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싸움의 기술>은 학교에서 늘 맞고 다니는 주인공이 싸움의 귀재 백윤식을 만나 무술을 배우는 내용이다. 어렵게 청을 수락한 백윤식은 고수가 다 그러는 것처럼 싸우는 기술보단 별 관계 없어 보이는 것만 시킨다. 배달된 우유를 훔친다든지, 빨래를 짠다든지 하는 일들이 그것인데, 그런 일들은 물론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짱과 겨룰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난 주인공이 별다른 기술도 배운 바 없이 학교 짱과 맞섰을 때 좀 걱정이 됐는데, 주인공은 어렵사리 그를 물리치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교실을 걸어나간다. 그에게 도움이 된 건 “네 안의 두려움을 깨라”는 백윤식의 말, 이종격투기같은 프로들의 싸움이 아닌 이상, 싸움에서 중요한 건 배짱이지 기술은 아니었던 거다.

중1 때, 난 그리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정신을 차린 연후에 모임에서 탈퇴하려 하자 그들은 끊임없이 날 괴롭혔는데, 한번은 우리집 앞을 지키고 있는 그네들이 무서워 밤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 그때까지l 난 싸움이란 걸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싸우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괴롭힘의 도가 지나쳐 난 그네들의 요구대로 그 중 한명과 으슥한 골목길에서 싸움이란 걸 하게 되었다. 난 그리 결사적이지 못했다. 친구를 때린다는 게 영 불편해 주먹이 잘 나가지 않았던 것. 때린 것도 없었지만 맞은 것도 드물어, 그냥 무승부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 다음날, 난 두 번째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들 중 가장 싸움을 잘하는 친구와 교실에서 붙어버렸다. 난 정신없이 주먹을 뻗었고, 주먹들 사이로 상대의 당황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서민이 더 많이 때렸어!” “민이 싸움 잘 하잖아!”
구경하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표했고, 그 싸움서 이긴 난 다소 으쓱한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그 싸움에서 중요했던 건, 초등학교 때 2년간 배운 태권도 기술보다 죽기살기로 붙어보자는 각오였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또 다른 싸움을 불러오는 걸 의미했다. <싸움의 기술>의 주인공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 짱을 이기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학교 짱은 선배 깡패들을 데려와 그를 구타한다. 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싸움을 해야 했다. 그 패거리 중 더 이상 날 이길 자가 없자 그네들은 깡패로 활약하던 애를 데려와 싸움을 붙인다 (그 친구의 이름이 성시경이었다. 그래서 난 초창기에 가수 성시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래들끼리의 싸움에선 깡다구가 중요했지만, 전문깡패에게 깡다구는 별 효과가 없는 법, <싸움의 기술>의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맞은 것처럼, 난 거의 한 대도 때리지 못한 채 흠씬 두들겨맞고 만다. 중간에 코피가 나서 싸움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반쯤 죽었을 거다. 그 장면에 만족해서인지 그네들의 괴롭힘은 덜해졌고, 중2가 되어 반이 갈라지면서 난 그네들의 마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전혀 싸움을 안한 건 아니다. 하지만 고1 때를 마지막으로 내 싸움은 막을 내렸다. 그 시절엔 이미 기골이 장대해져, 싸웠다 하면 누군가가 병원에 가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까. 깡패 비스무리한 애를 쥐어팼다가 나중에 견갑골이 부러지도록 보복을 당한 우리반 애처럼 말이다. 그때보다 더 커버린 지금은 좀 비굴하게 굴지언정 싸움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긴 하지만, 일단 싸우고 나면 이기건 지건 잃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나 난 고2 때 합기도 초단을 땄는데, 그러고 나니까 싸우는 게 더 두려워졌다. 비록 내가 몸이 불어 ‘공중으로 날아 이단옆차기’ 같은 건 할 수 없다지만, 상대를 보면 급소만 곳곳에 급소만 보이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