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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흑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5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적과 흑>을 읽었다. 어릴 적부터 귀가 닳도록 들어온 책이건만, 이제야 읽은 내 인내력이 놀랍다. 이 책은 신분이 낮은 쥘리엥이란 청년이 귀족들의 기득권에 맞서 성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녀들과의 사랑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젊은 쥘리엥은 미녀를 좋아한다. 그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드 레날 부인도 아주 미인이었고, 두번째로 좋아한 마틸드 역시 미인이다.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유혹하려 한 카페 종업원 역시 미녀다. 미녀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쥘리엥은 얼굴만 예쁘면 다른 건 안본다. 2권의 128쪽을 보자.
“그녀는 정말로 아름답고 위엄있어 보였다. 쥘리엥은 그녀에게 거의 사랑을 느낄 정도였다.”
보라. 성격 같은 건 아예 언급도 안돼 있다.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사랑을 느낀단다. 하긴, 우리 사회엔 얼굴만 예쁘면 다른 건 다 필요없다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은 그런 사람들에게 지침을 주고 있다. 어떻게?
1) 마틸드
마틸드는 19세로, 후작의 딸이다. 가질 걸 다 가진 여자답게 여기저기서 프로포즈를 받고 있는데, 당연히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 그녀가 쥘리엥을 좋아하게 된 건, 쥘리엥이 다른 남자와 달리 그녀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쥘리엥이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쥘리엥의 유일한 매력은 날아가버린다. 결국 쥘리엥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척하는 유치한 방법으로 그녀의 사랑을 다시 뺏는데, 여기까지 읽고 “나도 이 방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걸 명심해야 한다. 쥘리엥이 잘생긴데다 총명하기까지 하다는 걸! 나처럼 가자미눈을 한 사람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무관심을 가장한다면, 그녀는 그나마 남은 관심도 끊는다. 그러니 얼굴이 웬만큼 생긴 사람이라면 이 방법을 써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집적거리진 않으면서 그녀 주위에서 맴돌아야 한다. 소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작전. 그녀를 보고 있다가 그녀가 돌아보면 획 고개를 돌려 딴데를 보고 있는 척하기. 남자가 그러면 귀여워 보이고, 그녀로부터 “너 귀엽다”는 말을 들으면 절반은 성공한 거다.
2) 드 레날 부인
‘부인’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여자는 유부녀다. 책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눈이 아주 예쁜데,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발르노라는 남자가 좋아한다고 편지를 수시로 쓰는 걸 보면 미녀의 삶이 얼마나 피곤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미녀와 같이 사는 드 레날이란 남자는 불행히도 그녀의 가치를 모르며, 그녀를 권태롭게 한다. 비극은 언제나 권태로부터 시작된다. 쥘리엥은 손쉽게 드 레날 부인의 마음을 얻는다. 그녀가 좋아하는 눈치를 주자 쥘리엥은 망설이지 않고 늦은 밤 그녀의 방문을 연다 (이 부부는 왜 따로 자는거야? 안해?).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서로 사랑하는 걸 확인했지만, 쥘리엥은 그녀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바치지 않는다. 가끔은 사랑하는 것 같지만 어쩔 때 보면 까탈스럽기 그지없게 행동함으로써 그녀를 헷갈리게 하는데, 이럼으로써 드 레날 부인은 더 안달이 나 쥘리엥을 찾게 된다. 위의 마틸드도 그랬지만, 사람은 “오직 너만 좋다”고 전폭적인 의존을 보이는 사람에겐 금방 싫증을 느낀다. 쥘리엥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드 레날 부인이 자신만 좋아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쥘리엥이 미남에다 연하니 가능한 거겠지만, 이런 교훈은 얻을 수 있다. 애인을 사귈 때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지 말라는 것. 가끔은 바쁜 척도 하고 그래야지, 헤벌레 입을 벌린 채 애인 뒤만 쫓아다니면 미녀는 곧 도망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