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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치료의 혁신, 면역항암제가 온다
찰스 그레이버 지음,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19년 10월
평점 :
건강서적에는 소위 사이비가 많습니다.
자연인으로 살았더니 암이 나았더라, 채식만 했더니 암이 없어졌더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게 사이비인 게, 산으로 간 이들 중 죽은 이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사람만 말을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복잡한 진실보다는 이런 유의 스토리를 훨씬 그럴듯하다고 믿기에,
별 근거도 없는 사이비 건강서들을 사들이지요.
<면역항암제가 온다>-이하 온다-는 제목만 보면 그런 책 중 하나일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의사가 쓴 책이 아닌, 기자가 쓴 책이지만,
암 치료에서 면역의 효과를 팩트에 근거해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냅니다.
뒤에 달린 수많은 참고문헌은 이 책이 믿을만하다는 증거겠지요.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기자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였다면 이렇게 풍부한 자료를 조사하지도, 또 글을 재미있게 쓰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사실 의학계에서는 한 가지 미스테리가 있었습니다.
암이 저절로 사라지는, 소위 자연감소가 이따금씩 관찰되는 것이지요.
예컨대 호주의 연구자가 말기암 판정을 받은 2337명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봤어요.
대부분 5개월을 못 넘기고 죽었지만, 그 중 1%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고, 암도 다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의학계에선 이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그냥 기적이라고 부를 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진단이 잘못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다>는 이 미스테리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말해 줍니다.
무엇인가가 면역반응을 깨워서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바이러스, 세균처럼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것들에겐 면역반응이 생기지만,
우리 세포가 변형된 암세포에겐 면역이 생기지 않지요.
그래서 암세포는 우리를 죽일 정도로 자라고, 또 퍼질 수 있었습니다.
말기암이 치료하기 어려운 이유는 곳곳에 퍼져있는 암을 다 제거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뭔가가 면역반응을 깨운다면, 그래서 암세포를 다 죽일 수 있다면
설령 말기암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완치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기절할 만큼 놀란 것은 이 면역요법이 무려 150년 전에 시작된 거라는 점입니다.
콜리라는 의사는 수술을 받던 암 환자가 세균에 감염돼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완치된 사례에 흥미를 느껴 '세균감염을 통한 암 치료'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의 연구가 계속됐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당시는 면역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이 없었기에
콜리의 연구는 미치광이 혹은 사이비 취급을 받지요.
나중에 방사선 요법이 나오면서 또 항암제가 나오면서
면역요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콜리가 쓸쓸히 죽은 뒤 1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연구가 다시 조명되고 있답니다.
아직 절반밖에 읽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책이다!"라고
탄성을 지를 만합니다.
닉슨 미국 대통령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항복한 이후
암정복은 거의 불가능한 미션처럼 여겨졌었는데,
면역요법으로 인해 해볼만한 싸움이 된 것일까요.
뒷부분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네요.
내일 일정이 빠듯한데, 그래서 자야 하는데,
책이 저를 간만에 가슴 뛰게 하네요.
암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권해 드립니다.
우리 같이 가슴 뛰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