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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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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 놓은 날? 언뜻 듣기에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대하는 법을 단순히 나누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

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세상은 첫번째가 정답이라고 가르치는 듯하다.

'할 수 있다', '하면된다'라는 새마을 운동 시대 운동 구호가 언제적 일이라며, 이야기하면서도,

'다 포기하지마' 라는 노래의 가사를 이야기하면서 우스게 소리를 하면서도,

지금도 사람들은 '노력해라', '끈기를 가져라' 고 쉽게쉽게 내뱉는다.

 

왜, 우리는 할 수 없을 때, 그럼 이젠 그만둬 라고 편하게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일까?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할 수가 없다면, 그냥 거기에 내버려 두라고, 나에게 이야기하는 듯하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음악

Please don't tell her _ Jason Mraz

The sad cafe _ The eagles

Blues Latino _ Santana

My all _ Mariah Carey

Babe I'm Gonna Leave You _ Led zeppelin 

비오는 거리 _ 이승훈

잠을 깨고 나니 오랜만에 개운함을 느꼈다. 오랜만의 휴일, 늦잠을 자지 않아도, 푹 잠을 잔 느낌. 이런 오랜만의 기분좋음. 이내 곧 피곤이 다시 몰려온다해도, 지금 이 순간 이런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 보았다.

 

책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쓰였있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천사의 가루'

다른 제목의 두 이야기 이지만, 그들이 전해주는 느낌은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글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마치 누군가가 써놓은 일기처럼... 일기란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화가나서, 때론 슬픔에 젖어서, 그래서 일기는 글쓴이의 그때그때의 감정이 진실하게 녹아 있다. 그런 느낌이 있다. 그래서 일기란 마음의 흔적이고, 기억의 잔상이며, 어슴프레하게 기억나는 꿈과도 같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순간들은 거울 속에서만 존재해. 그것도 정확히 11초 정도만 고객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 보여줄 뿐이야. 11초란, 쿠키를 두어 개 집어먹고 입가에 묻은 가루를 터는데 걸리는 시간이지만, 치유를 원하는 영혼이 칭되고 평생 매달려왔던 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 Page 166 -

인생은 가까이서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보면 한편의 희극이다. -찰리채플린-

요즘에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편하게만 들리지 않는다. 어떤 한 인물의 흥망성쇠가 너무나도 뻔히 만천하에 드러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마치 삼류영화처럼 오늘 만인의 연인이었던 이가, 내일은 온 세상 질타와 질시를 받는다. 인생의 찬란한 순간은 마치 쿠키를 먹고 입을 터는 11초와 같은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일까?

웅덩이에 가라앉아 버린 기억은 이제 아무리 애를 써도 객관화되지 않는다. 자기 안에서 분열하고, 각색되고, 그것이 끝없이 연속 상영되어서 현실을 백일몽으로 만들어버린다. 해를 가린 달처럼

- Page 190 -

아니면, 우리는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일상을 미쳐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햇볕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낮달처럼, 우리 앞에 있고, 우리를 비추고 있지만, 그것의 소중함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남의 인생을 강요 받아 화려하지만 억지 인생을 살아야 했던 어느 소설의 주인공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 인생을 망각한 채, 어디선 가 누군가 툭던진 '공부해야지'라는 말이라던가, 어딘가 TV에서 보았던 화려한 삶에 이끌려 스스로의 인생을 연기하고, 무대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 항상 힘들어 하는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마임의 핵심은 '여기 사과가 있다고 상상하는것'이 아니라, '여기 사과가 없다는 사시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망각은 기억보다 위대한 창조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Page 369 -

천사의 가루는 사랑했던 한 남자의 부재를 망각해 버린 여자의 이야기이다.

'아름다운 기억은 남겨두고, 좋지 않은 추억은 모두 잊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한 경험은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록 더욱 기억은 아련해진다. 이미 그런 기억은 부정할 수 없이 과거지사가 되어 버린 까닭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기억을 지워버리면 어떨까? 과감히 안녕? 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의 기억은 억지로 좋은 기억만 남겨두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더욱 아름다운 기억으로 가득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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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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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예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떠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일기예보였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듣는 일기예보는 '미리' 듣는 것이지, 하루 일과가 끝난 '뒤'에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예보는 데빌맨이라는 지옥의 디제이의 방송입니다. 데빌맨은 그날 하루동안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예보를 합니다. 그런데, 데빌맨이라는 이름답게 그의 예보는 그 어느 누구라도 들으면 곧장 인상을 찌푸릴 것들 뿐입니다.

새 차를 산 사람은 그 날 당장 사고를 당하고, 장기기증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오늘도 역시 기증자가 나타나지 않으니 마지막을 준비하세요.' 하는 식입니다.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인생 예보를 가진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책 속의 주인공을 최악의 예보, 마치 봄날 소풍이 예정된 날, 오늘은 하루종일 장대비가 내릴 겁니다. 라는 일기 예보 만큼이나 암울한 인생인 주인공들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우리 일상에서 흔히 듣는 뉴스의 주인공들 같습니다. 아닙니다. 차라리 우리가 흔히 뉴스에서 매일 듣는 '실제' 뉴스의 주인공들이 더욱 최악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상합니다. 오늘'예보'라는 제목과는 달리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이것이 '예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보여주는 '예시' 또는 '경고' 같기도 합니다. 과거 우리 소설 들에서도 흔히 사용했던 '역설' 또는 '과장'의 기법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슲프고 암울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오히려 재미있고 우스꽝스럽게 풀어냄으로써 이들의 이야기가 '남'이 아닌 '주위'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또 그로 인해 웃으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나'를 비롯해 '이웃'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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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사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1
수사나 포르테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들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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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시작은 가벼운 산들바람으로,

그리고 책장을 넘겨가면서 점차 몰아치는 격정의 바람 속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용돌이 가운데 던져진 그런 불안함이 아니라, 태풍의 눈에 들어간 것 처럼 시끄러운 주위에 결계가 쳐진듯이 느껴지는 그런 고요함이었다.

또한 이 책이 번역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훌륭한 글이라도, 그것이 번역되는 순간, 진흙 속의 진주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 몇 몇 부분에서, 세밀한 묘사에 감탄해 버리고 말았는데, 순간 이 책이 번역된 소설인 것을 떠올리고는 다시 한번 더 감탄하게 되었다.



   후회는 두 사람의 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화학적 성분의 비등점을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 두 사람을 살아 있게, 깨어 있게 만드는 유동체 였다, 그 화학적 성분은 두 사람의 심장 박동을 빠르게 했고, 맥박이 뛰게 하고, 눈이 빛나도록 특별한 광휘를 주는, 감지할 수 없지만 마시기 쉬운 독약이었다.
                                      - 알바니아의 사랑 page 201 -



우리는 흔히 ’닮아있다’ 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하는데, [알바니아의 사랑]에는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예전에 에스키모인들의 언어에는 눈에 관련된 단어가 특히 발달하여서, 한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단어가 무수히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같은 언어적 혹은 문화적 특징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이 소설에는 전에 보지 못한, 그런 표현이 풍부하다.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감정과 생각이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었고, 글 하나하나에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된 것은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가 보았던 것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이었다. 이스마일은 평평하지 않은 언덕길을 내려갈 때의 느낌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층계 하나가 비어 있을 때와 같은 느낌, 자유낙하를 할 때 느끼는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 알바니아의 사랑 page 155 -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최근에 읽는 책이 무엇이에요? 난 당연히 알바니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알바니아의 사랑은 지금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에게 권해주고 싶은 첫번째 소설이 되었다. 방금 전,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에파스파냐 출신의 작가가, 알바니아를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내가 그랬듯이 다른 사람들도 읽어 나가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책 속 주인공의 감정과 동화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몇몇에게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또, 몇몇에게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가슴 아픈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우리가 겪었던 아픈 과거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우리가 과거에 겪었던, 혹은 지금까지 겪고 있을 지도 모르는 몇몇 사람들의 아픔이 떠올랐다.

그런 의미에서는, 앞에서 문화적 차이에 대해, 언어적 차이에 대해 언급했지만, 보다 큰 틀안에서,  수사나 포르테스의 글안에서 깊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의무적으로 넘겨가던 페이지를, 어느새 나도 모르게, 활자를 재촉해 가며 글을 쫓듯이 읽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물이라고 했던가? 아름다움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비극이라고 했던가?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리고 이야기의 뒤로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고조되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와 함께 소설 속의 묘사도 더욱 풍부해지며,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보다 절실하게 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은 것은 나만 가지고 싶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주고 싶은, 무엇보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닐까 라고,,, ,,,

이 생각은 얼마전, 내가 평소에 정말 좋아하던, 기타리스트의 공연을 보고 느낀 것이었다. 공연장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에 온통 정신이 빠져있으면서도, '아 이 음악을 그 사람도 들었으면, 보다 많은 사람이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같은 좋은 음악이든 좋은 글이든 간에 정말 좋은 작품을 소개할 때는 아무리 많은 미사여구를 붙인다 해도 부족하리라 생각된다. 읽어보지 않으면, 그리고 처음부터 주의깊게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어렵겠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아름다운 글을 읽고, 설사 그것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일지라도, 혹시 더욱이 그러하기 때문에, 현실에서 겪어야 했던 여러가지 일들, 그리고 아픔과 고난을 잊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글이 가진 힘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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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예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준미 옮김 / 하늘연못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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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정의는 무엇일까? 이 책을 받아 드는 순간 가장 먼저 생긴 의문이었다. 과연 카프카의 여행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서 책장을 재빨리 넘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나가 가장 원하고, 가장 가고 싶어하는 그런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필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그런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여행이 가능할 수 있을까?

얼마전 내가 아는 친구 중 한 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일주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 내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는 여행을 떠난지 달포가 넘은 후였다. 그게 벌써 몇 주 전이었고 그 때 쯤 중동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으니, 이제 또는 서유럽의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그 친구에게 행운이 있기를...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극히 제한된 사람에게 통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그런 여행일지라도 우리에게는 제약이 너무도 많다.

카프카의 여행자 예찬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 떠오른 영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수면의 과학"이다. 내가 어릴적 굉장히 좋아했던 여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관적으로, 우리가 가장 원하는 이상적인 여행에 가장 알맞는 것이 바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가능하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꿈 속에서 우리에게는 자기 의지란 것이 있다. 자유만 있을 뿐 의지가 엇다면, 그 자유조차 무의미하게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해서 꿈 조차 우리에게 완벽한 여행이 되어 주지는 못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졋던 이런 여행이 가능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준 것이 카프카의 글이다.

생각과 상상, 그리고 글... 이 세 가지가 있다면, 우리는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육체의 다리가 아닌, 바람을 타고 세상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다.

카프카의 생각은 카프카의 머리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니, 설사 카프카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더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의 매력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그의 글을 읽고, 내 나름의 방식과 상상력으로 그의 이야기를 좇아가는 것, 이러한 과정은 여행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리고 언제 끝날지 짐작 조차 할수 없는 글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는 종착점 없는 그런 여행과 닮아있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었는지 짐작하기 조차 힘들다. 요즘에는 이 처럼 글을 쓰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설사,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도, 그것은 글로서 읽히기는 힘들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프카의 글을 읽는 것은 마치 오래된 지팡이를 짚고 길게 뻗어있는 길을 걸어나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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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쇼퍼 - Face Shopper
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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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있지만 다루기 어려운 주제를 쉽게 다루어낸 작품 - 페이스 쇼퍼

페이스 쇼퍼, 즉, 성형외과 의사들이 이에 해당하겠다. 서울 강남은 이들 페이스 쇼퍼들의 세상이라고 할만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넘쳐나는 페이스 쇼퍼들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장사치고 깔끔한 잇속이 없듯이 페이스 shopper 역시 그러하다. 책 속의 주인공인 정지은 역시 그러하다. 외모컴플렉스를 앓고 있는 사람, 멋진 외모임에도 더욱 멋진 외모를 갖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하는 브로커까지, 이러한 페이스 쇼퍼 ’ 정지은 ’ 에게는 평범한듯하지만 그녀에게 얽히고 설키는 사건들은 흥미진진하기만하다.

이 책의 장점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성형과 관련된 꽤나 정확한 지식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소설 자체는 그리 가볍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성형수술의 기원은 치료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 출발점이 어디인지 나도 모르겠으나 추측하건데, 상처를 봉합하기 위한 시술, 선천적인 기형을 고치기 위한 시술, 상처의 흔적을 없애기 위한 시술 등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양악관절 수술은 미용을 위한 용도가 아니다. 처음 저러한 시술을 생각해낸 의사도 그렇고 환자도 그렇고, 누가 단지 아름답기 위해서 그러한 고통과 불편함을 감수하려 하였겠는가?

난 단지 아름다움을 위해서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렇다. 단지 아름다움일 뿐이다. 아름다움 그것은 여러가지 기호 중 하나일 뿐이다. 더군다나 아름다움은 그 기준이 없는 기호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러한 기호에 어느 순간부터 하나의 잣대로만 평가하려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언론이 대중들을 부채질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이 시작할 무렵, 아시안게임 4대얼짱? 인가 5대얼짱인가하는 기사를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기자란 직분으로 이러한 기사들을 쓰고 있는지, 그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 

페이스 쇼퍼의 소설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극적인 제목과 흥미에 치우친 소설 같지만, 실은 이 소설은 위에서 언급한 이러한 작태에 일종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워지길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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