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회식 후 새벽의 귀가길, 새로 장만한 집에 들어온 상훈(이성민)은 여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가운데서 살인을 저지르는 놈의 얼굴을 보게 된다. 본능적으로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놈이 자신의 집이 몇 층인지를 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멈칫한다. 상훈에게는 지켜야 할 아내와 아이가 있었으니까.
자신이 신고를 하지 않으면 해코지를 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데도 잠잠히 있었던 상훈. 그러나 놈은 조금씩 상훈의 주변을 조여 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위기감은 점점 더해간다.
2. 감상평 。。。。。。。
한 때 아파트 단지에 ‘무슨무슨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전국적인 동향까지는 모르겠지만, 분당 쪽엔 그런 아파트 단지가 제법 많았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든 탑 속에서 살면서도 ‘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안정감, 연대감 같은 걸 느끼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계획이 얼마나 목적을 달성했는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얘기하면 일단 철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면 옆집에서 무슨 일이 있든 거의 신경 쓰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 않던가.
영화의 포스터는 그런 아파트의 불안감, 고립감을 잘 보여준다. 좁은 아파트 복도 끝 현관을 붙들고 반대쪽을 바라보는 이성민의 모습. 분명 카메라와 이성민 사이에는 많은 문들이 있고, 그 문 안쪽에는 또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겠지만, 그들은 아예 카메라 앵글에서 잘려 있다. 아무도 나와 보지 않았고, 그런 ‘이웃’은 옆에 있긴 하지만 실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거대한 단지 가운데 오직 나만 있다는 자각, 이건 금세 일종의 공황을 일으킨다.
감독은 굉장히 많은 부분에서 그런 의도적인 고독, 외로움, 소외감 같은 정서를 반영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데도 누구도 나와 보지 않는 상황, 나아가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을 방해하면서 그냥 어서 사건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라는 부녀회장과 그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표하는 주민들, 심지어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한 전단을 붙이는 남편을 비난하며 추방하려고 하기까지...
흥미로운 건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던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대표적인 이익은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고) 주인공을 비롯한 주민들은 내 가족, 내 돈을 지키기 위해 침묵의 카르텔을 구축했다. 아파트를 마을로 만들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그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이익을 위해 모여 있는 ‘무리’나 ‘떼’가 되어버렸다. 언제라도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일단 흩어져버리면 다음은 각개격파가 남을 뿐.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위해’ 했던 침묵과 외면이 결과적으로 자신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걸 깨닫는 지점에서 주인공의 성격이 비로소 변한다. 주민들이 마치 위험에 처한 타조가 땅 속에 머리를 쳐 박고 적이 자신을 보지 못할 거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사건에 눈을 감고 쉬쉬하는 동안 살인범은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었다. 당연하다. 눈을 감고 있는 상대를 다루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고, (심지어 어린 아이가) 그냥 소리쳤을 뿐인데도 놈은 도망가 버린다.
공동체와 연대는 흩어진 개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이기심에 기초한 사회계약이 아니라, 이타심에 기초한 사회 연대가 공동체를 안정되게 만들 것이다. 이기심은 세우기보다는 파괴하고 흩을 뿐이다. 자유방임의 가치를 추종한 체제는 진작 무너져버렸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연대의 가치를 도입하지 않고 유지되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즈음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종주의(혹은 민족주의), 보호(무역)주의, 또 다양한 종류의 혐오는 우리가 사는 이곳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도 전 지구적으로. 우리는 눈을 뜨고 함께 나서게 될까, 아니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깨져 나가게 될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좀 부정적인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