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시절, 어느 날이다. 처음 듣는 남자 가수의 숨이 끊어질 듯 애절하게 부르는 노랫소리에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비는 오는데 ”
한 세기에 한 명 정도 나올 절창(絶唱)의 가수, 배호의 등장이었다. 데뷔 음반을 3년 전에 냈건만 별 반응을 얻지 못해 무명 가수로 있다가 ‘삼각지 로터리’한 곡으로 대한민국 대표 가수처럼 떠오른 배호. 그 후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두메산골’ ‘안녕’ ‘파도’ ‘누가 울어’ 등등 수많은 노래들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천형(天刑) 같았던 신장염이 도져 결국은 나이 서른도 못 넘기고 71년 늦가을에 숨을 거두었다.

배호가 외국 노래들도 취입해 불렀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나는 배호가‘거룩한 천사의 음성. 내 귀를 두드리네’하며 시작되는‘희망의 속삭임’노래까지 취입해 불렀다는 걸 기억한다. 슬프고 어두운 창법의 그가 그런 밝은 내용의 노래를 부르니 세상에 그런 비극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외국 노래 중에‘화이트 크리스마스’도 있다. 미국의 빙 크로스비가 중후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른 화이트 크리스마스와는 다른 느낌의 배호 노래.
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를 그린다면 이럴 때 한 번은 들어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