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지옥의 5연전 첫날이었다.
마신 술: 소주 세잔, 죽엽청주 다섯잔---> 2차 가서 맥주 한병, 양주 반병
혼자 마신 이유: 일곱명 중 술먹는 얘가 나밖에 없는데, 술을 큰 걸 시켰다.
나빴던 점: 내가 주인공이라서 1차를 카드로 그었다.
좋았던 점: 집에 갈 때, 애들이 회비를 걷었다며 남은 돈을 다 나한테 줬다. 세어보니 내가 그은 것보다 더 많다. 우히히.
어제 대학 동창들의 번개가 있었다. 사람이 노는 데는 부지런하고 집요하다고 알려진 덕분에, 모임을 주선하고 장소를 예약하고 하는 걸 내가 할 때가 많다. 번개라 함은 몇 명이 올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한 일, 난 중국집에다 여섯명을 예약했다. 확실히 오겠다고 답을 준 친구만 다섯이었기에, 여섯은 좀 적어 보였다.
"야, 좀 좁지 않냐?" 먼저 온 친구가 불평을 했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는 그에게 십년전의 쓰라린 과거를 얘기해 줬다.
십년 전, 난 써클 선배로부터 졸업생들 모임을 주선하라는 명을 받았다.
"예약은 몇 명이나 할까요?"
"서른명 정도 하면 되지 않을까?"
난 선배들에게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싱그러운 계절...' 어쩌고 하는 엽서를 100여통이나 띄웠고, 대학로에 있는 유명한 중국집-이름이 <진아춘>이다-에 서른명 자리를 예약했다.
당일날, 지도교수가 괴롭히는 걸 과감히 뿌리치고 약속 장소로 온 나는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커다란 방에는 하얀 종이가 깔린 상 일곱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고, 상 위에는 '예약'이란 푯말이 놓여 있는데,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스포츠신문을 꺼냈다 (그때 난 스포츠신문 매니아였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신문을 넘기고 있자니 한명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가 함께 떠니까 정도가 덜했지만,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드르륵"
문 소리가 나며 주인 아저씨가 얼굴을 내민다. "아직 다 안오셨나요?"
난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올...거예요"
30분이 지났고, 그때까지 더 온 사람은 한명 뿐이었다. 밖에서 소리가 났다.
"아저씨, 자리 없어요? 저희 한 스무명쯤 되는데"
"지금 예약이 있어서 자리가 없어요"
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아저씨, 저희가 작은 방으로 옮길테니, 그 방 내주세요"
아마도 그들은 신께서 내게 보내준 천사였을 것이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내 순발력도 칭찬받아 마땅했다.
조그만 골방으로 옮기자 떨림은 가라앉았지만,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심지어 모임을 지시했던 선배마저 오지 않았지 않는가. 밖에 나가 약속이 있다는 재학생 애들까지 붙잡아 왔지만 사람은 총 여섯명, 그냥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날 난 소주를 엄청나게 들이켰다. 분노가 술을 다 흡수해 버리는지,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그후 난 어떤 모임이든지 예상되는 참석자의 절반 정도의 자리만 예약을 했다. 그리고...내가 마음을 푼 5년 후까지, 졸업생 모임은 다시 열리지 못했다.
여기까지 얘기하자 친구는 눈물을 닦으며 잘못을 빌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냥 여기 앉아 있자"
어제 온 인원은 7명이었고, 약간 좁았지만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