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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평점 :
오찬호 선생의 책은 읽을 때마다 내게 깨달음을 준다.
젊은 세대의 생각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한데,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의대라는 특권적 위치에 있고, 그나마도 그 수가 많지 않은 것과 달리 (우리 학교 의대는 한 학년이 40명이다)
오선생은 여러 대학을 나가고, 의대가 아닌 일반 대학생들을 수시로 접하니,
‘젊은 세대의 생각은 이렇다’라고 일반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는 그간의 저작들과 달리
젊은층에 국한되지 않은, 우리 사회 전반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특히 마음이 아팠던 두 가지만 얘기해 보자.
하나는 K대 교수인 아무개의 갑질이었다.
아무개는 저자에게 “학생들이 네 책을 읽었으니 내 수업 시간에 강의 좀 해라”고 했고,
당시만 해도 대학에 남는 것에 미련이 있었던 오선생은
긴 거리를 걷고 뛰며 강의장에 도착한다.
보통 이럴 때는 강의를 부탁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사를 소개해 주고,
강의 후 식사를 대접하면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예의다.
소정의 강사료를 주는 것도 당연하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개는 학교에 있지도 않았고, 학생들은 수업을 듣는 대신 딴짓만 했다.
강의가 끝날 때쯤 들어온 조교는, 강사료를 챙겨줄 것이라는 저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학생들에게 말한다.
“오늘 작가님께 강연료도 못 드리는 대신 정성스레 작성한 독후감을 드리자고 지난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죠? 얼른 제출해 주세요.“ (51쪽)
그러니까 아무개 교수는 자기 강의시간에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휴강하기가 민망해서 오선생을 대타로 뛰게 한 것이었다.
설령 그렇다해도 사정을 미리 말하고, 자기 돈으로라도 강사료는 줘야 할 것 아닌가?
강사에게 KTX 표를 끊어주고, 역에서부터 학교까지 차로 모시고,
식사까지 대접하고, 다시 역까지 모셔다 드리고,
여기에 내 돈으로 (우리 학교는 외부강사를 부르지 못하게 한다)
강사료를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내가 보기엔
아무개 같은 교수는 대학가의 수치다.
그런데 오선생에 따르면 그가 “여기저기 학회에 초대받는 유명인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주요 연구분야가 ‘경제민주화와 대기업의 횡포’란다.
이런 사람이 왜 실상이 까발려져서 몰락하지 않는 것일까?
여성의 미투운동과 더불어서 대학교수의 갑질을 고발하는 운동이 벌어지길 빈다.
또 하나 안타까웠던 얘기는 기업 강연 때 담당자가 보이는 반응이었다.
이름난 강사이니 여기저기서 강연요청이 들어오지만,
강연약속을 잡은 뒤 위에서 뒤집는 경우가 많단다.
담당자는 이렇게 양해를 구한다.
“작가님의 사상이 너무 부정적이라서 어렵대요.”
도대체 뭐가 부정적일까?
오선생의 전공이 ‘기업의 노예가 된 대학사회’를 비판하는 것이어서란다.
기업들로선 주제가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쓴소리를 회피하는 사회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을 것 같다.
이 대목을 읽다가 인권을 강의하는 어느 분이 생각났다.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인권에 대해 역설하던 도중,
화가 난 교감이 들어와 강의를 중단시켰다나.
그때 그분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생각하면,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분은 갑질에 관한 강의의 달인인데,
교수들을 모아놓고 “대학원생들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느냐?”고 일갈하자
몇 명의 교수들이 화난 표정으로 강의실을 박차고 나갔단다.
참으로 못났지 않은가.
갑질, 대학의 정신, 인권 등등 다 우리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주제건만,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주체들은 이 주제를 불편해한다.
오히려 내 전공인 기생충 얘기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으니,
이거야말로 신기한 일 아닌가.
기생충>>>>>>인권 = 대학정신 = 갑질 인 셈이다.
하기야, 남 얘기를 할 때가 아닌 것이, 나도 더 이상 봄날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작년 말 문빠에 대해 글을 쓴 이후 하려던 방송에서 잘리다시피 했고-다시는 그런 글을 쓰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출연을 시켜준다고 했다-
날짜까지 잡힌 외부강연은 높은 분의 반대로 엎어지기도 했다.
아내는 내게 “거봐. 그런 글 쓰지 말랬잖아!”라고 말하는데,
나야 어차피 대학의 봉급으로 먹고 사는지라 외부활동이 큰 의미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그런 부당한 일을 겪으면 얼마나 서러울까 싶었다.
아무개 교수같은 이가 마음껏 갑질을 할 수 있는 이유도
그가 비정규직 강사의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이런 주제 말고도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이 담겨 있는데,
읽는 동안 잠깐잠깐 멈춰서서 과거를 떠올리느라, 한숨을 내쉬느라, 분노를 잠재우느라,
읽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오선생이 이런 유의 책을 쓰는 이유는 이런 책이 더 이상 필요없는 사회가 오기를 바라서일텐데,
지금으로 봐선 요원해 보이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오선생이 계속 좋은 책을 낼 수 있게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