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나는 부흥사의 말씀에
은혜 받으려는 욕심을 자연스레 포기했다.
자기 흥에 겨워 삼천포로 마구 빠지는 부흥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비애감마저 느껴야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파는 세일즈맨 같은 목사보다,
그렇게도 영양가 없는 설교에서 아낌없이 아멘하고
박수쳐 주고 즐거워하는 기도원 파 신자들의 믿음이
훨씬 윗길임에는 틀림없다!
- 이숙경, 『내가 행복했던 교회로 가주세요』 중에서
제목이 특이했다. 휠체어에서 듣는 음악이라. 이 책은 작가가 감상한 여러 음악 앨범들 중에 좋아했던 것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음악 에세이다. 그런데 작가가 세 살 때부터 근육병 진단을 받은 장애인이라는 점이 조금은 다른 점이랄까. 하지만 뭐 음악을 감상하는 데 신체의 장애가 (청각 장애가 아니라면) 뭐 그리 특별히 다를까.
물론 오랜 시간 장애를 안고 살아온다는 건, 자연히 사람의 사고와 심성에도 영향을 주기 마련일 것이다.(당연히 그 영향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을 것이고) 그리고 이런 부분이 특정한 음악을 감상하는 데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걸까?
책에 언급된 노래들은 대부분 밴드의 곡들이다. 헤비메탈도 있고, 락도 있었던 것 같고. 물론 조금은 잔잔한 장르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덕분에 소개된 앨범 대부분은 모르는 곡들이었다). 일단 귀를 시끄럽게 만드는 노래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까.
대신 노래를 들을 때는 가사에 자주 집중하는데, 또 이 점은 작가와 어느 정도 비슷하기도 하다. 책에 실린 몇몇 노래들에는 관심이 좀 생겨서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했다. 나중에 한 번 제대로 들어봐야지.
책은 각 앨범마다 대부분 두 페이지가 할당되어 있는데, 왼쪽 페이지에는 그 앨범의 표지가, 오른쪽에는 그에 대한 작가의 설명과 감상이 담겨 있다. 한참을 페이지를 넘기다가, 요새는 앨범 이미지를 다들 이렇게 유화 느낌으로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앞서도 말했던, 유튜브로 찾아본 앨범 사진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거 다들 사진으로 된 원화를 유화 느낌으로 바꾼 거구나. 여기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까.
모든 글은 결국 그것을 쓴 사람의 일부를 담고 있기 마련이다. 제목부터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이 책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음악과 관련된 내용이지만, 일부 장애인으로서의 자신에 관한 생각도 아울러 묻어난다. 그런 부분들은 조금은 무거운 느낌이다.
억지로 밝은 척은 아니다. 그냥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 남긴 지극히 개인적인 에세이에 가깝다. 나처럼 좋아하는 곡이 거의 없을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취향과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오래 전(아마도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성경을 처음 읽고 있었을 때, 하박국을 읽으면서 피식 웃음이 났었다. 이 사람 뭔데? 하는 느낌이랄까. 처음부터 하나님께 항의를 하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보겠다는 꽤나 도발적인 선지자. 성경에는 정말 다양한 성격의 선지자들이 나오지만, 하박국만큼 이색적인 인물도 없었다.(물론 나중에 보니 요나도, 호세아도 특이한 인물이긴 하다)
이 책은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신학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금은 쉽고 편안하게 쓴 하박국 해설/강해서다.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신학적인 고찰이나 원어 연구 같은 내용은 적고, 대신 현실로의 적용 부분에 집중하는 느낌이다.
하박국은 화가 나 있는 선지자가. 그 주된 이유는 그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시대로부터 2000 하고도 몇 백 년이 더 지난 오늘날도 현실은 비슷하다.
초강대국 미국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들을 군대로 때리고 있고, 나머지 나라들은 그런 미국이 두려워 대놓고 반대도 하지 못하고 있다. 진작 윤리적 파탄이 난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말 그대로 깡패다. 수많은 나라들 사이에서 혐오와 배제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세력들이 설치고, 심지어 제1당이 되기도 한다. 어중이떠중이들은 그런 파시스트들을 추종하며, 그들에게서 현실의 비참한 자신을 덮어줄 ‘가오’를 찾는다.
하박국은 왜 하나님이 이런 현실을 그냥 두고 보시느냐고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항의를 무시하지 않으시고 대답해 주신다. 세상은 너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훨씬 더 큰 규모로, 한 시도 쉬지 않고 진행 중이다. 눈을 크게 떠라. 우리도 종종 신앙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 오직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맞춰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박국의 하나님은 그런 잘못된 기대를 깨뜨리신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 하나님은 하박국이 고발하고 있는 현실의 악한들을 가만두지 않으신다. 저자는 특별히 제국주의적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과 연결시킨다. 하박국 당시의 바벨론이 그런 제국주의적 폭력의 대명사였지만, 그런 세력은 하박국 시대 이후에도 수없이 등장했고,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들의 행위에 대해 심판을 하실 것이다.
저자는 하박국의 주제가 두려움에서 확신으로의 전환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선지자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성격이 바뀌었다. 저항으로서의 두려움에서 신뢰로서의 두려움으로 변했다는 것. 여전히 선지자의 눈 앞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두려움이 남아 있다. 또,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방법을 모두 알 수 없기에 그는 불안해한다. 하지만 이제 그는 신뢰로 그런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건 오늘날의 많은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좀처럼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여전히 고민은 넘쳐나고, 걱정거리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애초에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눈에 보이는 문제들은 우리의 마음을 언제나 더 쉽게, 더 빨리 휘젓는다.
믿음은 불안과 두려움을 제거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해결해 주시기를 빌고 구하지만, 또한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하박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 길지 않으면서도, 하박국의 전체적인 내용을 잡아가는 데 훌륭한 도움이 될 만한 책.
AI 전성시대다. 이제 교회에서도 어지간한 상황에서 AI를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 다만 이 때의 ‘사용’이 늘 동일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유행을 따라 자신의 프로필 이미지를 지브리 스타일로 바꿔보는 정도나 좀 뛰어난 검색엔진 정도로 사용할 것이고, 그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AI가 가진 잠재력을 좀 더 사용하기도 할 것이고.
이 책은 기본적으로 목회자들을 위한 AI,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GPT 사용법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 쓰였다. 제목에도 붙어있는 “바쁜”이라는 수식어는, 왜 목회자들이 이런 도구들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하는지 그 상황적 필요성을 생각하게 한다. 특히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목회자들은 너무 바쁘다.
책은 말 그대로 초보자들을 위한 수준에 맞춰져 있다. GPT 계정에 로그인을 하는 것부터 내용이 시작되고, 기본적인 구조와 실제 입력한 프롬프트와 그 결과를 이미지로 실어두었다. 또 GPT로 교회 사역에 이용 가능한 영역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다.
책 말미에는 실제 목회 현장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을 특정 상황에 따른 프롬프트의 예가 140개 실려 있다. 예를 들면 양육반 개강 알림 메시지를 작성하기 위한, 예배용 파워포인트 3장 구성 법 같은.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부분만 따서 적절히 사용해도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 절약을 경험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목회자들이 AI를 어느 수준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을 돌보고 양육하는 목회자의 본질적인 역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티타임을 하면서 저자가 만든 목회자를 위한 다양한 GPTs를 구경해봤는데, 꽤 많은 노력을 절약해 줄 수 있도록 돕는 도구라는 게 한 눈에 와 닿았다.
물론 이런 도구들은 자칫 목회의 근간을 흔드는 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떠오르는 건 설교문 자체를 AI에게 맡겨서 작성하는 것이다. 앞서의 티타임에서 저자에게 이 부분을 질문했더니, 저자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그런 행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자신이 만든 GPTs에는 그런 기능을 넣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정도. 물론 이 부분은 기술보다는 목회 윤리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우려인, ‘과연 그렇게 얻은 여유를 목회를 더 잘 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 역시 근본적으로는 윤리 문제다.
사실 요새는 다양한 AI작업 도구들이 나와서 꼭 GPT가 아니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다만 몇 개를 사용해 본 결과 대략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나 설정 등은 유사한 경우가 많으니, 처음부터 기초를 잡아 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 특히나 목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이 많으니 한 번 손에 들어 보자.
지난달에는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을 읽었으니, 이번 달에는 균형을 맞춰보자(?)는 심산으로 이 책을 골라봤다. 제목이 뭔가 말랑말랑하지만, 아무튼 ‘좌파’라는 단어가 들어가니까.
그런데 책은 예상과 달리 본격적인 정치철학 책도, 그렇다고 정치판 인근에서 살아온 사람의 경험이 담긴 것도 아니다. 물론 책 말미에 작가가 당시 매력을 느꼈던 이낙연이라는 정치인(그 시절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물론 그 후의 갈지자 행보로 실망한 사람도 적지 않았을 테지만)에 관한 한 두 개의 에피소드가 나오긴 하지만, 주되 내용이라고 하기엔 주변적 소재일 뿐이다.
책은 작가가 “손 여사”라고 부르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다. 5남매의 셋째로 태어난 저자는 유일하게 결혼도 하지 않고 살고 있는데, 그게 어머니를 비롯한 부모님의 큰 걱정을 사고 있다(나도 충분히 어떤 느낌인지 안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시고, 요 근래에는 이상한 유튜브 채널에 빠져서 정치적인 편향성을 강하게 띠기도 하는 듯하다.
반면 딸 쪽인 작가 역시 딱히 사상적으로 투철한 “좌파”는 아닌 것 같다. 이명박 시절 대학을 다니던 작가는 강제적인 학과 통폐합을 경험하면서 권위적 행정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되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겪은 부당한 대우(성추행을 포함한)로 인해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해진 듯하다.
당연히 정치적인 주제로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책에도 몇 번인가 등장하는 정치적 대화는 금세 끊어지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끊어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쩌면 책은 우리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가정에서 경험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의외로 가까운 관계에서도 좀처럼 진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작가의 경우는 그 정도는 아닌 듯.
책 제목에 나오는 “좌파 고양이”란, 고양이가 좌파라는 말이 아니라 좌파인 딸이 키우는 고양이는 맡아줄 수 없다는, 조금은 심술이 섞인 어머니의 말에서 나온 표현이다. 결혼도 안 한 딸이 갑자기 한 달간 프랑스를 다녀와야 하니 고양이 좀 맡아 돌봐달라고 하니 하는 말이다. (이 또한 어떤 감정인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실 전체를 이끌어 가는 내용은 아니지만, 제목은 잘 붙였다. 덕분에 내가 손에 들게 되었으니까. 정치적 성향이 조금은 다른 엄마와 딸이 투덕거리며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