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컬렉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1 링컨 라임 시리즈 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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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끌던 일도 해결이 됐겠다. 이제 마음껏 책을 읽어보자. 그동안 안 읽은 건 아니지만 집중이 잘 안됐다. 추천받아 읽는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 찾아보니 국내에는 열두 번째 작품까지 나와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첫 번째 『본 컬렉터』는 페이지 터너로써 완벽한 역할을 해낸다. 주말 내내 읽었다. 책이 너무 재밌어서 다른 예능이 시시할 정도였다. 빨리 할 일하고 『본 컬렉터』 읽어야지 하는 생각.


주인공 링컨 라임은 독특한 추리를 펼친다. 그는 범행 현장에서 감식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대들보가 무너지면서 라임의 경추 4번을 부러뜨렸다. 그는 재활과 수술을 거치면서 살아남았다. 살아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전신마비가 되었고 왼손 약지만 신경이 남아 있다. 침대에 누워서 오직 죽음을 원했다. 그런 그에게 사건이 찾아온다. 공항에서 남녀 승객이 택시를 타고 가다 실종이 되었다.


목격자는 택시에서 승객이 탈출 시도를 했다고 증언한다. 새벽 경찰서로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온다. 제보자는 피해자가 시체였으면 한다고 했다. 순찰 경관 아멜리아 색스는 출동을 받고 사건 현장으로 간다. 그곳에서 손가락에 살점이 깎여 나간 시체를 발견한다. 피해자는 살아 있을 때 흙 속에 파묻혀 죽임을 당했다. 즉각 차량과 기차를 통제한다. 창문으로 매를 관찰하는 일로 하루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로 지루함을 견디는 라임에게 방문객이 찾아온다.


셀리토와 뱅크스. 택시에서 납치된 승객이 시체로 발견되었으며 민간 조사원으로 사건을 의뢰하려고 왔다. 라임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범죄학자였다. 뛰어난 관찰력으로 범죄 현장에서 감식을 진행하며 증거물을 모아 범인을 잡았다. 지금은 사고로 누워만 있지만 책을 쓰고 천재적인 추리력은 녹슬지 않았다. 사건의 개요를 들은 라임은 첫 사건 현장에서 과감하게 현장을 보존하려 했던 아멜리아 색스를 불러들인다.


전신마비 천재 형사의 캐릭터와 맞물려 『본 컬렉터』는 흥미진진하게 사건을 이끌어 간다. 누워만 있는 형사. 과연 사건을 어떻게 통제하고 범인의 형상에 다가갈 것인가. 잔인한 살해 수법과 현장에서 다음 사건의 피해자를 알려주는 범인의 정체는 누구인가. 결말에서 밝혀지는 범인. 라임은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범인이 남기고 간 단서를 분석해 낸다.


읽는 재미에 빠지고 싶다면 링컨 라임 시리즈를 추천한다. 몸을 전혀 쓸 수 없는 전신마비 형사의 활약이라.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읽다 보면 알게 된다. 종이, 흙, 나뭇가지, 돌멩이 하나라도 사건 현장에서는 중요 증거로 쓰일 수 있음을.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접촉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한 라임과 현장 경험이 없음에도 과감하게 돌진하는 추진력을 가진 색스. 『본 컬렉터』로 출발하라. 지루한 오늘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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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이소담 옮김 / 지금이책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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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다이어트 중이다. 자세히 말해보자. 1년 정도는 다이어터였고 지금은 유지어터. 이거 대단한 거다. 다이어트해본 사람들은 알 거다. 일단 빼는 건 독하게 마음먹으면 가능하다. 빼고 나서 가 문제다. 요요 없이 빠진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비결을 물으신다면. 안 가르쳐 줄 거다가 아닌 전부 공개 하겠습니다요.


뻔한 소리 같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나는 이렇게 뺐다. 1일 1 식을 기본으로. 탄수화물은 조금씩. 대신 두유와 고구마를 자주 먹고 야채 위주의 식단으로. 고기를 먹어도 채소를 듬뿍 먹는다. 원래 식탐이 많다. 소화를 하지도 못하면서 일단 음식을 밀어 넣는다. 폭식하는 습관을 고치는 중이다. 야식은 가끔씩. 이러다 죽겠다 싶은 심야에만 가끔씩.


박막례 할머니는 말했다. 살 뺄 거면 처 먹지를 말라고. 할머니, 그건 어려워요. 안 먹을 순 없어요. 대신 몸에 좋은 걸 조금씩 자주 먹을게요. 그러니까 나는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는 말을 길게도 하고 있다. 저주받은 몸이라서 팔다리 길고 날씬하게 살 수는 없지만 무릎 관절이 안 좋아질 정도로 살이 찌는 걸 막고 바지를 입으면 허벅지 안쪽이 닿아서 쓸리지 않을 정도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가키야 미우의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는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다. 읽으면 되지 왜? 종이책으로는 나왔는데 전자책으로는 안 나왔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다. 전자책으로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다. 주인공 오바 고마리는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를 쓴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소설에는 네 명의 인물이 나온다. 대형 문구업체 과장으로 일하는 마흔아홉의 노리코. 대학 신입생으로 자신의 꿈을 찾으려고 고군분투하는 고기쿠. 교통사고를 당해 재활 훈련을 하는 도모야.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 다쿠야.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 때문에 고민하는 인물들은 오바 고마리를 만나 마음의 살을 빼기 시작한다. 고마리가 쓴 책의 부제는 '마음의 살도 빼 드립니다'이다. 몸의 문제는 마음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이다. 살이 쪘을 때와 날씬했을 때로 나누어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 대상에 올리는 노리코. 뚱뚱하다는 것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고기쿠. 사랑에 실패해서 폭식을 한 도모야. 바쁜 엄마를 위하는 마음으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다쿠야.


고마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꿰뚫어 본다. 못생긴 여자로 살아갈 훈련을 하고. 부모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당당히 말하게 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 바꾸기를 제안하고 혼자서도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요리법을 알려준다. 에이 별거 없네. 이렇게 해서 살이 빠진다고?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제목대로 당장 살을 뺄 수 있는 비법을 알려달라 할 수도 있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법. 남에게 보이는 몸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닌 내 안에 있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 가키야 미우의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는 마음에 붙어 있는 부정적인 살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날씬한 몸을 갖는 게 최선이 아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나의 경우는 게으름과 식탐이 문제였다. 먹고 눕고. 배가 부른데도 꾸역꾸역 먹었다.


소설 속 인물들이 행복해지는 결말로 끝나면 안심이 된다. 미용 목적이 아닌 건강한 마음과 몸으로 살기 위해 살을 빼고 싶다면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를 추천한다.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이 어렵다. 대신 소설에서라도 갈등이 해결되고 희망적인 내일이 펼쳐진다면 기꺼이 시간을 쓰겠다. 앞에 써 놓은 거 보니 대단한 노력으로 살을 뺀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거 아니다. 폭식을 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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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전화기 너머 마주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
박주운 지음 / 애플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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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 통화하고 싶다.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 번호를 누르고 기다린다. 신호음이 들리기를 간절히. 제발. 매번 통화 중이다. 이윽고 전화는 끊어진다. 에라이. 나 정말 통화하고 싶다고. 세상 친절한 목소리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답변을 듣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해결이 되겠지 하는 심사도 잠깐이다. 기다리면 될 거야. 속 편하게 있어라. 말이 쉽지. 연결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통화 버튼을 누른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었다.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얼마나 바쁘면 계속 통화 중일까. 책을 읽으며 불안을 다스리고 현상을 수긍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석 달만 일하겠다고 다짐하고 콜센터에 들어간 주운 씨는 어쩌다 보니 5년 넘게 일을 했다. 그전에 항공사 제주지점 용역업체에서 일을 했다. 일을 열심히 했고 지점장의 추천으로 서울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두 달 만에 고비가 찾아왔고 일을 그만두었다. 석 달쯤 놀다가 구직 사이트에서 콜센터 구인 광고를 보았다. 인터넷 서점 콜센터였고 면접을 봤다. 어찌어찌 티켓 콜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는 콜센터 직원으로 일을 했던 주운 씨의 시절의 일상을 담고 있다. 흔히 진상이라고 말하는 고객과의 통화에서부터 일을 하면서 겪었던 감정 노동의 서글픔까지 담았다.


회사가 요구하는 노동의 강도는 생각보다 고됐다. 하루 80콜 이상을 받아야 하고 전화를 받지 않고 업무를 처리하는 상태인 후처리 시간을 줄여야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화장실을 가야 할 때였다. 관리자에게 허락을 받고 허락이 떨어지면 갈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티켓 콜센터이므로 취소를 하면 수수료가 붙는다. 이것 때문에 고객과의 상담이 힘들었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는 콜센터라는 세계를 과장 없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직장 동료를 만들기 어려운 곳. 신입 사원이 매번 들어오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쩔쩔매면서 결국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곳. 5년 넘게 근무했지만 월급은 제자리. 최저 시급이 올랐음에도 수당이 깎이기 때문이다.


주운 씨는 콜센터를 그만둔다. 그만두는 시점에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펴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을 썼단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 남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사고 집을 넓혀 갈 때 자신은 늘 그대로인 것 같아 불안함을 느꼈다. 콜센터에서 근무한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가벼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해본다. 현실에 기반한 글쓰기를 잘 해내리라는 예감이 든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고서. 지금 있는 곳이 힘들고 버티기 어렵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나를 놓지 말자고 주운 씨는 말한다. 상담원님, 상담원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단다. 책 읽기는 세계의 이면을 알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통화가 되지 않는 상황을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으며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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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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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까지는 나름 모범생이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밤을 새우면서 공부도 했다. 시험 보고 일찍 끝나면 집에 가는 길에 분식집에 들렀다. 혼자 앉아서 먹는 건 좀 그러니까 포장해 갔다. 떡볶이 1인분 주세요.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 있던 분식집. 그 앞을 그냥 지나치는 건 반칙. 닭튀김, 순대, 각종 튀김을 팔았다. 빨리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 공부를 해야 하니까. 따끈따끈한 떡볶이를 들고 집으로 갔다.


어른이 되었다. 진짜? 나이만 먹은 건 아니고? 이제는 떡볶이 1인분만 사지 않는다.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 먹고 싶은 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천 원을 더 보태면 곱빼기. 이천 원을 더 내면 해물 추가. 어른의 삶이란 추가 추가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정도의 가벼운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일터로 가는 길에도 분식집이 있다. 케첩 맛이 나는 떡볶이가 일품인 곳이다. 사장님이 프리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 더운 여름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딸과 여행을 다니신단다.


떡볶이의 떡볶이에 의한 떡볶이를 위한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 10명이 모여 다채로운 떡볶이의 맛만큼이나 즐겁고 기묘하고 슬픈 서사가 담긴 책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떡볶이에 담긴 추억을 변형한 이야기에서부터 한국 사회에 뜨거운 담론까지 알차게 담겨 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볶이를 상상하며 읽어도 좋다. 컵에 담긴 떡볶이가 여섯 개냐 일곱 개냐 근심하며 세 보는 아이.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았다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고 피해자인데도 지탄받는 사람. 대학원에서 더러운 꼴 보면서 김말이 하나 마음껏 시키지 못하는 학생. 전지적 떡볶이 시점으로 자신의 출생과 죽음까지를 읊어대는 떡볶이. 먹방하는 딸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엄마. 좀비와 살아가는 시대에 떡볶이를 먹기 위해 모험을 하는 아이들. 태초에 떡볶이가 있었다고 인간을 걱정하는 떡볶이. 미래에서 마약 떡볶이를 가지고 온 한 남자. 복수를 꿈꾸는 아내. 열심히 살아가는 제자를 통해 현재를 긍정하는 선생님.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읽는 동안 떡볶이에 관한 추억 한 바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시험 기간에 먹었던 떡볶이. 자취방에서 비 오는 날 계란 다섯 개를 넣어서 해 먹던 떡볶이. 친해지고 싶어서 일터로 가는 길에 떡볶이를 사 갔던 기억. 소설은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를 그리움에 잠들게 한다. 떡볶이가 사라진 시대에 떡볶이를 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오늘을 살 수 있다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소소한 반전과 더불어 읽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지는 떡볶이를 주제로 한 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는 불안한 내일까지도 살짝 안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떡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여기 붙어라.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손에 들고서 말이다. 어느 이야기를 펼쳐도 부담이 없다. 난해와 추상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나의 떡볶이는 아직까지 순한 맛이다. 가끔 눈물 나게 매운맛이 날 때도 있었지만 쿨피스가 계란이 열일했다. 추억의 맛을 넘어 당신의 오늘에 응원을 불어주는 떡볶이.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오늘도 고생한 당신, 떡볶이 한 접시를 앞에 놓고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펼쳐 보는 건 어떨까. 슬픔과 회환, 위로, 안도. 복잡한 문제는 내일 아니면 언젠가 해결되겠지. 무한 긍정의 마음을 얻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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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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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의 장편 소설 『시선으로부터,』에는 많은 인물이 나온다. 책 앞에 있는 심시선의 가계도를 보면서 소설을 읽어 나갔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민낯을 정세랑 식으로 보여준다. 직설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슬픔의 정서를 밑바탕에 깔아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6.25 때 심시선은 육촌 오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가족을 기다리는 와중에 고발이 있었고 둘째 오빠와 온 가족이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그 이후 심시선은 육촌 오빠 아내의 주선으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다. 세탁 공장에서 일을 했고 길에서 화가 마우어를 만나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그림을 그렸고 마우어를 견뎠다. 심시선은 지독한 냉대와 간헐적인 폭력을 이겨낸다. 요제프 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소설은 심시선이 죽고 10년이 되는 날 큰 딸 명혜가 하와이로 가서 제사를 지내자는 제안으로 시작한다.


나는 많은 인물 중에 난정이 좋았다. 시선으로부터 걔?라고 불리는 아들 명준의 부인이기도 한 난정. 딸 우윤을 낳았지만 아팠다.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난정은 책 읽기로 두려움을 달랜다. 죽음이 문 앞까지 찾아왔을 때 불안함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책을 읽는다. 시어머니 시선으로부터 글쓰기를 권유받지만 물리친다. 그저 자신은 읽는 인간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명혜의 제안으로 하와이를 떠나면서도 전자책을 챙긴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이 살아생전 쓴 책의 일부와 했던 말에 기대어 시선의 자녀와 손녀의 현재를 그린다.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시선의 당부가 있었다. 그렇지만 명혜는 1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시선이 이민을 가서 생활했던 하와이로 가족을 데리고 간다. 하와이에 가서 전 부치고 상 차리는 일을 하자는 게 아니라 시선에게 보여줄 기억할만한 물건과 경험을 상에 올리자는 발상이다.


시선이 걸어온 길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가족들이 남아 있는 한 시선은 끝까지 애도의 대상이 될 것이다. 죽음은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믿지 못하게 만든다. 정세랑은 사랑으로써 한 사람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허례와 허식으로 제사상을 꾸리며 남아 있는 이들의 시간을 소모하는 게 아닌 일상을 살아가는 형태로 그를 잊지 말자고도. 정세랑의 소설에는 꼬이고 비틀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시선으로부터,』는 누군가를 오해했다면 이해하는 태도로 세상을 살아가자고 우리를 다독인다. 소박한 꿈에 대해. 좋아하는 취미에 대해. 현재의 불안에 대해. 망설임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을 『시선으로부터,』에서 만날 수 있다. 단순히 성별로 가족 내에서 역할을 규정짓지 않는다. 자유분방한 시선의 피를 물려받은 심 씨네 가족. 미움 없이 서로의 행복을 기원해 주고 의심 없이 고민을 들어준다.


다른 사람들처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소설의 특징을 쓰고 싶은데 잘 안된다. 정세랑의 소설은 분석하지 않으면서 읽게 된다. 그냥 읽는다는 표현이면 어떨까. 어떤 문장에서는 명료해지고 순수함이 밀려온다. 책을 오랫동안 부여잡고 읽는데도 그 시간이 황홀하다. 현실의 편협한 인간관계를 극복하고 싶을 때 소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세계는 정세랑이다.


시선으로부터 뻗어 나온 그러니까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사용하면서 시선의 세계는 끝나지 않음을 제목인 『시선으로부터,』는 의미한다. 시선의 뿌리를 이어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는 것이다. 정신없지만 정신을 잃지 않는 심 씨네의 가족들의 다음 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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