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건축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주위에서 인테리어를 해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게 뭐가 문제냐 싶지만,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건, 어떻게 좀 싸게 해볼까 하는 마음 때문이니 문제가 될 수밖에. 지금 그는 장인어른의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 중인데, 그의 말에 따르면 원래 4500 정도 되는 것을 2000에 해주기로 했단다. 장인이니 그럴 수 있다쳐도, 또다른 친척이 다른 데 알아보니 2500정도 드는 걸 "천만원에 해라!"라고 하는 모양이다. 우리집도 인테리어를 다시해야 하기에 좀 부탁을 해볼까 했는데, 그말을 듣고 관두기로 했다. 친구가 반값에 할 수 있는 이유는 자기와 하청업체 마진을 다 포기한 덕분인데, 그가 산소만 먹고사는 사람은 아닌 터, 마진도 없는 공사를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직장인은 각종 청탁에 시달린다.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대한항공 부기장인 내 친구 L, 친구들은 그와 만나면 언제나 이런 말을 한다. "야, 우리 스튜어디스들이랑 술한번 먹자" 어제도 그랬지만, 모임에 그가 나올 때마다 애들은 그런다. 혼자인 애건 유부남이건 소개를 시켜달라느니, 같이 놀자느니... 기장이면 스튜어디스를 아무 때나 동원할 수 있다는 편견을 버려야 할 듯 싶다.

-나처럼 의대 언저리에 있는 사람은 병원 청탁에 시달린다. 난 학생 때부터 여러 사람들의 병원 예약을 해줬고, 내가 입원시킨 환자만 수십명이 넘는다. 예약 창구에서 "저..졸업생인데요"라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아는 선배에게 잘봐달라고 부탁도 해야하며, 그 사람이 외래에 오는 시간에 맞춰 맞으러 나가야 하는 등 귀찮은 일들이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별로 안친한 사람-예를 들면 엄마 친구의 친구의 조카-이 병원에 가야한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 아들이 다 해줄거야!"라며 큰소리를 치셔서 나의 고난을 가중시켰다. 내 백이라봤자 사실 별거 없는데. 내가 입원시킨 환자들에게 문병을 가면서 "회진돌고 올께"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런 청탁은 내가 한국 굴지의 병원인 S병원을 떠나서 천안에 내려오자, 시나브로 사라졌다.

-책에서 읽은 얘긴데, 기자들은 음주운전 뒤처리가 가장 고역이란다. 자기 친구 중에 기자가 있다는 건 사실 막강한 권력이고, 그래서 음주운전에 걸리면 "나 아는 사람 중 기자 있어!"라고 큰소리를 치게 마련이다. 내가 처음 책을 낸 출판사 사장은 유력지의 기자 출신인데, 언젠가 술을 잔뜩 먹고는 음주운전에 걸렸다. 그때 그가 기자증을 내밀자 경찰은 갑자기 태도가 돌변, 딱지를 떼기는커녕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까지 했다. 문학담당 기자는 이에 더해서, 지인들이 쓴 책을 대서특필해달라는 청탁에 시달리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는 KBS 작가는 <개그콘서트>같은 인기프로의 방청권을 달라는 청탁에 시달린다. 언젠가 방송사의 높은 분이 "그런 청탁을 절대 금하겠다"고 했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개그맨들은 "웃겨봐!'라는 주문을 자주 받는다. 가수에게 "노래해 봐"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이런 건 그 직업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가 회사에서만 회사원으로 일하는 것처럼, 개그맨은 무대에서만 개그맨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생각없이 그런 말을 내뱉는다.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누군가를 돕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너무 무리한 부탁은 '의'를 상하게 한다. 지나친 청탁은 삼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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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0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 글을 여는 책의 제목, 죽이는걸요. '연줄 타고 오는 봄'...
무슨 책인지 모르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저서가 이런 용도로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을걸요?

비로그인 2004-03-0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정말 다양한 곳에서 벌어지는 청탁들. 거창하게 '청탁'까지는 아니라고해도, 알음알음 저 비슷한 일들이 주위에서도 많이 벌어지는 거 같아요. ^^

sooninara 2004-03-06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물에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이번에 비대위일을 하면서 저희도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서 연줄을 동원하느라 골몰했습니다..비대위언니중에서 20년만에 연락한 얼굴도 생각안나는 선배덕에 방송도 타게됐죠^^ 연줄이 필요하다는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대학병원에 수위아저씨라도 알아야지 편하다고 우스개로 하더이다..

비로그인 2004-03-06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 님께 한표!두표!세표......

연우주 2004-03-06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진/우맘님께 표 몰아드립니다~ ^^

플라시보 2004-03-0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교통방송국 리포터질 할때 공항에 파견나가서 방송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시도 때도 없이 방송국 사람들과 연예인들의 비행기표 청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좌석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을 해도 마치 내가 한명 정도는 예약에서 밀어내고 집어넣을 수 있는 권력이라도 있는양 막무가내로 구해내라고 했죠. 그나마 평상시야 어떻게 말만 잘 하면 자리를 잡을수도 있는데 문제는 설과 추석이었습니다. 그때는 사실 그 누구도 자리를 빼 내는게 불가능 하거든요. 원래 항공사가 30% 오버 예약을 받기 때문에 그 날에는 각 항공사 티켓팅 장소에서 발권하는 직원들이 멱살을 잡히는 경우도 허다한데 거기다 대고 '저...자리 한개만'하는건 차마 못할 짓이죠. 부탁을 하면 자리가 없는 경우 예약 1순위에다 넣어야 하는데 그런 날에는 자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원래 예약 1순위였던 사람은 제 청탁때문에 밀려나서 비행기를 못 타거든요. 그래서 늘 안된다고 말 해도 이 사람들 맨날 '어이. 그정도 입김도 없어?'하면서 칭찬인지 책망인지 모를 말들을 해 가며 부탁을 하더라구요. 아무튼 그때는 정말 악몽같았습니다. 하루에 평균 비행기표만 서너개 예약해서 발권하고 좌석배정(여기서 또 이코노미를 비지니스로 바꿔 달라고 난리입니다.)까지 받아서는 표 딱 들고 기다려야 했거든요. 난 살면서 별로 청탁같은거 안했었는데 그때는 정말 청탁을 많이 받은것 같네요. 잠시 그때가 떠 올라 주절거려 봤습니다.
 

 

 

 

 

 

* 이 글의 제목은 플라시보님의 걸작 '이런 변이 있나'를 표절했습니다.

---------------------------------------------

1. 발단
어제 점심 때, 담당 선생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 오후 일정은 아무래도 취소해야겠구요, 대신 내일 10시에 시험이랑 포스터 채점을 하기로 했으니, 좀 수고해 주십시오"
이 직장에 몸담은 이후 토요일에 간 건 열 번이 안되지만, 난 할수없이 오늘 출근을 해야했다.

어제 술을 마시는 내내 이렇게 말했다. "나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거든? 그래서 많이 마시면 안돼!" 물론 하는 말이었고, 언제나 그렇듯이 난 어제 모인 일곱명 중 가장 많은 술을 마셨다. 집에 와서는 어머님께 이랬다. "엄마, 나 내일 일찍 가야 하니, 여섯시에 좀 깨워줘!"

난 여섯시에 일어났고, 일곱시 반 차를 타고 천안으로 갔다. 교통상황을 고려해 좀 빨리 간건데 그건 기우였고, 내 방에 들어간 시각은 오전 8시 58분, 9시 전에 출근한 것도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2. 전조
시험지를 챙기러 사무실에 갔다. 담당조교는 출근을 안했고, 다른 조교가 "전 모르겠는데요"라고 한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시험장소로 갔다. 웬걸, 시험 십분 전인데 단 한명도 없다. 게다가 벽에는 한 장의 포스터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때 여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오늘 시험 안봐요?"
"그러게요. 저도 오늘인 줄 알았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담당선생에게 전화를 했다. "어, 어제 캔슬했는데...(취소라고 하면 될 것을,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꼭 문자를 쓴다) 제가 어제 연락 드렸잖아요?"
개뿔, 연락은 무슨... 난 내 휴대폰의 수신자 모드를 확인했다. 점심 때 이후, 그 인간에게서 걸려온 전화는 한통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연락을 안해놓고 미안하니까 연락을 했었다고 우기는 거다. 범죄자의 전형적인 심리라 할까.

그 사람의 동생은 원주에서 바닥재를 팔고있는 내 동생의 팀장인데, 동생은 나만 보면 이런다. "형, 그사람이 날 너무 괴롭혀. 형이 좀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면 안될까?"
그것도 모자라 그 형이 또 날 괴롭히다니, 우리 형제의 수난은 언제쯤 끝난단 말인가.

3. 상념
기차시간을 당긴 후, 역으로 달려갔다. 광절열두조충을 몇 마리 합쳐놓은 듯한 긴 줄 끝에 서서 생각했다. "내가 여기와서 한 일이 뭐지?"
-책 몇권을 우편으로 보냈다.
-역에 가다가 빙판에서 헛바퀴를 도는 차를 오분간 밀었다 (보람없게, 그 차는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고, 운전자는 차를 버리고 도망갔다)
-쓸데없이 뛰다가 자빠졌다. 방수 바지라 젖진 않았지만, 쪽팔렸다.

그 인간이 전화 한통만 해줬으면 난 얼마나 한가로운 오전을 보냈을까. 벤지를 목욕시켰을테고, 글을 쓰고 책을 보면서, 혹은 오랜만에 운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겠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지 몰라도, 기차값을 버려가며 왔다갔다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4. 그래도 희망은 있다
줄 끝에서부터 시작해 표를 바꾸기까지-영악하게도 난 집에 갈 표를 미리 사뒀다-걸린 시간은 무려 30분이었다. 표파는 아가씨는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한시간 이상 지연돼도 지연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도장을 찍어줬다. 아닌게 아니라 대부분의 기차가 연착 소식을 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고른 기차는 예정시간인 11시 27분에서 겨우 3분 늦게 플랫폼에 도착했다! 10시부터 11시 사이에  차가 몽땅 한시간 이상씩 연착한 판에.  역시 세상은 '줄'이다. 줄만 잘서면, 집에 빨리 간다. 행운은 거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내 옆에는 털 코트를 입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앉게 되었다!!! 물론 자빠져 자느라 내려야 할 영등포역에서 못내렸고, 잠에서 깨보니 험상궃은 아저씨가 내 옆에 앉아 있었지만, 오늘같은 아비규환에 이정도면 선방했다. 잘했다, 마태우스. 그나저나 그 담당선생한테는 어떻게 분풀이를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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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3-0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고생스런 오전이셨을텐데, 글은 너무 재밌네요~ ^^ 형제의 수난이라니,인연도 참 묘하다는...담당선생한테 소심한 복수하고 나서, 어떻게 복수하셨는지 알려주세요~ *^ㅡ^*

가을산 2004-03-06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출근길에 등산화 신고 출발했는데도 6번 넘어졌습니다. 위안 삼으세요. ^^

Viewfinder 2004-03-06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험을 위해 기르고 있는 기생충 몇 마리 없으세요?
같이 식사할 때 슬쩍 넣어드려도 좋을 듯...

진/우맘 2004-03-0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뷰파인더님! 기생충 범죄 0%를 위해 오늘도 뛰고 있는 기생충 탐정 마태수의 모태인 마태우스님께 어이 그런 실례되는 말씀을!^^ 그러고 보니, 마태우스님께 잘 보여야 겠습니다. 자칫 밉보였다가 동양안충이나 폐흡충 같은 것들의 습격을 받게 되면 안 되잖아요. -.-
참, 저요, 책 뒤의 퀴즈 만점 받았습니다!

sooninara 2004-03-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것은 잘 생각이 안나고 요충이 쉬울듯합니다..^^

마태우스 2004-03-0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유파인더님/그렇게 하면 제가 의심받지 않을까요?
진우맘님/참 잘하셨습니다. 역시나 님은 훌륭한 독자십니다^^
수니나라님/요충을 걸리게 하려다, 제가 걸리기 십상일 듯 싶습니다....
앤티크님/담주 일정에 전부 불참하는 건 너무 유치하겠죠? 생각해 볼께요.
가을산님/여섯번 넘어지시다니! 관절은 괜찮으신지요?

비로그인 2004-03-06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 방수바지 여로모로 좋네요!! 어머니가 고르셨나 보죠. 역시 어머니의 힘은 위대합니다.

플라시보 2004-03-0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고생스러우셨겠어요. 저는 일정이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하지 않거나 약속을 해 놓고 지각을 하는 인간들은 용서를 못합니다. 왜냐. 제가 절대 그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험악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일정이 취소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취하며 약속시간 또한 지역을 넘나들어도 왠만하면 지킵니다. 뭐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됩니다. 그런걸 제때 하지 않고 미루면 아무리 게으른 저 이지만 기분이 말도 못하게 찝찝 불안 합니다. 그 선생에게 복수는 글쎄요... 저도 늘 복수의 칼을 갈며 사는데 제 동생이 이러더군요. '언냐. 뭐든 억지로 복수하려 들지마. 가만 있다가 보면 언젠가는 원수의 시체가 강물위로 둥둥 떠 오는걸 목격할지니...' 제 동생은 부메랑 효과를 믿는 인간이라서 다른 사람한테 나쁜일을 하면 반드시 본인에게 다시 돌아간다고 믿거든요. 님도 편히 생각하세요. 뭐 그정도 잘못 했다고 강에 둥둥 뜨기야 하겠습니까 만은 적어도 강물에 빠지는 정도는 되겠지요^^

Viewfinder 2004-03-08 0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기생충들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큰가 보네요, 육안에 금방 띄일만큼.
글 읽으면서 문득 자기가 기르는 미생물들에게 밥을 준다던 선배의 글이 생각나서
제안했는데 완전범죄에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나요.
그러고 보니 그 선배와 마태우스님, 안면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학교도 같고 연배도 비슷하실 것 같고...

어릴 때 읽었던 흐릿한 기억으로는 홈즈도 범죄를 저지릅디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왓슨에게만 나중에 넌즈시 알려주는 완전범죄를...
마태우스님을 즐겨 찾는 알라디너들의 웃음과, 보다 유쾌한 세상 만들기에 일조하기
위해서라도, 꼭 분풀이에 성공하셔서 도일의 반열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
 

술에 빠져 영화를 너무 등한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들어 술은 벌써 37회를 마셨으면서 영화는 그의 반의 반의 반도 보지 않았으니, 이러고도 내가 '영화팬'이란 말인가?

그래서 고른 비디오가 <핫칙>이다. 2002년에 나왔는데, 젊은 여자애가 갑자기 30대 남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겪는 일을 다룬거다. 그런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체인지>도 그런 류고, 프랑스에서는 개가 사람으로 변한 영화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기대를 접어서인지,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30대 아저씨로 분한 배우가 여자 연기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잘하는 통에, 간간이 미소를 지으면서,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104분을 보냈다.

난 그 남자주인공이 <해리가 샐리를...>에 나온 빌리 크리스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니다. 롭 슈나이더라나? 그래도 낯이 익은 것 같아 출연한 영화를 알아봤더니 <잠망경을 올려라>와 <저지 드래드>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홀로 집에2>에 나온 도둑도 이사람이란다.

배우 얼굴은 왜 이렇게 헷갈리기만 한 걸까? 빌리 크리스탈과 헷갈리다니, 역시 난 안된다. 주인공 여자는 <무서운 영화>에서 본 듯해서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맞다! 그래, 완전한 바보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무서운 영화>에서 놀라는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지. 그땐 흑발이었던 것 같은데? 뭐, 그렇다 치자.

하여간 이 영화는 이쁘고 공주병에 걸린 여자가-별로 이쁘지도 않더만-못생긴 남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그간 저질렀던 자신의 만행을 반성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린데, 이 영화의 설정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이쁜 외모=공주병도 모자라 남 엿먹이는 사람, 후진 외모=자신을 반성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친구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다 내 외모 덕분인가보다. 

사실 난 멋지고 못된 것보다는, 안멋진 대신 착한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착한 것이 안이쁜 외모의 부산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내 외모가 하위 5%라고 너무 좌절만 할 일은 아니다. 그 외모 덕분에 내가 겸허할 수 있고,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고나서 내 겉모습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진 것이 영화의 소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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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4-04-24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11살 짜리 여자 조카애땜에 이 영화를 5번 이상은 봤을거예요. 적어두 부분 부분. 제 조카는 대사까지 다 외우더군요. 그래 그렇게 영화 공부 하는것두 좋지 하면서 나두 같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이걸 누구한테 추천받지도 않고 고르는 어른들이 있을까 했는데.. 혹시 "영계" 가 제목에 들어가서 고르셨나요?^^
 

 

 

 

 

 

일시: 3월 3일
이유: 학장님이 지난 일년간 수고했다고 밥사준다고 해서...
좋았던 점: 얻어먹었다!
쑥스러웠던 점: 학생들이랑 술 몇번 마신 것밖에 없는데, 수고했다고 또 술을?
신기했던 점: 참석한 교수 중 한명이 전공의 시절 카지노에 빠진 얘기를 했다. 첫해에는 천만원쯤 따고, 둘째해엔 3, 4백을 잃었으니 6, 7백을 번거다. 단골 세탁소 주인이 "선생님, 저기 자주 가시더군요. 이제 그만 하세요"라는 말을 한 뒤 끊게 되었다나. 내 주변에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2차: 천안에 '팔육상회'라는 곳이 있다. 소주 댓병(혹은 참기름병)에 생맥주를 담아 주는데, 내가 아는 집 중에 맥주맛이 가장 좋다. 시원---하구... 서비스 안주로 맛있는 번데기를 주며, 우리가 시킨 두부김치도 어찌나 맛있는지... 대학가 앞이라 양까지 많아 금상첨화다. 그 주인, 복받을껴...

말이 나온김에 그간 갔던 신기한 술집을 몇군데 적어본다.
1) 학교종이 땡땡땡; 인사동에 있는데, 96년에 한번 가봤다. 전유성 씨가 만든 곳으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락통에 안주를 담아주고, 술통은 주전자, 테이블은 학생 때 쓰던 책상, 의자는 그당시 걸상이다. 서랍 안에는 노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긴다. 지금은 이와 비슷한 곳이 많아서 신기할 것까진 없지만, 그땐 참 신선했다.

2) 조선호텔 지하(조선호텔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역삼동 어디께에 있는 호텔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재벌인 사촌형을 따라 한번 가봤다.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자기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에 놀랐을 뿐, 맥주맛은 뭐 그다지... 자기들이 직접 맥주를 만드는, 유식한 말로 하우스맥주라던데, 난 그것보다는 생맥주가 훨씬 더 맛있다. 맛을 몰라서 그런 건가?

3) 전에 말했던 피맛골; 아주 허름한 분위기의 막걸리집으로, 앉으면 이면수(물고기다)와 세숫대야에 든 막걸리를 묻지도 않고 준다. 그래도 사람이 미어터져, 최근 옆집을 인수해 2호점을 냈다. 앉을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집.

4) 벽돌집: 홍대점, 압구정점, 영등포점 등 문어발식으로 점포를 늘리고 있다. 고기집 그러면 아저씨들만 칙칙하게 앉아서 먹는 걸로 아는 사람이라면 벽돌집을 가시라! 다 여자다!!! 3천원짜리 비빔밥이 아주 맛있고,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맛도 깔끔하다. 병따개를 자석으로 만들어 위에 매달아 놓은 것을 비롯해 모든 게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홍대점은 참고로 식당 밖에 의자랑 TV를 갖다놨다. 그런 오만함마저 이해하게 만드는 좋은 집이다.

하여간 난 조용한 곳이 좋다. 그건 수다떨기를 즐기는 내 취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난 허름하건 화려하건, 조용한 곳을 선호한다. 헤비메탈이나 재즈가 나오는 곳에 가면 머리가 아파 술도 잘 안받는다.

* 말로만 듣던 '화랑'을 한잔 먹었다. 무지하게 비싸다는데, 내 타입은 아니다. 13도쯤 하는데, 난 소주가 좋다. 원래 25도이던 소주는 점점 내려가 최근들어 21도짜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18도인 청하와 무슨 차별화가 되겠는가? 소주가 점점 초심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 소주 타락의 첫발은 그린소주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기존 소주보다 부드러운 맛을 주창하던 그린은 이내 소주시장을 석권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참나무통맑은소주 어쩌고 하는 것들이 시장을 어지럽히더니, 참이슬이 나오면서 23도가 되고, 급기야 21도까지 된 거다. 인근 러시아에서는 마시면 목에서 불이 나는 보드카를 마시면서 극기정신을 기르는데, 우리 소주는 도수를 올리지는 못할망정 내려가는 이유가 뭘까? 참고로 우리의 술 소비량이 슬로바키야에게 뒤져 2위에 머무는 것은 도수가 낮은 술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도수는,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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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3-0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주는 23도는 되어야 합니다. ^^

비로그인 2004-03-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소주타락은 그린소주부터였습니다..소주는 역시 두꺼비 그것두 돌리는거말구 숟가락으로 따야하는 그 두꺼비가 제일입니다.두꺼비잔에 두꺼비가 잠기지않게 찰랑거리게해서 원샷..음,,종로 그 피맛골 막걸리집이지요??그집 확장하고나서는 그옛날의 그 막걸리 맛이 아니더라구요..실망해서 전 이제 안갑니다.홍대의 벽돌집 그 고기맛 끝내주지요.여자가 많다는말 맞아요.마태우스님이랑 어디에선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천안에계시나요??제동생이천안에 살아서 가끔 가는데..팔육상회는 어느학교 주변에 있나요?번데기 서비스안주가 나온다니 꼭가봐야하겠습니다.....술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많아지네요.정겨운이들과의 술은 언제나 맛있지요..

마태우스 2004-03-0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iz70님/홍대앞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반갑군요. 팔육상회는...제 기억에는상명대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두꺼비가 제일입니다. 숟갈로 따구요... 두꺼비를 아시는 걸 보니 님도 연배가 좀 되시나봐요?

sooninara 2004-03-0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숟가락으로 따는 두꺼비..전에 저희집에 몇박스가 있었습니다..이유가 소주가 돌리는 뚜껑으로 바뀌는데 친정아버님이 병따개 두꺼비를 좋아하셔서 박스째 사재기하신거죠...
아마 병따개가 돌리는 따개로 바뀌면서 감미료가 바뀐걸로 아는데..그게 소주맛을 다르게했나봐요^^

마태우스 2004-03-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음...감미료의 교체... 그게 소주타락의 시작이었군요
 

 

 

 

 

 

오늘은 좀 바쁜 날이다. 아침 9시에 회의가 있고, 그다음엔 수업이, 12시엔 다시 회의, 오후 다섯시엔 애들 평가가 이어진다. 저녁 때 있는 술자리를 어찌 가야할지 고민하고 있던 판.

그런데...아침에 기차를 타고가다 창밖을 보니, 눈발이 휘날린다. 엊그제 배운 말대로 "야, 눈 잘나가네?"라고 탄성을 올렸는데, 기차역에 내려보니 장난이 아니다. 눈이 와서 마비가 되버린 어제 서울의 밤을 방불케 하는 교통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서 10분쯤 기다리다 버스를 탔다. 용케 자리까지 잡았는데, 다른 애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50분간 기다린 애도 있는 모양이다. 버스는 아주 더디게 전진했다. 맘먹고 뛰면 10분도 안걸릴 터미널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25분이 지난 뒤였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무리 봐도 길이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차들은 세월아 네월아 서있기만 한다. 그래? 그렇다면....요즘 허구헌날 술만 퍼마시느라 운동을 못했는데....

버스에서 내려 전화를 했다. "전데요, 아무래도 아침 수업엔 못가겠는걸요. 교통이 좀 안좋아서...하하" 그랬더니 다른 선생 뿐 아니라 학생들도 오지 않아, 오전 일정이 취소되었단다. 그렇군. 학생들도 오기 힘들겠군.

볼일이 있어 은행에서 20분쯤 시간을 보낸 후, 학교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방수바지를 입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신발이 낡아서 물이 샌다. 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달렸다. 달리면서 보니 걷는 애들이 꽤 있다. '왜 뛰는 애들은 없는거지? 급할수록 달려가란 말도 있는데' 잠시 생각해보니 걷는 애들은 내가 추월을 하니까 볼 수 있지만, 뛰는 애들은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니 내가 못보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속력을 높였더니 과연 젊은 남자애 하나가 열나게 뛰고 있다. 서서히 다가가 추월하는 찰나, 그놈이 날 힐끗 보더니 속력을 높인다. 생판 모르는 놈인데 말이다. 그를 보면서 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경쟁의 원칙, 즉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을 실감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오래달리기엔 일가견이 있는 내가 아닌가.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추월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술을 마신 다음날은 꼭 그렇듯이, 설사기가 느껴졌다. 그럴 때는 빨리 달려서 화장실에 가는 게 낫다는 설과, 달리는 건 설사를 촉진하니 천천히 걷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는데, 후자를 택하다 집앞에서 사건을 친 이후 난 되도록 전자를 따르려고 한다. 하지만 설사는 내 다리 근육으로 가야 할 혈액을 상당부분 장 쪽으로 이동시켰고, 힘이 없는 난 결국 그놈을 놓치고 말았다. 나쁜 녀석, 남의 위기를 이용하다니.

걷는 둥 뛰는 둥 400미터를 가니 어느덧 학교가 보인다. 잽싸게 일을 본 나는 어머니가 싸주신, 헬리코박터를 죽이는 '윌'을 마신 뒤, 젖은 양말을 널어놓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집을 나온 시각은 7시고, 도착한 시각은 10시 10분, 그쯤되면 양호한 편이다. 천안에 사는 내 조교선생은 50분만에 버스를 잡아탔으며 다시 50분이 걸려 터미널을 지났다니, 지금쯤은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여기 온 이후 출근이 오늘처럼 보람있는 날은 처음인데, 그게 다 눈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철도 모르고 내리는 눈을 비난하겠지만, 내가 눈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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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3-05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점심시간까지 서재에 계실 것이 예상되는군요.^^

마태우스 2004-03-05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예리한 진우맘님....

ceylontea 2004-03-0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배고픈 시간이다...
이상하네요... 오늘은 아침을 두번 먹었지요...
새벽 4시에 신랑하고 케익에 우유... 7시에..밥과 반찬... 근데.. 왜 이리 배가 고플까요?
전 마태우스님처럼 달리기해서 출근한 것도 아닌데..

2004-03-05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3-05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4-03-05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심 때 회의에 갔다 왔는데, 오후 수업이 취소되었습니다. 밖을 보니 눈이 계속 내리는군요. 기차표를 겨우 당겼습니다. 다 매진이더군요... 눈발을 뚫고 기차역까지 달릴 생각을 하니 잠시 심난합니다. 젖은 양말, 젖은 신발, 젖은 내 마음, 소위 '3젖현상'이군요.

비로그인 2004-03-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눈 온다고 즐거웠는데, 너무 많이 오니까 정말 짐이네요. ㅎㅎ '3젖현상', 슬픈 말인데도 왠지 어감이 묘한...^^

sooninara 2004-03-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학교에 데려다 주는데..운동장에 하얀눈이 쌓여있고..학교주변 산에 눈꽃들이 ...
설악산이 안부러웠습니다...
우리남편도 오늘 몇시간 걸려서 출근했을려나?

비로그인 2004-03-06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글은 너무 재밌습니다. 저하나 코멘트를 달지 않아도 표가 나지 않으니 늘 글만 보고 지나가다 오늘은 그냥 끌적입니다. "터진 신발은 오늘같은 날에 동상을 유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