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는 아니지만 - 구병모 소설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리디에 사둔 책들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도 리디에서 산 거다. 리페프 행사할 때 딸려온 링컨 라임 시리즈. 리페프를 사면 539권 주는 행사였다. 리페프를 사면 니체 전집도 주고 한국 문학 단편도 주고 톨스토이 전집도 줬다. 이런 행사는 이제 안 한다. 그때는 이북 리더기 사는 게 신이 났고 전자책 할인도 많이 해주니까 책도 많이 샀다. 이럴 줄 알고.


그러니까 지금은 도서 정가제 때문에 할인율이 줄었다. 서점사에서 하는 전자책 할인 행사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미리 사두길 잘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면서. 실물 책이 아니니까 부피감도 느끼지 못하고 사댔다. 집에 539권의 책이 들어온다고 해봐라. 쉽게 살 수 없다. 그래서 리페프 행사인 대국민 독서 지원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구매 목록을 보다가 구병모가 있었다. 나는 구병모빠였던 것이다. 잊고 있었는데.


링컨 라임 시리즈는 잠시 멈춰 두고 구병모의 소설집 『고의는 아니지만』을 읽었다. 구병모는 이야기를 잘 만든다. 인물과 배경 설정이 탁월하다. 비유법이 사라진 시대에 살아가는 시인. 어느 날 눈을 뜨니 몸이 땅속에 박힌 사람. 교육관에 있어서는 공평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유치원 교사. 얼굴이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유아교육과 휴학생. 다른 사람의 논문과 리포트를 대신 써 주는 주부.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바늘로 신경을 꿰매는 소년. 자신을 강간한 의붓 오빠를 지켜봐야 하는 소녀.


일곱 편의 소설. 일곱 개의 세계. 그 안에서 구병모가 창조해낸 인물들의 고군분투를 보고 있으면 힘들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소설 바깥의 나에게로 다가온다. 내가 만약에 땅속에 박혀 있으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건 아닌데 고의는 아닌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고 한다면. 절망에 휩싸여 누구라도 느낄 정도로 절망의 냄새를 풍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에로 시작하는 나의 불안을 구병모의 소설에 대입해 본다. 「조장기」의 세계는 끔찍하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보육 도우미로 일하는 '나'. 매번 면접을 보지만 합격 소식은 듣지 못한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는 아이 엄마의 기만으로 간병 일까지 떠맡게 되었다. 절망을 느끼는 자에게 새들이 찾아온다. 산 채로 새에게 뜯겨 죽는 것이다.


「고의는 아니지만」은 선의와 악의가 구분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는다. 내가 행한 선의는 도리에 악의로 누군가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상징. 과연 「어떤 자장가」에서 여자는 아이를 그 밤에 잘 돌본 것일까. 여자의 상상 안에서 그 일은 일어난 것인가. 「마치……같은 이야기」의 결말은 소소한 반전을 가지고 있다. 비유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명령한 시장. 도시를 떠난 시인이 다시 찾아와 술집에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시인이 마주한 진실은 무엇일까.


구병모의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면 『고의는 아니지만』을 추천한다. 대범한 상상력과 현실의 아픔이 녹아 있는 소설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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