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깡패 같은 애인 - My Dear Desperad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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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줄거리 。。。。。。。

 

     취업이 돼서 서울로 올라온 세진. 하지만 회사가 세 달 만에 부도가 나면서 산동네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고 옆집의 깡패 같은 사내 동철을 만난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고, 스펙도 쌓았지만 지방대 출신인 세진은 좀처럼 취직을 하지 못하고, 동철은 그런 세진을 무관심한 듯 바라본다.

     잇따른 취업 실패에 속이 상한 세진과 역시 보스를 대신해 감옥에 다녀온 대가로 자리를 얻어 생활을 하고는 있으나 잇따라 ‘가오’가 나지 않는 일만을 겪게 된 동철은 우연찮은 기회에 서로를 위로하게 되고, 점차 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2. 감상평 。。。。。。。

 

     영화의 전체 얼개가 지난해 봤던 ‘똥파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주인공인 깡패가 한 여자를 만나 변하게 되고 그 여자도 깡패를 통해 한 단계 더 성숙한다는 스토리.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 도배가 되었던 똥파리보다 이 영화가 훨씬 더 가볍고 대중적이긴 하지만, 또 이 영화에서 정유미가 맡은 세진이 더 밝은 캐릭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의 로맨스 외에도 ‘청년실업’이라는 또 하나의 주제가 매우 가볍게 등장하고 지나간다. 세진이 동철의 옆방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도, 그리고 동철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도 모두 이 이유 때문이었고, 지방대 출신의 세진의 말을 통해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진지한 해결책에 대한 모색 정도는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살짝 언급 정도. 잘만 요리했으면 이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그런 소재였는데, 아쉽게도 감독은 그냥 영화적 환상으로 가볍게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만다.
 




     투캅스 때부터 봐왔던 박중훈 식의 톡톡 튀는 개그 코드가 두드러진 영화였다. 상대 배우였던 정유미는 박중훈의 연기에 그런대로 무난하게 보조를 맞춰주고 있다. 영화 제목처럼 ‘깡패 같은’ 애인이었다면 딱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영화엔 ‘깡패인’ 애인이 등장한다. 딱히 강도 높은 폭력신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칼부림 장면은 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장면만 아니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데이트를 할 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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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 조수석 앞 수납공간에는 비닐장갑이 한 상자 들어있다.

차량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정비를 하려고 둔 건 아니고,

(그럴 목적이라면 면장갑을 두는 게 맞다)

이곳 화천에서 살기 시작한 지 일 년 쯤 지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챙겨 가지고 다니게 된 아이템이다.

 

우리나라 지도를 두고 보면 이곳 화천은 동서의 중간지점,

거기에서 북쪽으로 불쑥 올라간 곳에 위치해있다.

(위도 상으로는 개성보다 위쪽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있는 곳은 최전방 휴전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

살고 있는 사람들의 90%는 군인이고,

면회객들을 제외하고는 유동인구랄 게 거의 없는 동네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군부대들이 많다보니 따로 개발이 된 곳도 없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엄청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다 합쳐보면 동물들이 살기에 딱 좋다 싶은 곳.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생활 한 지 2년 동안

평소에는 보지도 못한 야생동물들을 잔뜩 보고 말았다.

이곳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은 고라니.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갑자기 튀어나와 놀래키기 일쑤고

눈이 많이 온 밤엔 다음 날 아침 일어나보면

주차 해 둔 내 차 주변을 한 바퀴 삥 돌고 간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멧돼지도 심심찮게 발견되는데,

길가다 한두 번 마주친 적도 있지만,

주로 GOP 지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데

큰 놈은 2m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

그 외에도 도시에 살 때는 볼 수 없었던

산토끼, 너구리, 가재, 매, 독수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예쁜 새들이

사시사철 사방을 뛰어 다닌다.

(꿩들은 아예 차가 지나가도 피하지 않고 고개만 돌릴 정도다;;)

 

 

 

문제는 그 녀석들이 살고 있는 곳에 사람들도 살기를 원했다는 것.

사람들이 오고가야 하니 길이 나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길은 점점 더 넓어진다.

거기에 석유에서 뽑아낸 시커먼 덩어리로 땅을 다져놓으니,

이 녀석들이 움직일 때마다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녀석들이니 꽤 익숙해졌을 테지만

그래도 그 시커먼 길 위를 빠르게 지나다니는 쇠붙이들은

여전히 큰 위협이다.

 

내가 비닐장갑을 차에 가지고 다니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녀석들 때문이었다.

일이 있어서 읍내를 오고가던 중 미처 달려오던 자동차를 피하지 못해

길에 쓰러져 죽어 있는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걸 봐 버렸다.

굳이 동물들의 사체를 밟고 다니는 운전자들은 없겠지만,

빠르게 다니다 보면 필히 이리저리 치이는 사체들이 나오게 된다.

그 후 급한 일이 아니면 최소한 길 한 쪽으로라도 치워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것.

 

 

첫 번째로 수습하게 된 것은 고라니였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죽지 않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새끼를 밴 상태였는지 사고의 충격으로 핏덩이가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녀석이 의식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었겠지만,

그 녀석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물론 동물들 다니는 곳에 길을 냈다고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도로라는 게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어지간해서는 쓸 데 없는 곳에 나지는 않는 법이다.

(물론, 이 나라에선 상상치 못하는 일이 일어나는 게 일상이지만)

더구나 여기에 있는 많은 군부대들을 생각하면

왕복 2차로라는 길은 좁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길을 냈다면

동물들의 편의도 조금쯤 생각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

또.. 그렇지 못해서,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들에게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혔다면

함께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조금쯤은 예의를 표해 달라는 건

지나친 부탁인 걸까.

(뒤에 들은 말인데 그렇게 사고로 죽은 고라니가 발견되면

식당에 팔기 위해 금방 누군가가 와서 수거해 간다고 한다.)

 

오늘도 여전히 내 차엔 비닐장갑이 실려 있다.

그 자리에 장갑이 있다는 걸 잊어버렸으면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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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 세계를 움직이는 지혜의 보고 유대인 탈무드 시리즈 1
마빈 토카이어 지음, 현용수 엮음 / 동아일보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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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약 하루를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는 데 이틀이 걸리고,

이틀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되찾는 데 나흘이 걸린다.

또, 1년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자그마치 2년이나 필요하다.

 

1. 요약 。。。。。。。

 

     유대인들의 고전인 탈무드의 한국어 역본이다. 물론 방대한(트럭 한 대 분량이라는) 탈무드 전체를 번역한 것은 아니고, 그 중 일부만을 번역한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식 랍비 교육을 받은 저자가 한국인 독자를 위해 직접 뽑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여기에 유대인들의 문화에 정통함을 자부하는 편역자의 역주가 더해져 이해를 돕는다.

 

 

2. 감상평 。。。。。。。

 

     고전 중의 고전인 탈무드를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탈무드에서 유래된 것임을 깨닫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다. 탈무드는 수많은 작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다만 ‘쉬움’에 방점을 찍은 결과 좀 더 깊은 내용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가벼운 책이 된 느낌이다. 소개된 이야기들은 너무 적었고, 도무지 탈무드를 가지고 어떻게 그토록 깊은 토론들이 가능한 지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단편적이고 단선적인 이야기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한편 편역자의 지나친 자기인용은 책 전체의 내용을 한결 더 가볍게 만든다. 거의 매 페이지 하단마다 적혀 있는 저자의 자기 책 홍보는 그냥 자기자랑으로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편역자의 유대인들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유대인이 하는 것이면 뭐든지 좋은 것’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끝나기 일쑤다. 탈무드가 분명 고전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 고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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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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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조선 말 선조 시기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정여립을 중심으로 대동계가 조직되어 외적을 막아 싸우는 무리가 나타났다. 당파 싸움만을 반복하던 당시의 정치인들은 즉각 이 조직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을 감지하고 정여립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 죽이고, 더 이상 조정에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이몽학은 대동계를 이용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을 꾸민다.

     친구인 정여립이 사실은 이몽학에 의해 죽임을 당했음을 짐작한 황정학은 이몽학의 계획이 결국은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임을 짐작하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고, 이몽학에 의해 세도가였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자 비록 서자였지만 아버지를 위해 복수에 나선 견주와, 이몽학의 정인(情人)이었던 기생 백지가 그와 합세해 이몽학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십오 만의 왜군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라를 집어 삼키는 와중에, 나라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일어선 대동계원들은 임금이 버리고 도망간 한양으로 모여든다.

 




2. 감상평 。。。。。。。

 

     영화관을 나오며 드는 이 뭔가 뒤끝이 개운치 않은 느낌은 아마도 이번에도 감독이 소수자, 혹은 패배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리라. 패배자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그냥 능력이 없어 졌다는 말로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실패가 되어야 이야기가 된다. 때문에 잘 만들면 명작이 되지만, 자칫 억지스러움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빛나는 비극들이 그 좋은 예라면, 이 영화는 그 나쁜 예가 아닐까.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전혀 절박함이 없다. 뭔가 간절함은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의해 슬픔으로 빠져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이몽학의 모든 행동은 대의(大義)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위한 무엇도 아니었고, 그를 막아서려는 황정학의 의도도 그저 현실에 순응해 살라는 메시지 이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 무작정 옛 정인을 찾아 나서는 백지는 존재감이 없었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이몽학을 죽이겠다고 설치는 견주(견자)가 그나마 가장 생동감이 있는데, 극 전체를 두고 보면 딱히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를 다루는 작가, 혹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어려움은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성공한 인물을 다룬다면 그 자체로 좋겠지만, 실패한 역사를 다룰 때는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관객으로서는 겨우 감정이입을 시켜 놓은 인물이 맞고 터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달가울 리 없으니까. 때문에 감독은 비록 패배는 했지만 무엇인가는 남겼다는 식의 변명을 대신 해 주어야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 채 그냥 패배주의에 매몰된 듯한 느낌이 든다.

     스크린은 시종일관 짙은 잿빛구름이 끼어 있는 하늘을 보는 것 같았고, 배우들의 연기력은 그 무거운 구름의 무게에 눌려버렸다. 이 과장되게 심각한 캐릭터는 내 경우에는 극의 몰입을 방해해버렸다. 영화를 본 다른 관객들의 지배적인 의견처럼, 왕의 남자를 떠올리고 상영관에 들어간다면 필히 실망을 하며 나오지 않을까 싶다.(임진왜란 이후에나 들어온 고추를 어떻게 구했는지 벌써 고춧가루에 버무린 김치를 얹어 국밥을 먹느냐는 식의 딴죽을 한 번 걸고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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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 Clash of the Titan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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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인간을 창조하고, 그 인간들의 기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던 신들. 하지만 어느 순간 신들의 변덕스러움과 폭력에 환멸을 느낀 인간들은 마침내 신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어떻게든 인간을 회유하려는 형 제우스를 설득해 인간들을 공포로 다스려야 함을 주장하던 지옥의 신 하데스는 아르고스를 그 타깃으로 삼아 보복을 하려고 한다.

     기한 내에 하데스가 보내는 크라켄을 막으려면 반드시 메두사의 머리가 필요했고, 페르세우스는 동료들과 함께 메두사를 사냥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거대한 전갈들과 음산한 무녀(巫女)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돌로 변하고 마는 메두사와의 결투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2. 감상평 。。。。。。。

 

     발전된 기술은 웅장한 영상을 만들어 냈고, 볼거리 하나는 확실히 만들어 냈다. 영화의 상영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106분 남짓이라니 일반적인 120분짜리 영화보다 짧긴 하다) 화려한 영상의 진행은 지루하지는 않았다. 다만 볼거리가 있다는 것과 내용이 좋다는 것은 정확히 같지 않다는 데 주의해야 할 듯.

     감독은 페르세우스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를 매우 간단히 각색했고,(물론 영화화를 위해서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는 썩 적당하지 않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 결과로 영화에는 딱 하나의 주제만 남았다. 용감한 페르세우스와 이를 막는 나쁜 하데스. 그야말로 찬란한 신화를 유치한 동화로 바꾸어 놓은 격. 덕분에 머리를 쓰지 않고 ‘보기’에는 적합하나 ‘읽기’에는 어려운 단순 오락 영화가 되어버렸다.

     감동도, 스릴도 생각할 꺼리도 없지만, 그저 뛰고, 구르고, 소리 지르고, 죽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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