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3월 3일
이유: 학장님이 지난 일년간 수고했다고 밥사준다고 해서...
좋았던 점: 얻어먹었다!
쑥스러웠던 점: 학생들이랑 술 몇번 마신 것밖에 없는데, 수고했다고 또 술을?
신기했던 점: 참석한 교수 중 한명이 전공의 시절 카지노에 빠진 얘기를 했다. 첫해에는 천만원쯤 따고, 둘째해엔 3, 4백을 잃었으니 6, 7백을 번거다. 단골 세탁소 주인이 "선생님, 저기 자주 가시더군요. 이제 그만 하세요"라는 말을 한 뒤 끊게 되었다나. 내 주변에 그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2차: 천안에 '팔육상회'라는 곳이 있다. 소주 댓병(혹은 참기름병)에 생맥주를 담아 주는데, 내가 아는 집 중에 맥주맛이 가장 좋다. 시원---하구... 서비스 안주로 맛있는 번데기를 주며, 우리가 시킨 두부김치도 어찌나 맛있는지... 대학가 앞이라 양까지 많아 금상첨화다. 그 주인, 복받을껴...

말이 나온김에 그간 갔던 신기한 술집을 몇군데 적어본다.
1) 학교종이 땡땡땡; 인사동에 있는데, 96년에 한번 가봤다. 전유성 씨가 만든 곳으로,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도시락통에 안주를 담아주고, 술통은 주전자, 테이블은 학생 때 쓰던 책상, 의자는 그당시 걸상이다. 서랍 안에는 노트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흔적을 남긴다. 지금은 이와 비슷한 곳이 많아서 신기할 것까진 없지만, 그땐 참 신선했다.

2) 조선호텔 지하(조선호텔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역삼동 어디께에 있는 호텔인데), 이름은 모르겠다; 재벌인 사촌형을 따라 한번 가봤다.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자기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인파에 놀랐을 뿐, 맥주맛은 뭐 그다지... 자기들이 직접 맥주를 만드는, 유식한 말로 하우스맥주라던데, 난 그것보다는 생맥주가 훨씬 더 맛있다. 맛을 몰라서 그런 건가?

3) 전에 말했던 피맛골; 아주 허름한 분위기의 막걸리집으로, 앉으면 이면수(물고기다)와 세숫대야에 든 막걸리를 묻지도 않고 준다. 그래도 사람이 미어터져, 최근 옆집을 인수해 2호점을 냈다. 앉을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기쁘게 만드는 집.

4) 벽돌집: 홍대점, 압구정점, 영등포점 등 문어발식으로 점포를 늘리고 있다. 고기집 그러면 아저씨들만 칙칙하게 앉아서 먹는 걸로 아는 사람이라면 벽돌집을 가시라! 다 여자다!!! 3천원짜리 비빔밥이 아주 맛있고, 숯불에 구워먹는 고기맛도 깔끔하다. 병따개를 자석으로 만들어 위에 매달아 놓은 것을 비롯해 모든 게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홍대점은 참고로 식당 밖에 의자랑 TV를 갖다놨다. 그런 오만함마저 이해하게 만드는 좋은 집이다.

하여간 난 조용한 곳이 좋다. 그건 수다떨기를 즐기는 내 취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난 허름하건 화려하건, 조용한 곳을 선호한다. 헤비메탈이나 재즈가 나오는 곳에 가면 머리가 아파 술도 잘 안받는다.

* 말로만 듣던 '화랑'을 한잔 먹었다. 무지하게 비싸다는데, 내 타입은 아니다. 13도쯤 하는데, 난 소주가 좋다. 원래 25도이던 소주는 점점 내려가 최근들어 21도짜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18도인 청하와 무슨 차별화가 되겠는가? 소주가 점점 초심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 소주 타락의 첫발은 그린소주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 같다. 기존 소주보다 부드러운 맛을 주창하던 그린은 이내 소주시장을 석권했는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참나무통맑은소주 어쩌고 하는 것들이 시장을 어지럽히더니, 참이슬이 나오면서 23도가 되고, 급기야 21도까지 된 거다. 인근 러시아에서는 마시면 목에서 불이 나는 보드카를 마시면서 극기정신을 기르는데, 우리 소주는 도수를 올리지는 못할망정 내려가는 이유가 뭘까? 참고로 우리의 술 소비량이 슬로바키야에게 뒤져 2위에 머무는 것은 도수가 낮은 술을 많이 먹기 때문이다. 도수는,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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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3-05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소주는 23도는 되어야 합니다. ^^

비로그인 2004-03-06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소주타락은 그린소주부터였습니다..소주는 역시 두꺼비 그것두 돌리는거말구 숟가락으로 따야하는 그 두꺼비가 제일입니다.두꺼비잔에 두꺼비가 잠기지않게 찰랑거리게해서 원샷..음,,종로 그 피맛골 막걸리집이지요??그집 확장하고나서는 그옛날의 그 막걸리 맛이 아니더라구요..실망해서 전 이제 안갑니다.홍대의 벽돌집 그 고기맛 끝내주지요.여자가 많다는말 맞아요.마태우스님이랑 어디에선가 마주쳤을지도 모르겠네요.천안에계시나요??제동생이천안에 살아서 가끔 가는데..팔육상회는 어느학교 주변에 있나요?번데기 서비스안주가 나온다니 꼭가봐야하겠습니다.....술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많아지네요.정겨운이들과의 술은 언제나 맛있지요..

마태우스 2004-03-0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iz70님/홍대앞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반갑군요. 팔육상회는...제 기억에는상명대 앞에 있는 것 같습니다만... 하여간 두꺼비가 제일입니다. 숟갈로 따구요... 두꺼비를 아시는 걸 보니 님도 연배가 좀 되시나봐요?

sooninara 2004-03-0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숟가락으로 따는 두꺼비..전에 저희집에 몇박스가 있었습니다..이유가 소주가 돌리는 뚜껑으로 바뀌는데 친정아버님이 병따개 두꺼비를 좋아하셔서 박스째 사재기하신거죠...
아마 병따개가 돌리는 따개로 바뀌면서 감미료가 바뀐걸로 아는데..그게 소주맛을 다르게했나봐요^^

마태우스 2004-03-0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음...감미료의 교체... 그게 소주타락의 시작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