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운영의 핵심에 위치한 사람들이 모두 공학자라는 것은 자연히 국가 운영에도 그에 따른 스타일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사실 한 나라의 경제발전은 시장경제가 아니라 이른바 “개발 독재”에서 출발한다는 건 역사적으로 이미 거의 증명된 사실이다. 중국의 공학 전공 지도자들은 마치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 거침없이 설계하고, 건설한다. 그 결과가 미국의 2배에 이르는 고속도로와 일본의 20배에 달하는 고속철도, 전 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합친 것과 맞먹는 규모의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 그리고 전 세계 제품의 거의 절반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적인 합의 같은 것은 그리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수많은 민중들이 희생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팬데믹 사태 당시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었다. 심지어 한 도시(라고 하지만 우리 도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최소 천 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커다란 지역이다) 전체를 봉쇄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로는 ‘한 자녀 갖기 운동’이 있다.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강제 불임수술 같은 인권유린적인 조치까지 있었다. 이 정도의 대규모의 사회적 실험은 공학자 마인드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는 것.
반면 미국은 법률가 중심의 국가가 되어버렸다.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이기도 한 만큼, 모든 것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사업은 끊임없는 소송전으로 기약 없이 지체되고, 나중에는 아예 그런 사업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다. 대규모 공장들도 사라져버렸고, 트럼프가 갖은 협박과 위협을 하며 동맹국들을 쥐어짜더라도, 미국 사회의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이 절차적 정당성애 매여서 진취적 기상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희망이 없는 건 아닌데, 미국 역시 공학의 전통과 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마천루도,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도, 복잡한 지하철 노선과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도 모두 미국에 있었다. 물론 이미 법조인들에게 지배되고 있는 미국 정계가 쉽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