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영화.


영화는 일제 강점기 경성의 총독부에 잠입한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밀스럽게 잠입해 총독을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그를 부르는 이름이 바로 “유령”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은밀함과 치명적인 파괴력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요원에게 꽤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다섯 개의 국경일 중 두 개가 일제 강점기와 관련이 되어있는 나라다. 삼일절과 광복절이 그것. 그만큼 이 나라의 현대사에 일제강점기가 남긴 상처는 깊고 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때마다 종종 그 암울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가끔은 그보다 앞선 일본의 침입―예를 들면 임진왜란 같은―을 다루기도 하고)


해방된 지 벌써 곧 80년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여전히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여전히 그 시절 일어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도 싶다. 대통령과 친구라는 어떤 양반이 싸질러 놓았다가 급히 삭제한 글처럼 결코 “식민 지배 받은 나라 중 사죄·배상 악쓰는 건 한국뿐”인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더 가증스러운 건 스스로를 일본과 동일시하는 조선놈들이었다.





스타일리시한 연출.


영화 전체가 꽤나 긴박감이 있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다. 스파이 “유령”으로 지목된 조선인 다섯 명이 한 호텔에 감금된 채 심문을 받고, 누군가 자수하지 않으면 모두를 고문하며 해치겠다는 위협을 받는 상황에 몰린다. 그런데 여기 모인 여섯 명이 꽤나 생생한 특징을 지닌 캐릭터들이다.


이 영화의 매력은 역시 이 흥미로운 캐릭터들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라는 조금은 묵직한 배경 속에서, 이 독특한 캐릭터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만들어 내는 케미가 통통 튄다. 특히 정무총감의 비서이자 내연녀인 유리코(박소담) 캐릭터가 꽤나 눈에 들어온다. 누가 봐도 싼티가 철철 넘치며 온갖 난동을 부리며 시선을 빼앗으니까. 또, 자기 어머니까지 죽여가면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거기서 성공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무라야마(설경구)도 영화 중후반까지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영화의 초반은 그 호텔에 갇힌 다섯 명 중 누가 스파이인가를 두고 감독과 관객이 벌이는 머리싸움이기도 하다. 각자가 모두 의심스러운 면이 보이고, 그들이 하는 말이 어디까지 진실인지를 고민해 가며 보는 맛이 있다. 확실히 상업영화를 만들 줄 아는 감독.





오늘의 한일관계.


이런 영화를 보면 자연히 오늘의 한일 양국 관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 전 일본은 또 다시 독도가 자신들의 합법적인 영토라고 망나니짓을 하기 시작했고, 그 며칠 후 우리 대통령은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날에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 눈에 드는데 인생을 바친 여당 쪽 인사들의 맞장구 소리에 며칠간 귀가 따가울 정도였고, 오늘 충북지사는 “나라를 위해 자신은 친일파가 되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새에 발생한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의미하는 건 뭘까? 물론 인접국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요한 일이고, 때로 악질 국가들과의 관계도 우호적으로 이어가는 것도 외교의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굴종의 방식, 특히 여전히 제국주의적 망언을 쏟아내는 정권에 대한 무릎 꿇기 식이어서는 안 되는 거다.





영화 속 무라야마는 전형적인 스스로 무릎 꿇은 조선인이다. 그는 일본인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이 스파이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진짜 스파이를 찾아 죽임으로써 조선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인물이다. 그는 벌써 합방된 지 10년이나 됐다며, 언제까지 독립 타령을 할 것이냐고, 이제는 내선일체를 이뤄 함께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일장 연설을 한다.


일제가 조선을 발전시켰고, 덕분에 근대화가 이루어졌으며, 오늘날에도 일본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 경제와 안보가 당장 망해버리고 말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암덩이처럼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은, 분명 온 목숨을 바쳐 독립을 이뤄내려 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일일 것이다. 영화 속 무라야마는 결국 유령에 의해 처형되었지만, 현실 속 무라야마들은 삼일절에 일장기까지 내걸며 더 발광 중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뉴스로 돌아가면 입맛이 더 씁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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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 기쁨의 하루
C.S. 루이스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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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 근래 두란노 출판사에서 C. S. 루이스의 글 중 일부를 짧게 발췌해서 몇 권의 책을 펴냈었다. 그 중 세 권은 작고 얇았고, 한 권은 나머지 세 권을 합친 것 정도 되는 양이었다. 작은 책들은 기도, 신앙, 독서라는 주제에 따라서 글들을 뽑아내서, 특정한 주제에 대한 루이스의 생각을 찾고 싶을 때 도움이 될 만도 했다.


하지만 역시 한국어판 C. S. 루이스라면 근본은 홍성사 아니겠는가. 루이스 정본 클래식이라는 시리즈로 거의 모든 루이스의 책을 출판한 만큼, 적어도 내 안에는 이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훨씬 애정이 간다.


이 책 역시 앞서 말했던 두란노에서 낸 발췌집과 비슷한 기획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책은 1년 365일에 해당하는 날에 맞는 루이스의 글들을 뽑아 배치했다는 것. 그리고 뽑아 놓은 문장이 좀 더 길어서, 그게 어떤 문맥에서 나왔는지를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각각의 날들 중 특별히 기독교의 기념일과 겹치는 날이면 그와 관련된 문장들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방금 전에 알게 된 사실은, 365일이 끝난 후, 매년 날짜가 바뀌는 기독교 축일에 해당하는 몇 개의 글이 더 추가되어 있다.


아, 우리 집에는 이와 비슷한 성격의 책, 아니 일력이 하나 더 있다. 이쪽은 달력처럼 스프링으로 제본되어 매일 넘길 수 있게 된 형식. 이 역시 홍성사에서 낸 건데, 문장은 훨씬 짧다.





자 쓰다 보니 책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대해 말이 길어졌는데, 사실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루이스의 책을 모두 읽어본 상황에서, 이 책에 발췌되어 있는 글들이 아주 새롭다고는 할 수 없다. 대부분은 읽으면서 이전의 기억들들 되살리는 경험이 반복되었다. ‘아, 이런 글도 있었나’ 싶었던 내용은 솔직히 말하면 채 열 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스의 명문장들은 다시 읽어도 그 좋음이 어디 사라질까. 몇 번이나 읽었던 내용들도 눈길이 지날 때마다 다시 한 번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글들을 매일 읽을 수 있도록 편집을 해 놨다면 그 또한 유용하지 않은가.


사실 이번에 완독을 하는 데까지는 몇 년이나 걸렸다. 우선은 눈앞에 읽어야 할 책들이 늘 쌓여 있기 때문이었고, 이미 한 번은 읽어본 내용들이라는 생각에 조금 뒤로 밀린 감도 있다. 또, 워낙 두께도 두껍고, 글자는 또 살짝 작아서 눈에 편하지는 않기도 했고.


하지만 일단 완독을 했으니 새로운 계획이 생겼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 책을 두고, 물론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생각이 날 때마다 그 날 날짜에 맞는 글을 찾아 읽어보겠다는 것. 앞서 언급했던 일력을 매일 한 장씩 넘기면서 이 책까지 본다면, 그 제목대로 루이스와 함께 “기쁨의 하루”를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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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꽃 한 송이 보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죽지 않고 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고,

여전히 나는 찔레꽃 한 송이 피우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 제님 ,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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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에러 - 빅테크 시대의 윤리학
롭 라이히.메흐란 사하미.제러미 M. 와인스타인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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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ChatGPT라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마치 사람처럼 대화를 할 수 있을뿐더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엄청난 자료를 거의 즉각적으로 찾아서 신문기사든, 논문이든, 에세이든 바로 만들어준다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기술발전으로부터 놀라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해 전 알파고는 그 수가 너무나 복잡해서 인간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는 전망도 있었던 바둑으로 이세돌 기사에게 거푸 승리를 거두며 세상을 놀래켰고, 그 와중에 이세돌이 한 판을 승리한 것이 도리어 역사적인 일이 되어버리기도 했으니까.






오늘날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을 넘어버렸다. 대부분은 그 정확한 매커니즘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 결과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그 기술을 이용해 엄청난 힘을 획득한 사람들/조직(기업)이 생겨났다는 점이고, 그들은 제대로 된 견제 없이 자신의 힘을 키워가기 위한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개인적 권리와 사생활 침해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인데, 기업들은 이런 정보를 더 많은 이윤을 얻는 데 사용하고 있다. 책에서는 특정한 콘텐츠나 상품을 우리 눈앞에 들이미는 알고리즘의 구조 문제, 그리고 눈에 잘 띠지 않게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거나 기업에 양도하게 만드는 약관 동의 버튼, 자동화 기계의 확산으로 인한 실업문제,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할 지도 모르는 사상과 발언들의 확산을 방조하는 문제 등이 지적된다.


사실 배경이 달라졌을 뿐이지, 이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 자체는 오랫동안 논의되어 왔던 것들이다. 개인정보의 소유권,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개인의 권리, 인간 생명의 중요성,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공정한 대우, 또 인간적인 삶을 지탱시켜주는 사회의 책임 같은 주제들이 그것이다. 다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것들을 보장하기 위한 상황이 크게 변했고, 달라진 상황에서 어떻게 인간다움을 보전할 수 있을까에 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가 필요한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기술발전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전문적이어서, 입법을 담당하는 의원들조차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 규제에 대한 노이로제적 반응을 보이는 반규제맹신도들도 적잖게 보이고.





문제가 복잡할 때는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한 방법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실마리 찾기다. 저자들은 이 실마리를 민주주의라는 가치에서 찾는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잘 꺼내지 않는 케케묵은 개념쯤으로 여기는 그것 말이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오늘날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시장(만능)주의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줄이고, 복잡한 사항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종의 추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크게 세 가지 의제를 제안하는데, 첫 번째는 개인정보의 통제권에 있어서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권력의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고(기업에서 소비자 쪽으로), 두 번째는 기술변화로 인해 피해를 입을 사람들에게 좀 더 큰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단지 주주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와는 다른 사회를 우리는 구성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대형 기술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억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반독점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기술발전계에 윤리라는 (오래된)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윤리라는 건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정해둔 최소한의 기준이다. 이 기준이 무너진다는 건, 더 이상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된다는 뜻인데, 기술발전의 목표가 사람의 안녕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굳이 그렇게 빠른 발전을 해야 할 이유도(그리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의 자산으로부터 나온 세금이나 인프라적 지원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빅테크 기업들로 하여금 이런 윤리적 기준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온갖 로비를 뚫고, 특정한 경제이론만이 절대진리라고 믿는 변종 광신자들의 반대를 넘는 일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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