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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살해당했소. 과학적인 진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교회에 의해서 살해되었지.
종교는 항상 과학을 박해했으니까 말이오.”
. 줄거리
세계 최고의 과학 연구 기관인 CERN의 레오나르도 박사(이름도 뭔가 지시하는 걸까. 다 빈치의 이름은 레오나르도다.)는 ‘반물질’이라는 획기적인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반물질’은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과 온전히 반대되는 물리적, 전기적 성질을 띠는 것으로, 그 자체가 매우 불안정해 ‘물질’과 결합할 경우 매우 큰 에너지를 방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레오나르도 박사는 단지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카톨릭 사제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믿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반물질에 관한 연구는 모든 것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건은 그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살인 사건이 나자 CERN의 소장은 로버트 랭던에게 연락을 취한다. ‘다 빈치 코드’의 주인공인 바로 그 인물이다. 왜 살인 사건이 났는데 경찰이 아닌 기호학 교수에게 연락을 했을까? 이는 레오나르도 박사의 가슴에 화인으로 찍혀 있는 어떤 문장 때문이었다.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는 중세에 교회의 핍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과학자 집단이다. 그들은 교회를 파멸시키기로 맹세를 하고, 각종 모임에 깊이 침투해 그 집단들의 힘을 이용해 교회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오래 전의 일. 그런데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일루미나티의 문장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로버트 랭던은 이 점에 흥미를 느끼고 이 일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서, 인근 지역 수 백 m를 단숨에 파괴시킬 수 있는 반물질이 도난을 당하고,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市國)에서는 교황 후보로 알려진 네 명의 추기경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나로 묶는 음모 세력의 존재. 기호학자인 랭던은 바티칸 시에 있는 어려 기호들을 추적해, 한 시간 마다 살해되는 추기경들을 살려내고, 바티칸 시국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반물질을 찾아내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내용이 진행될수록 점점 급박하게 나타나는 반전들. 랭던의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일루미나티는 과연 어떤 단체인가.
. 감상평
‘다 빈치 코드’라는 소설로 한 때 서점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댄 브라운의 다른 작품이다. ‘다 빈치 코드’에서 레오나드로 다빈치를 교회에 대항하는 비밀 조직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을 해 자녀들을 낳았고 그 후손이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댄 브라운은, 이번 책에서는 베르니니라는 중세의 교회 예술가를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일루미나티라는 비밀결사 조직의 조직원으로 만든다.
댄 브라운 작품의 특징은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을 혼합한 팩션(faction)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지 못한 대다수의 독자들로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장소들과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소설이 매우 전문적이며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물론, 이런 기법 자체는 소설가로서 뛰어난 자질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서 사실과는 다른 정보를 사실인 양 믿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며, 그 소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소설 한 권이 뭐가 문제냐’는 말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은 '자신의 소설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문구에 담긴 미묘한 어의를 잡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역시 ‘표면적인 의미’만을 읽어내지 않겠는가? 더구나 앞에 나온 것과 같은 자세한 실제 건축물들과 조각들에 관한 복잡한 역사적 언급까지 나온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왔다면, 저자는 자신의 책의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히 ‘소설인데 어쩔 어떠냐’는 식으로 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는 확인되지 않은 여러 내용들을 사실처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설에는 바티칸이 일루미타니를 미워해서 그들을 샤이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그 것은 이슬람어로 ‘적’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사탄’이라는 말이 왔다고 주장한다.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다. ‘사탄’이라는 말은 이미 기원전 수 백 년 전에 기록된 구약 성경에도 등장한다. 히브리어 ‘싸탄’이 그것이다. 이 말은 다시 기원후 1세기에 기록된 신약 성경에도 그리스어 ‘사타나스’라는 표현으로 다시 등장한다. 근데 이 말이 중세에나 등장하는 일루미나티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라고?
사실 소설 자체는 하나의 탐정소설처럼, 여러 단서들을 토대로 궁극적인 진실에 도달하는 본격추리소설에 가깝다. 사실 ‘다 빈치 코드’가 후반부에 이르면 한 인물의 설명으로 모든 내용을 진행시키는 따분함을 보여주었다면, 그나마 이 소설은 끝까지 그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우려할 만한 부분은, 작가의 종교관이다. ‘다 빈치 코드’에서 교회를 하나의 큰 사기꾼 집단이자, 진실을 감추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했던 저자는, 그 보다 앞서 출판된 이 책에서는 매우 자유주의적인 교회관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교회의 가르침’과 ‘정신적, 도덕적 가치’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소설상의 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교회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런 ‘정신적 가치’를 보존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얼마 전 새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베네딕토 16세가 펴낸 ‘미래의 도전들’에도 등장하는 사상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카톨릭 내에서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고 이미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교리로 확정된 내용들의 조각들이다. 좀 더 멀리 가자면 독일의 철학자 칸트와 그의 후계자들이 수립한 ‘도덕 종교’에까지 그 근원이 올라간다.
언뜻 교회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게 논증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그 이면에는 교회를 뿌리부터 파괴시키는 위험한 사상이다. 소설에도 약간 등장하듯, 이런 사상을 발전시켜 나갈 경우, 결국 인간의 ‘정신적 가지를 보존하기 위해 꼭 교회여야만 할 필요가 있느냐’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교회든, 불교이든, 동양의 명상이듯, 결국 인간의 정신세계 발전에 도움만을 주면 되는 것 아니냐, 결국 모든 종교는 다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소설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분에 분명히 주의를 기울이며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