이전에도 딱 두번,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책을 올린 것에 나두요...정도로 댓글을 단 것을 생각해 보면 꽤 적극적인 액션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주에 이 책이 리뷰어 선정 도서로 올라왔다. 도서가 선정되기 전에 책을 신청한 사람은 자동당첨인데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우스운 것은 운명이라는 것을 한 번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출판사에서도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확정된 당첨을 뒤로 한 채 다시 도전. 역시 또 당첨되었고, 출판사로부터 직접 받아 클럽에서보다 먼저 받아 읽었다(물론, 클럽에선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3. 열렬함의 댓가로 만나다......<엘제 아씨>
이 책은 바로 위에서 이야기했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의 행운에 덤으로 딸려 온 행운이다. 나는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보자마자 정말 ’열렬히 궁금해지는 책’이라는 문구와 함께 블로그에 메모를 했었는데, 이것이 출판사에 발탁되어 홍보문구로 쓰이게 되었고, 출판사에서는 감사의 뜻으로 당시 출간 예정이었던 이 책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예감과 열렬함으로 좋은 책을 한꺼번에 만나다니...정말 대박 아닌가!
4. 최상의 너를 만나다......<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님은 소설가 보다는 독서가로 먼저 알게 되었고 그의 칼럼을 읽은 후 상당히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정작 7권이나 되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독서일기 8권에 해당하는 이 책이 등장. 바로 구입해 서문을 읽던 중 친구가 이 책을 탐낸다는 사실을 알고 마침 축하할 일도 있고 하여 선물로 줘버렸다. 그런데 일주일 후, 역시 클럽에서 이 책의 리뷰어를 모집하는 것이었다. 이미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글에 동의하는 댓글을 달았기에 자동당첨!(하지만 그때는 자동당첨인 것을 몰랐다.) 다 읽고 리뷰를 썼더니 모 서점의 이벤트 대상 도서라 한달 후 또 당첨되어 선물로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을 비롯 <허수아비 춤>, <열네살이 어때서?>까지 모두 저자 친필 사인본으로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참 좋아하는 독서가 장정일님의 친필 사인이 꼭꼭 눌려박힌 그의 독서일기를 소장하게 된 것이다. 평소 칼날같은 글을 쓰는 것을 보면 싸인도 역동적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싸인은 모범생 글씨체처럼 또박또박 단정했던 것이 매우 인상깊었다. 아마도 나를 거쳐간 세 권의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중 가장 최상의 책이 아닐까 싶다.
5. 니가 나를 찍었어......<나는 어떤 사람인가>
늘 내가 책을 찍는 입장이라 생각했는데, 가끔은 책이 나를 찍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 이런 느낌이 드는가 하면(물론, 이런 느낌은 지금까지 한 번밖에 못 겪었지만) 당첨자가 딱 한사람이며, 경쟁자가 무지 많고, 동시에 그것이 이벤트인지도 모르고 댓글을 달았다가 당첨되었을 때이다. 그렇다.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되었다. 마치 책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너야!’하는 것처럼 나는 책한테 딱 찍힌 것이다. 전혀 뜻밖의 책이었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고, 책도 너무 좋아 몇 배 더 행복했다. 언젠가는 이 도서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내면기행>도 읽어보고 싶다.
6.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진다......<강산무진>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정말 많은 책들이 있다. 하지만 위시리스트에서 꺼내 좀처럼 장바구니로 옮기기 힘든 책이 바로 소설분야의 책들이다. 왜냐하면 올해는 문학 이외의 책들을 읽기로 작정했기에. 그래서 난 아직 김훈님의 책을 단 한권도 읽은 적이 없다. 그리고 요즘 인기 있는 책들보다는 그의 처녀작이 담긴 <강산무진>이 가장 읽고 싶었고, 이번에 <내 젊은 날의 숲>이 출간되었을 때도 숲에서 강산을 연상하며 다시 위시리스트 속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이 책을 기억해 냈다. 그런데 또 이게 왠일인가? 문학동네에서 <강산무진>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연 것이 아닌가!(물론, 이것은 신간인 <젊은 날의 숲>을 홍보하기 위한 리뷰대회 부속 이벤트였다.) 그래서 나는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써서 댓글을 달았고 지금 이 책은 위시리스트가 아닌 내 책장속에 있다.
7. 축복은 신이 강림할 때 즉시 받아라......<헤로도토스의 역사>
평소 오늘의 반값도서를 주목해보지 않는 편이다. 반값도서에 올라오는 책들은 대부분 관심밖의 분야인 경우가 많고, 가끔 맘에 드는 책이 뜬다해도 이미 지난 다음 뒷북 두드리는 소리로 알게 되니 아예 관심을 끄는게 속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앗! 이게 왠일인가!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며 온라인 서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고전에 명작에 무슨 이름을 갖다붙여도 시원치 않을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오늘의 반값에 등장한 것이 아닌가! 거의 자비의 신이 내린 듯한 감동...삼만원을 윗도는 고가 명작이 반값이라니, 게다가 난 마일리지도 풍부했다. 이런 축복은 그대로 질러 받아야 정상이다.
8. 때론 실수도 좋은 인연을 부른다......<성찰적 근대화>
가끔 개정판과 구판을 동시에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런 경우였는데, 내 전공분야도 아니고 저자, 역자, 출판사, 표지까지 똑같은데다 개정판과 구판 사이의 간격도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난 구판을 선택했다. 이유는 단 한가지. 같은 책인 것 같은데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입한 후 감감 무소식...고객센터에 연락을 했더니 구판은 절판이라고 한다. 절판 표시가 없었다고 하니까 출판사와 연락 후 답변해주겠다고 했는데, 역시 짐작대로 난 이 책을 구판 가격에 개정판으로 갖게 되었다. 흣~ 도서정보 업데이트가 늦은 것도 때론 쓸모가 있단 말이지...
9. 소신은 결실을 맺는다......<서양문명을 읽는 코드 신>
이 책이 아니였더라면 올해 나의 행운의 도서를 마감하는 책은 <강산무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강산무진>을 받는 행운이면 날짜도 얼마 남지 않은 2010년에 또다른 행운이 있을까 싶었는데, 결론은 있었다. 클럽에서 매주 금주의 선정도서를 예측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무려 10권이나 되는 책에서 정답을 고른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또한 정답을 맞춘다 해도 정답자 중 5명을 다시 뽑기에 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만큼 희박한 확률인 것이다. 사실 그 주에는 설문이벤트에 참여할 생각이 아니였다. 이 책을 제외하곤 딱히 읽고싶은 책이 없었는데, 이 책은 너무 고가라 설문 이벤트에 등장할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난 떨어질 것을 99% 확신하며 그냥 클럽에서 회원들의 선호도 조사하는데나 보탬이 되자는 생각으로 소신껏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는 결과! 난생 처음으로,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행운으로 이 책은 내것이 되었다.
10. 행운은 홀로 오지 않는다......장바구니 이벤트 도서들 : <우연의 법칙>, <행복의 시학/제강의 꿈>,<김수영전집(시)>, <How to Read 라캉>, <How to Read 하이데거>,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사랑받을 권리>, <로쟈의 인문학 서재>, <건축과 내러티브>, <1Q84 3>, <세한도>, <예술과 다중>, <철학을 위한 선언>
올해는 내 장바구니를 대신 결제해 주셨던 고마운 물주들이 너무나 많았다. 엄청난 경쟁률인데도 뽑히고, 연이어 2회 뽑히고, 그래서 한자리에 다 모아보니 책이 이렇게 많다. 올해는 정말 운이 붙었나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