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 떡볶이 소설집
김동식 외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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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까지는 나름 모범생이었다. 시험 기간이 되면 밤을 새우면서 공부도 했다. 시험 보고 일찍 끝나면 집에 가는 길에 분식집에 들렀다. 혼자 앉아서 먹는 건 좀 그러니까 포장해 갔다. 떡볶이 1인분 주세요. 골목이 시작되는 곳에 있던 분식집. 그 앞을 그냥 지나치는 건 반칙. 닭튀김, 순대, 각종 튀김을 팔았다. 빨리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 공부를 해야 하니까. 따끈따끈한 떡볶이를 들고 집으로 갔다.


어른이 되었다. 진짜? 나이만 먹은 건 아니고? 이제는 떡볶이 1인분만 사지 않는다. 무리를 하지 않는 선에서 먹고 싶은 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천 원을 더 보태면 곱빼기. 이천 원을 더 내면 해물 추가. 어른의 삶이란 추가 추가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정도의 가벼운 생각으로 살고 있다. 일터로 가는 길에도 분식집이 있다. 케첩 맛이 나는 떡볶이가 일품인 곳이다. 사장님이 프리한 영혼을 가진 분이라 더운 여름에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딸과 여행을 다니신단다.


떡볶이의 떡볶이에 의한 떡볶이를 위한 소설집이 나왔다. 작가 10명이 모여 다채로운 떡볶이의 맛만큼이나 즐겁고 기묘하고 슬픈 서사가 담긴 책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떡볶이에 담긴 추억을 변형한 이야기에서부터 한국 사회에 뜨거운 담론까지 알차게 담겨 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떡볶이를 상상하며 읽어도 좋다. 컵에 담긴 떡볶이가 여섯 개냐 일곱 개냐 근심하며 세 보는 아이.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았다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고 피해자인데도 지탄받는 사람. 대학원에서 더러운 꼴 보면서 김말이 하나 마음껏 시키지 못하는 학생. 전지적 떡볶이 시점으로 자신의 출생과 죽음까지를 읊어대는 떡볶이. 먹방하는 딸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엄마. 좀비와 살아가는 시대에 떡볶이를 먹기 위해 모험을 하는 아이들. 태초에 떡볶이가 있었다고 인간을 걱정하는 떡볶이. 미래에서 마약 떡볶이를 가지고 온 한 남자. 복수를 꿈꾸는 아내. 열심히 살아가는 제자를 통해 현재를 긍정하는 선생님.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읽는 동안 떡볶이에 관한 추억 한 바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시험 기간에 먹었던 떡볶이. 자취방에서 비 오는 날 계란 다섯 개를 넣어서 해 먹던 떡볶이. 친해지고 싶어서 일터로 가는 길에 떡볶이를 사 갔던 기억. 소설은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를 그리움에 잠들게 한다. 떡볶이가 사라진 시대에 떡볶이를 먹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오늘을 살 수 있다는 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소소한 반전과 더불어 읽고 나면 마음이 먹먹해지는 떡볶이를 주제로 한 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는 불안한 내일까지도 살짝 안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떡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여기 붙어라.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손에 들고서 말이다. 어느 이야기를 펼쳐도 부담이 없다. 난해와 추상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나의 떡볶이는 아직까지 순한 맛이다. 가끔 눈물 나게 매운맛이 날 때도 있었지만 쿨피스가 계란이 열일했다. 추억의 맛을 넘어 당신의 오늘에 응원을 불어주는 떡볶이. 안 먹어 본 사람이 있을까.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오늘도 고생한 당신, 떡볶이 한 접시를 앞에 놓고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펼쳐 보는 건 어떨까. 슬픔과 회환, 위로, 안도. 복잡한 문제는 내일 아니면 언젠가 해결되겠지. 무한 긍정의 마음을 얻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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