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국가의 괴물화를 막아야 할 법률가들이
오히려 괴물이 된 국가 권력의 손발이 되어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제 정신을 되찾은 후에도,
괴물의 수족이 되었던 법률가들이
우리나라처럼 떳떳하게 잘살고 있는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1. 요약 。。。。。。。
스스로를 이류 법학자, 이류 법조인이라고 소개하는 한 소장 법률가가 본 한국 사회의 단면이 기록된 책이다. 자신이 어떻게 법조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전적인 기록인 서장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법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저자는 법의 특성에 대해 그것이 절대로 불변하는 객관적인 진리나 사실이라기보다는 ‘리걸 마인드’로 상징되는, 매우 주관적인 기준임을 지적한다.(1장) 때문에 누가 법을 다루느냐, 어떻게 다루느냐가 매우 중요하며, 특히 법은 국가라는 괴물을 통제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작용할 때 그 원래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것이다.(2장)
3장부터 5장까지는 이런 원칙에 비추어 오늘날 우리나라 법조계의 현실은 어떤지 집어가는 부분이다. ‘법률가’라는 ‘특별한 계급’이 탄생되기까지의 과정을 냉정하게 진단한 저자는(3장), 출세와 성공만을 가리키는 이러한 방향에서 벗어나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나타나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법률적 제반 여건들에 대해 집어간다.(4장) 5장에서는 대한민국에서 검찰이라는 신분이 갖는 여러 특별한 권리와 권력들에 대해 지적하며, 적절한 개선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6-8장은 헌법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권리인 사상의 자유, 묵비권, 평등권 등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런 권리들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로 법조계나 사법당국의 편의주의식 일처리 관행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헌법정신이 구현되는 법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부분부터 시급히 시정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2. 감상평 。。。。。。。
여전히 ‘보통 사람들’에게는 높고 어려운 대상인 법과 법원, 검찰, 그리고 여기에서 돈을 버는 법률가들에 관해 저자는 쉽게 설명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가장 흥미로운 소식은, 소위 법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그 모든 법의 상위에 있는 헌법의 내용은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무시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헌법 정신의 실종, 저자가 진단하는 한국 사회의 병명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법 중 어느 것 하나 사연이 없을까 만은, 역시 사연이 많기로는 헌법이 단연 앞설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자유나 평등을 말하지만, 그 당연한 가치들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시민들이 권력자들을 상대로 얻어낸 권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자신들만의 성을 쌓은 새로운 권력자들에게 빼앗겨버렸다. 교묘하게 시민들의 권리를 규정한 헌법 조항들을 무시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식으로 해석하면서.
책이 출간된 지 4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권력자들의 성은 무너지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소위 ‘정체성이 확립된’ 정권은 이전보다 더욱 높고 두꺼운 벽을 쌓아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 시민들은 이제 함께 모여(집회의 자유) 이야기를 하는(언론의 자유) 것도,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는 것(결사의 자유)도, 심지어 특정한 책을 읽거나(출판의 자유), 위에서 내려주는 대로 생각하지 않을 자유까지도(사상의 자유) 제한을 받고 있거나 곧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짓밟으면서도 자신들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수호자인 것처럼 치장한다는(어쩌면 정말로 그런 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점이다.
저자는 법률가 자신들이 특권의식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고,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진단하고 있지만, 난 여기에 더 이상 정의나 공정함 같은 가치보다는 당장의 이익만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물질주의적 세계관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문제는 한두 명, 혹은 한 직업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의식개선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혹은 세계관의 전환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기독교 세계관은 좋은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에 입각해 직업을 하나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맡은 일을 통해 다른 사람과 하나님을 섬기는 청지기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앞서 말한 물질주의적 세계관의 일반화로 종교나 도덕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크게 저하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물질적 이익과는 상관없는 동기로 사람을 움직이도록 하는 데 종교(나는 그 중에서도 기독교의 설명이 탁월하다고 여긴다)를 제쳐두고서는 결코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직접적으로 이런 종교를 의지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조차 ‘인간 이성’이라는 새로운 신을 절대시하는 하나의 종교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사실이니까.
우연찮게 손에 들게 된 책인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흡족함을 주는 책이었다. 법학 전공이 아니라도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