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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1. 요약 。。。。。。。
‘계획적 진부화’란 어떤 물건을 처음 생산할 때부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도록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 이를 테면 18,000장을 인쇄하면 작동을 멈추도록 만드는 칩을 삽입한 프린터 같은 것이 전형적인 예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명백히 사기와도 같은 이런 관행은, 결국 소비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물건이 망가지면 어쩔 수 없이 새로 마련할 수밖에 없으니까.
대량의 잉여생산을 피할 수 없었던 자본주의적 경제에서 이런 ‘계획적 진부화’는 거의 필수적인 일이었기에, 결국 경제를 위한 것이라는 식의 도덕적 정당성마저 획득한다. 이른바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업들은 제품의 품질보증기간을 제품을 사용할 수 있는 한계 기한으로 만들어 버렸고, ‘유행에 뒤처짐’이라는 심리적 조작도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출시되는 새로운 물건들은, 이전 것에 비해 별로 나아진 것이 없지만 그렇게 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뭐라고 부르던, 결국 계획적 진부화는 일종의 사기, 속임수다. 이는 일차적으로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기 시작했고, 그것이 일으킨 생태적 위기는 점점 부각되고 있다. 저자는 결국 문제의 원인이 ‘끝없는 성장’을 필요로 하는 현대의 경제 이데올로기(자본주의)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탈성장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성과 의지를 모두 고려한 일정에 따라, 가능하면 편안함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재화의 지속성, 수리, 에코 디자인 체계를 조직해야 한다(106)는 것.
2. 감상평 。。。。。。。
매년 새로운 휴대폰이 쏟아져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쪽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서 뭐가 새로워진 건지 잘 구분은 되지 않는다. 물론 광고를 열심히 하니 차이점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문제는 그 ‘차이’가 새로운 휴대폰을 구입해야 할 만큼 대단한 것인가 하는 부분이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점. 휴대폰 화면이 좀 더 커지고, 방수 기능이 되고, 카메라 화소가 좀 더 높아지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개인적으로 지금은 2014년 출시된 모델을 1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새로 나온 햄버거 하나를 먹겠다고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새로 나온 아이폰을 구입하겠다고 텐트까지 치고 밤을 새우는 모습은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 요새는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얼리 어댑터’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붙어준다. 문득 이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별명은 누가 지어준 걸까? 어쩌면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 애쓰고 있는 기업들이 만들어낸 이름은 아닐까?
제품의 결함을 발견하는 베타 테스트는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서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얼리 어댑터’라는 사람들은 자기 돈을 들여서 기꺼이 이 일을 해 준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두고 뭐라고 할 건 없지만, 이 또한 ‘계획적 진부화’의 한 예가 아닐까 싶다.
저자가 책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결국 이런 식의 소비 행태는 모두가 함께 사용해야 하는 한정된 자원을 맹렬히 낭비하는 관행이다. 겨우 몇 달, 혹은 (심지어) 몇 주의 즐거움을 위해 새로운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책은 ‘계획적 진부화’라는 개념에 대해 잘 소개했고, 그 기원과 의의도 충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진 문제를 ‘도덕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인상적이었다. 흔히 이런 이야기에서 ‘도덕’ 같은 단어는 잘 나오지 않으니까. 이런 전략을 사용하는 이들은 물론, 그에 따라 열심히 낭비를 지속하는 쪽도 문제가 있긴 마찬가지다.
다만 그 한계와 대안을 제시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짧고 약하다. 책 자체가 ‘낭비 사회를 넘어서’라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 낭비 사회를 넘어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 그것을 넘어서면 어떤 세상이 있는지에 대한 소개는 부족한 느낌.
하지만 대안 제시보다는 현상 분석과 보고 쪽에 초점을 맞춘다면 괜찮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