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조선 말 선조 시기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정여립을 중심으로 대동계가 조직되어 외적을 막아 싸우는 무리가 나타났다. 당파 싸움만을 반복하던 당시의 정치인들은 즉각 이 조직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것을 감지하고 정여립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 죽이고, 더 이상 조정에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깨달은 이몽학은 대동계를 이용해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계획을 꾸민다.

     친구인 정여립이 사실은 이몽학에 의해 죽임을 당했음을 짐작한 황정학은 이몽학의 계획이 결국은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것임을 짐작하고 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서고, 이몽학에 의해 세도가였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자 비록 서자였지만 아버지를 위해 복수에 나선 견주와, 이몽학의 정인(情人)이었던 기생 백지가 그와 합세해 이몽학을 찾아 나선다.

     마침내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십오 만의 왜군이 파도처럼 밀려와 나라를 집어 삼키는 와중에, 나라를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일어선 대동계원들은 임금이 버리고 도망간 한양으로 모여든다.

 




2. 감상평 。。。。。。。

 

     영화관을 나오며 드는 이 뭔가 뒤끝이 개운치 않은 느낌은 아마도 이번에도 감독이 소수자, 혹은 패배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이리라. 패배자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그냥 능력이 없어 졌다는 말로는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실패가 되어야 이야기가 된다. 때문에 잘 만들면 명작이 되지만, 자칫 억지스러움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빛나는 비극들이 그 좋은 예라면, 이 영화는 그 나쁜 예가 아닐까.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전혀 절박함이 없다. 뭔가 간절함은 있을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 의해 슬픔으로 빠져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이몽학의 모든 행동은 대의(大義)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자신을 위한 무엇도 아니었고, 그를 막아서려는 황정학의 의도도 그저 현실에 순응해 살라는 메시지 이외에는 찾을 수가 없다. 무작정 옛 정인을 찾아 나서는 백지는 존재감이 없었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이몽학을 죽이겠다고 설치는 견주(견자)가 그나마 가장 생동감이 있는데, 극 전체를 두고 보면 딱히 존재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를 다루는 작가, 혹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부딪히는 어려움은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는 점일 것이다. 성공한 인물을 다룬다면 그 자체로 좋겠지만, 실패한 역사를 다룰 때는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관객으로서는 겨우 감정이입을 시켜 놓은 인물이 맞고 터지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달가울 리 없으니까. 때문에 감독은 비록 패배는 했지만 무엇인가는 남겼다는 식의 변명을 대신 해 주어야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한 채 그냥 패배주의에 매몰된 듯한 느낌이 든다.

     스크린은 시종일관 짙은 잿빛구름이 끼어 있는 하늘을 보는 것 같았고, 배우들의 연기력은 그 무거운 구름의 무게에 눌려버렸다. 이 과장되게 심각한 캐릭터는 내 경우에는 극의 몰입을 방해해버렸다. 영화를 본 다른 관객들의 지배적인 의견처럼, 왕의 남자를 떠올리고 상영관에 들어간다면 필히 실망을 하며 나오지 않을까 싶다.(임진왜란 이후에나 들어온 고추를 어떻게 구했는지 벌써 고춧가루에 버무린 김치를 얹어 국밥을 먹느냐는 식의 딴죽을 한 번 걸고 싶기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