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는 강력한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스 기니스는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 6장에서 시민사회가 위로부터는 권력과 ‘전체주의적 관용’에 의해 억압되고, 아래로부터는 시민의 무책임과 진영논리, 정체성 정치에 의해 침식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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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상에서는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두 방향의 공격과 진보적 보편주의 및 다문화적 상대주의의 한계를 살펴봅니다. 또한 자신의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양심과 자유를 지켜 주는 ‘언약적 다원주의’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어떤 길을 제시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일까요, 아니면 우리 종교만을 위한 특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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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4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랑가방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노란가방 2026-09-26 10: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도 연휴 잘 보내셨나요??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소노 아야코,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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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기억 : 문화대혁명 시기의 티베트
체링 외세 지음, 윤승희 옮김 / 마르코폴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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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기억을 몇 개 떠올리라면 우선은 600만 명의 유대인을(그 외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1,100만이라고) 정권 차원에서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있을 것이고, 스탈린이 저지른 대숙청(약 70만 명 살해)과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 최소 400만 명 이상 희생)도 그 못지않은 사건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역시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이다. 10년간 이어진 이 광기의 운동으로 최소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아예 당 차원에서 기록을 삭제해서 정확한 수를 알 수가 없다) 간접적인 희생자를 포함하면 그 몇 배가 넘는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세 가지 참사의 공통점은 한 명의 지도자가 내린 멍청한 명령을 제대로 된 검토와 비판 없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광범위하게 시행했다는 데 있다. 애초에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세 사람 은 각각 미술, 신학, 문학을 공부했다) 너무 나섰다.


그런데 차이점도 있다. 나치와 스탈린의 소련은 멸망하고 해체되었지만, 마오의 중국 공산당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덕분에 그가 저지른 문화대혁명은 한 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긴 했지만(노선을 바꾸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그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하거나 하는 건 금지되어 있다(자칫 당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 있으니).





이 책은 문화대혁명 당시 티베트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사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저자의 아버지는 당시 인민해방군에서 선전 관련 일을 하는 장교로 복무 중이었고,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곳곳에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 결과물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책으로 펴낸 것.(당연히 중국 공산당에서는 이 일을 좋게 보지 않았고, 덕분에 저자는 여권이 발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문화대혁명은 티베트에서도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홍위병들은 티베트의 정신을 지워버리려 했다. 오래된 사원들은 파괴되거나 “인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되었고, 그곳에서 생활하던 승려들은 강제로 끌려나와 조리돌림을 당하거나 환속해서 당의 지령을 따르는 꼭두각시 생활을 해야 했다.


비참한 모습으로 훼손되는 티베트의 문화유산들을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 그런데 저자는 단지 티베트인들을 피해자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본토에서 온 홍위병들뿐 아니라, 티베트에서 조직된 홍위병들, 그리고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개인적 영달을 꾀했던 티베트인들, 그 가운데는 특히나 악질적인 행동대장들도 있었다.


일단 그렇게 처절한 파괴의 시기가 지난 후엔 이제 정복자들 사이에서의 권력다툼, 내분이 벌어진다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티베트어로 걘록과 냠델이라고 불렸던 두 개의 파벌은 각자 무장단체까지 거느리면서 이전투구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또 적지 않은 티베트인들이 말려 들어가 피해를 입는다.





사실 잘 알지 못하는 티베트의 역사를 다루는 책인지라 이름부터가 생소하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누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이 앞잡이였고... 하지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데 그건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소설처럼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와 흐름이 핵심이니까.


문화대혁명의 상징은 역시나 홍위병이다. 티베트에서 홍위병은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티베트의 수많은 청소년들도 열성적인 홍위병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뭐든 때려 부수는 것이 미덕으로 칭송받던 광기의 시기, 그 되바라진 아이들은 자신들이 뭔가 대단한 일이나 하는 것처럼 흥분에 빠져 장차 자신들이 딛고 살아야 하는 땅을 파괴했다.


사실 가장 선동당하기 쉬우면서, 한 번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게 1, 20대이다. 이건 뭐 오늘날에도 매한가지. 퍽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이들을 선동해서 불쏘시개로 쓰는 악질적인 인간은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다. 쿠데타를 옹호하고, 법원까지 습격하게 만드는 이들이 또 무슨 짓을 못 할까.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홍위병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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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21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혁당시 글쓰신 것처럼 중국인민들은 약100-20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하지요.하지만 모택동실각의 원인이 돤 대약진운동당시 공산당공식인정은 1650만명,학계추산은 약3500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시작한 교회 봉사는 왜 어느 순간 그만둘 수 없는 의무가 될까요? 예배만 드리고 싶다고 말하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고, 새벽기도에 참여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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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교회, 들어오면 숨막히고 나가면 그립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봉사자의 소진, 늘 하던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는 교회 구조, 새벽기도를 신앙의 기준으로 삼는 문화,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필요한 쉼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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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만나고 자발적인 순종을 회복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곳이 아니라, 지친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공동체가 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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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하나님 설계의 비밀 ㅣ 하나님 설계의 비밀
티머시 R. 제닝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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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 이 책의 시리즈 중 하나였던 다른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의 핵심 키워드는 “마음”이었는데, 이번 책은 “뇌”다. 영어로 된 원제를 보면 “The God-Shaped Brain”이니 우리말 제목이 크게 다른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원서에는 “How Changing Your View of God Transforms Your Life”라는 부제가 함께 붙어 있다. 하나님에 대한 당신의 관점이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꾸는가라는 말인데, 이 책의 내용을 아주 적절하게 설명한다. 책은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우리의 뇌에, 생각에 문제를 일으키고 결국 우리 삶을 망가뜨린다고 반복해서 지적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앞서 읽었던 책과 비슷한 논조를 갖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뇌’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 책은 여러 장에 걸쳐서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던 실제 환자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저자가 그들에게 어떤 신앙적 조언을 해주었는지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책 표지에 “이 책의 사례는 모두 실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읽었던 책에서 비판점은 기독교를 너무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정신과 의사가 실제 환자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고안되고 쓰였다는 정황을 놓친 것 같다.


확실히 기독교 문화가 더 일상적인 미국이니 만큼, 여전히 매우 보수적인 신앙관 속에서 종종 압제적인 상황에 처하는 이들도 많은 듯하다. (이즈음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여기 나온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할 정도로 “경건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든 것을 이분법 적으로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흔히 “죄”라고 말하는 것들에도 구체적 정황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런 상황에서 경직되고 정통주의화 된 기독교 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엄격한 관점을 지니고,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빠져 심각하게 삶의 질서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충분히 나오게 된다. 저자의 책들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한 가지 약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의 책을 너무 일반론적으로 읽으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단지 우리의 생각과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건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흥미롭다. 마음을 뇌의 특정한 부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건가 하는 구절이 몇 군데 보인다. 이른바 ‘육체와 마음의 연결점’이라는 오래된 철학적 주제에 대해 저자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정신과 의사라기보다 목회상담을 진행 중인 목회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는 모르겠다.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가운데 기독교적 전제를 갖고 임하는 것과, 목회자가 할 만한 일을 하는 것 중. 물론 이 또한 일부 목회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신자들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눌러둔 결과겠지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견해, 그 중에서도 그분을 무서운 심판자이자 처벌자로만 인식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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