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도 우주로

영화는 우리나라 항공우주국에서 자체적으로 달에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상상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사고로 동료를 잃고 홀로 달 탐사 임무를 계속하는 선우를 구출하기 위해 5년 전 사고의 책임을 지고 항공우주국 센터장에서 물러났던 김재국(설경구)가 돌아와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캬~ 우리 기술로 달에 사람을 보낸다는 상상만 하더라도 멋진 일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 꼭 등장해 혈압을 올리게 하는, 방해만 하는 악역도 딱히 보이지 않았지만(그냥 좀 모자란 개그캐 장관 역을 배우 조한철이 감초 연기로 살렸다), 툭하면 나오는 가족애라든가, 사실은 내가 잘못했어, 인류애를 위해 결단해 달라 같은 클리셰들은 잔뜩 등장해 감동을 유도한다. 근데 뭐 이런 거 다 빼고 나면 뭘 그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그래도 좀 노력을 했어야 하지 않나..(결국 영화의 흥행은 대참패였다)

달과 관련된 영화들이 최근 몇 편 만들어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대체로 흥행에 성공은 못 거둔 모양이다. 뭐 그림은 대략 괜찮았는데, 역시 스토리의 매력이 좀 떨어졌기 때문이려나. 물론 개중엔 만듦새가 영 허약했던 것도 있었고. 하지만 그래도 우리 영화도 이제 우주로 좀 더 멀리까지 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돌들이 자꾸 쌓이다 보면 언젠가 좀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을까.




(2) 결국은 경제문제

영화 속에 언뜻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결국 우리가 달에 가려는 이유는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달에는 엄청난 에너지원이 있어서 그걸 선점하려는 각국의 속셈이 있다는 건데, 이건 실제로도 사실인가 보다. 헬륨-3라는 물질인데, 1g을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면 석탄 40톤이 내는 열량을 낼 수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런 에너지원을 그냥 모두가 나눠 사용할 리가 없는 법(1만 년 동안 전 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량이라지만...). 달에 도착해서 실제로 연구를 한 나라들끼리만 폐쇄적 리그를 만들어 개발을 하겠다는 건데, 영화에서는 이 때문에라도 달에 발을 내딛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목적이 생긴다.(선우가 달의 얼음을 채취한 시료를 마지막까지 사수한 이유다)

이 외에도 우리가 달에 가야 하는 이유는 많다. 그 중 하나가 달을 일종의 중간 정거장으로 삼아 더 먼 외계로 나가는 기지로 삼겠다는 계획도 있는데, 달의 중력이 지구의 1/6에 불과해 우주로 나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훨씬 적기 때문에, 연료를 적게 실어도 되는 장점이 있다.(대략 산술적으로 달에서 출발하면 6배는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이니)

하지만 우주사업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당장 (경제적) 성과가 눈앞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패 확률도 높다. 좋은 건 알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다.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면서 밀고 나가야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런 일은 정치적인 지지가 필요한데, 자신의 임기 안에서 성과가 나지 않는 일에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훌륭한 정치인은 드무니까.


(3) R&D 예산

윤석렬 정부에 들어서면서 국가 운영이 휘청거리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 중 하나가 연구(Research)와 개발(Development) 예산을 대폭 삭감한 행태다. 2024년 예산안에서 전년에 비해 무려 4조 6천 억을 줄였다고 하는데, 전체 예산이 26조가 조금 모자라니 1/6을 깎아버린 셈이다. 여기에 무슨 정교한 논리나 명확한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심지어 국회예선처의 전문가들도 이런 삭감이 “불명확한 기준”에 따라 편성된 거라고 한 소리를 했단다), 그냥 대통령이 어디서 주워들은 풍문으로 한 소리 했더니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그 결과 안 그래도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개인기초연구 분야는 마비될 위기고, 장기 프로젝트는 줄줄이 예산을 대지 못해 좌초될 상황이라고 한다. 이공계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연구비가 줄어 대학원생들을 내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반면 국제 협력 연구 분야에는 예산을 2조나 늘렸는데, 외국인 학자들의 연구에 우리나라 돈을 쓰겠다는 말이다. 여기에 우리 연구진이 참여하면 국제적인 연구나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누가 또 조언했나 본데, 정작 연구자들은 연구비가 딱히 부족하지 않은 외국 학자들이 우리가 돈을 준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고 한숨을 내뱉는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대통령은 자기 임기 내 R&D예산을 크게 늘리겠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한다. 임기 2년 만에 적어도 우리나라 과학 연구 수준을 10년은 뒤로 미룬 게 아닌가 싶은데, (애초에 달에 갈 수 있는 연구를 지체시켜) 이 영화에서와 같은 우주인의 고립 사고 같은 건 일어날 가능성을 없앴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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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살펴봤지만 파티피플은 기본적으로 죽습니다.

특히 클럽에서 신나게 춤추는 캐릭터는

개복치보다 쉽게 죽습니다.

영화감독들의 공통된 콤플렉스인지 뭔지,

파티하는 사람들을 벌주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

찬타(chanta), 『사망 플래그 도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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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자의 신앙고백 - 인간의 탄생, 성숙, 노화
김영웅 지음 / 선율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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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이라는 주제를 동시에 다루는 일은 일단 흥미를 자극한다. 흔히 이 두 영역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식의 편견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과학의 주요 공헌자들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이라던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좋은 기독교인이면서 마찬가지로 훌륭한 과학자가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장 폴킹혼이나 알리스터 맥그래스 같이 신앙과 과학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는 저자들이 쓴 책들은 우리에게 지적인 만족을 준다. 다만 우리나라에도 이런 인물들은 없을까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사람은 모두 자연과학 학위와 함께 신학 학위도 보유하고 있어서 이런 종류의 글을 쓰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굳이 자신의 학위에 신학 학위를 추가하고자 하는 사람도, 그럴 만한 동기도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뭐 일단 신학이라는 학위가 교회 밖에선 별다른 가치가 없는 나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을 때 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저자가 쓴 과학과 신학의 통섭적 관점을 담은 책인가 싶어서다. 하지만 기대가 살짝 컸던 걸까? 이 책은 생물학, 정확히는 인간 발생과 성장, 노화를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신학이 아닌) 신앙적 통찰을 담은 내용이었다.




물론 신학과 신앙 사이에는 우월의 차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두 영역은 각각 집중하고 있는 게 약간 다르다. 대체적으로 신앙 쪽이 좀 더 직관적이고 단순하며, 일상에 좀 더 밀착해 있는 느낌이다(물론 신학도 이런 요소들을 갖춰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흔히 교회 안에서 어른들을 통해 듣는 신앙의 지혜나 간증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여기에 속한다.


신앙적 교훈을 더한 이 책 역시 조금은 직관적이며 일상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생물학적 설명은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정도에 약간의 교양 수준의 과학을 덧붙인 정도이고, 각 사안에 관련된 저자의 신앙적 깨달음, 혹은 교훈이 덧붙여진 형태다. 애초에 책의 예상 독자를 좀 더 대중적으로 넓게 잡은 게 아닌가 싶다. 덕분에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다만 어느 정도 이런 종류의 책들을 좀 읽어본 독자들에게라면 살짝 아쉬운 면도 분명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단순하기만 한 건 아니다. 분명 관련 분야 전문가로서 저자의 지식과 정리 능력이 잘 드러나고 있고, 저자가 보여주는 신앙적 통찰과 교훈도 충분히 교회 안에서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는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길을 찾고자 하는 저자의 시도는 모든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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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용기가 생기는지,

그 덕에 소중한 친구를 찾아 다행이다.


- 윤지회, 『사기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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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대남은 동네북이 되었나 -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대한민국 이대남 보고서
이선옥 지음 / 담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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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눈길을 끌어서 집으로 데려온 책이다. 20대 남성을 뜻하는 이대남이라는 표현은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듣기 힘들지만, 어느 순간부터 언론기사에 종종 등장하더니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어버렸다. 이대남에 관한 일반적인 인상은 젊지만 정치적으로는 보수성향이 강하고, 자기들만의 공정 개념에 빠져서 여기저기를 치받는 어린 것들 정도?


책 제목에도 이런 일반적인 인상이 드러난다. “동네북”이라는 용어다. 여기에는 “모두의 공격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으니까. 분명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들을 거슬려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동시에 “동네북”이라는 표현에는 이들이 억울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저자는 다분히 이런 의식을 갖고 이대남에 가해지는 “억울한” 비판을 방어하며, 그들이 왜 이런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를 변호하려고 이 책을 썼다.




책 제목에도 들어가고 분명 여러 차례 이대남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만, 정작 책은 이대남이 정확히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의조차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단어가 그냥 일부 언론이나 호사가가 만들어 낸 단어이기 때문에 그 기준 같은 게 모호한 데가 있다. 대충 따져도 10년의 나이 격차가 있는 한 쪽 성별에 속한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건 무리다.


그래도 분명 이런 성향을 띠는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하니, 저자는 일단 이 부분을 전제하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듯하다. 책의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대남”의 탄생은 일종의 반응이었으며, 그들을 향한 페미니즘 진영의 가시돋힌 독설과 편견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자연히 이 책은 이대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그들을 매도하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페미니즘(과 정체성 정치, PC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집중한다.


정체성 정치나 PC주의의 기저에 깔린 교만과 혐오 코드의 위험성, 그리고 오늘날 주류가 되어버린 남성혐오주의적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기에, 책의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며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시종일관 페미니즘에 대한 거친 공격적 표현들은 한편으로 저자의 주장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읽도록 만드는 요인이었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이쪽이 좀 더 우세적인 포지션이었다.




총평을 하자면 저자의 주장에 타당한 점이 많이 있다. 선동과 혐오에 기초한 오늘날 주류 페미니즘이 일으키는 문제를 조곤조곤 지적하는 부분은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 많다. 관련 내용은 앞서 오세라비나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책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긴 했다.


다만 페미니즘 사이의 차이를 전혀 무시하는 측면이라든지 하는 몇몇 부분은 저자의 주장이 좀 지나치다 싶다. 뭐 애초에 이 책이 논문이나 사회학 연구서보다는 대중적인 성격을 좀 더 강하게 띠고 있긴 하지만.


또, 책 제목에도 이대남이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책에서 이대남을 분석하는 내용은 정교하지 못하다. 그저 모든 건 페미니스트들의 만행 때문이라는 단순한 내용만 보인다. 이 점 역시 아쉬운 부분.




비단 페미니즘 뿐 아니라 어떤 사상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릴 때 사람들은 쉽게 이성적인 판단 대신 맹목적인 신종을 택하곤 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희생자들이 속출하고, 다양한 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한 때는 평등을 주장했던 많은 사상들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자주 목격하곤 한다.


다양한 가치와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 서로의 차이를 조율, 타협해 나가며 함께 발전해 나가는 것이 민주사회의 최상의 모습이라면, 그저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상대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상은 그 안에서 자리를 배정받아서는 안 된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기고 있는 생각들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는 일은 중요하다. 사람에 따라 이 책에 실린 내용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 담긴 비판을 그저 무시하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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