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알았지만 내가 가수 윤시내의 노래를 처음 듣기는별들의 고향영화가 상영된 1974년이었다. 그 영화 주제곡으로난 열아홉 살이에요.’라는 소녀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윤시내의 가수 데뷔곡이란다. 얼마나 애절하게 부르는지, 부는 바람 앞에 꺼질 듯 말 듯 한 가닥 촛불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가수들은 대개 노래 장르를 하나 택해 부르는데 윤 시내는 그렇지 않다. 장르 불문이다. 발라드도 부르고 락도 부른다. 그뿐 아니다. 정해진 음정에 개의치 않는 아주 자유분방한 창법이다.

독특한 면모는 그녀의 무대의상에도 있다. 언제나, 흰색이거나 검은색 옷차림이다. 또는 흑백이 섞인 차림이다. 결코 빨갛거나 파랗거니 노랗거나 한 유채색 옷차림인 적이 없다. 사실 옷차림에 있어서, 무채색만한 고급색도 없다. 예를 들어 검은색 하나만 보자. 언뜻 검은색 옷이 입고 다니기 편한 듯싶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먼지 하나 티끌 하나 묻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게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일 검은색 옷차림으로 먼지나 티끌 따위를 묻히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칠칠치 못한 사람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까다로운 무채색 옷차림을 고수(固守)하는 가수 윤시내야말로 무대의상에 관한 한 최고의 멋쟁이다.

 

윤시내의 노래 중 제일 내 마음에 드는 게‘DJ에게이다. 이 노래는 다방 많던 7,80년대가 시대배경이다. 그 시절에는 음악다방도 많았고 그런 다방에는 반드시 전문 DJ가 있었다. 윤 시내의 이 노래는 시작부터가 도발적이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잊었던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하니까 절대 그 음악을 틀어서는 안 된다는 절규가 계속 이어진다. 이 노래의 절규는 노래 중간과 끝에 터져 나오는 비명 닮은 외마디 기성(奇聲)에서 절정을 이룬다. “끼야오!”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심의 필력으로는 정확하게 그 기성을 표현하기 어렵다. 이 기성은 노래 속 주인공이 평범한 말로는 더 이상 가슴 아픔을 표현할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내지르는 비명이라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청중들이 그 순간 격하게 호응한다는 게 그 증거다.

더 놀라운 것은 락 가수 이상의 그런 기성을 지른 뒤의 윤 시내 모습이다. KBS콘서트 7080’에서 명 MC 배철수가 그녀를 자리에 앉히고 대화를 나누자, 뜻밖에 그녀는 수줍어서 말도 잘 못하는 열아홉 소녀로 돌아와 있었다. 놀라운 그 변신에서 나는 가수 윤시내가 프로페셔널한 존재임을 실감했다. 윤시내. 그녀는 한국 대중가요 무대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DJ에게가사를 음미해 본다.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 잊었던 그 사람 생각나요 DJ / 언제나 우리가 만나던 찻집에서 다정한 밀어처럼 들려오던 그 노래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잊었던 그 거리가 생각나요 DJ / 네온에 쌓여진 온화한 밤거리 행복한 입술처럼 향기롭던 그 노래 /그 음악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마지막 그 순간이 생각나요 DJ /커다란 눈 속에 말없이 떨어지던 당신의 눈물처럼 젖어들던 그 노래 

 

https://youtu.be/D4dxcyUpE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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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건물이 분명히 있었다. 전깃불을 휘황찬란하게 켰고 방문객들이 줄을 잇기도 했다. 그런데 보름 만에 다시 찾아갔을 때 그 건물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어두운 밤이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

모델하우스는 도시의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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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화백의 동네 그림에는 어김없이 달이 떠 있다. ‘효자동 1988-1’그림에도 달이 떠 있는데 하필 그믐달이다. 초승달과 그믐달은 그 성격이 반대다. 서구에서는 초승달을 new moon, 그믐달을 old moon이라 한다. 즉 그믐달은 낡은 이미지의 달이다. 서 화백의 동네 그림에 그믐달이 떠 있는 것은 그 동네가 낡고 오래된 주택가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게 아닐까?

그믐달은 새벽에 떠서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 사라지는 달이다. 따라서 이 그림의 시간적 배경을 자정 넘은 새벽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어디서  한 잔 걸친 취객 둘이 비틀거리며 2차 할 숙소를 찾고 있어서 자정은 훨씬 넘었다. 동네 모든 집들이 불 끄고 닫은 광경이며, 하물며 밤늦도록 여는 구멍가게조차 문을 닫았으니 새벽이거나 새벽이 돼가는 시간이다.

새벽은 어두운 밤과 훤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중간지대다. 그렇기에 그림의 주조(主調)를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푸른색으로 한 게 아닐까? 또한 푸른색은 수많은 유채색 중 가장 조용한 느낌의 색이므로 새벽시간을 나타내기 적합하다.  사실 푸른색은 슬픈 정서의 뜻일 때가 잦다. 예로써 팝송 ‘LOVE IS BLUE'의 우리 말 번역이 ‘우울한 사랑’이다. 서 화백의 그림 속 동네는 슬픈 정서가 보인다. 보통 ’서민들의 애환(哀歡)’이란 말이 쓰일 때가 많은데 이 그림에서는 서민들의 애(:슬플 애) 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는 다른 이유를 대려한다.

 

그림 제목의 ‘1988’이 무얼 뜻하겠는가. 88 서울 올림픽이 치러진 해를 뜻한다. 서울에서는 국제적 행사 올림픽을 치르느라 떠들썩하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먹고 살기 바쁜 지방 어느 도시 어느 동네의 풍경을, 이 그림은 대변한다. 당시 TV에서 올림픽 주요 경기장면들을 밤새 반복해 방영했지만 이 그림 속 동네에서는 어느 한 집도 시청하지 않는다. 전등 끄고서 잠잘 뿐이다.      

그림의 계절은 가을이다. 88서울 올림픽이 치러진 계절이 가을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증거도 댈 수 있다. 그림 왼쪽 하단에 있는 ‘고추 말리는 광주리’가 그것이다. 고추 농사를 지은 이가 화창한 가을 햇볕에 태양초를 만든다고 고추를 광주리에 담아 주름진 슬레이트 지붕 위에 올려놓고는, 밤이 됐는데도 그 사실을 깜빡 잊은 것이다. 이런 장난스런 에피소드가 바로 서 화백의 ‘숨바꼭질’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숨바꼭질은 우리가 가만히 숨죽이고 찾을 때 가능한 짓이다. 우리는 서 화백의 그림에서 숨바꼭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집 주인이 해가 진 것을 깜빡 잊고 슬레이트 지붕에 방치한‘고추 말리는 광주리’. 그의 숨바꼭질은 결국은 휴머니즘의 한 모습이다. 서민 냄새가 물씬 나기 때문에.

가만 있자. 그의 숨바꼭질 중 가장 거대한 숨바꼭질을 놓칠 뻔했다. 그림 속 풍경 전체가 기울어져 있음을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반듯하게 서 있어야 할 전봇대까지 기울어 있는 밤 풍경. 이는 취객들의 비틀거리는 모습에 답이 있다. 사람이 술에 취하자 눈앞의 풍경까지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모습인 거다. 문자를 쓴다면 유심론(唯心論)적 풍경이다.

 

서 화백의 숨바꼭질이 더 있다. 물론 우리가 숨죽이고서 가만히 찾아야 한다.  하늘에 뜬 그믐달과 거리가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기와지붕, 그 중에서도 추녀마루에 살짝 달빛을 칠해 놓았다. 이 또한 숨바꼭질이다. 달빛은 세상 만물에 골고루 비친다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했다. 문 닫은 가게 앞의 이동식널빤지마루며, 지대 높은 곳을 위해 마련된 시멘트 층계 골목길, 단층 슬래브 건물의 옥상에 만들어놓은 옥탑방 또한 그의 숨바꼭질 장치다.  

서현종 화백의 ‘효자동 1988-1

88올림픽조차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가난한 동네의 자정 넘은 새벽을 그렸다. 하지만 곳곳에 숨바꼭질하듯 마련된 회화적(繪畵的)인 장치 덕에 결코 서러움 속에서만 지내는 모습이 아니다. ()를 환()으로 전환시킬 여력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림의 새벽이 다하고 어떤 모습의 아침이 올지 당신 눈앞에 그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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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금강산을 풍악산이라고도 부른다.

 

()이가 사내를 만난 곳은 풍악산 초입인 단발령 고갯마루다. 사기그릇들을 잔뜩 얹은 지게를 지겟작대기로 간신히 세워놓고 그 그늘에 앉아 쉬려할 때 산발한 사내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사내가 용이보다 먼저 고갯마루에 와 있다가 다가온 건지도 모른다. 용이는 지게 위 그릇들이 무겁고 조심스러워 땅만 내려다보며 고개를 올라왔으니까.

사내는 상투도 못 틀고 산발한 데다가, 길바닥에서 지내는지 옷차림도 걸레처럼 더러웠다. 짚신도 못 신은 맨발이었다. 지게 그늘에서 쉬려다가, 느닷없이 기괴한 꼴로 나타난 사내에 기겁한 용이. 하마터면 지겟작대기를 건드려 그릇들을 다 깨트릴 뻔했다.

그렇게 놀라게 했다면아이고 죄송합니다같은 사과의 말이라도 건네야 옳지 않을까. 하지만 사내는 그런 말은커녕 괴이한 소리를 내었다.

어버버!”

이 사람, 뭐하자는 거야?”

용이는 본능적으로 지게 등태에 숨겨두었던 칼을 찾아 빼들었다. 세상이 흉흉한 탓에 먼 길을 다닐 때에는 이런 칼 하나는 비치해야 했다. 사내는 서슬 퍼런 칼에 놀라 무릎 꿇고 앉더니, 두 손을 비비며 다시어버버소리를 냈다. 그제야 용이는 상황을 알아챘다. 사내는 말 못하는 벙어리였다. 용이는 칼을 다시 지게 등태 속에 넣었다. 그러자 사내 표정이 밝아지더니 이번에는 웬 작은 보따리를 두 손으로 바친다. 용이가 그 보따리를 받아 풀어보았다. 머루 다래만 가득했다. ‘숲에 들어가면 지천인 게 머루 다래일 텐데, 이걸 바친다고?’하는 어이없다는 생각에 보따리를 되돌려주려 하자 사내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용이 지게가지 끝에 붙들어 매단 전대를 가리켰다. 전대에는, 용이가 오늘 새벽 방산에서 길을 나설 때 아내가 볶아준 콩 열두 홉이 들어 있다. 사내 행동이 짐작 갔다. 보따리의 머루 다래를 드릴 테니 그 전대에 들었을 식량 좀 받아먹고 싶다는 뜻이다. ‘바꿔먹자는 것 같지만 사실 구걸하는 거나 다름없다. 사내는 그 동안 산에서 머루 다래 같은 산열매나 따 먹으며 연명하느라 지친 것일까.

이 단발령 고개를 내려가면 내금강이다. 내금강에는 절이 많다. 더러, 전란 중에 불타버린 절도 있지만 다행히 대부분의 절이 무사하며 특히 정도사(正道寺)가 예전처럼 불사를 정상적으로 유지한다기에 용이는 쌀을 얻어올 희망을 가졌다. 십 년 전, 어머님의 천도재를 정도사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마음 푸근한 주지 스님이 용이가 지게에 지고 가는 사기그릇 오십 점 정도는 흔쾌히 받으시며, 그 값으로 공양미로 쓰이는 쌀 한 가마니를 성큼 내주실 게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 용이는 애절히 구걸하는 사내한테 인심 한 번 쓰기로 했다. 전대를 풀어 볶은 콩 두 홉쯤 꺼내 건넨 것이다. 사내는 얼른 땅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두 손으로 볶은 콩들을 받더니 이내으직으직씹어 먹기 시작했다. 볶은 콩이 얼마나 고소하던지, 애절했던 사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행복해졌다. 용이는 어이없어 하다가 보따리에서 머루 서너 알을 꺼냈다. 하지만 쉰내에 먹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자신도 전대에서 볶은 콩을 한 홉쯤 꺼내 입안에 털어 넣고 사내처럼 으직으직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제 전대에 볶은 콩이 아홉 홉쯤 남았다.

사기장은 나라에서 명하는 대로 도자기들만 잘 구워내 바치면 농사 지어먹을 만큼의 녹봉도 나오는 안정된 업이었다. 하지만 근년 들어 왜구들의 침략이 잇따르고 이성계 장군의 위화도 회군이라는 큰 사건까지 나자, 나라가 몹시 어지러워지면서 사기장의 생계마저 흔들려버렸다. 관청의 명대로 도자기들을 구워 바쳐도 녹봉이 제대로 내려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용이와 아들이 사기그릇 백 점을 반씩 나누어 지게들에 지고 아비는 풍악산 정도사로, 아들은 개경으로 각기 집을 떠난 건 그 때문이다.

처음에는 가는 길이 비교적 편한 개경은 용이가 가고, 높은 단발령 고개를 넘어야 하는 정도사에는 아들이 가는 것으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집 앞에서 출발하기 직전에 길을 바꿨다. 정도사 주지 스님을 만나 뵙고 사기그릇들을 사 달라는 부탁을 하려면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안면도 있는 자신이 가는 게 더 좋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부처님께 공양드릴 때 쓰이는 그릇들이야 귀한 놋그릇이지만 스님들이 먹고 마시는 데 쓰이는 그릇들은 목기가 고작일 터. 이번에 갖고 가는 사기그릇들이야말로 그런 스님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는 물건이 될 게다. 용이는 무거운 사기그릇들을 지게에 지고 이 높은 단발령 고갯마루를 향해 겨우겨우 올라오면서 그런 희망적인 생각들로 몸의 고통을 참았던 것이다.

 

사내가 볶은 콩 두 홉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더니, 자세를 가다듬고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 한다. 비렁뱅이치고는 인사성이 발랐다. 고갯마루에서 받는 늦가을 햇살이 따갑다. 용이는 지게가 드리운 그늘에 혼자만 앉아 쉬기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게가지 위에 높이 얹은 그릇들 덕에 긴 그 그늘이 최소한 두 사람은 수용할 듯싶다. 용이는 땡볕을 받고 있는 사내한테 말했다.

이 그늘로 들어오시게.”

사내는 멍청한 표정으로 용이를 볼 뿐이다. ‘, 이 사내가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탓에 벙어리가 된 거겠지.’뒤늦은 생각에 용이는 사내의 한 손을 잡아 지게 그늘 안으로 끌어들였다. 비로소 알았는데 사내는 왼쪽다리마저 절고 있었다. 까치집 같은 산발에 넝마 같은 차림에 다리마저 절다니, 어쩌다가 이런 딱한 꼴이 됐을까.

한동안, 왜구들에다가 홍건적들까지 쉴 새 없이 쳐들어와 약탈과 살상을 일삼다가 격퇴됐었다. 사내가 그 때 식구들을 모두 잃고 몸마저 상한 채 유랑민이 된 걸까? 용이는 자신보다 더 딱해 보이는 사내를 보며 왠지 서글퍼져 저잣거리에서 떠도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 굴 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얄라.”

 

본래 용이네 집안은 남해 바닷가 사기장이 마을에서 살았다. 사기장이 마을은, 도자기를 구워 나라에 바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기장들의 공동체다. 용이의 아버님은 마을에서 가장 지체 높은 지유(指諭)’자리를 맡았다. 도자기도 굽지만 다른 사기장들도 통솔하는 자리다. 물론 나라로부터 받는 녹봉도 마을에서 가장 많았다. 용이 아버님은 도자기 만드는 일을 마치면 언제나 물 빠진 갯벌에 나가 굴도 따고 낙지도 잡았다. 미천한 집 가장이 바랄 게 뭐가 있던가. 그저 식솔들 입에 거미줄 칠 일 없이 사는 것 하나 바랄 뿐이다. 행복한 용이네 집에 불행이 닥친 것은 어느 여름 날 배 타고 와 습격한 왜구들 때문이었다. 왜구들은 웃옷만 걸친 기괴한 차림으로 긴 칼을 휘두르며 사기장 마을을 도륙 냈다. 식량은 말할 것도 없고 도자기들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 버렸다. 반항하는 양민은 그 자리에서 칼로 베 죽였는데 그 때 용이의 아버님도 참변을 당했다. 그 후로 마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마음 편히 도자기를 구울 수 있고 토질도 적합한, 다른 좋은 땅을 찾아 헤매다가 정착한 데가 바로 방산이다. 방산 땅에는 도자기 재료로 쓰는 흙 중 가장 좋은 백토가 곳곳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너무 어렸던 탓에 도자기 일도 제대로 배우진 못한 용이었지만 아버님의 유업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이십여 년이 흘렀다. 그 동안 용이는 마음씨 고운 옆집 처녀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고 아버님처럼 지유도 되었다. 하지만 지유가 된들 뭐하나. 녹봉도 끊기다시피 돼, 먹고 살 길이 아득한데…….

 

용이는 사내와 그쯤에서 헤어질 생각이었다. 헤어지고 말고도 없었다. 그냥 용이가 먼저 지게를 다시 지고 내금강 쪽으로 단발령 고개를 내려가면 되었다. 그러면 사내는 반대방향인 두타연 쪽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고갯마루에 남아 있다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한테 음식동냥을 하든지 할 게다.

막상, 지게 지고 일어나 고개 아래쪽으로 발길을 내디디려던 용이가 생각을 바꿨다.

어이, 나 좀 보시게.”

사내는 소리를 못 듣는 탓인지 어리둥절한 낯이다. 하는 수 없이 용이는 등에 진 지게를 다시 땅에 내려놓은 뒤 강아지한테 하듯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사내가 다리를 절면서 다가왔다. 용이는 손짓발짓으로뒤에서 이 지게가지를 붙잡으며 고개 아래까지 따라와 달라. 그러면 전대에 든 볶은 콩을 다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이가 다시 지게를 지고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과연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지 않는다면 사달이 났을 것 같다. 작은 지게에 사기그릇 오십 점이라니 욕심이 과했던 걸까. 비탈길 아래쪽으로 쏠리려는 그릇들 무게 중심 탓에 용이의 지겟작대기가 연실 후들거렸다. 고개는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하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용이는 고개의 사분지 일쯤 내려오다가 결국 다시 지게를 세웠다. 물건들이 높이 얹힌 지게를 비탈길에 세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뒤의 사내가 두 팔 벌려 지게가지에 얹힌 그릇들을 안아주었기에 가능했다.

목덜미고 겨드랑이고 용이의 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용이는 소매자루로 땀을 닦으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내도 따라 앉으며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하긴, 애당초 벙어리인 사내와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적막하게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눈앞으로 그림같이,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가을 햇빛을 받아 하얀 백옥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로 솟아 있는 검푸른 소나무 잣나무 숲은, 마치 백옥 보석들을 떠받쳐주는 검푸른 색 비단 같다. 저 일만 이천 봉에 허연 운무라도 피어나면 신선들이 바둑 두며 천 년을 보낸다는 선경이 따로 없을 것이다.

이 고개의 전설이 용이한테 떠올랐다.

신라왕조 말기 때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천 년 사직을 왕건에게 고스란히 바치고자 했다. 이를 반대했던 마의태자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측근들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떠났다. 이 고개에 이르러 일만 이천 봉의 황홀한 풍경을 보게 되자, 마의태자는 나라를 다시 일으키려 했던 마음이 덧없어졌다.‘신선세계에 들어왔으니 다시는 속세에 나가지 않겠다며 당신의 머리칼들을 다 잘라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이 고개를 단발령(斷髮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저 봉우리들 중 가장 높은 비로봉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오 리쯤 내려가면 마의태자 묘도 있다니, 정말일까? 용이가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눈앞의 선경을 즐기는데 문득 무슨 소리가 고개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일정하게 반복되는따그닥따그닥소리. 분명,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였다. 용이는 가슴이 섬뜩해져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은 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전란이 그쳤나 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선, 길 복판의 지게를 다른 데로 옮겨놓고 피신하려는데 도와 줄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용이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듣고 피신한 것 같다.

귀 먹은 자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들었지?’

용이는 지게를 질 새도 없이 그대로 질질 끌어다가 길가 숲속으로 옮겼다. 목발이 땅바닥의 튀어나온 돌에 걸려 하마터면 지게가 넘어갈 뻔했다. 말발굽 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더니 살벌한 창끝이 보이고 뒤이어 그 창대를 든 병사의 투구가 보였다. 누런 말 타고 나타난 그 병사 뒤로 검은색 복두를 쓴 사람이 잿빛 말을 탄 모습으로 따르고 있었다. 앞에서 창을 들고 가는 병사는 뒤의 복두를 쓴 사람을 호위하는 역할인 것 같았다. 이윽고 히이잉!’하는 말울음 소리들에 이어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하게 가까워졌다. 병사는 눈매가 사나웠고 복두 쓴 사람은 긴 수염을 날렸다. 길가 숲속에 숨은 용이는 제발 별 일 없기를 부처님께 빌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옷자락들의 펄럭소리가 한껏 커지더니 다시 작아져갔다.

그들이 일으킨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용이는 숲에서 조심스레 나왔다.‘따그닥 따그닥말 타고 고개를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져간다. 아무래도 개경으로 달려들 가는 것 같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이성계 장군의 명을 받고 이듬해 봄, 비로봉에 봉헌할 불사리갖춤 일로 장안사(長安寺)에 다녀가던 중이었다. 이성계 장군이 누구이던가. 왜구와 홍건적을 잇달아 물리치며 온 백성의 구세주처럼 떠오른 대단한 장군이 아니던가. 대국 명나라를 치라는 무리한 명을 거부하며 벌어진 위화도 회군 성사 후, 나라의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 지 2년째 되는 해 늦가을이었다. 이성계 장군은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음을 불사리 봉헌이라는 최고의 제의를 통해 온 백성에게 선언하고 싶었다. 정도전 같은 성리학 선비들을 만나며 역성혁명을 준비한 장군의 마음 한 편에, 이천 년 전 석가모니께서 남긴 불경말씀이 여전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 아닐까.

말발굽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지게를 지고 출발하려는데 사내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궁리하던 용이는 우선 눈에 뜨이는 땅바닥의 돌멩이들을 여러 개 주운 뒤, 바위 뒤고 숲이고 사방으로 마구 던졌다. 깃털 화려한 장끼 한 마리가 진달래 숲에서푸드득!’나타나 멀리 날아가고 뒤이어어버버!’소리치면서 싸리나무 숲에서 사내가 기어 나왔다. 무서움이 여전한 표정으로 말이다.

뭘 그리 무서워해?”

사내는 용이가 하는 말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다면 아까 그들이 멀리서 말 타고 달려오던 소리는 어떻게 용이보다 먼저 들었는지, 영 앞뒤가 맞지 않는 벙어리 사내였다. 다시, 용이가 지게작대기를 짚으며 지게지고 일어서자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들을 붙잡아주었다. 조심조심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땀은 다시 나지만 주위는 서늘해졌다. 하늘 한복판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탓이다. 미시(未時)에서 신시(辛時) 사이쯤 되지 않을까. 늦가을 해는 짧아지는 해다. 정도사가 머지않았지만, 도착한 뒤 그릇 파는 일뿐만 아니라 스님이 힘들어 미뤘던 일들도 도와 드리려면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고개를 다 내려와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폭이 마흔 자는 될 냇물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고 밀삐에 어깨 살갗이 다 벗겨졌는지 몹시 쓰라렸다. 갈증 나는 목도 축여야 했다. 지게를 일단 냇가에 세워놓고 용이는 엎드린 자세로 흐르는 냇물을 훌쩍훌쩍 들이켰다. 오장육부가 시원해졌다. 그런 뒤 웃옷을 벗어, 벗겨진 어깨의 살갗 부분을 찬 냇물로 여러 번 씻었다. 이래놓아야 덧나는 걸 방지한다.

냇물이 얼마나 맑은지 바닥의 조약돌들이 남김없이 다 보였다. 그런데 흐르는 물살에 모난 데가 다 다듬어져 동글동글한 모양들뿐이다. 용이는 짚신들을 벗고 맨발로 물속의 조약돌들을 한 번 밟아보았다. 짐작대로 여간 매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짚신을 신고서 간다면 조약돌에 미끄러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냇물을 건넌 뒤 물에 젖은 축축한 짚신으로 길을 걸을 걸 생각하니, 짚신은 짚신대로 쉬 망가져버리고 발이 짓물러질 게 뻔해서 영 내키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짚신 한 켤레쯤 여분으로 챙겼더라면 좋았을 것을!’용이는 한탄했다.

게다가, 냇물이 어떤 데는 검푸르게 깊고 어떤 데는 연한 빛으로 얕아서 고른바닥도 못 됐다. 일정한 간격으로 큰 돌들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눈에 뜨이긴 하지만 사기그릇 가득 얹은 지게 지고 가기에는 위험천만이다. 천생, 고개를 내려올 때처럼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며 내를 건너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내가 또 보이지 않았다.

이 비렁뱅이자식이 그 새 어디 갔어?”

다리를 저니 멀리 달아나지는 못 했을 것 같다. 용이는 근처 떡갈나무의 굵은 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그것을 휘두르며 부근 숲을 뒤졌다. ‘후다닥!’소리가 난 곳을 봤더니 노루였다. 송아지만 한 노루가 기겁해서 겅중겅중 숲속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웃옷도 채 걸치지 못한 꼴로 숲을 뒤지느라 용이의 상반신은 나뭇가지나 풀잎에 여기저기 긁혔다. ‘이 자식을 놓쳤구나!’체념하며 숲을 나오려는데 가까운 바위 뒤에서 사내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겁먹은 얼굴로 나타났다.

상반신의 긁힌 상처들을 냇물에 여러 번 씻고 난 용이는,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대신 등태 속의 그 칼을 다시 빼들었다. 길이가 한 자밖에 안 되지만 날이 잘 서 있다. 백자를 열 점이나 대장장이한테 주고 장만한 거다. 사내가 듣거나 말거나 용이는 사나운 낯으로 말했다.

자네 말이야, 내가 그만 따라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나를 따라와야 해. 만일 또 제멋대로 달아났다가는 그 때는 이 칼로 죽여 버릴 거다.”

고개를 다 내려가면 전대의 볶은 콩들을 다 주겠다고 한 약속은 얼버무려졌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세상은 강자가 하자는 대로 약자가 순종하며 돌아가기 마련 아닌가.

이 냇물을 건너고 나면, 정도사까지 오 리쯤 된다. 십 년 전 천도재를 지내려고, 단발령 고개 너머에서 가장 가까운 절을 찾다가 정도사를 만난 것이다. 사실상 오늘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그렇다면…… 이 냇물만 건너면 사내를 풀어주자. 남은 볶은 콩들도 그 때 주자. 벙어리가 다리를 절면서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꽤 고맙지 않나?

사실 말이 오 리지, 산길 오 리를 혼자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갈 걸 생각하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용이는 다시 좋게 마음먹었다. 하긴 냇물이 거울처럼 맑고, 붉거나 노랗거나 한 단풍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서 마음을 모질게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용이는 벗은 짚신 켤레를 새고자리에 매단 뒤 바지 대님을 풀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는 지게를 지었다. 사내의 도움을 뒤로 받으며 냇물로 조심조심 들어섰다. 얼음장같이 찬 냇물에 발가락들이 다 얼어 떨어져버릴 것만 같다. 참아가며, 매끄러운 조약돌들을 조심조심 밟으며 나아간다. 연한 물빛으로 얕은 데는 걷기가 괜찮지만 검푸른 물빛으로 깊은 데는 허리춤 가까이 냇물에 젖어, 사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고생깨나 했을 게다.

내를 거의 다 건너는가 싶었는데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지게 뒤의 사내가 바닥의 매끄러운 큰 돌에 휘청미끄러지면서 지게가지에 얹힌 사기그릇 스무 점 가까이가 물에 떨어져 버렸다. 물 깊은 곳이었다면 충격이 덜해 덜 상했을 텐데 얕은 데라 바닥의 조약돌들에 세게 부딪치며 대부분 금이 가거나 깨져버렸다. 용이가 몸을 재빨리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 용이는 본능적인 동작으로 지게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지게가지에 남은 그릇들을 두 팔로 안았다.

냇물에 자빠지며 입은 저고리가 반 가까이가 벗겨진 사내가 처연한 낯으로 용이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사내 가슴에 검게 문신된 한 글자이 용이의 눈에 뜨였다. 섬광처럼 사내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내는 왜구였다. 용이는 두 팔로 안은 그릇들을 냇가에 내려놓고는 지게 등태에서 칼을 빼들었다.

이 개새끼!”

다스케테! 다스케테!”

두 손을 비비며 연실 외치는, 애걸하는 표정으로 봐살려 달라는 왜놈 말인 듯싶다.

이 개새끼야. 우리 아버님이 니네 칼에 돌아가셨어. 이 원수 놈의 개새끼!”

도우조 다스케테! 도우조 다스케테!”

어떻게 왜구 새끼가 풍악산 일대를 떠돌고 있었을까. 약탈하러 동해안에 왔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낙오된 놈이 아닐까. 용이가 쳐든 칼 앞에서 이제는 삶을 체념한 듯 두 눈을 감고서 합장 자세로 물속에 앉아 있는 사내였다. 그 때 잠자리 한 마리가 부근 하늘을 맴돌다가 용이의 높이 쳐든 칼끝에 무심히 내려앉았다 

​*   *   *  

   

입춘을 보름 지났지만 겨울 한기가 남아 있다. 어쩌다 핀 들꽃들도 큰 것은 없고 자잘한 것들뿐인데, 낮의 햇빛은 화사하지만 밤만 되면 싸늘한 추위에 꽃잎들을 쉬 오므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이는 가마 일을 서둘렀다. 백자사발들을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놓아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아서다.

백자사발은 백토가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백토 캐내는 일을 아들이 맡았다. 겨우내 언 땅에서 캐내는 일이라 여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용이는 아들이 안 돼 보이지만 조금도 돕지 않았다. 녀석 스스로 받는 벌이기 때문이다. 녀석은 지난 해 가을, 개경으로 지고 가 팔고 오라 했던 사기그릇 오십 점을 길가 주막의 여자에게 홀려 닷새 간 잠자리 값으로 다 넘겨버리고는 추레해진 꼴로 집에 돌아왔었다. 그 때, 용이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집에서 내쫓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녀석의 나이 벌써 스물. 아비처럼 열여섯 나이에 장가갔더라면 자식을 둘쯤은 낳았을 게다. 빈한한 집안 형편 탓에 장가를 못 보낸 아비에게도 죄가 있지 않겠는가, 하여 침묵으로 아들의 허물을 반쯤은 용서했다.

백토는 캐어낸 그대로 사용할 수 없다. 녀석은 캐낸 백토를, 미리 파 놓은 물웅덩이에서 수십 번 체로 걸러 불순물 하나 없는 고운 백토로 바꾸는 일까지 이어나갔다. 차디찬 웅덩이물이라 녀석의 손과 발은 벌겋게 터 버렸다. 그 험한 고생 보름여 만에 다섯 수레 분이나 곱디고운 백토를 작업장 한 편에 마련해 놓았다. 반쪽얼굴이 돼버린 아들 녀석의 등을 그제야 용이는 쓰다듬어주었다. 아들은 고개 숙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부자가 그러고 있는 작업장은 네 기둥 위에 초가지붕만 얹혀있는, 사방이 트인 공간이다. 가까운 데서 부자의 정겨운 모습을 훔쳐본 어미는 돌아서서 흐느꼈다.

본격적으로 백자사발과 향로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었다. 용이가 하는 작업을 아들이 곁에서 거들며 부자가 함께 나선 것이다.

백토에 점성이 있는 다른 지역의 흙을 일정 비율로 보탠 뒤, 물을 줘가며 주물러서 차지게 반죽했다. 이것이 첫 번째 단계다. 차진 반죽덩이를 물레에 올려놓고 돌려가며 사발과 향로가 될 수 있는 기본형태들을 만들었으니, 두 번째 단계다. 세 번째 단계는 이 기본형태들을 부자가 손으로 섬세하게 매만져, 사발과 그 뚜껑 및 향로 모양으로 빚어낸 것이다. 이것들을 그늘에서 잘 말리는 일이 네 번째 단계인데 아직은 추운 날씨 탓에 본래 열흘 정도면 충분할 게 보름이나 걸렸다. 작업장이 사방이 트인 곳이라, 마르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통풍은 걱정할 게 없었다.

충분히 잘 마른 것들을 수레에 조심조심 실었다. 사이사이마다 볏짚을 풀어, 혹시 부딪치는 일이 생겨도 그 충격이 흡수되도록 했다. 아들이 수레 앞에 서서 손잡이를, 아비는 수레 뒷부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작업장에서 가마가 있는 데까지는 마흔 보쯤 된다.

출발하거라.”

네에.”

짧은 거리임에도 수레가 가는 길 가에는 냉이들이 파릇하고 고들빼기가 연보라색 꽃을, 씀바귀가 노란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가마 앞에 도착했다. 이제는 초벌구이 차례다. 모름지기 자기는 흙이 불을 만남으로써 이뤄지는 예술이다. 용이는 가마 안에 들어가, 밖에서 아들이 건네는 것들을 하나하나 받아 불과 잘 어우러지도록 정연하게 쌓았다. 그런 뒤, 소나무장작들로 빈 공간을 빼곡하게 채우면서 가마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가마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뒤로 물러선 용이를 대신해 아들 녀석이 아궁이와 도수리구멍들을 통해 가마 안의 불길을 살펴가며 장작들을 보탰다.

불기운이 강해져 가마 밖까지 열기가 뜨겁게 전해졌다. 용이는 이 때부터 아들을 쉬게 하고 혼자 가마를 지켰다. 자신의 오래된 가마 불 감각이 절대로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달라져가는, 가마의 독특한 흙냄새만으로도 불의 세기를 느끼는 용이. 불이 너무 강했다가는 가마 안의 작품들이 찌그러지거나 깨지거나 옆의 것과 붙어버리거나 한다. 물론 약해서도 안 된다. 아주 적당하게 뜨거운 불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 양 극단을 피하라는 부처님의 중도 (中道) 말씀처럼.

지난가을, 용이는 사기그릇을 오십 점이나 지게에 지고 내금강 정도사로 가다가 냇물에서의 사고로 반 가까이 깨뜨려버렸다. 그래도 주지 스님이 남은 여남은 그릇들을 쌀 한 가마니 값으로 그냥 쳐주었다. 게다가, 스님은 용이한테 장안사 신관(信寬) 스님을 찾아뵙도록 주선하여 쌀을 두 가마니나 별도로 더 얻게 해 주었다. 잇달아 흰 쌀을 세 가마니나 얻게 된 일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용이가 장안사로 생면부지인 신관 스님을 뵈러 갔을 때 일이다.

어둑할 때에 장안사에 도착해 사천왕문으로 들어서던 용이는 기절초풍할 뻔했다. 사천왕 못지않게 무섭게 생긴, 눈썹이 시커먼 스님 한 분이 염주를 손으로 매만지며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방산에서 오시는 보살님. 어서 오십시요.”

당황한 용이는 정도사 주지 스님이 적어주신 소개문도 꺼내 보이지 못한 채 합장하며 고개 숙였다.

소승은신관이라 하옵니다. 아무 말씀하시지 말고 조용히 소승을 따라오십시요.”

신관 스님은, 불경 외는 소리가 나는 대웅전 뒤편의 한 요사(寮舍)로 용이를 안내했다. 다른 사람은 없는 방에서, 스님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고…… 송헌시중께서 사람을 보내 전하시기를, ‘명년 4월에 금강산 비로봉에 불사리를 봉헌하려는데 그에 필요한 백자사발과 향로를 장안사에서 해결해 주십시요.’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소승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 미륵불께서 제 꿈에 나타나셔서여기서 멀지 않은 땅 방산이라는 데에서 한 사기장이 불원간 장안사로 찾아올 것이니 사리갖춤 백자 일을 부탁하면서 그 값으로 공양미 두 가마니를 주거라.’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송헌시중이란 이성계 장군을 가리키는 말이다. 용이는 놀랍고도 감사한 마음에 뜨겁게 눈물 흘리며, 하신 말씀대로 사리갖춤을 위한 백자 생산을 약속드렸다. 부담스런 마음고생이 만만치 않겠지만 비천한 사기장에게 얼마나 영광된 책무이던가. 하물며 식솔들을 편히 배부르게 할 백미를 두 가마니나 더 얻게 됐으니.

신관 스님은 말씀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백자들을 만드시게 될 때에 마을 사람들한테 송헌시중 얘기를 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저 금강산 장안사에서 귀하게 쓸 백자를 주문한 거라고만 말씀하면 될 듯싶습니다. 잘못 소문이 났다가는, 그분이 악한 무리들로부터 위해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도탄에 빠진 만백성을 구하실 분입니다. 허허허……. 모쪼록 힘이 많이 드시겠지만 보살님 식솔의 도움만으로 백자를 만들어주시기 당부 드립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낭설이 항간에 퍼질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말씀이라고 감히 제가 거스르겠습니까, 스님.”

인연에 따라 심용 보살님과 소승은 한 배를 탔습니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가마의 초벌구이나 재벌구이는 아낙네가 겪어야 하는 산고나 다름없다. 그럴 때 지아비는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용이는 가마 불을 지키며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다.

아들 녀석은 오랜만의 여유에, 가마 부근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에서 마냥 퍼질러 자고 있다. 추운 밤 날씨임에도 이불을 냅다 걷어차기까지 하며 잔다. 용이가 그런 아들의 이불을 끌어다 덮어주며 다시 가마 불을 살피려할 때 하늘에서 백토가루를 닮은, 때늦은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금강산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까? 그 비렁뱅이 왜구 놈이…… 추운 지난겨울을 잘 지냈을까?’

냇물에서 놈을 단 칼에 죽일 수 있었건만 용이는 칼을 거두고 말았다. 살아생전에 사람의 피를 칼에 묻히는 일 없이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그 날, 남은 사기그릇들을 다시 지게가지에 얹고 떠나는 용이 뒤에서 사내는 연실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라 외쳤다. 그 후, 잇달아 용이한테 흰쌀이란 귀한 양식이 세 가마니나 생기고 비로봉에 봉헌하는 사리갖춤 일에 미천한 사기장이로서 한 역할 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은 그 냇물에서 하찮은 왜구일지언정 따듯한 자비심을 베풀었기 때문이 아닐는지.

 

먼동이 트기 전에 싸락눈이 그쳤다. 무겁게 뜬 해가 중천에 자리 잡을 때쯤에서야 초벌구이가 끝났다. 용이는 아들한테 피해 있으라.’ 당부한 뒤, 꽉 막아두었던 아궁이의 흙부터 긴 작대기로 부숴버렸다. 순간 뜨거운 열기가 가마 안에서 밖으로화악!’ 뻗쳐 나왔다. 다른, 막아뒀던 도수리구멍들의 흙도 다 부숴버리면서 가마 주위는 한동안 뜨거운 열기가 맴돌았다. 용이가 작대기를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싸리비를 들고 선 아들한테 말했다.

뒷일은 네게 맡기마.”

네에 아버님. 그런데 제가 길의 눈을 비로 쓸기는 했는데…… 조심하셔야 합니다.”

뒷짐 지고 돌아선 용이를, 아내가 달려와 부축했다. 비로 눈길을 쓸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미끄러운 데다가, 잠까지 쏟아지는 지아비가 혼자 걸어오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내외는 조심조심, 칠십 보쯤 떨어진 집까지 눈길을 함께 걸어갔다. 사립문 따위는 달 필요가 없는,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방산 마을이다. 용이는 편히 집 마당으로 들어선 뒤 아내한테 말했다.

고생 많구려.”

무슨 말씀을…….”

용이는 아내가 방문을 열어주자마자 그대로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코를 드렁드렁 곯으며 밀린 잠에 빠졌다. 아내는 지아비의 저고리와 바지를 조심스레 벗기고는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식량걱정 하나 없이 지난겨울을 났다. 흰 쌀이 세 가마니나 집에 들어오다니, 이게 꿈이 아닌가 싶어 자신의 손끝을 한 번 깨물어보기까지 했었다. 흰 쌀뿐인가. 소나무장작들까지 다섯 수레 분이나 집에 들어왔다.

이런 것이 다, 지난가을 장안사에서 보내준 것이다. 지아비가 장안사에서 하룻밤 묵은 뒤 빈 지게만 지고 편히 귀가한 다음 날, 장안사 젊은 스님들이 쌀 세 가마니와 많은 소나무장작들을 수레 둘에 나눠싣고 여기 집 앞까지 찾아와 내려놓고 돌아갔다.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스님들은 세 번이나 더, 소나무장작들을 수레로 실어다 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지난가을의 일만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합장한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뻐꾹 뻐꾹 뻐꾹……

방산 마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었다.

용이는 백저포로 갈아입고 조건을 쓴 뒤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 한복판에 깔아놓은 돗자리에 앉아, 품안의 사발을 꺼내놓았다. 이 사발은 명문을 새길 대상으로 선정된 두 점 중 하나다. 어제까지 용이는 이틀 간, 선정된 사발 두 점의 명문 새기기에 매달렸다. 한 점은 완료했으나 다른 한 점은지금 품에서 꺼내놓은 이 사발은 반쯤 하고 말았다. 왜냐면 이 사발의 굽에 새겨야하는 마지막 명문이 용이로서는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서, 지친 몸과 정신으로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관 스님이 한지에 붓글씨로 적어 인편에 보내주신 명문이다.

사실, 명문을 새길 사발 두 점을 선정하는 데만도 사흘이 걸렸다. 초벌구이를 마친, 가마에서 나온 백여 점의 사발들을 하나하나 살핀 끝에 스무 점을 일단 추렸고 그 중 명문을 새길 두 점을 다시 추린 것이다. 명문을 새기는 대상에서 제외된 열여덟 점의 사발도 나중에 함께 유약을 칠해 가마에 넣어 재벌구이를 거치면, 빛나는 백자사발이 스무 점이나 탄생한다.

지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재벌구이를 준비하느라 가마에 가 있고 아내는 마을에서 혼자 사는 가난한 노인네 집에 가 있다. 쌀도 퍼다 드리고 부엌일도 돕고 그러는 것 같다.

화사하게 떨어지는 봄 햇살들을 한 번 담아보려는 것같이 용이는 눈앞의 사발을 두 손으로 조용히 쳐들어보았다. 무늬 하나 없기에 오히려 수많은 무늬가 담겨 있는 듯 여겨지는 깊은 담백함과…… 세속의 모든 욕심들이 다 씻겨나가고 따듯한 마음 하나 남은 듯한 순백함의 결정체였다.

사발의 둥근 굽이 보이게 뒤집어서 내려놓았다. 방산 사기장의 명성을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남기는 작업에 들어갈 참이다. 용이는 떨리는 가슴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혔다. 이윽고 조각칼로 천천히 그 굽에 한 자 한 자 명문을 새겨나갔다.

辛未四月日防山砂器匠 沈竜 同發願比丘 信寬

열아홉 자를 다 새기고 나자 눈부신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이 갑자기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용이는 그 까닭을 좀체 헤아리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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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길을 걷다 주민센터에 걸린 시정목표를 보았다.

"춘천, 시민이 주인입니다!"

순간‘춘천’과 ‘시민’사이에 쓰인 쉼표(,)에 매료되었다. 만일 그 쉼표가 쓰이지 않았더라면 이런 문장이었을 게다. “춘천시는 춘천시민이 주인입니다!

즉 지금의 문장보다 네 글자나 더 많은 문장이었을 테니 작은 쉼표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 한 문장을 보다 간략하게 만들면서 살짝 긴장감도 주었으며, 그에 따라 나 같은 무심한 시민이 발길을 멈추고 문장의 뜻을 되새겨보게도 된 것이다. 정말 대단한 쉼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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