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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여성으로 살아 본 1년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임혜진 옮김 / 비아토르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기독교인들은 자주 ‘성경적’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성경적’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불분명하고 쉽게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성경과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놓여 있는 거대한 틈(시간적,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인 의미에서)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성경적’일까. 우선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내용을 ‘성경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우리가 ‘성경적’으로 살아야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 중 상당수는 ‘성’ 안에 살지 않고, 농사를 짓지도 않으며, 양을 치지도 않는다. 이와 관련된 많은 규정들은 우리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고, 문자적 준수도 불가능하다.
안식일을 문자적으로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어느 지역을 기준으로 한 시간을 따라야 할까. 전통적인 규정에 따르면 안식일은 금요일 해가 진 후부터 토요일 해가 지기까지다. 그런데 지구는 둥글고, 이 명령이 처음 적용되었던 지역은 이미 안식일이 되었지만, 다른 지역은 여전히 금요일인 경우도 있다. 우주적 차원에서 누구는 안식일 안에 있고, 누구는 밖에 있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다. 안식일의 첫 준수자들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아니 예상치 못했겠지만 말이다.
결국 우리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어쩔 수 없이 취사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선택의 과정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학이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신학은 잠재적인 결론이며,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다. 당연히 이에 근거한 ‘성경적’ 규정들의 의미, 혹은 준수의 범위 등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는 어린 아이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사람들이 말하는 ‘성경적 여성상’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불완전한 조각들로 이루어져있는지, 자신이 직접 최대한 문자적으로 그 규정들을 준수함으로써 반어적 증명을 시도한다. 한 해 동안 매달 특정한 덕목을 주제로 삼고, 그에 따른 실천사항들을 성경에서 최대한 찾아 문자적 준수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예컨대 실험을 시작한 10월은 ‘온유’라는 덕목이 주제였고, 이를 위해 온유하고 정숙한 심성을 기르기 위해 그렇지 않은 일을 할 때마다 동전을 저금하는 통(맹세 항아리)을 만든다거나, 관상기도를 훈련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할 경우 지붕 위에 올라가 속죄하기로 했다. 순종이 키워드인 12월에는 남편을 ‘주인님’이라고 부르고(벧전 3:1-6), 일부다처주의자들을 인터뷰하며(창 30, 출 21:10), 여성 혐오로 희생된 성경 속 여성들을 기리는 행사를 열었다.(삿 11:37-40)
실험 기간 내내 저자를 쩔쩔매게 했던 것은 요리나 손수 옷을 지어 입는 일 같은 것들이었다. 특히 잠언 31장에 ‘현숙한 여인’이 해야 할 일의 긴 리스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기가 질리게 만들었고.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도전이, 또 때로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면을 조명하는 내용 등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이 다양한 도전기를 읽는 것 자체도 재미있지만, 소위 ‘성경적 여성’으로 살라며 (선별을 거친) 성경구절을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무리한 일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책의 결론부에서 저자는 ‘성경적 여성관’이란 없다고 선언한다. 특히 성경은 ‘여성’(혹은 남성)에게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식의 임무 리스트를 제공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과 상호작용하시는, 복잡하고 계속 전개되어 가는 이야기’(398)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성경을 들고 읽느냐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할 일의 목록을 찾으려고 한다면 (성경이 실제 그런 책인가와는 상관없이) 그런 것들만 찾아내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노예를 부리는 일의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아내지 않았던가.
그동안의 ‘성경적 여성관’ 논의에서, 사람들은 따라야 할 규정을 찾아내려는 ‘목적’을 가지고 그 책을 폈다. 만약 우리가 그 안에서 사랑과 인정을 발견하려고 했다면 지금과는 또 많이 다른 그림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이 말이 사실 성경은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뽑아낼 수 있는 일종의 제비뽑기 책이라는 말이 아니다. 사실 후자 쪽이 예수께서 성경을 읽으시는 기본적인 관점에 좀 더 가까웠으니, 어쩌면 이쪽이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바라보는 좀 더 바람직한 관점일지도 모른다.
여성에 관한 논의로 시작하기는 했지만, 성경 자체를 읽는 좀 더 넓은 관점을 열어주는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