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심산촌은 구봉산 골짜기 안에 있다. 그 덕분에  링링태풍이 스치듯 지나갔다. 무사히 살아난  꽈리밭. 그 기쁨을 새빨간 열매들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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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석(緣石)’이 있다. 보행자를 자동차로부터 보호하고 구분하기 위해 차도에 접해 설치하는데 경계석이라고도 한다.

  

연석 위로 못된 자동차가 앞바퀴를 걸쳤다가 가 버린 것 같다. 그 차 무게에 연석이 시멘트 보도에서 분리돼 버렸다. 그래서 생겨난 칼날 같은 틈에 오이씨가 들어갔고 파란 싹이 돋더니 이제는 작은 노란 꽃까지 피웠다. 대단한 생명력에 놀라면서 머지않아 달릴 오이 생각에 보는 사람 마음이 애잔하다. 제대로 된 밭이 아닌 시멘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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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 동면 지내리에 동면방앗간이 있다.

 

내가 동면 방앗간에 주목한 건우직하게 느껴질 만큼 단순 명료하고 토속적이기까지 한 상호때문이다사실 부근에 있는면사무소의 이름도주민자치센터로 바뀌었을 정도로 어느 때부턴가 작명을 길고 복잡하게 하는 시류다나는 이런 시류에 저항감이 있다예를 들어 산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모처럼 면사무소를 찾는 노인이 있다고 가정하자그 노인이 면사무소가 아닌 난데없는 주민자치센터앞에서 얼마나 당황할까고백한다도시에 사는 나 자신도 몇 년 만에 면사무소를 갔다가 주민자치센터라고 바뀌어 있어 몹시 당황했다결국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었다.

여기면사무소 맞지요?”

네 맞습니다.”

 

뭐 하러 그렇게 이름들을 길게 바꾸는지 모르겠다그러면 더 현대적이고 세련돼 보이는 걸까?

글쎄.

 

그런 면에서 나는 동면방앗간이란 간판 명이 좋다얼마나 우직하고 간단명료하고 토속적이고 기억하기 좋은 이름이던가날이 갈수록 모든 게 복잡다단해져가는 세상가게나 사무실 이름만이라도 간단명료하게 짓거나그대로 두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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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예리한 데가 있다그 어린 작은 고양이에 대해 이리 말하던 것이다.

분명히기르는 사람 없는 길고양이 새끼야왜냐면 기르는 사람이 있는 고양이면 털색이 하얗거나 검거나혹은 무늬가 곱게 지어있거나 하는데 그 고양이는 털색이 잡다하게 뒤죽박죽이거든그러니까 길거리에서 사는 잡다한 길고양이들의 혼종인 거지.”

아내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 어린 작은 고양이가 길고양이 새끼인 줄나는 처음부터 알아챘다기르는 사람(주인)이 있다면 어떻게 그 어린놈이 동네 골목길에 나돌아 다니는 것을 방치할까.

표현을 일부 수정한다그 어린놈은 나돌아 다닌다기보다 그냥 멍하니 있었다우리 집 대문 앞에서도 멍하니 있기에 보다 못한 내가 !’하며 경고까지 했을까문제는 그 정도 경고는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내가 두 발까지 쿵쿵 구르면서 큰 소리로어이 쉿!’하자그제야 마지못해 다른 데로 가던 것이다다른 데라고 하나 두어 걸음 거리의 가까운 데다나는 그 모습에 결론을 내렸다.

이 놈은 자기가 고양이라는 것도 모르는 놈이구나!”

즉 고양이의 정체성도 갖지 못한 놈이었다그러고 보면 tv에서 어미 개를 제 어미로 여겨 젖을 빨아먹고 지내는 새끼 멧돼지의 사연이 방영된 적 있다하긴 인도에서는 자신이 늑대인 줄 알고 늑대 무리 속에서 살다가 구출된(?) 어떤 아이의 실화도 있었다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정글북이다그 아이는 갓난아기 때 마을을 습격한 늑대에 물려갔던 것으로 추정됐단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짐승의 정체성은 타고 났다기보다는태어나자마자 누구의 손길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닐까그렇다면 그 작은 길고양이는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탓에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해 어리벙벙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인터넷으로 정체성(正體性)’의 의미를 확인해봤다이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란 사물 본디의 형체가 갖고 있는 성격을 말한다. ‘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 준다.

 

자신이 고양이인 줄도 모르고 어리벙벙하게 서 있던 새끼 길고양이무슨 까닭인지 태어나자마자 어미 길고양이한테 버림을 받았다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행동을 보일 수가 없었다.

내가 그 놈을 못 본 지 보름은 넘었다놈이 뒤늦게라도 길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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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가을이 아니었을까그 즈음은 자가용차는 꿈도 못 꾸던 때라서 출퇴근을 택시 합승이나 시내버스로 했다.

그 날 나는어둑해지는 명동 부근 시내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사는 동네 쪽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뒤돌아봤더니 최종남 선배님이었다선배님은 닭갈비 골목 어귀에 서 있었다웃으며 내게 제의했다.

소주 한 잔 할까요?”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정식으로 인사 나눈 적이 없었으니좋은 기회였다하지만 나는 사양했다부리나케 집에 가서 애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어머니가 무릎도 안 좋은 몸으로 종일 애 보느라 힘들던 때였다.아내는 직장생활에 집안 살림까지 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사실 그 날 내가 선배님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닭갈비 골목의 어느 집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을 게다그즈음만 해도 나는 술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참 아쉬운 기회였다.

 

선배님과 이번에 모 단체의 글짓기 심사 관계로 만났다선배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제는 몸이 안 좋아 술을 멀리하는 신세다결국 술 한 잔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한 채 노후를 맞은 셈.

30여 년 전 그 날 어둑해질 때 술 한 잔 제의에 응했더라면 얼마나 술맛이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최종남 소설가 장편소설 겨울새는 머물지 않는다’ 단편소설집 회색판화’ ‘단둥역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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