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막내 은곰이는 처음 올 때부터 앞다리가 안좋았다
그래서 거액을 들여 두 다리 중 하나를 수술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건이 좀 있었다.
하나는 마취 도중 심정지가 오는 바람에 거의 죽다 살아났다는 것.
두번째는 수술한 부위가 잘못되는 바람에 재수술을 받았다는 것.
원래 10일로 예정됐던 수술 후 입원은 20일로 늘어났고,
퇴원 후에도 3개월 가량 케이지 생활을 해야 했다.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할 당시 은곰이는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아내는 그런 은곰이를 달래려 부천에 있는 그 먼 병원을 수시로 다녔다.
은곰이는 아내를 볼 때마다 어둠 속 한 줄기 희망을 봤으리라.
아내에 따르면 은곰이가 그렇게 아내를 반가워했다고.
원래 뽀뽀에 인색한 녀석인데, 아내한테 격렬하게 뽀뽀를 해댔다.
케이지 생활을 할 때 은곰은 아마도 자신이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내가 가끔씩 은곰을 꺼내 안아주기라도 하면
은곰은 아내를 격렬히 핥아줬다 ㅋㅋ
난 뭐, 돈 버느라 바빴고, 시간이 있을 때도 풀려 있는 다른 개들을 챙기느라 은곰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3개월이 지나 은곰이가 케이지에서 풀려났을 때,
은곰이는 아내만 바라보는 개가 됐다.
원래 은곰은 성격이 안좋아 개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분란의 씨앗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세계대전 유발자라고 책에다 썼겠는가.
그랬던 은곰은 힘든 수술과정을 거치며 비교적 온순하고 말 잘 듣는 애로 변했다 (가끔 나오는 성질은 어쩔 수 없다).
나머지 한쪽 다리도 수술을 해야 하지만,
앞다리 하나가 좋아지니 은곰은 이제 아파하지 않고도 달릴 수 있게 됐기에
다른 한쪽을 굳이 수술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왼쪽이 은곰이다
그런 은곰에게 시련이 또 찾아왔다.
요즘 아내가 호흡기, 특히 콧구멍부터 기도까지의 공간이 좁은 게 호흡곤란과 심비대를 불러온다는 걸 알게 된 뒤
여섯 마리를 하나씩 하나씩 수술을 다 해주고 있다 (그래서 요즘 파산위기...)
결국 은곰이 차례가 왔다.
은곰을 본 수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비공협착의 정도가 제일 안좋은 걸 10이라고 한다면 은곰이는 15입니다.
이렇게 안좋은 개는 처음 봅니다."
그래서 은곰이가 조금만 움직여도 그리 헐떡거렸던 것이고,
다리 수술 때 심정지도 이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콧구멍만 넓혔던 다른 개들과 달리 은곰이는 연구개(입천장)의 일부를 잘라냈고
여기에 더해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탈장도 수술했다 ㅠㅠ
다른 애들이 2-3일이면 회복돼 뛰어다닌 것과 달리
은곰은 오랜 기간 힘들어했다.
사람을 불신해 꽁한 표정으로 시종일관 엎드려 있기만 했고,
가끔 움직일 때는, 개가 아니라 쥐처럼 스스슥 움직였다.
믿는 마음이 컸던 만큼, 은곰이는 특히 아내에게 서운했던 모양이다.
수술을 하던 날 혼자만 외출한다고 신나했다가
또 수술의 악몽을 겪었으니 말이다.
원래 아내 옆에서 꼭 붙어자던 은곰이는 이제 아내를 불신하게 됐고
난 이때다 싶어서 은곰에게 최선을 다했다 ㅋㅋ
그 결과 은곰이는 이제 내 곁에서 잠을 잔다
원래 다섯째 오리는 내 껌딱지이고,
첫째 팬더도 내 곁을 더 선호하는데다
요즘 내가 좀 신경써준 셋째 미니미까지 나한테 오는 바람에
난 이제 네 마리의 개와 함께 잔다ㅋㅋㅋㅋ
개는 다다익선, 난 아주 행복하다.
아내가 어느날 이런 불만을 터뜨린다.
은곰을 위해 돈 써가며 수술했고
지성으로 돌보기까지 했는데-실제로 수술 후 케어는 아내가 전담...-
은곰이가 저러는 게 서운하고, 그 틈을 비집고 은곰을 차지하려는 너는 더 서운하다.
니가 사람이냐.
아내 말도 일리가 있지만, 어쩌겠는가.
예쁜 은곰이와 있고픈데 수단 방법을 가릴소냐.
내 곁에서 코를 골고 있는 은곰이를 보며
그저 난 뿌듯하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