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화 파워
쑨자오둥 지음, 차혜정 옮김 / 씽크뱅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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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전쟁 중?

언론에서 환율 전쟁이라는 단어를 누구나 들어 보았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에 이어 중국 위안화의 절상에 대한 국제 사회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중국이 고자세로 일관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화평굴기(중국의 위치에 걸맞은 행동과 책임을 다함)을 내세우기 시작한 2003년 부터 이미 중국은 국제 경찰로서 역할 해온 미국의 지위를 탈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경제, 사회, 문화적 작업을 펼치고 있으며, 지금은 그 야심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힘으로 센카쿠 열도 영토 분쟁에서 일본을 압도한 소식에 어느 나라라도 씁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외교의 특징은 자국 이익을 위해 상대국을 힘으로 압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중국 자본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고 있다.

[위안화 파워]는 앞으로 위안화가 세계 기축 통화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 토대는 엄청나게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다. 이미 중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서 여러 수치에서 미국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국정부의 기조도 이와 같다. 앞으로 중국 정부는 위안화의 국제통화화를 위해 진력을 다할 것이다. 아시아 여러 국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무역 상대국과 통화 스왑 협정을 맺을 것이다. 현재 행해지는 견제는 중국 자본시장이 미성숙되었다는 것이지만, 지금의 시나리오 라면 위안화가 달러, 유로화와 함께 세계 3대 화폐가 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위안화 파워]는 다분히 의도적인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의 야심은 크고 성급한 것 처럼 보이지만 중국을 움직이는 브레인은 냉정하고 철저히 계획적이다.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비단 경제적인 지위 뿐만이 아니다. 자본시장의 성숙함,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도 중요하고, 기축통화의 위치에 서기 위한 논리적이고 역사적인 증거도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 책은 그러한 작업이 중국 내에서 얼마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통화 뿐만 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국은 이러한 모습을 보인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현실은 그야 말로 혼란스러운 정국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은 가능하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없다. 정부와 학자들의 혜안이 더욱 필요한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젊은 시절의 10년이 후의 30~40년을 바꾼다고 한다면, 지금의 국제 시장이 그에 비유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이 새롭게 판도가 짜여가는 국제 시장의 새로운 태동, 젊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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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인가?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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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은 마차나 자동차의 바퀴 연결막대를 고정하는 핀이다. 저자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존재, 조직의 핵심인재를 이 '린치핀'에 비유했다. 이제 세상은 열정과 활력이 넘치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린치핀을 원한다. 우리 안에 잠든 린치핀의 재능을 깨울 때, 당신은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책을 읽고 생각해 보았다. 어떤 것이 좋을까?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것?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자동차에 없어서 안 되는 것이 어찌 린치핀 뿐이랴, 자동차 전문가 들에게 물어보라 자동차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 무어냐고, 아마 실소를 할 것이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의 숫자만 해도 20,000~25,000 가지 정도 된다. 재밌는 것은 이 중 어느 부품 하나도 우습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비단 린치핀 뿐만 아니라,

저자는 현대의 인간을 틀에서 찍어낸 붕어빵 같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의 분화된 역할에 맞게 만들어 지고 대량생산 되어지는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중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극히 단순한 사물 조차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보는 거울의 내가 어색하듯이, 우리가 같다고 생각하는 그 어떤 것도 완전히 같지 않다. 실제로 인간은 공장에서 찍어낸 형틀이든 완전히 동일한 것이란 없다. 스스로 선택해서 살든, 어떤 틀에 맞추어 커리어를 쌓아가든, 그 어떤 방법이든 인간 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수십만의 학생들이 이 순간 모두 비슷한 문제집을 가지고 똑같은 수능이라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공부학 있다. 아마도 이들 중 대다수는 대학에 들어가고 똑같이 토익을 공부하고, 자격증을 공부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렇다고 해서 유일한 그 어떤 존재와 비견되지 못할 그런 존재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획일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 그것부터가 획일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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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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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며 걷는 것을 즐겨서 등교길에는 언제나 하늘을 쳐다보고는 했다. 상상하는 것도 좋아해서 구름을 보며 이것저것 나만의 이야기를 마구 생각하기도 하고, 하교길에는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려주며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어릴적의 경험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일까? 머릿 속에 유난히 잡생각이 많다. 꼭 필요한 생각이면 상관없겠지만, 마치 오래된 서랍을 열었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잡동사니가 툭 떨어지는 것 처럼, 하고 있는 일과 전혀 상관없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타난다. 혹자는 아이디어가 넘쳐나서 메모지를 들고 다니며 적는다던데, 나에게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나타나니 참으로 서글픈 일이라고 생각된다.

생각버리기 연습, 참으로 기가 막히도록 적절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 처럼 무릎을 탁 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코이케 류노스케는 스님 답게 두뇌를 잘 쓰는 방법보다 두뇌를 잘 쉬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잡념 떨쳐내기, 무념무상이 스님들 주특기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이런 책을 스님이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참으로 무겁게 살고 있구나 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소풍을 떠날 때 감당하지 못할 만큼 먹을 것으로 가방을 꽉 채워서 정작 무거워서 낑낑대는 아이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불필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내가 가진 이런 생각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을 때, 진정 생각다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천하리라, 생각버리기 연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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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 - 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
개빈 멘지스 지음, 박수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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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E.H.Car-

사실로서의 역사와, 역사가에 의해 쓰여진 역사,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한 모든 문헌이 옳은 것일까? 우리와 일본이 주장하는 과거, 일본과 중국이 주장하는 과거가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학자들에 새로운 고증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보다도 더 시기가 앞서는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금속활자본이 얼마전 발견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역사는 파면 팔 수록 속을 알 수 없이 더 깊어지는 구멍 같다. 아마도 이런 점이, 역사에 대한 기록과 유물을 남기고,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이유인 듯도 하다.

대학시절 들었던 동양사 수없은 내 기억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서양사 수업과 함께 들었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동양사 수없이다. 왜 그럴까?

그 때 들었던 동양사 수업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올 때 까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많았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흑과백 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큰 틀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그 수업을 통해 한 가지의 역사를 우리의 입장에서도 보고, 일본의 입장에서도 보고, 중국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반면 서양사 수업은 서양 중세사에 관한 책을 그대로 배우는 수업이었다.

정화원정대, 과거 중국의 대함대, 그것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함대가 유럽 원정에 나섰다는 역사는 이미 여러 차례 고증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여기 까지였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무관심이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주장이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듯하다. 어쨌든, 책 속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상상하던 것보다 더 놀라웠다.

1520년에 그 해협에 다다랐을 때 마젤란과 선원들은 식량이 떨어져 쥐를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선원들은 항로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탐험대 일부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에스테반 고메스Esteban G?ez가 반란을 일으켜 산안토니오호San Antonio를 장악했다. 마젤란은 절대로 항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설득함으로써 반란을 진압했다. 그때 어느 선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모두 [그 해협이] 막다른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선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해협을 통과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포르투갈 국왕의 기밀문서 보관실에서 보헤미아의 마르틴Martin of Bohemia이 제작한 해도를 직접 보았다고 한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를 내놓은 뒤 우리는 www.1421.tv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지금까지 여기에는 수백만 명이 방문했다. 아울러 우리는 독자들로부터 수십만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보내주었다. 한편 독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점은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내가 르네상스가 막 꽃필 무렵 중국 함대가 유럽에 등장하는 상황을 기술하지 않은 것이었다.

1434에서 말하고 있는 정화 대함대의 이야기는 그 어떤 픽션보다 흥미롭다.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사실임에도 책을 읽어 나가면서, 실타래 처럼 꼬인 실이 풀려나가는 느낌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수많은 영웅과 천재가 있었는데, 과거보다 더 많은 인류가 살며,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곳곳의 뉴스를 잘 받아 볼 수 있는 오늘날에는 왜 볼 수 없을까? 정화 대함대의 이야기에 비하면, 기적, 우연, 필연, 그리고 역사적인 대천재의 출현 같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는 신화나 동화에 가깝다.

과거 많은 수난의 역사를 겪었던 지금의 우리 땅에는 찬란했던 문화 유산은 거의다 없어지고 말았다. 문헌상으로 존재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과 예술품들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역사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처럼 크고 거대한 건축물 못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문헌 기록들로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리가 가진 문헌 기록들에 대한 분석과 고증이 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학자들 사이에 극명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곧 그 나라의 힘이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려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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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기 인문 B조 마지막 도서 :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 미국 수정헌법 1조의 역사
앤서니 루이스 지음, 박지웅.이지은 옮김 / 간장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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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어느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 되었다. Freedom, 우리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자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방송에서, 신문에서, 라디오에서, 집에서, 학교에서, 회사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듯하다. 정말 그럴까? 이 시점에서 자유가 무엇인지, 역사를 되짚어 보는 여행을 한다. 자유, 그것이 너무나도 어색했던 옛날 자유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돌아가보자.

자유란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다. 어쩌면 상당히 아이러니 한 것이다. 자유란 가치가 고정되어 있다면 전혀 자유롭지 못할 테니까.. 그처럼 자유를 둘러싼 역사는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왔다. 

또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자유가 있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우리 아이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정치가 들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고, 국민이 생각하는 자유가 다르다.

도대체 자유란 무엇일까? 그 옛날 자유가 태어나던 날, 자유는 크나큰 산통을 동반하며 태어났고, 기나긴 가시밭과 힘든 여정의 길을 걸어왔다. 또 한 번 아이러니, 자유는 결코 달콤한 꿈, 이상은 아닌 것인가? 과연 자유는 우리가 싫어하는 그 무엇인가를 위한 자유는, 어떠한 것인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를 통해 그 해답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공기, 물, 우리가 흔히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원들이 있다. 흔히 공공재, 또는 무한재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 여기서 강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또 깨달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공기와 물은 더 이상 우리가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오해, ’자유’ 그것은 과연 무한한 것일까? 자유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는 것일까?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냉전 시대는, 구소련의 해체, 중국의 시장경제화로 막을 내린듯하다. 그리고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인해 우리와 국경을 마주한 북한을 비롯한 몇몇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의 역사를 바탕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고, 또 그 답을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안타깝게도 제목부터가 상당히 어렵게 느껴진다. 표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 영어 활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차지할 만큼 좋은 내용들이 [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안에 누군가 ’자유’로이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과거 금지도서로 지정된 과거가 있다) 또한, 이 책은 ’당신이 생각한 것 처럼 지루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당신의 생각을 앞뒤로 늘려주고, 척추측만증에 걸린 것 마냥 휘어져 있는 생각을 곧게 펴줄 것이다.

1984년 레이건 정권 당시 텍사스에서 정부에 항의하며 거리 시위를 하던 시위대 중 한명이 미국 국기에 불을 질렀다. 그는 ’공경 대상’에 대한 훼손을 금지한 텍사스법을 어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그 판결을 뒤집고 국기를 불태우는 표현적 행위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판결했다. 브레넌 대법관은 의견서에 이렇게 썼다. 국기 훼손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이 상징을 그토록 숭배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 바로 그 자유를 약화시킨다.

미국 사회에서 정치와 유명인에 대한 풍자는 흔한 일이며, 정말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음모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도 넘쳐난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인쇄물 또는 인터넷으로 주장하고 발표할 수 있다. 개중 몇몇은 맨 정신으로 봐주지 못할 만큼 혐오스럽고 역겹기 까지 하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이 예외적인 자유는 어디서 오는가? 흔히 나오는 대답은 "수정헌법1조다. 미국 헌법의 그 수정조항은 다른 무엇보다도, "의회는... 의사표현이나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그 어떤 법도 만들 수 없다.." 고 규정한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있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듯한 이 수정헌법 1조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그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앞에서 말했듯이 수정헌법 1조는 언제나 처럼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수정헌법 1조는 1791년 이래로 늘 극적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그렇다. 변한 것은 수정헌법 1조라는 무대 위의 배우인 대중들이다.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는 대중들의 시각이 변하고,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판사들의 판결이 역사처럼 쌓이면서 수정헌법 1조를 둘러싼 이야기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오늘날 수정헌법 1조는 소송에서 자주, 성공리에 원용된다. 대법원과 그 밖의 법원들은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관한 수정헌법 1조의 보장 내용을 이행한다. 그래서 대법원의 의견이 1919년에야 처음으로 수정조항에 따른 자유의 요구를 지지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반대의견이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일단 수정헌법 1조를 법으로 집행하기 시작한 후에도, 자유의 길은 쉽지 않았다. 수정헌법 1조는 그 누가 보더라도 절대적이며, 직접적인 방법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정헌법 1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던 듯하다. 수정헌법 1조는 절대적으로 하얀 도화지 또는, 그저 투명한 물과 같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너무도 절대적이고 직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뜻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모습은 마치 야누스의 얼굴 처럼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수정조항의 언어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 보이지만, 진정 그것은 말이나 글로 표현되는 내용이 어떠하든 법이 그에 반하는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뜻인가? ... ... 거꾸로 수정헌법 1조는 말로 표현되거나 글로 인쇄되지 않은 어떤 행위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 ... 미국 국민에게 수정헌법 1조를 부여한 사람들은 그 조항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세부 규칙을 제공하지 않았으며, 그러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수정헌법 1조에 대한 해석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 같은 법을 두고 같은 판사가 시간을 두고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리는 신뢰성에 큰 흠이 가는 일들이 비일비재 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빌어먹을 징집’이라는 문구 때문에 기소된 젊은이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했던 대법관은 후에, 그와 같은 판결에 반대하는 의견에 동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정헌법 1조는 그 해석을 둘러싸고 수많은 질문과 의문을 남기며, 그 어떤 가치 보다 수많은 쟁점을 쏟아 내었다. ’수정헌법 1조는 허위진술도 보호하는가?’, ’사생활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누가 언론인가?’ ’무엇이 음란물인가?’ 등등

자유란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 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등장하는 긍정의 힘 역시 그렇다. 연금술사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으며 자연 속의 징조를 따라 움직이면 세상의 모든 힘이 그렇게 되도록 도울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런 힘 조차,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가 그것을 찾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주어 지지 않는 것이다.

산에 길이 있더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금새 길은 무성히 자란 풀들에 가려져 사라져 버린다. 멋진 음악이 있더라도 그 음악을 듣고 연주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듯이, 자유란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일 뿐, 그 위에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의지’가 없다면 자유는 그저 잠자는 사잠와 같을 뿐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는 자유를 위한 생각을 싫어도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듯하다. 이 한권의 책으로 지금껏 배우고 알고 있던(비록 아는 것이 라고는 자유 두글자 뿐이었지만) 모든 것보다도, 생각해 왔던 모든 것 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함께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선물은, 이 책이 던지는 대답에 대해 나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 가 걸어왔고 걸어 가야할 길, 그리고 이 땅을 밟고 있는, 이제는 5천만이 된 우리들이 밟고 가야할 자유의 길 또한 이와 비슷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의 길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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