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이 나갔다. ‘깨졌다’는 표현보다는 ‘나갔다’는 표현이 왠지 마음에 와 닿는다. 영어로 바꾼다면 ‘OUT’이라 하지 않을까?
나는 순간 OUT이 됐다. 최순실이란 여자가 ‘공항’이라고 잘못 적은 ‘공황’ 상태가 된 거다. 내 주업이 컴퓨터를 켜 놓고서 한글로 이런저런 글을 쓰는 일이므로, 한글 프로그램이 OUT된 일은 내 자신이 OUT된 듯, 충격 그 자체였다.
십 년 넘게 쓴 일기, 재산 관계 기록, 미발표 글 수십 편, 우리 집 자동차에 관한 갖가지 사항들을 적은 차계부, 전기료 수도료 가스요금을 달 별로 기록해 둔 것, 지난해 여름 생애처음으로 발간한‘숨죽이는 갈대밭’에 관한 갖가지 자료들……이 하나도 모니터에 뜨지 않았다.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내 우주가 블랙홀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보다 난 듯싶지만 어느 순간 ZERO가 되는 취약성이 있다는 경고를 실감했다.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이럴 줄 알았더라면 컴퓨터로 글을 쓰지 말고 그냥 볼펜으로 종이에 써 둘 걸’ 하는 후회까지 했다.
특히, 힘들었던 모 학교에서의 하루하루가 기록된 일기가 송두리째 날아갔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라니. 그 일기를 자료 삼아 언제고 장편으로 써서 문제작으로 발표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OUT된 내 컴퓨터의 한글 프로그램이 되살아나지 못한다면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이 영영 입증될 수 없다는 참담함에 치까지 떨렸다.
천만다행으로, 컴퓨터 기술자를 불러 한 시간여 만에 한글 프로그램이 되살아났다. 한글로 쓴 내 글들이 다 살아났다. 나는 그의 단골손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중요한 조언을 해 줬다.
“컴퓨터에 뭘 쓰고 나면 반드시 백업해 두어야 하며, 백업 중에는 자기한테 이메일로 보내두는 방법이 제일 안전합니다.”
그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지키기로 다짐했다.
이번에 한글 프로그램이 OUT되기 전, 왠지 글 쓰는 일도 재미가 없어지고 사는 것조차 시들했었다. 슬럼프라 할까. 그러다가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난 뒤에 나는 맹세했다. 열심히 살기로.
‘열심히 살자. 그러려면 열심히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