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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아는 분 중 미녀로 소문난 연구원이 있다. 그녀를 본 내 조교선생이 "아니 선생님이 아는 분 중 저런 미녀도 있었나요?"-그땐 내가 결혼 전이었다-라고 놀랐을 정도의 미녀인데, 그녀는 책도 좋아하는 편이라 나랑 가끔씩 책에 대한 얘기를 하곤 했다. 그녀는 특히 일본 추리물에 강해 히가시노 게이코의 <회랑정 살인사건>을 내게 선물해 주기도 했는데, 그런 그녀가 오쿠다 히데오가 쓴 <걸>을 내게 선물했다.
"선생님 드리는 거예요. 여성의 심리를 잘 파악했더라고요."
여러 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걸>의 첫 작품은 실망스러웠다. 얼굴이 잘생긴 남자만 있으면 나이에 무관하게 모든 여자들이 침을 흘린다는 설정이 마음에 안들어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첫 작품을 읽는데 거의 닷새 정도가 걸린 것 같다.
'여성 심리를 잘 파악하긴, 개뿔!'
하지만 여성 상사가 겪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다룬 두 번째 작품부터는 재미도 있고 공감도 잘 되어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더니, 거의 하루도 안되어 나머지 부분을 다 읽은 것 같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내년 여성학 교재로 채택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 큰 수확. 지난 학기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여성학을 가르쳤는데, 참고문헌으로 택한 소위 여성주의 소설들이 그리 성공적이진 않았다. <물의 말>은 물론이고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는 "남성은 다 나쁜 놈"이라는 진리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계도의 대상인 남학생들에게 반발심만 키워놓았고, 게다가 너무 어렵기까지 해 그런 책을 교재로 정한 내가 미안했다. 남자들로 하여금 여자의 입장에 서봄으로써 이 사회가 성적으로 평등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하는 게 목적이라면, 그리고 그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자 한다면, <걸>처럼 쉽고 재미있게 쓸 필요도 있지 않을까?
최근 한꺼번에 쏟아져나온 작품들에 질린 나머지 하마터면 오쿠다 히데오를 버릴 뻔했다. 하지만 한방이 있는 작가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걸 그의 신작 <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마초적인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분들게 이렇게 외쳐보자.
"이봐. 여자랑 일하기 싫으면 스모협회나 가서 일자리를 알아보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