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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사랑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1
수사나 포르테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들녘 / 2011년 3월
평점 :
처음의 시작은 가벼운 산들바람으로,
그리고 책장을 넘겨가면서 점차 몰아치는 격정의 바람 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용돌이 가운데 던져진 그런 불안함이 아니라, 태풍의 눈에 들어간 것 처럼 시끄러운 주위에 결계가 쳐진듯이 느껴지는 그런 고요함이었다.
또한 이 책이 번역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훌륭한 글이라도, 그것이 번역되는 순간, 진흙 속의 진주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 몇 몇 부분에서, 세밀한 묘사에 감탄해 버리고 말았는데, 순간 이 책이 번역된 소설인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한번 더 감탄하게 되었다.
후회는 두 사람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화학적 성분의 비등점을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 두 사람을 살아 있게, 깨어 있게 만드는 유동체 였다, 그 화학적 성분은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했고, 맥박이 뛰게 하고, 눈이 빛나도록 특별한 광휘를 주는, 감지할 수 없지만 마시기 쉬운 독약이었다.
- 알바니아의 사랑 page 201 - |
우리는 흔히 ’닮아있다’ 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하는데, [알바니아의 사랑]에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예전에 에스키모인들의 언어에는 눈에 관련된 단어가 특히 발달하여서, 한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단어가 무수히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같은 언어적 혹은 문화적 특징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이 소설에는 전에 보지 못한, 그런 표현이 풍부하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감정과 생각이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글 하나하나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보았던 것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이었다. 이스마일은 평평하지 않은 언덕길을 내려갈 때의 느낌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층계 하나가 비어 있을 때와 같은 느낌, 자유낙하를 할 때 느끼는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 알바니아의 사랑 page 155 - |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최근에 읽는 책이 무엇이에요? 난 당연히 알바니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알바니아의 사랑은 지금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은 첫번째 소설이 되었다. 방금 전,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에파스파냐 출신의 작가가, 알바니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내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도 읽어 나가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책 속 주인공의 감정과 동화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몇몇에게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또, 몇몇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우리가 겪었던 아픈 과거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혹은 지금까지 겪고 있을 지도 모르는 몇몇 사람들의 아픔이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는, 앞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해, 언어적 차이에 대해 언급했지만, 보다 큰 틀안에서, 수사나 포르테스의 글안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의무적으로 넘겨가던 페이지를, 어느새 나도 모르게, 활자를 재촉해 가며 글을 쫓듯이 읽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물이라고 했던가? 아름다움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비극이라고 했던가?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리고 이야기의 뒤로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고조되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와 함께 소설 속의 묘사도 더욱 풍부해지며,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다 절실하게 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것은 나만 가지고 싶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주고 싶은, 무엇보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닐까 라고,,, ,,,
이 생각은 얼마전, 내가 평소에 정말 좋아하던, 기타리스트의 공연을 보고 느낀 것이었다. 공연장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에 온통 정신이 빠져있으면서도, '아 이 음악을 그 사람도 들었으면, 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좋은 음악이든 좋은 글이든 간에 정말 좋은 작품을 소개할 때는 아무리 많은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부족하리라 생각된다. 읽어보지 않으면, 그리고 처음부터 주의깊게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어렵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고, 설사 그것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일지라도, 혹시 더욱이 그러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가지 일들, 그리고 아픔과 고난을 잊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글이 가진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