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투자 은행(이라고 쓰고 ‘투기자본’이라고 읽는다)에서 일하던 에릭은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 통보를 받는다. 짐을 싸 나가면서 아무래도 자신이 하던 일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직감한 그는 부하직원인 피터에게 USB 메모리를 주며 살펴보라고 경고한다. 그날 밤 피터는 넘겨받은 자료를 분석하던 중 자신의 회사에서 팔고 있는 파생상품에 심각한 위험이 있음을 깨닫고 이를 상사에게 보고하지만, 밤샘 논의 끝에 회사의 최고위층에서 내린 결정은 다른 이들이 알기 전에 가지고 있는 상품을 모두 팔아버리라는 것...
2. 감상평 。。。。。。。
몇 년 전에 있었던 미국발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회사 고위층의 부도덕한 판단과 결정들, 그리고 그 안에서 양심의 갈등을 느끼는 중간 간부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저 눈앞의 보수만 보고 시키는 일을 다 하던 하급 직원들의 이야기가 그저 몇 개의 사무실을 배경으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매매라는 건 반드시 존재하는 걸 사고팔아야 한다. 무슨 선문답 같지만, 세상 돌아가는 게 워낙에 상식적이지 않다보니 이런 상식적인 문답을 종종 강조해야 할 때가 있다. 쌀이면 쌀, 사과면 사과를 파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들은 생산량의 한계가 있기에 당연히 거기에서 벌 수 있는 돈의 양도 제한적이다. 사람들은 현물 대신 ‘가치’를 거래한다는 개념을 발명해냈고, 그게 바로 주식시장이나 선물거래시장이다. 꽤나 오래된 것들이라 지금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지고 있긴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투기자본과 결합하는 순간 기존의 방향과 목적, 그리고 결과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리곤 한다.
게다가 여기에 최근 미국과 유럽의 투기기업들(일단 겉으로는 ‘투자은행’이라는 아주 번듯한 이름을 달고들 있긴 하다)은 새로운 상품을 창조해낸다. 바로 파생상품이라는 것.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문서화 한 채권과 관련된 것인데, 파생상품은 모든 채권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위험’(쉽게 말해 꿔준 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을 ‘첨단금융기법’을 동원해 쪼개고 나누고 이어 붙여서 ‘고수익 저위험(상대적으로 처음에 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의 채권 상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들이 만든 가상의 상품을 신나게 팔아먹기 시작한 것.
하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 가상의 자원은 어디까지나 실제의 자원에 기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투기자본들은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 거품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거품은 진짜 자원의 가치의 수십 배로 커져버렸다. 결국 실제 물건에서 일어난 작은 충격으로도 거품은 왕창 터져버렸고, 그 결과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와 중산층의 삶을 어렵게 만든 금융위기다.
여기까진 충분히 예상도, 그리고 (사후에서지만) 이해도 가능한 것들. 하지만 정말로 놀랄 일들은 그 뒤에 나타났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핵심 결정권자들, 그리고 물주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고 도리어 이후 발생한 금융위기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는 점 말이다. 투입된 정부의 공적자금은 그들의 막대한 보너스를 챙겨주는 데 날려버렸고, 고통은 졸지에 직장을 잃어버린 수 백 만의 사람들 몫이었다.(사실 가장 무서운 건, 지난 정부와 이번 정부를 막론하고 바로 이런 ‘선진금융기법’을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뭐가 됐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그들의 도덕적 해이를 정면으로 지적한다. 회사의 최고 결정권자인 존 털트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동요 없이 진실을 감추고 문제의 상품들을 하루 내에 다 팔아버릴 것을 지시해 버리고 자신은 편안하게 아침 식사를 한다. 또 엄청난 보너스에 혹한 말단 직원들은 온갖 인맥을 동원해 그 폭탄을 거래처에 팔아넘기는 데 열중하니 딱히 다른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잠시 양심적 반발을 시도했던 샘 마저도 이 초유의 사태 앞에서 그저 자신의 개가 죽은 것만을 슬퍼할 뿐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돈을 신으로 섬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들이 신봉하는 교리에 따라 도덕을 버린 지 오래다.
넥타이 매고 비싼 양복을 입고 있다고 해서 늘 고상한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중요한 교훈. 사실 이건 그냥 깡패, 깍두기 놈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인데 말이다. 조금 밋밋한 감이 있긴 해도, 생각하면서 볼만 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