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며 다스리는 사람
홍성건 지음 / 예수전도단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기독교 세계관의 주요 내용을 바탕으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그 목적과 의미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그것을 위해 훈련받아야 할 내용들에 관해 말한다.

 

 

2. 감상평 。。。。。。。  

 

     집 책장에 동생이 사다가 꽂아둔 책을 우연히 꺼내 보게 되었다. 딱히 사전 정보 없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금방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을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란 걸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쪽에 워낙에 관심이 많은 터라 금새 빠져들었고, 두 시간 여 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사실 기독교 세계관 논의에 있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주제에 관한 설명 부분에서 독특함을 드러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특히 세계관을 다룬 책을 몇 권 읽은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 면이 있어서, 단지 기독교 세계관만을 다뤘더라면 그냥 이 주제를 쉽게 설명해 놓은 책 정도라는 인상을 남겼겠지만, 이 책의 장점은 2부에 있었다. 오랫동안 예수전도단이라는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또 훈련사역을 해왔던 저자였기 때문인지, 기독교 세계관 논의를 통해 얻어낸 결론 - 인생의 목적과 의미 -을 위한 훈련의 내용과 과정을 설계하고 설명하는 부분은 명확하고 힘이 있다. 세계관에 대한 이론적 논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실천임을 생각할 때 의미 있는 부분이다.

 

     몇몇 부분에서 저자와 생각을 다르게 하는 점들이 있긴 하지만 - 예를 들면 오늘날의 ‘바벨론’을 선교가 어려운 부분으로 단순하게 치환하거나(10),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사망을 가져오는 나무’로 설명하는 부분(195) 등 -, 전체적으로 쉽고 명확한 내용이 마음에 든다. 청년들에게 추천해 줄 만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 - 독일 대통령은 왜 지금 자유를 말하는가
요아힘 가우크 지음, 권세훈 옮김 / 부엔리브로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1. 요약 。。。。。。。

 

     통일 이전의 동독 출신의 목사이자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저자는 2012년 제11대 독일 대통령으로 선출되기까지 한 인물이다. 이 책은 그가 대통령이 당선된 뒤 했던 한 연설을 얇은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사회가 반드시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인 자유와 책임, 관용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2. 감상평 。。。。。。。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을 반복해서 읽었다. 자유와 책임, 관용이라는 가치가 왜 오늘날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들을 추구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간단한 연설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아주 새롭거나 독특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웠던 부분은 현대 사회에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연설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측면이었다.


    이 연설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윤리적이고, 실용적이기보다는 가치 중심적이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직 정파와 소속정당의 이익을 위해 입만 열면 헛소리에, 거짓말에, 심지어 자기가 한 말도 금방 뒤집어버리는 우리나라의 정부요인들과 국회의원들과는 사뭇 비교가 되어 좀 부끄럽다.

 

 

     대부분의 권력을 총리가 가지고 있는 독일에서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갖는 의미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좀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인물을 여야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의 정당이 지지했다는 건 참 멋진 일 같다. 책 추천사에 실린 이어령 교수의 상상처럼, 우리나라에도 북한 출신의 활동가가 정계에 진출해 나중에 대통령 후보가 나와서 자유와 책임, 관용이라는 가치를 연설할 수 있을까. 빨갱이 운운하며 자기 잇속을 채우려는 심보를 국가를 위한 것인 양 위장하는 자칭 애국자들에 의해 비난과 매도를 당하다 사그라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것 같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언젠가는 변화될 수 있을까.

 

     물론 우리나라에도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진보나 보수 정치인들이 있을게다. 인간사라는 게 늘 정상적인 사람보다는 비정상적인 쪽이 더 눈에 띄고, 나서고, 설치기 마련이라 잘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믿고 싶다. 그런 정상적인 정치인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진짜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가치 중심의 정치가 이 땅에서도 이뤄졌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당연히 이런 날은 자연스럽게, 알아서 오지는 않는다. 시민들 스스로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그 핵심 가치를 몸에 익히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려는 훈련이 충분히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 날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이 작은 책은 꽤 괜찮은 시작이 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줄거리 。。。。。。。   

 

    잇따라 몇 년째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울진리로 전국의 유명한 점쟁이들이 다 모여 제사를 지낸다. 사실은 이 지역을 개발하려는 업자가 돈을 주고 부른 건데, 제사는 엄청난 악한 힘에 의해 풍비박산이 나고 점쟁이들 대부분은 돌아가고 만다. 문제를 해결하면 1억을 주겠다는 제안에 혹한 몇몇은 남아 일을 처리하기로 하고, 대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다 잠시 피해있으면서 취재하기로 한 기자 찬영도 그들과 함께 행동한다. 과연 그들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2. 감상평 。。。。。。。   

 

     코미디 영화라고 해서 특별히 평가를 낮게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작품성이라는 건 장르에 따라서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이야기의 서사구조가 탄탄하고, 인물들의 특징이 살아 있고, 그리고자 했던 것을 제대로 영상으로 담아 낼 수 있다면 괜찮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이 영화는 이 중 어느 것도 딱히 제대로 보여준 것 같지 않다.

 

     시종일관 익히 잘 알고 있는 김수로의 호들갑만 두드러졌고(나쁜 의미는 아니다),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그냥 같이 다니면서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이제훈과 강예원은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역할이었지만, 이렇게 산만한 영화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만큼 깊은 연기를 보이진 못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구조가 좀 허술해서 말이지.

 

 

 

     촬영하면서 고생은 많이 했겠다 싶은 장면들은 제법 보이지만(이리저리 구르고 날아가고, 찬바람 맞으며 물속에도 들어가고), 몸이 고생한 만큼 제대로 작품으로 나온 것 같진 않다. 배 위에서 악령에 빙의된 어설픈 킬러가(이 사람의 존재는 그야말로 최악의 가벼운 인물설정을 보여준다. 도대체 뭐냐 싶은) 밧줄을 스스로 끊어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사람을 묶어놓았다고 하기엔 밧줄에 여전히 풀이 잔뜩 먹여 있는 모습이었던 데다가 너무 허술하게 풀려서 아예 묶여있지도 않았던 게 뻔히 보인다. 힘을 주는 것에 맞춰서 우두둑 하며 밧줄의 올이 하나씩 나가는 긴장감을 부여하는 건 아무도 생각을 못했던 건가?

 

     제작자의 감이 떨어졌다 싶은 영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리석은 자에게 권력을 주지 마라 - 답답한 현실을 바꿀 분명한 해답
미하엘 슈미트-살로몬 지음, 김현정 옮김 / 고즈윈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저자는 현대사회를 어리석음이 지배하는 사회로 진단하고, 정치, 종교, 경제 분야에서 어리석음의 예들을 고발한다. 결론부인 5장과 6장으로 넘어가면서 저자는 다시 종교를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아 독설을 날리면서 오로지 비판적인 이성에 근거한 철저한 교육이야말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칠 수 있는 '로열젤리'라며 추켜세운다.

 

 

 

2. 감상평 。。。。。。。     

 

     일단 개인적으로 욕설과 노골적인 조롱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의 말은 잘 안 믿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얼마든지 비판이나 때로 비난도 가능하지만, 최소한 상대를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인정하며 인격은 존중해야지, 이 책의 저자와 같이 상대를 벌레 취급해서는 건전한 비판도,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해결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간 역사는 대단히 암울하다. 저자는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을 어리석음이 지배하는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역사의 어두운 면에만 집중하고 파고들면 그렇게 볼 수 있고, 또 세상을 그렇게 보고 선언하는 건 저자의 마음이지만, 딱히 정신건강에는 이롭지 않을 듯싶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부모와 부모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애쓰는 자녀들, 제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스승과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수많은 사람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고, 어쩌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유지되는 게 아닐까? 더구나 저자가 태양의 몇 십 배니, 몇 백 배니 더 큰 항성들에 비해 인간이 살고 있는 이곳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짐짓 심드렁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어리석고 광기에 물든’ 인간이 고안하고 발전시킨 기술 덕택인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무의미성’ 운운하는 건 그냥 겉멋에 물든 말장난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런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태도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철저하고 집중력 있는 분석으로 이어지기라도 했다면 그래도 만회의 여지가 있다고 보겠지만, 딱히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비난을 제외하면 책은 훨씬 더 얇아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얇은 책에 실린 저자의 고발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다른 책이나 강연, 매체들을 통해서 더 정확하게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내용일 뿐. 더구나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긴 한데 딱히 정확하지 않은 내용을 (특별히 종교 분야에 대한 비난에는 이런 것들이 많이 보인다) 세워두고 공격하는 건, 허수아비 때리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

 

     교육 분야에 관한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끔찍하기까지 하다. 교육의 과정을 좀 더 다이내믹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는 찬성하지만,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교육만을 하면 현명한 인간이 탄생되고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전형적인 계몽주의 시대의 주장은, 20세기 초반 유럽 전체에서 가장 그런 교육 이념에 부합했던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인지(바로 자기 아버지들과 할아버지들이 일으키고 동참했던 일인데 벌써 잊은 건가).

 

 

     가슴을 제거당한 세대는 다른 이에게 공감할 수 없고, 그 결과는 극단적인 분열과 다툼뿐이다. 문제가 있으면 없애버리면 그만이라는 이 책의 해결책은, 한참 독설을 퍼부은 저자 마음은 시원하게 해줬을지 모르지만, 딱히 와 닿지도, 유효할 것 같지도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경을 적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읽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는 동시에 그것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서

혹은 성경을 읽고 난 결과로서 그것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동시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삶과 독서가 상호적이 되어야 하고, 몸짓과 말

그리고 그것의 상호 작용이 독서를 삶에 동화되게 하고

삶을 독서에 동화되게 해야 한다.

 

- 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