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을 이야기 - 팬데믹 테마 소설집 아르테 S 7
조수경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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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신간 코너에 꽂힌 책이었다. 『쓰지 않을 이야기』는. 보라색의 작은 책. 눈길을 끌었던 건 책의 뒤표지에 실린 말이었다. '전염병 아래 감춰진 이 시대의 진짜 얼굴을 선명하게 포착한 네 편의 소설'이라는 소개의 말. 얼른 책을 빌렸다. 그때가 그립다. 지금은 다시 도서관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놈의 코로나. 언제 사라질 거냐. 집순이의 유일한 낙은 도서관 나들이였는데. 언제 열지 기약이 없다.


『쓰지 않을 이야기』의 부제는 '팬데믹 테마 소설집'이다.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전 세계가 그렇다. 하늘길은 막히고 여객기는 수송기로 구조를 변경해 운행 중이다. 해외여행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찍어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활보하며 맛집을 다니고 유명 관광지를 가는 여행 다큐를 보고 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거 안 좋아해서 미치도록 가고 싶다까지는 아니고 신기해서 틀어 놓고 있다. 저런 시절이 있었지.


조수경의 「그토록 푸른」은 현실적인 소설이다.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여행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조소영은 전염병이 돌면서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병보다 무서운 건 매달 들어가는 생활비의 압박이었다. 비대면 장 보기가 늘어나자 물류센터에서는 사람들을 급하게 모집했다. 매일 아침 조소영은 일을 하겠다는 카톡을 보내고 응답을 받는다. 마스크를 쓰고 버스를 타고 작업장으로 들어가기 전 문진표에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병의 증세는 '손이나 발끝에 푸른빛이' 도는 것이었다. 조소영은 계속 일할 수 있을까.


「특별재난지역」은 청도 지역의 사태를 다룬다. 요양 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동일 집단 격리에 들어간 시간을 그려낸다. 실제 지명과 사건을 토대로 보여주어 독자는 몰입해 들어가기 쉬운 구조이다. 아버지를 요양 병원에 모신 일남. 시간이 날 때마다 음식을 해서 아버지를 먹이는 일남이었다. 청도 대남 병원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일남의 아버지가 있는 요양 병원에서도 면회가 금지된다. 철없는 아들이 낳은 손녀를 키우랴 아버지를 모시랴 일남의 일상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세 번째 이야기, 「두痘」에서 박서련은 여성과 전염병이라는 두 가지 소재를 능숙하게 다룬다. 시골, 여선생님, 마을 이장, 폐쇄적인 마을 주민들, 이유를 모르는 피부 발진. 어떤가. 식상한 소재들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서련은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증세는 여자아이들에게만 나타난다. 같은 집에 살면서 생활하는 남자 형제에게는 전염이 되지 않았다. 왜 여자아이들에게만 병이 발현되는 것일까. 이유를 알고 나면 무참한 기분에 빠지고야 만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가족들을 여러 번 죽였다. 송지현의 「쓰지 않을 이야기」는 이러한 고백으로 시작한다. 심지어 아빠는 좀비로도 등장시켰다. 죽었는데 죽지 않는. 그 와중에 좀비가 되면 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해외로 떠돌던 아빠는 전염병이 돌자 한국으로 돌아와 거실에서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며 지낸다. 자취하는 동생의 방을 자신의 방으로 만든 아빠. '나'는 빵과 맥주를 사서 애인과 모텔에 가서 노는 걸 좋아한다. 소설은 긴박하거나 공포스러운 일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를 충실하게 보낸 것 같은 착각을 하며 지내는 풍경을 묘사한다. 자신이 죽는 소설을 쓸 것 같은데 그러기 싫다는 엄살을 떤다.



『쓰지 않을 이야기』에 실린 네 편의 소설은 우리 모두가 겪었던 겪고 있을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소중하다. 나만 두렵고 외로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받는다. 문학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책이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진실을 색다른 관점에서 들려준다. 미처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 수 있었던 건 문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썼다. 쓰지 않을 이야기란 없다. 써야 할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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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살인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0
최제훈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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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훈의 소설 『단지 살인마』를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옆에 휴대전화를 두고서. 원래 책을 읽을 땐 휴대전화를 멀리한다. 굉장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고. 한 번 들여다보면 계속 보게 되서. 블로그, 카페, 유튜브, 뉴스 기사, 쇼핑몰의 신상품 구경까지. 책 읽는 시간 보다 휴대전화 보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져서. 이번만은 예외로.


안전 안내 문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좀처럼 사그라 들지 않는 코로나19. 지난주부터 확진자 수가 증가하더니 오늘은 도시에 있는 병원이 코호트(동일 집단) 격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꾸 무섭다고 말하면 불안감만 더 가중되지만 그래도 무섭다. 어린이집,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생들도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 줄이 길게 늘어진 모습을 보고. 그것이 내가 매일 지나가는 곳이라서. 일상에 밀접하고 친숙한 장소에서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벌어지다니.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 망연자실해진다. 『단지 살인마』를 읽는 동안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 두 세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소설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현실에서 일어나는 바이러스와의 사투.


『단지 살인마』는 '첫 번째 희생자는 거구의 20대 남자였다'로 시작한다. 사건으로 바로 직진해 들어간다. 이런 스타일의 소설 좋다.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사건의 배후를 밝히는. 첫 희생자는 조직원이었다. 특이한 점은 희생자의 새끼손가락이 잘려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차례로 희생자가 나오면서 언론의 주목을 끈다. 희생자들의 손가락이 계속 없어지는 것이다.


사건의 특이성을 느낀 주인공 '나' 장영민은 기사를 계속 읽어나간다. 희생자들의 배경을 파헤치면서 그들이 십계명의 순서에 따라 죽었다는 규칙을 발견한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장영민은 과거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다. 이게 중요하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파헤치는 자는 세상의 원한이 있는 사람으로 설정한 것. 손가락이 절단되면서 살인은 계속 이어진다. 장영민은 연쇄 살인 안으로 자신의 분노와 피해의식을 들이민다.


범인의 살인 패턴을 알아낸 장영민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겠지. 안이한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단지 살인마』는 게으른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다. 장영민은 자신에게 수치와 모멸감을 주고 평범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도록 불안 장애를 안긴 친구를 찾아가 복수한다. 단지 살인마가 하는 것처럼 손가락을 잘라낸다. 그 후 자신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손동식이 등장하고 사건은 끝을 알 수 없게 돌아간다.


십계명의 순서대로 사람을 죽이고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 살인마는 누구일까. 『단지 살인마』는 모두가 범인이라고 말한다. 죄의식과 피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 고독과 불안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들. 단지 살인마가 되지 않기 위해 무너진 멘탈을 부여잡으며 이성의 부스러기를 훑으며 살아가는 한국인들. 들키지 않게 잘 숨겨 놓은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단지 살인마』는 추리 소설 형식으로 보여준다.


현실은 현실이고. 현실에 무너지지 않기 위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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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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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으면 반갑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애정 하는 이가 쓴 책. 읽고 쓰는 일이 좋다는 말이 범벅 되어 있는 책. 읽으면서 구원받는다. 갑자기 구원? 그렇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토록 말했던, 기술을 배워야 먹고 산다는 말. 그 말을 한 귀로도 안 들은 척 살았던 나였다. 심지어 머리도 나쁘다. 겸손이 아니다. 이해력이 부족해 무조건 암기해서 시험을 볼 정도.


책 읽기는 달랐다. 책을 펼치면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로 들어가기만 되는 단순한 게임 같은 거였다. 책 읽기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 되겠지만 이해보다는 공감을 하겠다는 자세로 읽었다. 그렇게 어느덧 독서인으로 살아온 지 어언 삼십 하고도 몇 년. 활자 읽기의 달인까지는 아니어도 읽는 걸 잘한다. 장강명의 산문집 『책, 이게 뭐라고』에 나오는 말처럼 일상에서 쉬지 않고 읽는다. 책 읽기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책, 이게 뭐라고』를 읽으며 반가웠다. 소설가 장강명은 나처럼 전자책을 즐겨 읽는 것이 것이었다. 작가들의 산문집을 즐겨 읽는데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종이책의 물성을 좋아하는 것이리라. 한 번 전자책에 입문하기가 어렵지 전자책의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운 경험이 펼쳐진다. 글자체와 크기, 간격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며 밤에는 불을 켜지 않아도 누워서 읽을 수 있다.


『책, 이게 뭐라고』는 즐겁다. 신나게 읽힌다. 단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진행자로 출연한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의 비하인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어떻게 출연하게 되었는지 진행하면서 겪었던 이야기. 그 밖에 책에 대한 애정까지. 읽고 쓰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책 추천도 받을 수 있다. 『블랙 달리아 1, 2』는 꼭 읽어보겠다. 제2의 제임스 엘로이가 될 수도 있으니.


장강명의 산문은 쉽다. 놀랍도록 솔직하다. 알쓸신잡에서 자신을 불러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쓰기까지 한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가진 기술 전무, 이해력 꽝인 나 같은 사람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내내 말해준다는 것이다. 오히려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세상을 밝게 해주는데 일조를 한다고 격려한다. 책을 읽으면 무슨 효용이 있느냐. 책을 많이 읽는데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


이런 나약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책, 이게 뭐라고』에 있다. 책 읽기 말고도 즐거운 일이 천지다. 신작 드라마, 영화도 봐야 하고 예능은 틀어 놓기만 해도 집이 활기차지는 기분이다. 한 판만 하고 그만해야지 하는 게임에 빠져 날이 새기도 한다. 쇼핑몰에 올라오는 신상품 구경만 해도 즐겁다. 이런 유혹을 물리치고 책을 읽으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느 날 인생의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날부터 책 읽기의 시간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게 된다면. 인생 항로가 변하게 된다.


진짜 책 이게 뭐라고 이 난리냐고 하겠지만. 한 권이면 된다. 한 권의 인생의 책을 시작으로. 세계는 전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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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 이름 없는 것들을 부르는 시인의 다정한 목소리
이근화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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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자리의 위치를 바꿨다. 바닥 생활자라 늘 이불이 깔려 있다. 최소주의로 살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어 방에는 이불과 스탠드만이 놓여 있다. 일찍 일어나 이근화 시인의 산문집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읽고 다시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어제의 햇빛이고 바람인데.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휴대 전화에 들어온 메시지 때문이었다.


출근이 잠정 연기되었다. 일단 오늘 하루이지만 다음 주를 장담할 수 없다. 누워서 유튜브로 브이로그 하나를 시청했다. 누군가의 정돈된 일상을 보면서 힘을 낸다. 얼굴도 모르지만 볼 일도 없겠지만 화면 속 그들은 부지런히 요리를 하고 집 안에서도 바쁘게 살아간다. 혼자 먹지만 잘 차려 먹는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면 마음도 가라앉기 마련. 얼른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모드 루이스, 낸 골딘, 진 리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를 읽었기에 알게 된 사람들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듣고 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마르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만큼이나 격정적인 삶을 산 마르타. 책에는 그녀 삶의 내력이 자상하게 소개되어 있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흥미 있게 써 놓았다.


그리고 모드 루이스. 『모드의 계절』이라는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눈이 내린 작은 마을의 풍경과 그 옆에 뚱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었다. 색감이 너무 예뻤다. 한 인간의 인생은 겉으로만 봐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그림들이었다. 불안한 삶이었지만 순수하고 다정한 내면을 지닌 모드. 그녀의 삶을 그린 영화 《내 사랑》과 책 두 권을 봐야지.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에는 정말 아주 작은 인간들의 말이 이근화의 시선에서 새롭게 펼쳐진다. 일상인과 시인으로서의 자아는 충돌과 조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2020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네 명의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저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는 엄마로서. 책 읽기와 글쓰기를 놓지 않기 위해 애쓰는 시인으로서. 이근화는 살아간다. 책에는 그림들이 있는데 추측건대 이근화의 아이들이 그린 것 같다. 막눈인 내가 봐도 잘 그린다.


엄마를 위해 큰 딸이 만드어준 「코딱지 왕」 책은 놀랍고 특별함을 자랑한다. 시인의 아이들이라 그런지 관찰력이 뛰어나다. 외톨이 조가 고독을 떨쳐 내는 이야기, 「코딱지 왕」. 학교에 가지 못해도 마스크를 쓰고 놀아도 즐거운 아이들. 종이와 펜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그려내고 써 내는 아이들. 그 작은 인간들의 말을 이근화는 기록한다. 친분이 있는 시인의 시를 읽고 그가 무슨 일이 있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이주란의 소설, 정세랑의 소설을 읽은 감상기는 위로에 가까운 글이었다. 2020년 이후의 시간들은 내내 위로가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다. 괜찮다는 영혼 없는 위로는 사절하겠다. 대신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감상을 적어가며 나를 보살피겠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는 팬데믹의 세계에서 나를 지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읽고 쓰기. 귤에 핀 곰팡이를 들여다보는 고운 시선을 기억에 간직하는 일. 영혼의 휴식을 위해 기꺼이 고통 속으로 자신을 내몰았던 이들이 남긴 서사를 해독하는 일. 이근화의 표현대로 세상은 신속하게 망할 것 같지 않다. 천천히 망할 거다. 그 시간을 살아내고 지켜내야 하는 나로서는 아주 작은 인간이 되어 잡음을 만들어 내야지. 망해가는 세상을 비웃으면서. 씩씩하고 다정하게. 이부자리의 위치를 바꿨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마음을 만들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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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 - 정은숙 인터뷰집
정은숙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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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해의 폴짝』은 마음산책 20주기를 기념하여 출판사 대표 정은숙이 문인 스무 명을 만나 나눈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표지에 적힌 작가들의 이름을 보는데 그리움이 밀려왔다. 한때 열렬하게 추종하며 읽던 작가들의 이름. 신간이 나오면 바로 사서 읽곤 했다. 책이 집에 점령 당하는 꼴이 싫어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탔다. 그 덕에 책을 사는 횟수가 줄었다. 아무래도 전자책은 신간이 바로바로 나오지 않기 때문. 나중에 전자책으로 사야지 하고는 잊어버리곤 해서 예전만큼 신간을 빠르게 사서 읽는 부지런한 독자의 길에서 멀어졌다.


마음산책은 애정 하는 작가들의 산문집이 수시로 나와서 좋아하는 출판사다. 짧은 소설 시리즈와 말 시리즈도 되도록이면 찾아서 읽곤 한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은 충격적이게 좋아서 두 권을 샀다. 책이 두꺼워서 한 권은 반으로 쪼개서 가지고 다니면서 읽으려고. 나머지 한 권은 소장용으로. 『시가 내게로 왔다』를 읽으며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되었다.


시인, 소설가, 번역가를 만나는데 그들에게 운동화 한 켤레씩을 선물하는 센스도 발휘한다. 작가의 사인, 작가가 운동화를 받아든 순간을 포착한 사진, 정은숙이 쓴 작가에 대한 단상으로 인터뷰는 시작한다. 본질 보다 주변의 곁가지에 관심이 많은 나는 무슨 운동화를 선물했을까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내 스타일의 운동화는 손보미 작가에서 선물한 하얀색 가죽 운동화.


기획력이 좋은 출판사답다. 앞으로의 도약을 바라며 문학의 세계로 폴짝 뛰기를 바라는 마음에 운동화 선물이라니. 작가들이 정말 좋아하는 게 책을 통해서 느껴졌다. 발 치수를 알아야 하고 취향을 고민해야 하는 선물이므로. 평론가 신형철에서 시작해 백수린, 김금희, 손보미, 김숨, 이기호, 김중혁, 이승우 등을 거쳐 김용택 시인으로 끝이 난다. 스무 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거창하게는 문학 담론과 사소하게는 일상의 루틴을 어떻게 지키고 있는가까지 『스무 해의 폴짝』은 포착한다.


의외였던 건 손보미 작가 편. 정은숙 대표의 표현대로 굉장히 활발하게 외부 활동을 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단다. 신형철의 미루기에 대한 이야기에도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잘할 수 있을까를 의심해서 불안해서 미루는 것이라고. 그 말은 지금의 내 상태를 표현해 주는 말이었다. (영어, 컴퓨터를 공부해야 하는데 미루고 있는 현재 나의 상태를) 문학은 의외로 꼭 필요한 공공재이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개탄하는데. 그중에도 문학을 읽지 않는다고 아쉬워들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소리 없이 읽고 있는 나와 같은 문학 독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독자를 의식해서 글을 쓴다는 작가들은 의외로 없었다. 출판계의 트렌드를 쫓지도 않는단다. 그저 써야 할 것이 있기에 쓰고 있기에 쓴다는 선언. '쓰면서 쓰게 됐다'라는 호원숙의 말처럼 그들은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무얼 의식하거나 바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스무 해의 폴짝』을 읽기 전 나를 압도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무얼 하며 살고 있었나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움. 사람은 모름지기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어른들 말씀을 허투루 들었던 걸 자책하고 후회.


『스무 해의 폴짝』에 소개된 그들의 약력을 읽으면서 몇 권을 제외하곤 한 작가의 작품을 충실하게 읽은 나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읽는 동안 그렇게 나는 치유가 되었다. 공부는 무엇이 되는게 아닌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한 일로 문학을 읽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읽은 지 어느새 나도 스무 해가 되었다. 학교 앞 서점에 가서 문제집 사이에 간신히 꽂혀 있는 소설책을 골라 나왔던 시절에서부터.


경력과 자격증 및 특기 사항에 쓸 게 없어서 한숨을 지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제는. 문학을 읽은 지 스무 해. 간간이 돈을 벌었고 소심한 마음을 지녔으며 유머에 깔깔깔 웃는 걸 좋아한다, 고. 쓰는 걸 망설이곤 하는데 세계 명작을 써야지라는 허튼 생각 때문에 그런다고. 일상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를 좋아하고 한 번 좋아하면 끝까지 망작을 써 내도 좋아하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항목을 적으면 대박이겠다고 『스무 해의 폴짝』을 읽고 나서 우스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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