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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 부도칸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그러니까 라떼는 말이야~. 신나라 레코드점을 매일 갔다. 신나라 레코드라니. 나 너무 옛날 사람.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딱 중간에 있었다. 가방이 무거워서 쉬겠다는 건 아니고. 필통만 든 새털같이 가벼운 가방이었는데. 바로 집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이 나오면 포스터를 받기 위해서도 갔고. 헤드폰을 쓴 채 서서 음악을 듣고 싶어서도 갔다. 그럴 때면 뭐랄까. 세상에는 음악과 나만이 있는 느낌이었다. 매장이 넓어서 그렇게 돌아다니며 음악을 들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딱히 용돈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아서 주머니는 늘 가벼웠다. 그래도 돈이 생기면 테이프와 시디를 샀다. 마이마이를 거쳐 파나소닉 그리고 소니까지. 이거 다 알면 소리 질러. 가벼운 가방 안에는 테이프와 카세트가 추가된다. 다른 애들과는 다르다는 이상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기 아이돌은 안 듣는 척했지만 귀엽고 발랄하고 상큼한 아이돌의 음반을 사서 꾸준히 들었다.
아사이 료의 소설 『꿈의 무대, 부도칸』은 아이돌 그룹 넥스트 유의 성장기를 다룬다. 아이코는 춤을 추고 노래 부르는 걸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회사에서 기획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한 아이코는 6인조 넥스트 유 멤버로 발탁된다. 소설은 넥스트 유 멤버 중 교카가 탈퇴 선언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세계에서는 졸업이라는 용어를 쓴다. 교카는 아이돌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졸업하기로 한다.
소설은 아이돌 그룹이 가지는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아이코의 시선을 통해 고찰한다. 아이돌은 연애를 하면 안 되고 사생활에서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아이돌 그룹의 일원으로서 철저하게 이미지를 지켜내야 한다. 팬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다. 언제까지고 나만의 아이돌로 남는 것. 아이코는 학교와 아이돌 생활을 병행한다. 그 사이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넥스트 유가 처음 결성되고 타이틀곡을 발표할 때 교카는 넥스트 유는 부도칸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게 넥스트 유의 결의, 미래, 도전이 되었다. 음반에 악수회 티켓을 넣어서 판매한다. 그것이 상술이라고 몇몇 악의적 기사가 나오고 조롱에 가까운 댓글이 달린다. 리더 격인 하나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일상을 담는 카메라에 불법 다운로드 프로그램이 잡힌다. 자신들의 음반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불법으로 영상을 받는다?
『꿈의 무대, 부도칸』은 아이돌 그룹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좋아해서 하는 일이지만 힘들고 지친다. 아이코는 어려서부터 함께한 다이치와 미래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길 수 없다. 노래와 춤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아오이 역시 소설의 후반부에 갈수록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아간다. 넥스트 유의 멤버들은 3년이 되는 해 부도칸 무대에 서기로 계획한다. 그토록 바라는 꿈의 무대, 부도칸에서 데뷔 3주년 공연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을까.
"옳은 선택이란 건 세상에 없어. 아마 옳았던 선택밖에 없을 거야."
쿵, 쿵, 하고 등이 또 흔들렸다.
"뭔가를 선택하고, 선택하고 계속 선택하고, 그걸 하나씩 옳았던 선택으로 만들어나가는 수밖에 없어."
(아사이 료, 『꿈의 무대, 부도칸』中에서)
이제 아이돌 음반을 사고 그 노래를 외울 때까지 듣지 않게 되었다. 집중력 좋아지는 음악, 빗소리, 장작불 타는 소리 같은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배경음을 찾아 듣는다. 그래도 신기한 유튜브 알고리즘 덕에 예전에 좋아했던 음악 동영상이 추천으로 뜬다. 멍하니 보면서 포스터를 붙이고 빈 방에 음악이 가득하도록 틀어 놓던 나를. 신나라 레코드 매장으로 들어가던 가방 멘 나를. 떠올린다.
옳은 선택이 아닌 옳았던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삶이라는 걸 깨닫는 아오이의 말에서 나의 내일이 반짝일 수 있으려면 좀 더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