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동해곰치라는 식당 간판이 좋다. 절대 나는 이 식당 주인과 아무런 관련도 친분도 없다.

 

내 기억으로는 동해곰치라는 간판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다. 왜 그럴까, 이제 곰곰이 헤아려본다.

첫째. 우선동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좋다. ‘동해는 우리나라 바다다. 우리나라 바다에 남해, 서해도 있으나 나는 동해가 이미지 상으로는 아무래도 제일 낫지 않나 싶다. 해가 밝아오는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점에서 남해나 서해보다 귀하면서 친숙한 느낌을 주는 때문이 아닐까. 하물며 애국가의 첫 구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인 데에서는 더 말할 게 있으랴.

둘째. ‘곰치라는 단어의 이미지도 좋다. ‘곰치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이렇게 풀이했다.

흐물흐물한 살집과 둔한 생김새 때문에 물텀벙, 물곰이라고 불린다. 몸은 길며 탕으로 끓이면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서 음주 후 속 풀이에 좋다.’

과연곰치는 술꾼들이 술 마신 다음 날 해장하러 찾을 만했다.

더 쪼개서 살핀다.‘곰치는 이렇게 풀이된다. ‘일정한 모양이나 형태, 속성 따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혹은 서술어의 어간 뒤에 붙어, 그러한 모양이나 형태, 속성 따위를 띠는 물고기임을 나타내는 말.’

따라서 곰치는 곰 닮은 물고기라는 뜻으로 풀이해도 될 듯싶다.

우리에게 얼마나 친숙한 단어인가.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부터 곰은 등장한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그 부분을 소개한다.

여자의 몸이 된 곰(웅녀)은 혼인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이에 환웅이 잠시 인간 모습으로 바꾸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바로 단군왕검이다.

, ‘은 우리 민족의 어머니 같은 고귀한 존재이다. 고귀하지만 그렇다고 거리감이 있지는 않다. 그 예로써 이란 말 앞에 미련한이란 수식이 잘 붙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눈치 빠른 사람보다는 미련한 사람에 더 정감이 가지 않나?

그런 곰을 연상시키는 물고기가 곰치인 거다.

 

셋째. ‘동해곰치는 발음하기 좋다. 쪼개서 살핀다. 우선 각 글자에 쓰인 모음들의 배열이다. ‘= = ㅏ ㅣ = = 임을 봤을 때 동해곰치란 발음은 ,모음의 반복임을 깨닫게 된다. 같은 모음의 반복은 리듬을 낳는다. 비록 네 글자에 불과한 식당 이름이지만 발음했을 때 친숙하게 입에 붙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마지막 글자에서, ‘이라는 격음이 주는 청각인상의 강조를 빠트릴 수 없다. 귓전에 남은 격음는 기억으로 이어졌다.

 

넷째. ‘동해곰치라 할 때 그 시각적 이미지가 아주 좋다. 우리에게 동해는 늘 푸르고 맑은 바다이며 곰치또한 얕은 하천이 아닌 깊은 바다에서나 잡는 물고기이다. 두 단어 모두 바다 그 자체이거나, 바다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다. 전 날 술을 마셔 쓰린 속을 동해곰치가 바다처럼 시원하게 풀어줄 거란 희망을 가질 만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동해곰치식당 사장과 아무런 친분도 관계도 없다. 그저 간판 이름이 좋을 뿐이다. 60년대 대중가요에 노란샤츠 입은 사나이가 있다. 그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맞다. 곰치는 결코 잘난 물고기는 아니지만 그 씩씩한 생김생김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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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유정의산골 나그네를 처음 읽은 때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비록 짧은 단편이지만 그 강렬한 인상에 한동안 다른 소설들을 볼 생각을 못했다. 소설 보는 재미에 밤잠을 지새우곤 하던 때였다. 학점 따는 일보다는 다양한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는 일에 영일이 없었던 거다. 사실 당시 어려운 집안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나는 만사 제치고 학점 따는 일에 우선을 두어서, 학업성적 우수생에게 주는 장학금이라도 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힘들게 살던 부모님의 이마 주름살을 조금이나마 펴 주는 효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 무심한 아들이라니.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참회한다.

 

얘기가 옆길로 나갔다. ‘(2차 세계대전)전후문학 전집의 실험적인 소설들에 빠져 지내던 내가 우리나라 30년대 향토 작가 김유정의 산골 나그네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병든 남편을 챙기기 위한 들병이 여인의 행각은 내용상 비극이지만 외관상으로는 희극이었다. 비극과 희극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스토리 전개.

특히 소설 끝의 문장이야말로 반세기가 돼가는 지금도 내 뇌리 속에 선연히 남았다.

 

<어디선지 지정치 못할 늑대 소리는 이산 저산서 와글와글 굴러 내린다.>

 

한밤중에 병든 남편을 이끌고 달아나는 들병이 여인.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처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특히 늑대 소리가 와글와글 굴러 내리는 것으로 표현한 데에는, 청각적인 대상을 시각화한 공감각적 기법이라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싶었다. 30년대 김유정 작가가 구사한 첨단의공감각적 표현이라니!

소설 앞부분에, 홀어머니가 장가 못 간 아들을 둔 간단치 않은 시름을 에둘러 표현한 구절이 있다. 이 또한 압권이다. 옮겨 본다.

 

<산골의 가을은 왜 이리 고적할까? 앞뒤 울타리에서 부수수하고 떨잎은 진다.

바로 그것이 귀밑에서 들리는 듯 나직나직 속삭인다.

더욱 몹쓸 건 물소리, 골을 휘몰아 맑은 샘은 흘러내리고 야릇하게도 음률을 읊는다.

! 퐁 퐁! 쪼록 퐁!>

 

나중에 알았는데 이 좋은 표현들을 다른 사람들도 내버려두지 않았다. 의암댐 부근 길가에 세운 김유정 문인비에 동판으로 새겨놓았다.

김유정 문인비

돌아가신 아버지가 예총 강원도 지부 일을 할 때 (196870) 세운 비라서 사실 나로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다. 요즈음은 어쩐지 모르겠는데 그 당시 예총 일은 무보수 봉사 직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문인비 건립의 주무를 맡아 부족한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거두리의 야산을 팔았다. 누님이 내게 한 말이다.

글쎄, 아버지가 그 야산을 팔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기만 했어도 후손들에게 대단한 유산이 돼서, 사는 고생이 덜하지 않았겠니? 아버지가 그 때 야산 팔아 문인비 세우는 데 보태고 책도 낸 뒤 남은 돈 몇 푼으로는 뭐한 줄 아니? 집에 전화 한 대 놓았단다. 기가 막히지.”

그 시절 우리 집은 전화도 있는잘사는 부자집처럼 남한테 보였었다. 사실 독채 전세로 사는 집이었는데.

아버지는 김유정 문인비를 세운 뒤 김유정 전집도 펴냈다. 당시 대학생이던 내가 그 전집을 읽다가 산골 나그네에 이르러 충격을 받았던 게 아닐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한 일은 너무 앞선 일이었다. 그 후 30년 가까이 흐른 뒤 김유정 문학촌이 춘천에 들어섰으니. 아아 아버지. 저는 불효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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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이 완연하다. 그늘진 담장 구석에, 지난 겨울에 언 눈이 손바닥만하게 남아 숨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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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일은 여하튼 사건이다. 비 내리지 않았더라면 별 일 없었을 일상(日常)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편하게 이뤄지던 외출도 비 내리면 불편하게도 우산을 따로 들어야 한다. 물론 우산 없이 그냥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온몸이 빗물에 젖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모습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거나 비루먹은 강아지 꼴이 되거나.

비가 내리면 지붕 위나 마당에 놓고 말리던 고추들도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태양초 만드는 일을 망친다. 어디 그뿐인가. 하루 벌어먹고 사는 막노동 사람들은 일 나가지 못해 한숨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런 노래가 있다. “에헤이 에헤이이 에헤이 엥헤이 엥헤야 엥헤이 엥헤야 / 우리가 놀면 놀고 싶어 노나/ 비 쏟아지는 날이 공치는 날이다

광장이나 인근학교 운동장을 빌려 하려던 단체행사는 며칠 뒤로 미루거나 그도 아니면 대폭 축소해서 강당 같은 실내에서 해야 한다. 행사의 낯이 서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그림 속 춘천에 비가 내린다. 당장 일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그렇지만 새삼스레 되살아나는 두려운 기억이 있다. 오래 전 춘천은 수해가 잦았던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장마 비에 도시의 반 가까이가 수해를 입은 적도 있었다. 두 개의 강이 봉의산 근처에서 만나 도시를 감싸듯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춘천에 비가 내리면 알게 모르게 우리 가슴 한편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을 터.

서현종 화백의 이 그림에는 그런 불안감이 보인다. 춘천의 하늘도, 자랑거리인 봉의산도, 거리도 온통 무채색 빗줄기에 젖어 가는데이런 상황이 마냥 계속된다면 봉의산 정상에 삐죽이 솟은 송신시설에 벼락까지 치면서 도시는 결국 침몰할 것 같다. 이런 불안감을 견디게 하는 게 그림 좌측 하반부, 승용차의 붉은색 브레이크 불빛이다. 본디 붉은색은 뜨거운 정열이거나 불안감이나을 상징한다. 춤추는 여인의 붉은 옷차림은 정열을, 소방서 차의 붉은 외관은을 뜻한다. 하지만 서 화백의 이 그림에서 붉은색 브레이크 불빛은, 무채색의 어두운 세상에 대응하는 유일한 유채색으로써 전체 풍경의 좌우균형과 비 내리며 엄습한 불안감까지 잡아준다.

전체 풍경의 좌우균형이란 말은 이런 뜻이다. 그림 상반부 우측의 봉의산이 검게 넓은 면적을 차지했는데 그에 맞서듯 그림 하반부 좌측의 차가 하얀색으로서 넓은 면적을 차지했으며 그 때 차의 붉은 브레이크 불빛이 한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이 그림의 비는, 해 지기 전 오후에 갑자기 내린 비다. 그 까닭에 갑자기 어두워진 주위에 놀라 상가들은 전등들을 켰지만 도로 변 가로등들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원래 비 그림은 수채화가 제격이다. 물감으로 그리므로, 페인트로 그리는 유화와 달리 그림 대상인를 더욱 실감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 화백의 비 오는 춘천그림은 물감 아닌 재료(페인트? 크레파스?)로 거칠게 그려졌음에도 질감이 그에 못지않다. 못지않을 정도가 아니라 빗물이 캔버스 밖으로 넘쳐날 것 같다.

 

이 그림에서도 우리는 숨바꼭질 놀이를 해야 한다. 우선 봉의산 정상에 높이 꽂힌 송신시설이다. 그런 시설물들이 모조리 제거된 요즈음의 봉의산과 다른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최소한 2019년에서 몇 년 전 춘천이 배경이다.

도로에서 마주 오는 차가 하이빔을 켰음을 놓쳐서도 안 된다. 차의 하이빔은 비가 급작스럽게 많이 내려서 운전하는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불안감과 긴장은 공포영화의 필수 요소다. 이 그림에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여하튼 우리는 그림에 배인 긴장과 불안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하얀 차 브레이크 등에 쓰인 붉은색이, 차 말고도 멀리 작게 한 점 찍혀 있음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게 무엇일까? 내리는 비 때문에 시야가 분명치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다. 하긴 굳이 알 필요도 없다. 비 내리면 멀쩡했던 풍경에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하고 그렇다면 그 정체를 몰라도 그만이다.

서현종의 비 오는 춘천그림은 일상에 잠복해 있다가 비가 내리면서 드러나는 도시민의 불안을 그렸다. , 굳이 무슨 내용을 그렸는지 알려고 골몰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그림을 보며 당신 가슴 한편이 불안해진다면 그것으로써 충분하다. 시험 문제를 푸는 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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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 춘심산촌의 관정 개통은 38일에 이뤄졌다. 38, 관정 속 모터에 마중물을 붓고서 전기를 넣으면 파바박!’ 소리에 이어 콸콸콸!’지하수가 별 일 없이 잘 나왔던 것이다.

그 지하수가 배출되는 수도 시설은 세 군데다. 관정 바로 옆의 수도와, 농막 앞 개수대의 수도와, 농막 안 씽크대의 수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3월 1일) 모처럼 관정 개통을 일주일 앞당겨봤다. 지난겨울이 예상 외로 덜 추웠을 뿐만 아니라 요즈음 맞는 봄 햇살이 아주 화사했기 때문이다.

관정 쇠판 덮개를 열고 들어가 모터에 관을 이은 뒤 마중물을 부었다. 전기를 넣자 이내 파바박!’소리에 이어 관정 바로 옆의 수도꼭지에서 지하수가 콸콸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날씨가 예년보다 따듯했으니까 일주일을 앞당겨 개통해도 되는 것이다.’

나는 그 다음으로 농막 앞 개수대까지 부지런히 걸어가서 수도꼭지를 틀었는데 이런, 물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농막 안 씽크대의 수도도 마찬가지였다. 그 수도꼭지들을 틀어놓은 채 저물녘까지 기다려봤지만 변화가 없었다. 물론 관정 바로 옆의 수도에서는 줄기차게 지하수가 나왔다.

깨달았다. 관정에서 농막까지의 거리가 30m. 그 사이의 땅이 여전히 얼어 있다는 게 아니겠는가. 따라서 그 사이의 땅까지 다 녹으려면 천생 일주일쯤 지나야 할 듯싶었다.

 

몇 년째 춘심산촌의 관정 개통은 38일에 이뤄졌다. 누구도 그 날짜를 어길 수 없다. 춘심산촌 또한 대자연의 일부이며 대자연의 순행(順行)은 어느 한 개인이 어길 수 없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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