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책 전체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짜인 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가져온 짧은 구절들을 모아놓은 식이라, 단편적인 생각밖에 읽을 수가 없다. 또, 이 문장이 반어법인지, 유머인지, 아니면 그저 좀 극단적인 표현인지 파악하려면 눈을 부릅뜨고 글을 읽어야 한다. 콘텍스트 없는 콘텐츠만큼 읽기 어려운 것도 없는데, 물론 편집자가 잘 뽑아 정리해놓긴 했지만 어려운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책의 성격이 독특하다. 확실히 기본적으로 철학책이지만, 신학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몬 베유의 사유에는 기독교 신학의 요소와 철학이 굳이 분리되지 않았던 것 같다. 중세의 학자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유의 신학적 사유나 통찰에 그리 매력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신비주의적 글들에 내가 별 관심이 없기도 하고, (책의 주제는 정반대의 주장을 담고 있으면서도) 글 전반에서 여전히 신비를 합리적으로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근대성의 얄팍한 자국이 느껴지기도 해서다.
조금은 독특한 느낌의 철학책이다. 저자의 기독교 신학의 탁월성 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된 작업인 철학을 해 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