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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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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것은 나누고 싶다. 얼마 전 정말 좋아하는 기타리스트의 공연을 보고 나서 직접 그의 사인 시디를 받게 되었다. 정말 기분이 좋았지만, 그날, 지하철에 그 사인 시디를 두고 내려버렸다.

정말, 안타까울만 한데, 그 날은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공연을 보고 나서의 감흥과 감동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마음 한편으로는, 그 시디가 그렇게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발견하였으면 하는 마음 마져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어떤 것'을 마주했을 때,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우연치 않게, 그런 기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근래 내가 본 책 중에 단연 추천하고 싶은 것이 바로 [철학이 필요한 시간] 이다.




'진정한 진리는 평범함 속에 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말이, 평범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지만, 문득 새롭게 떠오른 '어떤 생각'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함께 앞으로 넘겨질 페이지들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를 가져 보았다.


 지금까지 저는 숨낳은 유리병 편지를 받았습니다. 발신자는 스피노자, 장자, 나가르주나,원효 등과 같은 철학자였습니다. 매번 편지를 받아 펼쳐볼 때마다 저의 고독과 외로움은 겸감되었을 뿐만 아니라 저는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들을 통해 제 사유와 삶이 외롭지만은 않다는 위로를 받았으며, 동시에 제 속내를 표현하는 관점이나 기법도 아울러 배울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인의 기준을 두고 설왕설레하고는 한다.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눈, 가장 아름다운 코, 가장 아름다운 입, 이처럼 가장 아름다운 것들만 모아 놓은 얼굴을 예상한 것 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더라, 라고 이야기하며, 웃곤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약 그 대상이 미인의 기준이 아니라, 책이라면 어떨까?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굳이 따진다면, 가장 많이 회자되고, 익히 알려진 유명한 학자들,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저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저서들 속에서, 가장 배울만한 명 구절들만을 모아 수록하였다. 그것도, 48 가지나... ...

책을 읽어 나가면서 한 가지 놀란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책을 수없이 보아왔다. 하지만 대개의 책들은 한정된 지면 속에 너무나 많은 것을 담으려 한 때문인지ㅏ. 대개의 경우에, 그 내용이 부실하다거나, 또는 아느 한 이야기에 치중될 뿐,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그저 페이지를 채워넣기 위한 용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책들은 시작이 거창할 뿐 그 알맹이는 비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에 비해 [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알알이 실한 알갱이가 잘 박혀 있는 맛있는 시골장터의 옥수수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칫 하게 하며, 보는 이를 잡아 끄는 이야기들이, 조금의 쉼도 없이 이어져 있고, 그 이야기들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적당히 배합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맛있는 재료들로 잘 버무려진 맛있는 비빔밥을 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 대한 서평을 쓰기에 앞서 망설여졌다. 이처럼 풍부한 내용의 책을 짧은 글로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것이 첫 번째였고, 글을 쓰면서, 전혀 엉뚜한 이야기를 하여, 의도와는 다르게 나의 뜻이 전달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것이 그 두 번째였다. 그래도 보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이처럼 무엇이라도, 한 가지 사유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며, 아마도 이 책을 읽어 나가게 되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사유하게 되는 즐거움을 보다 자주 맛볼 수 있으리라...

또한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는 배움이 가득하다. 혹자는 인문학, 철학 서적이니 '배울 것이 가득하다'는 말은 너무 진부한 표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이러한 배움이 강요된 것이 아닌 스스로 즐기는 그런 배움이라면 과연 그것을 진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가 두 가지 의미로, 혹은 두 가지 가치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놀이에서 분명해지는 것처럼 그 자체로 향유되고 긍정되는 현재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의 경우처럼 미래를 위해 소비되어야 하고 견뎌애 하는 현재이다.

위 구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이 되기 위한 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 할 정도로 책 속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책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할 때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과 일치되는 부분이나, 혹은 내가 가진 생각을 바로 잡아주거나 늘려 주는 그런 내용에 자연스럽게 책 속의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도,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기분과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닐까?



 만일 내가 타자에 의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자로 자유로이 선택되어야 한다. 알다시피 사랑과 관련된 통상적인 용법에 따르면 '사랑받는 자'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불리낟. 그러나 이 선택은 상대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타자가 자기를 선택한 것이 '다른 애인들 중에서'라고 생각하는 경우, 사랑에 빠진 사람은 화가 나고, 그리고 자기가 값싼 것 처럼 느낀다... ...(중략)... ... 사실 사랑에 빠진 자가 원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신을 절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항상 누군가로 부터 사랑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역설적으로,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면서 보다 많은 선택의 기회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어느 시대 보다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와 정 반대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위 구절은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다시 나를 되돌아 보게 만든, 그런 구절이다. 과연, 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진 수동적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지, 오히려 그런 삶이 나로 하여금, 타성에 젖게 만들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는 자만에 빠져든 것은 아닌지,,, 그리고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은 모든 것에 공유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다는 것은,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모두 내어주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가 타자에 의해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사랑받는 자로 자유로이 선택되어야...' 하듯이... .... 강요하는 것이 아닌, 읽는이가 자유로이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느껴지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가장 큰 장점이며, 이 생각은, 앞으로도, 이외의 경우에도,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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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 - 인류의 기원과 여성의 탄생
J. M. 애도배시오 외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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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visible sex  : Uncoverinf the True roles of Women in Prehistory

원제와 부제에서 이 책의 내용과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이 글의 요지는, 이 책이 밝히려는 의도처럼, 편견없이 바라보았을 때 이해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책의 고고학과 그것의 고증에 관한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구석기, 신석기 시대 훨씬 이전의 선사 시대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의 우리들, 그리고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그 당시의 사회상을 추측하고 예측하고, 재현하과 있는지 잘 설명하고 있고, 그에 덧붙여 저자를 비롯한 다양한 고고학자들의 최신 연구결과와 그에 관한 반증들을 꺼내 놓음으로써, 역사와 주변을 보는 눈에 있던 또 다른 우리의 오류를 지적해 준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 깨닫게 해준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직접 결론을 내린다기 보다는 설명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여러가지 각도에서 설명을 한다. 자신의 입장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반되는 입장도 자세히 보여주면서 이런 설명도 가능하다 는 식으로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내 나름의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거듭된 우연의 결과가 현재의 인류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미 많은 사람이 의문으로 제시하였던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수많은 생명과 개체 중의 한 속 또는 한 종이 우리 인간이라고 보았을 때, 그것은 우연이기도 하지만, 필연이기도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내가 추측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전문적인 문제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서 최근까지 고고학 분야에서 활동한 사람이 거의 남성이라는 점이, 우리가 아직, 선사시대에 발굴된 유해를 통해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것 조차 거의 불가능한 시점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대체로 여성이 빠져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러했으리라 생각한다. 박물관에 재현되어 있는 선사시대의 생활 모습에서 사냥터에 나가는 아버지 원시인, 그리고 아이를 돌보고 집에서 수동적인 모습인 어머니 원시인의 모습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짓는 습관과 태도는 이에 관한 오류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일정한 방향으로 제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우리가 선사시대의 생활방식을 우리들의 틀안에 두고 생각했듯이.. 
인간과 다른 종들, 그리고 지구와 우주조차, 250만년의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을 것인데, 그러한 변화를 간과하고 우리만의 잣대로 평가한 다는 것은 크나큰 오류가 아닐까? 심지어 현재의 인류 중에서 조차 부계사회가 아닌 모계사회의 모습을 지닌 원시부족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여기에서 원시부족을 현재 인류의 한 종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250만년, 혹은 가장 가까운 시기의 원시인류라 해도 10만년 가량의 터울이 있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외의 생물학적 특징을 고려하더라도, 현재의 그 어떤 인류도 현재 우리들에 더욱 가깝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바로 '신념의 무의식적 공유' 혹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와 같은 것으로 보는 실수'라고 하겠다. 상관관계란 두 가지 사물 사이에서 유사한 정도의 통계적 차이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경제학에서 수요와 공급사이에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다. 수요가 일정한데,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그리고 반대의 경우에는 가격이 올라가는 반비례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인과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인과관계란 어떤 한 가지 원인이 다른 한 가지 결과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들의 관계는 일원적이고 확정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상, 사회에서는 이러한 인과율과 확정성에 의한 지배가 거의 정확하게 맞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그 동안 물리치고 있다고,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 이나 '편견'이란 녀석이, 어느새 또 내 옆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깨달음이 나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을 주리라고 확신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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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평전 - 사람을 얻어 난세를 평정한 용인술의 대가 중국 역대 제왕 전기 시리즈
장쭤야오 지음, 남종진 옮김 / 민음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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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누구인지 누구나 알고 있을 듯 하다. 그만큼 삼국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이야기이며, 영화로도 소설로도 그만큼 많은 영광을 누려왔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조조평전은 읽어서 무엇하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거라면 조조에 대해서 많은 조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었지만, 지금에 와서 조조를 다시 다룬다는 것 또한 식상하다. 조조는 이미 간웅이 아닌 명장 중의 명장이며, 지략가 중의 지략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조조를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꼽기도 하였으며, 조조와 관련된 리더십에 관한 책들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조조 평전은 다름 아닌 중국 역사가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것에 의의가 있을 듯하다. 과연 역사학자가 바라본 조조는 어떤 모습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소설 속의 인물을 역사적인 사료에 근거하여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들고, 호기심도 생긴다. 

조조평전은 이러한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사료를 토대로 조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데 이 책은 조조의 유년기부터 출발하여 보다 폭넓은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 책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익히 들어왔던 인물인 조조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략가인 조조에 대해서, 정치가인 조조에 대해서 수없이 들어왔지만, 실제로 조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실지로 이는 조조가 어떤 지략가였는지, 어떤 정치가였고, 왜 그런 전략을 구사했는지에 알수 있는 보다 좋은 자료이며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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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욕망+모더니즘+제국주의+몬스터+종교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뜨인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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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역사라는 단어 앞에 이보다 잘 어울리는 문구가 있을까? 역사는 덧붙여 억만리길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세계사를 이해하귀 위한 초석의 역할을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지런히 걸음걸음 힘주어 옮기다 보면, 역사가 보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의 모습도 다시 돌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법칙과 규칙] 어떤 학문을 공부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그 학문의 기반, 기본이 되는 법칙과 규칙들이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지 않으면, 후에 더욱 복잡해지는 문제를 풀어낼 수가 없다. 수학을 배울 때, 우리는 공식을 먼저 이해해야 하며(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영어를 배울 때 도 철자와 기본발음을 정확하게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점에서 가 배운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의문이 생겼다. 과연 나는 학교를 다니며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아마도 역사 교과서의 처음은 역사에 대한 정의에서 출발하였던 것 같다. 추측컨데 이런 내용이었던 듯하다. '역사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적어 놓은 것도 아니고, 후에 역사가의 주관적인 서술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도 아니다. 역사란 과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현재의 시각에서 역사가들에 의해 재해석 되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해석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교과서 첫머리에서 말하고 있는 정의와 달리 교과서 전반의 내용은 역사적 기록을 시대순으로 나열하는데 그치고 있다. 난 아이큐 180의 천재가 아니다. 그렇게 배웠던 연대와 역사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가지게 되는 의문, 역사는 암기과목 같은 것인가?  

여기서 내가 내리는 답은 '암기과목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암기과목 이라고 한다면 무엇을 외운단 것인가? 외워야 할 역사와 그렇지 않은 역사는 누가 갈라 놓는가? 그리고 그렇게 외우기만 한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역사란 너무도 장구한 것이어서 그대로 외울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해서는 복잡다난한 역사를 십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다. 서술이 조금 길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유는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이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 힘(혹은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은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 사실만으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알게 해주며,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혜안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역사를 움직이는 법칙과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시되고 있는 다섯 가지 힘은 다음과 같다.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종교] 놀라운 것은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이 가지는 역사성과 사회성이다. 각 각의 욕망이 지역적 특수성과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시대적 특수성과 역사적 통사적 특징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힘은 때론 각자가, 때론 두 가지 이상이 어울려 역사라는 무대를 만들어 왔고, 지금도, 앞으로도 만들어 갈 것이다. 저자의 혜안이 돋보인다. 과연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러한 다섯 가지 힘을 역사를 움직이는 힘으로 선택한 것인지 누구나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는 이처럼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는 사고와 이해의 과정이다. 한번 보면 잊혀지는 것이 아닌 평생 나의 살과 뼈가 될 수 있는 혜안을 배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역사라는 사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역사는 지겨운 것이라는 인식(나 역시 그러했다)을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학습서이자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고, 스스로 책장을 넘기며 생각하게 만든다. 수동적 객체가 아닌 능동적인 주체로서 역사를 대할 때, 많은 사람들, 청소년들은 더 이상 역사를 역사(과거에 학교에서 배웠던)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오히려 흥미롭고, 재미있는 생각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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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 - 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
개빈 멘지스 지음, 박수철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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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 E.H.Car-

사실로서의 역사와, 역사가에 의해 쓰여진 역사,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에 대한 모든 문헌이 옳은 것일까? 우리와 일본이 주장하는 과거, 일본과 중국이 주장하는 과거가 왜 그렇게 다른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학자들에 새로운 고증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 보다도 더 시기가 앞서는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금속활자본이 얼마전 발견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역사는 파면 팔 수록 속을 알 수 없이 더 깊어지는 구멍 같다. 아마도 이런 점이, 역사에 대한 기록과 유물을 남기고, 보존하고 연구해야 할 이유인 듯도 하다.

대학시절 들었던 동양사 수없은 내 기억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서양사 수업과 함께 들었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동양사 수없이다. 왜 그럴까?

그 때 들었던 동양사 수업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올 때 까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많았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흑과백 처럼 다른 것이 아니라, 큰 틀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그 수업을 통해 한 가지의 역사를 우리의 입장에서도 보고, 일본의 입장에서도 보고, 중국의 입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반면 서양사 수업은 서양 중세사에 관한 책을 그대로 배우는 수업이었다.

정화원정대, 과거 중국의 대함대, 그것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함대가 유럽 원정에 나섰다는 역사는 이미 여러 차례 고증된 바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은 여기 까지였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는 무관심이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이러한 주장이 큰 힘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듯하다. 어쨌든, 책 속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바탕으로 상상하던 것보다 더 놀라웠다.

1520년에 그 해협에 다다랐을 때 마젤란과 선원들은 식량이 떨어져 쥐를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선원들은 항로를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탐험대 일부를 이끌고 스페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에스테반 고메스Esteban G?ez가 반란을 일으켜 산안토니오호San Antonio를 장악했다. 마젤란은 절대로 항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설득함으로써 반란을 진압했다. 그때 어느 선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모두 [그 해협이] 막다른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선장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해협을 통과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포르투갈 국왕의 기밀문서 보관실에서 보헤미아의 마르틴Martin of Bohemia이 제작한 해도를 직접 보았다고 한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를 내놓은 뒤 우리는 www.1421.tv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지금까지 여기에는 수백만 명이 방문했다. 아울러 우리는 독자들로부터 수십만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보내주었다. 한편 독자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점은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내가 르네상스가 막 꽃필 무렵 중국 함대가 유럽에 등장하는 상황을 기술하지 않은 것이었다.

1434에서 말하고 있는 정화 대함대의 이야기는 그 어떤 픽션보다 흥미롭다. 믿을 수 없이 놀라운 사실임에도 책을 읽어 나가면서, 실타래 처럼 꼬인 실이 풀려나가는 느낌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과거에는 그렇게 수많은 영웅과 천재가 있었는데, 과거보다 더 많은 인류가 살며, 그 어느 때보다 세계 곳곳의 뉴스를 잘 받아 볼 수 있는 오늘날에는 왜 볼 수 없을까? 정화 대함대의 이야기에 비하면, 기적, 우연, 필연, 그리고 역사적인 대천재의 출현 같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는 신화나 동화에 가깝다.

과거 많은 수난의 역사를 겪었던 지금의 우리 땅에는 찬란했던 문화 유산은 거의다 없어지고 말았다. 문헌상으로 존재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과 예술품들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역사는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처럼 크고 거대한 건축물 못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문헌 기록들로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우리가 가진 문헌 기록들에 대한 분석과 고증이 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 학자들 사이에 극명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곧 그 나라의 힘이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려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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