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1. 줄거리 。。。。。。。

 

      어느 날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차 한 대가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그냥 멈춰서 있다.뒤에 있는 차는 빨리 출발하라며 경적을 울려대지만, 그 차는 좀처럼 출발을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차 밖으로 나와 가장 앞에 있는 차에 따지려고 갔을 때, 가장 앞 차의 운전자는 이렇게 외친다. “눈이 안 보여.”

 

     이 난감한 외침으로 책은 시작한다. 그냥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곳까지 멀쩡히 차를 몰고 왔는데, 말 그대로 갑자기다. 온 세상이 그저 하얗게만 보인다는 것. 다행히 옆에 있던 사람이 차를 대신 운전해 차 주인은 집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당장 보이지 않는 눈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다음 날 안과를 찾아가 봤지만 의사도 눈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 뿐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차를 대신 운전해 차주인을 집으로 데려다 주고 몰래 차를 훔쳐 도망갔던 사람도 곧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안과의 의사도, 안과에서 만난 다른 환자들도 차례로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 정부는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닫고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을 집단으로 수용할 장소를 찾는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한 정신병원. 치료법을 찾아주겠다는 말은 했지만 사실상 정부는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군인들을 동원해 병원을 봉쇄하고 끼니를 제공할 뿐. 그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고, 그에 따라 수용되는 인원도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더 이상 식사가 제공되지 않게 되고, 병원을 감시하던 군인들도 모두 사라져버린다.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된 것이다.

 

2. 감상평 。。。。。。。 

 

     줄거리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한 도시 안의 모든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사실 일찍부터 사람들은 이와 비슷한 상상을 해 보기를 좋아했었다. 국가의 기원에 관한 정치학자들의 논의(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니, 사회 계약설이니 하는 것들이 그 예이다)에서, 이미 사람들은 인류가 현재 가지고 있는 문명들을 만들어 내기 이전의 소위 ‘원시 사회’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라는 질문에 서로 다른 답을 하며 자신들의 논지를 전개해 왔다. 또, 인간이 최초에는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갓난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기가 스스로 말을 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실험도 하지 않았다던가.

     길게 보면 이 책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저자의 독특성은 굳이 현재 인간이 가진 모든 문명적 도구들을 제거해야하는 어려운 시도를 하는 대신, 그저 모든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간단한 작업으로 그 가정을 재현했다는 데 있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명품 나부랭이를 몸에 걸칠 필요도 없고, 대형차와 넓은 아파트도 그 본래의 중요한 목적 - ‘나 이런 사람이요’하면서 뻐기기 위한 -을 상실해 버린다. 대신 이제 사람들에게는 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는, 매우 기초적인 것들만이 중요해진다. 놀랍지 않은가, 단 하나만 제거해버렸을 뿐인데 말이다. 저자의 창의력 하나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럼 저자는 왜 이런 시도들을 했을까? 아마도 저자는 현재 인간들이 걸치고 있는 모든 종류의 허례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때, 인간 본성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때문에 저자는 모두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우리 모두의 본성을 발가벗기고, 바로 거기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다.

     모두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사람들은 내키는 대로 행동을 한다. 아무데나 배설을 하고, 더러운 오물 위에서 잠을 자고, 온통 먹는 문제로만 고민이 집중된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 와중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종의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모두가 눈이 멀게 되자 사람들은 아무 빈집에라도 들어가 살 수 있고, 뒤에 온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작 자신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때만이 가능한 규칙이라는 점에서 제한점을 갖는다. 사람들은 먹을 것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속이기를 주저하지 않고, 음식을 향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양보 없이 달려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깔려 죽기도 한다. 부패하고 무능한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모습은 책 속에도 그대로 등장한다. 또, 사람들은 자기 것을 차지하기 위해 무한히 서로 다투고 투쟁한다. 뿐만 아니라 책 속에는 단 한 사람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데, 이는 현대인의 익명성과 무관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모든 것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여러분의 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공동체로 보고자 했던 한 그룹의 모습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그들 모두가 개인으로 있을 때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그래서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사는 사람들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이 멀고 나서야 비로소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서로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자 좀 더 먼 전망을 보게 되었고,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아마도 이 책의 주제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동료 인간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사랑, 연대의식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힘 가운데 하나이다’라는.

     오랜만에 멋진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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