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다 아는 장면일 게다.

아름답게 핀 노란 꽃이 그대로 땅 위에 있다가 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땅을 향하는 그 기괴한 모습을. 그 기괴한 장면에 놀랐을 때 아내가 농업센터에서 배운 지식을 말했다.

그 아래 비닐을 찢어줘야 된대요.”

파종하기 전에, 잡초 방지를 위해 비닐부터 씌워놓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로 두었다가는 땅을 향하던 게 비닐에 막혀 결실을 맺는 데 지장이 생겼을 것이다. 꽃 바로 아래의 비닐을, 이랑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찢어주자 과연 그 노란 꽃들이 떨어지며 뾰족한 줄기처럼 되더니 땅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뿌리도 아닌 줄기가 땅속으로 파고들던 광경 또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필 우리가 농사짓는 데가 인적 없는 산속이라 한낮이라 해도 그 으스스함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달 후 그 줄기들은 뿌리처럼 땅 속에서 많은 땅콩들을 달아, 포기를 뽑으며 수확할 때 주렁주렁 나오던 것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하 이래서 한자로 땅콩을 낙화생(落花生)이라 하는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낙화생이란 한자어보다 더 멋진 표현이 우리 말 땅콩이었다. 대부분의 콩 류()가 지상에서 결실을 맺지만 이것만은 땅속에서 결실을 맺질 않던가? 그러니 땅콩이라 지칭한 우리말만큼 간단명료한 것도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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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나는 짧은 이 시를 보는 순간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일에 지친 화자가 이제는 그만 편히 쉬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들 삶이란 어차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좋으나 싫으나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 그래서 아주 작은 공간이나마 내(화자)가 쉴 수 있는 곳을 그리는 마음이 나타난 거라는 해석이다.

 

우리에게 이란 단어는 어떤 이미지인가? 고립이나 소외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마음 편히 쉬는 곳이란 긍정적인 이미지도 분명히 있다. 모든 게 복잡다단한 현시대에 이르러 이 휴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제주도라든가 그리스의 섬들이라든가 발리 섬 등이 휴양지나 신혼 여행지로써 인기를 끄는 것만 봐도 충분히 납득될 것이다.

 

그렇기에 복잡다단할 일이 없는 예전에는 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유배지로나 쓰였을 뿐이다.

  

한편, 이 시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상략) 시인이 꿈꾸는 섬은 먼 바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감의 세계, 혹은 그것을 향한 꿈이다. 정현종은 무척 외로울 때 이 시를 썼다고 회상한 적이 있다. 그 섬에 가는 길은 우정이나 연대(連帶)에서 찾을 수 있다. 동시에 홀로 있더라도 시를 읽거나 춤과 음악·그림에 몰입하는 영혼의 항해를 통해 이르는 섬이기도 하다. 그 섬에서 사람은 삶의 진짜 알맹이를 실감할 수 있다.(하략)”-박해현/기자, 조선일보 '문학산책'-

 

내 감상과 다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이 옳다는 주장을 하지 않겠다. 현대시의 맛은 난해한 데에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게 해석되거나 정답 같은 감상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한용운의님의 침묵이란 시에서의 을 절대자나 잃은 조국으로만 보다가, 근래 들어 실제 연인으로서의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시작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일로 온 국민이 패닉에 빠졌던 시절, 내게 이 시가 선하게 떠오른 까닭은 아무래도 시 속의 '섬'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느꼈기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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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 한파가  엄습하자,  늦가을 햇빛이 뒷산으로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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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일이다. 사촌형님과 마주 앉아 술잔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그 노래가 떠오르니.

 

헤어지기 섭섭해서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간단한 리듬에 잔잔한 남자가수의 음성. 이제는 KBS가요무대프로그램에서나 나오는검은 장갑이란 노래다. 형님과 나는 지금 식당에서 삼겹살을 안주로 술잔을 나누고 있다. 삼겹살이 골고루 구워지는지 살펴가며, 간간이 숯불에서 튀는 불티들을 피해가며, 구워진 삼겹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상추 잎에 싸 먹으며, 술잔을 부딪친 뒤 술을 들이마시며, 그러면서 지난날을 얘기 나누는 복잡다단한 행동 중에도 그 노래는 내 머릿속 한편에서 맴돌고 있다.‘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아무래도 노랫말이 잘 나가다가 끝에서 실패했다. ‘저 달은 웃으리가 무언가? 근사한 품격이 동요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육십 년대 유행가의 한계가 아닐까. 이 노래가 맴돌면서 서울 미아리 허허벌판에 서서 눈을 맞고 있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떠나온 그 겨울' 중에서>

 

 

'검은 장갑'

손석우 작사 / 손석우 작곡 / 노래 손시향 孫詩鄕.


1.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바이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2. 잔을 비고 청해봐도
   오지 않는 잠이여
   닿지 않을 사랑이면
   잊느니만 못해
   잊을 수 있을까 잊을 수 없어라
   검은 장갑 어울리는
   마음의 사람아.

<사진 클릭시 '검은 장갑' 노래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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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어느 겨울에 생맥주 잔을 비우면서 늘어놓던 결혼얘기가 선하게 살아나더군. 그 얘기의 골목 풍경이 눈앞에 생생한 거야. 여자가 내가 골목을 가다가도 느낌이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면 이이가 멀찍이 거리를 두고 멈춰서 바라보는 거 있죠?’ 할 때의 골목이지.

 

 

내가 예전에 시골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었기에 그런 골목 풍경은 아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거든. 봄이 되면 개나리, 진달래들이 화사하게 피어서 꽃길을 이루는 골목이지. 좁아도 햇살들이 넘쳐나고 벌 나비들이 가득한 그 골목길을 천진난만한 여학생이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네. 그러자 멀리 골목 끝에 숫기 없는 남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거야. 여학생이 혼잣말로 그러지. ‘왜 날 따라오지? 정말 이상하네. 나는 하나도 안 이쁜데……

그렇게 둘이 꽃길 골목의 양끝에 서 있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꽃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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