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고 제대한 뒤 삶이 왜곡되기 시작한 어느 사내, 교내폭력이 마치 조폭들의 전쟁처럼 벌어지는 어느 고등학교, 시신을 낱낱이 잘라 독수리들에게 보시하는 라싸의 천장사, 극심한 가난 앞에서 자식들마저 내버리고 재혼한 어느 여인, 외로이 산을 다니다가 급기야는 산짐승들의 말을 듣기 시작하는 어느 명퇴자, 하루 종일 햇볕 한 번 안 드는 산그늘의 식당 사장 등…… 간단치 않은 삶의 얘기들이 단편 12편에 담겨 있다.

 

 

 

차 례

 

01_ 숨죽이는 갈대밭 / 7

 

02_ 달나라 / 29

 

03_ 외출 / 69

 

04_ 박쥐가 된 아이 / 89

 

05_ 라싸로 가는 길 / 109

 

06_ 떠나온 그 겨울 / 129

 

07_ 두 개의 밧줄 / 151

 

08_ 노려보기 시작했다 / 169

 

09_ 그분을 기억한다 / 193

 

10_ 가섭 별전 / 215

 

11_ 승냥이 / 235

 

12_ 잡초 / 255

 

 

 

책 속에서 & 밑줄긋기

 

 

나는 월남에서 돌아왔다.

 

커다란 군함을 타고 비둘기 태극기 풍선 날리는 조국의 항구로…… 환영의 플래카드 속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비행기로, 중상자 후송 비행기로 사월 어느 날 조국의 남부지방 어느 적막한 공군기지로 돌아왔다.

 

내 가슴에도 훈장은 걸렸다. - 8

 

 

 

그 때 걔가 나지막하게, 그러나 분명한 발음으로 내뱉었다.

 

씨발 놈들아, 조용하지 못 해?”

 

점심시간이었다. 애들 대부분이 미리 도시락을 먹었으므로 정작 그 시간에는 여 기저기 몰려 앉아 떠드느라 바쁜데 그렇듯 걔가 쌍소리를 내뱉은 거다. 전체를 상대로 한 쌍소리는 처음이었기에 교실은 찬 물을 끼얹은 듯 일시에 조용해졌 다. 미처 못 들은 애들이 누가 뭐라는 거야?’작은 소리로 쑤군댔다. 그러자 걔 가 다시 한 번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씨발 놈들아, 내 잠 깨울 거야?”

 

교실은 완전히 평정되었다. - 31

 

 

 

단지, 직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버는 아내에 대한 예의(?)로써 그는 늘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됐다.

 

거리의 끝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휴지와 라면 봉지와 빈 캔과 짝 잃은 양말 한 쪽까지 훑으며, 사내가 멈춰 서 있는 데까지 끌고 오고 있었다.’

 

혹시 글 속의 사내가 그를 대신해 거리로 외출한 게 아니었을까? 스토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이상 사내는 항상 거리에 외출해 있었다.

 

그가 아파트 밖으로 외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 87

 

 

 

그 여자는 아버지 화장한 재를 강물에다 뿌리고 돌아온 날 저녁에 우리 형제한 테 이런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나는 네 아버지와 이혼해서 벌써부 터 남이었다. 인제는 너희끼리 잘 살기 바란다.’

 

그 때부터 엄마는 그 여자가 되었다.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한 사실은 우리도 아 는 오래 전 일이었다. 아버지의 부채가 넘어오는 것을 피하기 위한 문서상의 위 장이혼이라 했는데…… 그것을 실제로 적용시킨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음료 판 매 사업이 그럭저럭 되어가고 있었을 때 그 여자는 엄마였었다. 아파트 관리 비니 전기료니 하는 것들을 꼬박꼬박 잘 내고 살 때는 좋은 엄마였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 104

 

 

 

큰형은 도구들 중에서 먼저 작은 칼을 쥐고 여인의 머리카락들을 잘라낸 뒤 다 음에는 갈고리로 등뼈 윗부분에서 아랫부분까지 일자로 그어 절개했다. 드러난 살덩이의 핏물로 너럭바위가 붉게 젖어들 때 작은형이 큰형의 갈고리와 작은 칼 을 넘겨받고는 대신 장도를 건넸다. 큰형은 장도로 허공을 향해 한 번 크게 휘두 르고 나서는 힘주어 탁 탁 탁!’ 사지를 절단했다. 작은형은 잘려진 사지들을 갈 고리로 하나씩 끌어다놓은 뒤 작은 칼로 살과 뼈로 나누었다. - 117

 

 

 

“1026 시해사건 때 범인 김재규와 묵시적 동조를 한 게 드러난 계엄사령관 등 일당이 전격적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신문은 그 때도 늦은 걸음이어서 안개 속 총성, 심상치 않은 안개 정국의 제호 나 뽑은 채 배달되어 있었다.

 

시월 말에도 등장했던 머리가 많이 벗겨진 사내가 온 국민을 노려보는 표정으로 사건의 전말을 하나하나 발표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옆의 텔레비전을 다시 켜 놓고 지켜보던 물문어 교감선생이 한 마디 내뱉었다.

 

다시 군인들 세상이 시작되었구먼!”

 

그리고는 텔레비전을 더 보지도 않고 회전의자에 몸을 깊게 꾸겨 넣고 잠자기 시작했다. - 190

 

 

 

사실 그 날, 그분이 미술반에 들 거지?’ 하고 물었을 때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응답한 것은 얼떨결에 이루어진 느낌이 컸다. 소란한 교실을 일시에 제압하던 낭랑한 목소리, 깔끔한 포마드머리의 젊은 모습, 허연 얼굴빛과 간간이 빛나던 눈빛 등의 분위기가 나를 다른 대답할 겨를이 없도록 만든 게 아니었을까?

 

만약 후줄근한 옷차림의 노인 선생님이 우리 학급을 찾아와서, 소란스런 애들을 제압하느라 내 이름을 고래고래 불러서 데리고 갔더라면 나는 미술반에 들지 않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 198

 

 

 

뱀은 비탈길가의 풀무더기 속으로 몸을 숨겼다. 두 뼘 넓이의 좁은 풀무더기라서 꼬리부분은 노출된 딱한 꼴이었다. 꿩이 급히 숨을 때에는 땅에 대가리부터 박고 본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꼴에 K가 머뭇거리자 뱀이 불쑥 말했다.

 

형씨, 나를 못 보았다 치고 어서 그냥 내려가슈.”

 

기겁한 K는 비탈길을 정신없이 내려갔다. - 218

 

 

 

작가 소개

 

작가는, 방황이 심했던 학창시절을 버텨낸 것은 오직 소설을 창작하는 즐거움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 졸업 후 교직생활을 했으나, 소설 창작에의 미련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결국 정년을 9년 앞두고 명퇴해 다시 소설 쓰기 시작했다. 2009년도에 종합문예지 뿌리지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20167, 12편의 단편소설을 모아 숨죽이는 갈대밭이란 표제로 첫 작품집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인간은 여러 겹의 속살을 지닌 존재다. 작가가 그 속살들 중 한 겹만이라도 여실하게 들춰내 보일 수 있다면 다행이다.”

 

 

 

블로그 : 무심 이병욱의 문학산책 http://blog.aladin.co.kr/749266102

 

http://blog.naver.com/ilovehills

 

이메일 : musim83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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