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월요일, 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윤지오 책을 내준 출판사 사람들에게 한턱을 냈던 것.
황소곱창을 쐈는데, 곱창 가격이 장난이 아니다보니 돈을 좀 썼지만,
내가 받은 은혜-책을 내준-에는 털끝만큼도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엄니 집 근처였기에 끝나고 엄니집 가서 잠을 잤는데
몸이 너어무 아파서 비몽사몽이었고, 엄니 집 가자마자 쓰러져 잤다.
열나게 잤더니 다음날엔 몸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래도 정상 몸상태는 아니었다.
몸상태가 어찌됐건 9 30에 시작하는 학교 수업은 해야 했기에 8시 15분 KTX를 타고 천안에 왔고
거기서 맹렬히 달린 끝에 9시 15분쯤 강의실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근데 강의록을 저장해 놓은 usb가 없어졌다.
지갑에 넣어뒀는데 아무래도 계산하다 빠진 모양이다. ㅠ
아내한테 전화를 걸어서 내 컴퓨터에 있는 강의록을 내 메일로 전송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강의실 (공과대 110호실-이걸 기억해 두자) 컴퓨터는 인터넷이 안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난 강의록 메일을 의예과 조교선생에게 전송했다.
그 후 스케쥴은 다음과 같다.
-차를 타고 의대로 간다.
-조교선생 컴퓨터에서 내 스페어 usb로 파일을 다운받는다.
-다시 강의실로 온다.
이런 시나리오를 짰다.
내 연구실 대신 의예과 조교에게 보낸 이유는
1) 내 연구실은 4층이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려면 시간이 걸린다.
2) 반면 의예과 조교실은 1층이고 컴은 늘 켜져 있다.
강의실 칠판에 커다랗게 글을 썼다.
"usb를 분실해서 가지러 갑니다. 조금 늦겠습니다"
차가 세워진 곳까지 열나게 달렸다.
차 앞에 선 뒤 깨달았다.
난 늘 차열쇠를 가방에 넣어두는데, 그 가방을 강의실에 두고 왔다!
다시 죽을 힘을 다해 강의실로 뛰어갔다.
그랬는데...
웬 외국인 남자가 강사 책상에 앉아 있고,
거기 놔둔 내 가방은 저 멀리 치워져 있었다.
이게 뭐지?
난 바깥으로 나가서 강의실 문 옆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110호는 월요일 강의를 한 곳이고,
화요일 강의는 공대 220호였다!
외국인 선생에게 되도 않는 영어로 죄송함을 표시한 뒤
다시 헐레벌떡 뛰어서 220호로 갔다.
학생들에게 usb를 가지러 간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지만,
내가 아주 바보는 아닌 게, 거기서 '혹시 인터넷이 되는지' 컴퓨터를 확인해 본 것이다.
이럴 수가.
그 컴퓨터는 인터넷이 아주 잘 됐다.
난 내 이메일에 접속한 뒤 강의록을 다운받았고,
문제없이 강의를 했다.
정말 다행이지 않은가.
인터넷이 되는지 확인해 본 게.
옛날 같으면 그냥 의대에 갔다온 뒤 뒤늦게 인터넷이 되는 걸 확인하고
난 바보라며 머리를 쥐어뜯었을 텐데 말이다.
usb는 분실했지만, 그리고 좌충우돌을 했지만
발전된 내 모습을 확인해서 기분이 좋았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