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밤의 애도 - 고인을 온전히 품고 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한 자살 사별자들의 여섯 번의 애도 모임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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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수는 12,906명이다. 그 중 남성이 9,019명, 여성이 3,887명으로, 남성 쪽이 두 배 이상 높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를 가리키는 자살률 평균은 24.1명으로, 같은 기간 OECD 평균인 11.1명을 두 배 이상 초과하는 압도적 1위를 마크하고 있다. 2위인 리투아니아는 지난 2017년까지는 우리보다 높았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여서 2018년 이후로는 우리가 독보적인 1위라고 한다.


1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4, 50대의 경우에는 사망원인 2위에 해당한다. 사고나 질병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수가 이렇게 많다는 건, 개인적인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당장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 국가적인 생산력 감소의 큰 위협이기도 하다.


물론 이 문제는 단순히 경쟁력이나 생산력 따위의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무엇 이상이다. 때문에 자살자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연구나 관심도 요즘엔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초점이 언제나 자살예방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물론 예방은 중요한 일이지만, 일단 벌어지고 난 후에는 금세 또 다른 예방으로 넘어가버린다는 게 문제다. 자살 이후에는 남겨진 가족이나 친구들(자살 사별자)이 있고, 그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걸 간과해버리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자살 사별자들에 관한 내용이다. 심리부검이라는, 사망자가 어떻게 그 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심리상태를 사후에 추정해 나가는 분야에서 일해 온 저자가, 실제 자살 사별자 다섯 명과 함께 여섯 번의 자조모임에서 나눴던 대화를 바탕으로, 이들의 회복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천천히 되 집어 본다.




사실 가까운 사람들 중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없었기에, 개인적으로 이 문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할지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들이 어떤 고통 가운데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당연히 남겨진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런데 자살 사별자의 경우 이들은 그 이상의 죄책감까지 갖곤 한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책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많은 자살 사별자들은 그날, 특정 순간의 이미지, 신체감각, 기억들에 꽤 오랫동안 붙잡혀 산다는 것이다. 이 기억은 자신도 모르는 새 오랫동안 사별자의 삶을 억누른다는 것.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스스로에게, 또 함께 사는 가족들에게도 생채기를 낸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더할 때가 있다. 때로는 무신경한 말로, 또 때로는 편견과 아집에 싸인 채로 그들을 대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가 얹혀 있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그 위에 또 다른 돌탑을 쌓고 있는 것이다.(이 점은 안타깝게도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살 문제에 관련해서 교회에 속한 일부는 확인할 수 없는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가지고 유가족들을 더 괴롭히기만 한다)




앞서의 통계를 다시 생각해 보면, 한 해 13,000명이 자살을 하는 상황에서 가족과 친구, 동료 등을 포함하는 자살 사별자들은 그 몇 배가 매년 생겨날 것이다. 대충 10만 명으로만 잡아도, 10년이면 100만 명의 사별자들이 생겨난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위한 충분한 배려와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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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확고하게,

이의 없이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충실하려는 그 마음 때문에

그보다 권위가 약해 보이는 동료나 친구들의 충고를

멸시하거나 거부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성경과 복음의 권위를 높이는 데 전념하는 것과

성경 본문을 해석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 누구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 유진 피터슨, 『사랑하는 친구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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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는 축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받자

슬픔은 슬픔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하자


- 정다연,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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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인역 입문 - 칠십인역의 정의, 역사적 배경, 기원, 번역 과정, 가치, 권위
그레고리 R. 래니어.윌리엄 A. 로스 지음, 이민희 옮김 / 북오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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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며, 제목이며 깔끔하다.(다만 앞뒤로 내지 한 장씩은 넣어주지 그러셨어요)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약자로 LXX라고 표기하는 칠십인역에 관해 들어봤을 것이다. BC 2~3세기 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 중 한 명이 이집트에 세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초청으로 온 72명의 유대 장로들이 72일 만에 히브리어로 된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해 완성했다는 전설과 함께 전해져 온 고대 그리스어 구약 번역본이 바로 칠십인역이다.


이 책은 이 칠십인역에 대한 좀 더 학술적인 연구를 다룬다. 칠십인역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1부와 그것이 갖는 중요성을 설명하는 2부로 나누어져 있고, 다시 1부는 번역의 역사와 그 작업의 특징들을, 2부는 칠십인역을 통해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갖는 권위에 관한 문제를 간략히 다룬다. 전반적으로 이 책에 관한 학문적 개요를 잘 정리해 놓았다.





간만에 사본학에 대한 다양한 지적 도전을 맛보게 하는 책이었다. 사실 사본학이란 뭔가 만져질 듯하면서도, 가까이 가면 잘 보이지 않는 무지개 같은 느낌을 주는 분야다. 물론 대부분의 인문학 작업들이 그런 면이 있긴 하지만, 이 분야는 수많은 가정들과 추측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가 구약이라고 알고 있는 책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본들만 남아있을 뿐인데, 그 중에서도 약자로 MT라고 하는 “맛소라 사본”이 가장 중요한 버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본은 특정한 가문에 의해 보존되어 정리된 구약 사본인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 AD 9세기 경 편집된 판본이다.


그런데 칠십인역은 맛소라 사본보다 천 년은 더 이전에 번역된 버전이다. 어쩌면 칠십인역의 번역자들은 마소라 사본의 필사자들이 보지 못했던, 보다 고대의 사본들을 보고 작업을 진행했을 수도 있다. 이런 차원에서 칠십인역은 구약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라는 지적은 흥미로웠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인용한 구약이 상당부분 바로 이 칠십인역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오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당연히 신약을 연구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이 고대 그리스어 구약번역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칠십인역의 원래 사본이 한 권의 책으로 깔끔하게 장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히브리어 사본에도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듯, 이 그리스어 번역본 역시 다양한 버전이 존재한다. 사본학에서 엄밀한 정확성을 추구하기가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중에서 어떤 버전을 ‘칠십인역’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저자들 역시 이 명칭을 좀 더 폭 넓게 사용하려 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 칠십인역에 얼마만큼의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에 관해 논의하는 부분이다. 저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크게 규범적 권위, 파생적 권위, 해석적 권위로 구분한 뒤, 칠십인역을 구약에 대한 규범적 권위의 위치까지 올려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정경적인 위치로까지 둘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디까지나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본문이고, 번역은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KJV만이 영감된 ‘번역’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이들은 화 있을 진저 ㅋ). 물론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칠십인역은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히브리어 사본보다 훨씬 이전에 나온 결과물이기에, 히브리어 사본의 좀 더 온전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대신 저자들은 이 칠십인역에 파생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졌고, 신약에 인용된 칠십인역의 많은 구절들은 그 자체가 칠십인역의 영감을 증명하지는 않으나, 거기에 담긴 내용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칠십인역은 해석적 권위도 갖는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구약과 신약을 이해하는 데 이 책은 상당한 도움을 준다.


전반적으로 이 주제에 대한 간략한 해설과 방향을 잘 잡아주는 책이다. 물론 내용이 상당히 전문적이긴 하지만,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기도 하고,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신학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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