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싸움의 기술>은 학교에서 늘 맞고 다니는 주인공이 싸움의 귀재 백윤식을 만나 무술을 배우는 내용이다. 어렵게 청을 수락한 백윤식은 고수가 다 그러는 것처럼 싸우는 기술보단 별 관계 없어 보이는 것만 시킨다. 배달된 우유를 훔친다든지, 빨래를 짠다든지 하는 일들이 그것인데, 그런 일들은 물론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짱과 겨룰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난 주인공이 별다른 기술도 배운 바 없이 학교 짱과 맞섰을 때 좀 걱정이 됐는데, 주인공은 어렵사리 그를 물리치고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교실을 걸어나간다. 그에게 도움이 된 건 “네 안의 두려움을 깨라”는 백윤식의 말, 이종격투기같은 프로들의 싸움이 아닌 이상, 싸움에서 중요한 건 배짱이지 기술은 아니었던 거다.




중1 때, 난 그리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정신을 차린 연후에 모임에서 탈퇴하려 하자 그들은 끊임없이 날 괴롭혔는데, 한번은 우리집 앞을 지키고 있는 그네들이 무서워 밤늦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 그때까지l 난 싸움이란 걸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싸우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괴롭힘의 도가 지나쳐 난 그네들의 요구대로 그 중 한명과 으슥한 골목길에서 싸움이란 걸 하게 되었다. 난 그리 결사적이지 못했다. 친구를 때린다는 게 영 불편해 주먹이 잘 나가지 않았던 것. 때린 것도 없었지만 맞은 것도 드물어, 그냥 무승부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그 다음날, 난 두 번째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들 중 가장 싸움을 잘하는 친구와 교실에서 붙어버렸다. 난 정신없이 주먹을 뻗었고, 주먹들 사이로 상대의 당황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서민이 더 많이 때렸어!” “민이 싸움 잘 하잖아!”

구경하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표했고, 그 싸움서 이긴 난 다소 으쓱한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그 싸움에서 중요했던 건, 초등학교 때 2년간 배운 태권도 기술보다 죽기살기로 붙어보자는 각오였다.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또 다른 싸움을 불러오는 걸 의미했다. <싸움의 기술>의 주인공은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학교 짱을 이기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학교 짱은 선배 깡패들을 데려와 그를 구타한다. 내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난 그 뒤로 몇 번이나 더 싸움을 해야 했다. 그 패거리 중 더 이상 날 이길 자가 없자 그네들은 깡패로 활약하던 애를 데려와 싸움을 붙인다 (그 친구의 이름이 성시경이었다. 그래서 난 초창기에 가수 성시경을 좋아하지 않았다). 또래들끼리의 싸움에선 깡다구가 중요했지만, 전문깡패에게 깡다구는 별 효과가 없는 법, <싸움의 기술>의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맞은 것처럼, 난 거의 한 대도 때리지 못한 채 흠씬 두들겨맞고 만다. 중간에 코피가 나서 싸움이 중단되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반쯤 죽었을 거다. 그 장면에 만족해서인지 그네들의 괴롭힘은 덜해졌고, 중2가 되어 반이 갈라지면서 난 그네들의 마수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전혀 싸움을 안한 건 아니다. 하지만 고1 때를 마지막으로 내 싸움은 막을 내렸다. 그 시절엔 이미 기골이 장대해져, 싸웠다 하면 누군가가 병원에 가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까. 깡패 비스무리한 애를 쥐어팼다가 나중에 견갑골이 부러지도록 보복을 당한 우리반 애처럼 말이다. 그때보다 더 커버린 지금은 좀 비굴하게 굴지언정 싸움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긴 하지만, 일단 싸우고 나면 이기건 지건 잃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게다나 난 고2 때 합기도 초단을 땄는데, 그러고 나니까 싸우는 게 더 두려워졌다. 비록 내가 몸이 불어 ‘공중으로 날아 이단옆차기’ 같은 건 할 수 없다지만, 상대를 보면 급소만 곳곳에 급소만 보이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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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8-07-2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미녀들의 급소는 가슴이었소?

Mephistopheles 2008-07-26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아닌 마음이 급소가 아니였을까요?
(이래서 싸움은 선빵이 중요해요.이 뭔소리??)

2008-07-26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8-07-27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아 참 오늘 연락드린다고 해놓고선 까먹었쪄요. 죄송. 글구 미안해하실 필요 없쪄요! 제가 죄송하죠!
야클/음....미녀들의 급소는 숨은 댓글로 가르쳐 주겠소. 'ㄱ'으로 시작하오.
메피님/호호 싸움에 선빵이 중요하단 말은 미녀에겐 통하지 않지요. 숨은댓글로 가르쳐 주리다. 'ㅇ'으로 시작하오.

최상의발명품 2008-07-27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유단자시군요. 제가 좋아하는 분도 합기도 유단자신데 합기도는 어떤 운동인지 예전부터 궁금했었습니다.
아래에서 봤는데 혹시 잃어버렸던 앵무새 죽이기 다시 찾으시고, 아 줄 사람 너무 없다 어쩌지 정말 미치겠네. 이런 생각이 드신다면 저 주세요 ㅎㅎ
마태우스님의 앵무새 죽이기 리뷰를 볼 생각에 설레는 새벽입니다.

최상의발명품 2008-07-27 0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아깝습니다. 페이지는 계속 열어놓고 있었는데
11분 차이로 늦다니!

마태우스 2008-07-27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명품님/안녕하셨어요 앵무새 죽이기에 관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답니다. 알라딘서 배송 왔는데 결국 다시 샀어요. 제가 바보여서 벌어진 일인데요, 하여간 지금 읽고 있답니다. 글구 잃어버린 앵무새는 다시 나오질 않네요. 찾으면 무조건 님 드리겠습니다 꾸벅. 합기도는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운동이지요

최상의발명품 2008-07-27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말씀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꼭 찾으시기를!
합기도는 그런운동이었군요. 호기심 해결입니다^^

마태우스 2008-07-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명품님/언제 저랑 일합을 겨룰 기회가 있기를...^^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아는 분한테서 추천받은 <앵무새 죽이기>를 읽으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분명히 샀는데 학교에서 찾으니 없기에 “집에 있겠지” 했는데, 집에 가니까 또 없는 거다. 결국 다시 주문을 해버렸고, 막간에 읽을 책을 고른 게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라는 인터뷰 모음집이었다. 이 책을 산 건 순전 제목 때문이었다. 왠지 발랄하고 유쾌한 그런 책일 것 같지 않은가? 막상 읽고보니 기대만큼 톡톡 튀진 않았지만, 이 책이 매우 성실하고 괜찮은 인터뷰집인 건 보장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뛰어난 점은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를 아주 잘 해 놨다는 것. 평소에 몰랐던 인터뷰이들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거기에 있다.




예컨대 건축가 조성룡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저자는 그가 만든 선유도공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뒤늦게 선유도에 갔다가 한동안 쩔쩔맸습니다. 내가 느끼는 이 정서적 울림은 과연 뭔가...”

저자는 김민수 교수의 말도 곁들인다.

“좋은 디자인이란 성찰하게 하는 거다. 그 에가 조성룡이 설계한 선유도 공원이다.”

조성룡과의 인터뷰를 읽은 후,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 선유도 공원 가자!”

“왜?”

“정서적 울림을 느껴야 해!”

착한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외출 준비를 했고, 나가는 눈치가 보이자 개들은 좋아라고 짖어댔다. 그리고 난, 선유도공원에서 마주할 정서적 울림을 생각하며 기대에 차 있었다.


선유도로 떠나기 전 우리 애들의 모습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선유도공원을 가려면 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 앞 잔디밭에 개들을 풀어놓은 게 문제였다.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가던 남자가 우릴 보고 시비를 걸었던 것.

“아니 개들을 풀어놓으면 어떡해요? 당장 묶어요.”

우리 개들을 보고 위협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다들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고, 특히나 애들은 우리 개를 보고 좋아서 달려온다. 게다가 개들은 우리 뒤만 졸졸 따라오는지라 끈 같은 게 특별히 필요없다. 하지만 사람들 중엔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꽤 있고, 우리 개가 자신의 아이를 해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아요”란 말을 한들, 그들에겐 별 소용이 없다. 개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 개들이 유모차 속의 아이에게 하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고 부부 중 남자가 우리에게 “왜 개를 풀어놓냐?”고 부당하게 화를 내도 우리는 그걸 다 감수해야 했다. 비혼자나 애 없는 부부가 늘 훈계를 듣는 것처럼, 모든 이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개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 할 자격이 있는 거다. 그렇기에 난 “알겠습니다”라고 그에게 굽신거렸고, 그가 반대쪽으로 걸어가며 우리 쪽을 계속 째려봤다 해도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개를 데리고 간 우리가 당연히 치러야 할 죄값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의 언행이 우리에게 큰 불쾌감을 준 건 사실이다. 그날은 선유도 공원에 가지 못한 채 집에 왔는데, 선유도에서 내가 느끼고자 했던 정서적 울림은 이런 종류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정서적 울림을 느낀 건 사실이니 책에 대해 별 불만은 없다. 선유도에 대해 알게 해준 김경 씨,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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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24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쓰는 동안 무슨 일 있었죠?
처음엔 리뷰로 시작되었다가 나중에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군요.

Arch 2008-07-25 22:19   좋아요 0 | URL
댓글이 ^^

순오기 2008-07-2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는 개인 감정을 지나치게 표현하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요~~
선유도가 군산의 선유도가 아니었네요~ ^^

Loch 2008-07-25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들이 너무 예뻐서 댓글을 달지 않을수 없군요.^^ 저런 예쁜 애들을 어떻게 묶어놓으라고 할수 있는지..그사람 정말 너무해요.

야클 2008-07-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안고 가는데 주인 들으라는 듯이 아저씨들 느끼한 표정지으며 "그놈 참 맛있게 생겼네"라고 할때. 그런걸 도대체 농담이라고 하는건지... 하여간 우리나라엔 안티애견족들이 많으니 감내하는 수 밖에.

마태우스 2008-07-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오랜만일새 전화도 안하고 말야 언제 술한번 먹자더니 그 언제는 도대체 언제인가. 야클 자네는 안티 술 족인가!!!!!!
로치님/어맛 감사합니다 걔네들이 사람들한테 짖거나 그러믄 한마디 할 수 있죠 그저 저희 근처에서 왔다갔다하는데.... 개의 존재 자체가 불쾌한 사람들이 있더라구요.
순오기님/군산에도 선유도가 있군요. 음, 하여간 개가 불쾌해서 목줄을 묶어야 한다면, 조폭 집단이 공원에 오면 쇠사슬로 묶고다녀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승연님/제가 원래 별명이 삼천포입니다^^ 시니에님/안녕하셨어요? 반가워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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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었다. 어디선가 이 책의 감상문을 읽었기에 대충의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책을 딱 펴는 순간 난 무지하게 놀랐다. 저자가 파블로 네루다가 아닌, 듣도 보도 못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인 거다. 다시금 생각을 해보면 그게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네루다가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는 게 말이 되냐?-난 여태까지 저자가 네루다인 줄만 알았다.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책들 중 이 책만큼 재미있고, 진도가 팍팍 나가는 책은 드물 거다. 게다가 페이지 수도 얼마 안되어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참고로 <적과 흑>은 거의 열흘이 걸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독자를 시인으로 만들어준다는 거다. 장정일은 우리나라가 이상하게 시집이 잘 팔리는 나라라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가 단편적인 이유는 시를 많이 읽어서라지만, 네루다의 친절한 조언이 곁들여진 <우편배달부>를 읽고나면 ‘나도 시를 한편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주위를 둘러싼 사물들이 달리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기차에서 이 책을 읽다가 책 뒤에 끄적거린 시가 있는데, 공개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네루다가 사는 섬의 주민들은 다 시인이다. 걔중에는 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최소한 네루다같은 시인을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그리고 그를 흉내내어 시를 쓰려는 주인공 마리오를 높이 평가하기에, 그네들은 다 시인인 거다. 가장 훌륭한 시인은 베아트리스의 어머니. 마리오가 좋아하는 미녀 베아트리스의 어머니는 가진 게 없는 마리오를 아주 싫어하는데, 그녀가 딸에게 하는 말들은 그 자체가 시다. “강물은 자갈을 휩쓸어 오지만 말은 임신을 몰고 오는 법이야. 가방 싸!”란 구절도 범상치 않지만, 베아트리스에게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진다”고 했던 마리오를 빗댄 어머니의 대꾸는 ‘죽인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네 미소가 한마리 나비겠지. 하지만 내일은 네 젖통이 어루만지고 싶은 두 마리 비둘기가 될 거고, 네 젖꼭지는 물오른 머루 두 알, 혀는 신들의 포근한 양탄자, 엉덩짝은 범선 돛, 그리고 지금 네 사타구니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는 고것은 사내들의 그 잘난 쇠몽둥이를 달구는 흑옥 화로가 될 걸! 퍼질러 잠이나 자!”
책 전편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게 읽은 시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       *  마리오가 좋아했던 ‘추신’을 덧붙인다. 내가 책 뒤에 쓴 시다.

제목:  아저씨

하루 두번씩 기차를 타는데
내 옆자리엔 늘 아저씨, 아줌마고
가끔씩은 군인아저씨라네
오늘은 웬일이냐 내 자리 옆에
젊은 미녀가 우아하게 앉는구나
냉큼 다가가서 앉으려는데
미녀는 날보더니 자기자리를 찾아 가버리누나
잠시 후 옆에 앉은 아주머니 한분-그러면 그렇지!-
총각, 어디까지 가요라고 물으신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저 총각 아니거든요
올 1월에 결혼한 유부남이랍니다.

        * 옮기고 나니 네루다에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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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7-17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저 분홍색 인용하신 부분은 저도 아주아주 인상깊게 읽은 구절이랍니다. 그리고 저는 이부분도요.


"제 웃음이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래요. 홀연 일어나는 은빛 파도라고도 그랬고요."(p.62)


지으신 시의 제목은 '아저씨' 보다는 '난 더이상 총각이 아니야' 가 어떨까요? 하하

비로그인 2008-07-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를 읽는 것도 짓는 것도 아직까지 어렵답니다.
그렇지만 님께서 지은 시는 눈에 쏙 들어옵니다.
굳!!

순오기 2008-07-1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하~ 저도 가을쯤에 독서회 토론도서로 정하려고 찜해두고 있답니다.
왠지 가을과 시는 어울리는 한쌍이잖아요~~~
핑크빛 문장은 아마도 마태님이 총각이 아니기에 더 실감날 걸요~~ㅋㅋㅋ
이 책을 보셨으면 영화도 보셔야 할걸요~ 어쩜 이미 보셨을지도 모르겠당!

최상의발명품 2008-07-1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재밌네요. 꼭 읽어볼 거에요.
마태우스님의 시를 본 저도 시상이 마구마구 떠오릅니다.
정리가 되면 발표하겠습니다.

마태우스 2008-07-24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상의발명품님/어여 정리하세요!!! 님의 시도 보고시퍼요!
순오기님/영화 안봤어요. 전 예전에 깊이있는 영화는 외면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가 되요. 프랑스문화원도 가고 그랬어야 하는데 도대체 뭘 했는지...
승연님/감사합니다. 꾸벅
다락방님/글게요...님이 지어주신 제목이 더 어울리네요. 글구 웃음이 한 떨기 장미인 분은 다락방님이 아닐까 싶어요^^
 
적과 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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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을 읽었다. 어릴 적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책이건만, 이제야 읽은 내 인내력이 놀랍다. 이 책은 신분이 낮은 쥘리엥이란 청년이 귀족들의 기득권에 맞서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녀들과의 사랑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젊은 쥘리엥은 미녀를 좋아한다. 그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드 레날 부인도 아주 미인이었고, 두번째로 좋아한 마틸드 역시 미인이다.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유혹하려 한 카페 종업원 역시 미녀다. 미녀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쥘리엥은 얼굴만 예쁘면 다른 건 안본다. 2권의 128쪽을 보자.
“그녀는 정말로 아름답고 위엄있어 보였다. 쥘리엥은 그녀에게 거의 사랑을 느낄 정도였다.”
보라. 성격 같은 건 아예 언급도 안돼 있다.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을 느낀단다. 하긴, 우리 사회엔 얼굴만 예쁘면 다른 건 다 필요없다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침을 주고 있다. 어떻게?

1) 마틸드
마틸드는 19세로, 후작의 딸이다. 가질 걸 다 가진 여자답게 여기저기서 프로포즈를 받고 있는데, 당연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 그녀가 쥘리엥을 좋아하게 된 건, 쥘리엥이 다른 남자와 달리 그녀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쥘리엥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쥘리엥의 유일한 매력은 날아가버린다. 결국 쥘리엥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는 유치한 방법으로 그녀의 사랑을 다시 뺏는데, 여기까지 읽고 “나도 이 방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걸 명심해야 한다. 쥘리엥이 잘생긴데다 총명하기까지 하다는 걸! 나처럼 가자미눈을 한 사람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무관심을 가장한다면, 그녀는 그나마 남은 관심도 끊는다. 그러니 얼굴이 웬만큼 생긴 사람이라면 이 방법을 써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집적거리진 않으면서 그녀 주위에서 맴돌아야 한다. 소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작전. 그녀를 보고 있다가 그녀가 돌아보면 획 고개를 돌려 딴데를 보고 있는 척하기. 남자가 그러면 귀여워 보이고, 그녀로부터 “너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절반은 성공한 거다.

2) 드 레날 부인
‘부인’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여자는 유부녀다. 책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눈이 아주 예쁜데,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발르노라는 남자가 좋아한다고 편지를 수시로 쓰는 걸 보면 미녀의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미녀와 같이 사는 드 레날이란 남자는 불행히도 그녀의 가치를 모르며, 그녀를 권태롭게 한다. 비극은 언제나 권태로부터 시작된다. 쥘리엥은 손쉽게 드 레날 부인의 마음을 얻는다. 그녀가 좋아하는 눈치를 주자 쥘리엥은 망설이지 않고 늦은 밤 그녀의 방문을 연다 (이 부부는 왜 따로 자는거야? 안해?).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서로 사랑하는 걸 확인했지만, 쥘리엥은 그녀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바치지 않는다. 가끔은 사랑하는 것 같지만 어쩔 때 보면 까탈스럽기 그지없게 행동함으로써 그녀를 헷갈리게 하는데, 이럼으로써 드 레날 부인은 더 안달이 나 쥘리엥을 찾게 된다. 위의 마틸드도 그랬지만, 사람은 “오직 너만 좋다”고 전폭적인 의존을 보이는 사람에겐 금방 싫증을 느낀다. 쥘리엥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드 레날 부인이 자신만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쥘리엥이 미남에다 연하니 가능한 거겠지만, 이런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애인을 사귈 때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지 말라는 것. 가끔은 바쁜 척도 하고 그래야지, 헤벌레 입을 벌린 채 애인 뒤만 쫓아다니면 미녀는 곧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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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7-1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하하하. 아, 고전의 리뷰를 이렇게 재미있게 쓸 수도 있는거군요! 놀라워요, 마태우스님! 하하하하.

제목의 '쥘리엥'만 보고 혹시 스탕달의 적과흑인가, 라고 생각하고 후다닥 달려왔는데 맞았군요!

최상의발명품 2008-07-15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오랜만이에요~ 얼마나 많이 기다렸었는데요.^^
스탕달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어려울 것 같다는 편견에 아직 읽지 않았는데
당장 읽어보고 싶네요. 미녀들도 많이 나오고 ㅎㅎ
오랫동안 많이 읽히고 사랑받는 작품은 그런 이유가 있더라구요.
제가 얼마 전에 본 오만과 편견도 재밌었고
저번에 강추해드린 앵무새 죽이기도 그렇구요.

paviana 2008-07-15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어렵다 바쁘다 하시면서 이런 고전까지 읽으시는군요.
쥘리엥이라고 해야 되나봐요. ㅎㅎ

순오기 2008-07-16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요즘 따로 자는 부부 많아요, 우린 둘째 낳고 부터 따로 잤는데 셋째도 낳았다죠!ㅎㅎ따로 자는 맛을 알고 나면 같이 자기 힘드니까, 마태님은 절대 이 맛을 알면 안돼요~돼요돼요돼요돼요~~~~~
결혼 전에 읽었던 고전들을 독서회 하면서 다시 보기를 하는데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고요~ 제가 이 나이에 다시 읽으면 쥘리앙 쏘렐한테 반해서 허우적거리지 않을까 싶어요.ㅋ

마태우스 2008-07-1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따로 주무시는데 세째를 낳으셨다구요. 흠흠. 저희 부부는 개 두마리와 더불어 마루에서 같이 잔답니다^^ 글구 나이 들어 고전을 읽으니 마음에 더 와닿는 게 좋더라구요.
파비님/어차피 기차에선 달리 할일이 없다보니, 책을 읽게 되는군요. 사실은 책 읽을 마음에 기차 타는 게 설레요
최상의발명품님/아앗 저를 기다리셨다니, 앞으론 좀 자주 리뷰 쓰겠습니다. 꾸벅. 오만과 편견 정말 재밌지요? 글고보니 님이 강추해주신 앵무새 죽이기, 사놓고 아직 안읽었네요. 조만간 읽겠습니다!!
다락방님/쥘리엥,만 보시고 적과 흑을 연상하셨다니 님의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에 감동합니다. 리뷰 재밌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순오기 2008-07-17 17:46   좋아요 0 | URL
앗, 앵무새 죽이기는 어제 중학교 학부모독서회에서 8월 토론도서로 정했어요.^^ 어여 읽고 리뷰 올려주세요~ 우리 8/27 모임 하기 전에요.ㅎㅎ

최상의발명품 2008-07-18 22: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순오기님 의견에 강력 동의합니다 ㅎㅎ 읽으시면 아 내가 왜 사놓고 이걸 여태 안 읽었지 하면서 무릎을 탁 치실 거에요. 이 글 보시는대로 처음 10장만이라도 한 번 읽어보세요. 너무 재밌거든요.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는 분 중 미녀로 소문난 연구원이 있다. 그녀를 본 내 조교선생이 "아니 선생님이 아는 분 중 저런 미녀도 있었나요?"-그땐 내가 결혼 전이었다-라고 놀랐을 정도의 미녀인데, 그녀는 책도 좋아하는 편이라 나랑 가끔씩 책에 대한 얘기를 하곤 했다. 그녀는 특히 일본 추리물에 강해 히가시노 게이코의 <회랑정 살인사건>을 내게 선물해 주기도 했는데, 그런 그녀가 오쿠다 히데오가 쓴 <걸>을 내게 선물했다.

"선생님 드리는 거예요. 여성의 심리를 잘 파악했더라고요."


여러 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걸>의 첫 작품은 실망스러웠다. 얼굴이 잘생긴 남자만 있으면 나이에 무관하게 모든 여자들이 침을 흘린다는 설정이 마음에 안들어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첫 작품을 읽는데 거의 닷새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여성 심리를 잘 파악하긴, 개뿔!'

하지만 여성 상사가 겪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다룬 두 번째 작품부터는 재미도 있고 공감도 잘 되어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거의 하루도 안되어 나머지 부분을 다 읽은 것 같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내년 여성학 교재로 채택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 큰 수확. 지난 학기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학을 가르쳤는데, 참고문헌으로 택한 소위 여성주의 소설들이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다. <물의 말>은 물론이고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남성은 다 나쁜 놈"이라는 진리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계도의 대상인 남학생들에게 반발심만 키워놓았고, 게다가 너무 어렵기까지 해 그런 책을 교재로 정한 내가 미안했다. 남자들로 하여금 여자의 입장에 서봄으로써 이 사회가 성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리고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자 한다면, <걸>처럼 쉽고 재미있게 쓸 필요도 있지 않을까?


최근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작품들에 질린 나머지 하마터면 오쿠다 히데오를 버릴 뻔했다. 하지만 한방이 있는 작가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걸 그의 신작 <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마초적인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분들게 이렇게 외쳐보자.

"이봐. 여자랑 일하기 싫으면 스모협회나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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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7-13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에 대한 평가는 좀 엇갈리는 것 같군요.^^
마초적인 사상을 간직한 분들~~ ㅎㅎㅎ 많지 않을까요?

LAYLA 2008-07-13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남학생들이 오해하진 않을지 좀 걱정되네요. 젊은 모습 유지하려고 거의 발악(?)하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나요? 상사자리에 앉게되어 고민하는 여성의 모습은 좋았어요...아 근데 뒷부분에서요 아이키우면서 직장생활하는 여성의 이야기 나오지 않나요? 싱글맘 이야기였나? 그 부분에선 좀 소설스러웠어요. 혼자 아이키우기 힘들지 않냐며 직장 동료들이 나서서 도와주는 부분이요. 이렇게 세상이 만만할리가 없지 않냐고 속으로 외치던 기억이...그거 보고서 마초 남학생들이 '이것봐 여자들은 이렇게 대우받고 다니면서 지들이 피해자라고 징징거린다니까'이 소리 할까봐 좀 걱정스럽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08-07-1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위에 순오기님 말씀처럼 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는군요.
저도 이 [걸]을 보고 오쿠다 히데오를 더이상 찾지 않게 됐거든요.

그나저나 마태우스님,
좀 자주좀 나타나셔요!!

마태우스 2008-07-13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네 그렇죠? 의외로 많은 분들이 안좋은 평가를.... 하지만 남자분들이 이 정도의 생각만 가져준다면 고마울 것 같아요...
라일라님/아, 맞습니다. 그런 여성이 한분 나오죠. 하지만 여성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이놈의 사회 때문이니, 그런 쪽으로 설명을 하면 되죠 뭐. 여성이 미모에 목숨걸어야 하는 이유를 올해도 얘기한 적 있었는데, 애들은 잘 이해 못하는 듯... 내년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락방님/아 네. 저 열시미 하겠습니다. 이번주는 사정이 안좋았어요^^

최상의발명품 2008-07-15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페미니스트 마태우스님이 좋습니다 *^^*

플라시보 2008-07-17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이후부터는 에피소드가 재미있어서 읽다가 휙 하고 던지지 않길 얼마나 잘했던가 생각했더랬습니다. 마태우스님도 첫 에피소드는 별로였다하시니 동질감 만빵입니다. 흐흐.

마태우스 2008-07-17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 안녕하셨어요 간만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여러가지로 죄송합니다.
최상의발명품님/아앗 제가 페미니스트라구요?? 그, 그건 아닙니다. 전 그럴 자격이 없는 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