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
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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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군사력을 두고 대립을 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이야기다. 생각해 보면 중국이 미국과 맞서는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운 빠른 발전이었다. 미국이 두 차레의 세계대전에 참여하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거두었을 무렵, 중국은 국공 내전과 항일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었다. 게다가 최종적인 승리자였던 마오쩌둥의 잇따른 자살골로 중국 경제는 그대로 추락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어느덧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빠른 발전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며 찬탄하지만, 중국의 발전 또한 그 못지않은 놀라운 속도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이 책의 저자는 그 중 중국의 지도층이 ‘공학자들’로 구성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흥미롭게도 중국의 지도부는 거의 전원이 공학자들이다. 중국 경제 발전의 기점이 되었던 덩샤오핑은 8, 90년대 공학자와 기술자들을 정부의 최고위층에 대거 입성시켰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중국 공산당 최고 의결기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9명 전원이 공대 출신일 정도였다. 후진타오 전 주석은 칭화대 공대를 졸업하고, 10년 간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다른 지도급 인물들도 다양한 기술대나 공대를 졸업하고 실제 공장 등의 현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현 주석인 시진핑 역시 칭화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국가 운영의 핵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모두 공학자라는 것은 자연히 국가 운영에도 그에 따른 스타일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이른바 “개발 독재”에서 출발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이미 거의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의 공학 전공 지도자들은 마치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거침없이 설계하고, 건설한다. 그 결과가 미국의 2배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일본의 20배에 달하는 고속철도,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 그리고 전 세계 제품의 거의 절반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 같은 것은 그리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팬데믹 사태 당시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었다. 심지어 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 도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최소 천 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커다란 지역이다) 전체를 봉쇄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강제 불임수술 같은 인권유린적인 조치까지 있었다. 이 정도의 대규모의 사회적 실험은 공학자 마인드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반면 미국은 법률가 중심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이기도 한 만큼, 모든 것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업은 끊임없는 소송전으로 기약 없이 지체되고, 나중에는 아예 그런 사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 대규모 공장들도 사라져버렸고, 트럼프가 갖은 협박과 위협을 하며 동맹국들을 쥐어짜더라도,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절차적 정당성애 매여서 진취적 기상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닌데, 미국 역시 공학의 전통과 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도,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모두 미국에 있었다. 물론 이미 법조인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미국 정계가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저자는 미국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약점에 발목이 잡혔다고 말한다. 공학 중심의 나라는 통제와 간섭에 대한 집착으로 사회의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 체제를 비판하는 농담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훌륭한 문화적 결과물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법률가 중심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과정의 정당성에 집착하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만 남발하는 지리한 정치적 갈등이 사회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서 있을까?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만 보면, 철학(김영삼), 경영학(김대중, 이명박), 법학(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등 인문계열, 특히 그 중에서도 법학이 주가 되고 있고, 전자공학(박근혜)을 전공한 경우가 한 명 있다.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법학 전공자나 법조인 출신이 66명으로 20%가 약간 넘는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확실히 미국 모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어느 쪽 하나가 절대적인 정답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사회적 통합은 함께 가야 할 목표들이다. 문제는 국가운영의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된 이들이 자기 관점에서 벗어나는 발상을 할 수 있느냐 일 텐데, 이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진보계열에서는 ‘당위’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현실을 도외시하는 경우가 자주 보이고, 보수계열에서는 고인 물에서 나는 썩은 내를 좀처럼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세계 경제가 출렁이는 시대다. 단순이 이념과 관성에 충실하게 살다간 우리부터 얻어맞고 몰락할 지도 모른다.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장기적인 상황과 단기적인 대처 사이에서 현명한 결론을 찾아갈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우리에겐 있을까. 이건 단지 대통령 한 명을 잘 뽑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쉽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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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성 식품은 가장 완전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우리가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아미노산을

모두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110그램(181cal)에 들어 있는 단백질의 양을 다른 식품으로 얻으려면

강낭콩 340그램과 쌀 한 컵 분량의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러면 총 칼로리는 638칼로리, 탄수화물은 122그램을 먹는 꼴이다.


- 다이애나 로저스, 롭 울프, 『신성한 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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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 삶을 세우는 10가지 기준 ㅣ 핵심 진리 시리즈 1
박준호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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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각 계명들을 한 장씩 다루는 짧은 책이다. 구성 상 아마도 저자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했던 연속 설교문들을 엮은 게 아닌가 짐작된다.(각 계명의 적용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사실 내용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익히 들어왔던 설명들이고, 비유이고, 적용이다. 워낙 오래된 내용들이라, 달라진 시대에는 조금 어색하거나 살짝 흠칫 하는 내용도 보인다.


대표적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일부만 가지고서 전체를 논한다는 비유 같은 게 그 예인데, 사실 이 이야기는 불교경전에 나오는 예화다. 천 몇 백 년도 더 전에는 시각장애인의 부족한 관찰력을 지적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이제 이런 비유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아마도) 설교다 보니까 내용을 충분히 깊게 설명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은 된다. 하지만 이건 책이니까, 어느 정도 좀 더 깊은 조사와 고민들을 담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그런 깊이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대중 설교를 위한 쉬운 구성과 전개, 적용 등이 중심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이상하거나, 나쁘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십계명에 대해 처음 차근차근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권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내 경우에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을 너무 여러 권 봤다는 게 평가를 좀 박하게 내리는 요인이니, 확실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평가다. 하지만 세상엔 나 말고 사람도 많고, 그 가운데는 또 이 책이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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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페이스북 구름책방 페이지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을 새로 팔로우하는 분들 가운데 이른바 극우성향인가 싶은 분들이 좀 보인다.(최근에는 신천지 교주 옹호하는 분도 있더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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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나의 보수성이 인정(?)받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건 사실. 역시나 최근 아바서원에서 나온 책(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으로 만든 영상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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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를 공적 광장에서 완전히 배제하려는 태도와 기독교가 공적 광장을 지배하려는 태도 모두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책인데, 순서 상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는 영상이 먼저 나오다 보니 우리 편(?)이구나 싶으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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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일단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대놓고 욕만 하지 않으면 딱히 다른 조치를 하지는 않는다.(신천지 추종자는 과감히 차단) 정치적 견해다 달라도 대화와 토론은 가능해야 한다고 보긴 하는데 물론 이게 쉬울 리는 없다. 아무튼 욕 하기 전에는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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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스라엘에게 땅을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현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하고 정착촌을 확장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권리를 의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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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버지의 『팔레스타인은 누구의 땅인가』 6장을 통해 이사야, 미가, 예레미야, 에스겔과 말라기의 목소리를 살펴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땅을 독점하고 이웃의 집과 밭을 빼앗는 행위를 강하게 꾸짖었으며, 이방 거주민도 함께 기업을 얻어야 한다고 선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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