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빠져 영화를 너무 등한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들어 술은 벌써 37회를 마셨으면서 영화는 그의 반의 반의 반도 보지 않았으니, 이러고도 내가 '영화팬'이란 말인가?

그래서 고른 비디오가 <핫칙>이다. 2002년에 나왔는데, 젊은 여자애가 갑자기 30대 남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겪는 일을 다룬거다. 그런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우리나라에서 만든 <체인지>도 그런 류고, 프랑스에서는 개가 사람으로 변한 영화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기대를 접어서인지, 영화는 의외로 재미있었다. 30대 아저씨로 분한 배우가 여자 연기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잘하는 통에, 간간이 미소를 지으면서,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면서 104분을 보냈다.

난 그 남자주인공이 <해리가 샐리를...>에 나온 빌리 크리스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니다. 롭 슈나이더라나? 그래도 낯이 익은 것 같아 출연한 영화를 알아봤더니 <잠망경을 올려라>와 <저지 드래드>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나홀로 집에2>에 나온 도둑도 이사람이란다.

배우 얼굴은 왜 이렇게 헷갈리기만 한 걸까? 빌리 크리스탈과 헷갈리다니, 역시 난 안된다. 주인공 여자는 <무서운 영화>에서 본 듯해서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맞다! 그래, 완전한 바보는 없다. 나도 할 수 있다! <무서운 영화>에서 놀라는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지. 그땐 흑발이었던 것 같은데? 뭐, 그렇다 치자.

하여간 이 영화는 이쁘고 공주병에 걸린 여자가-별로 이쁘지도 않더만-못생긴 남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그간 저질렀던 자신의 만행을 반성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린데, 이 영화의 설정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이쁜 외모=공주병도 모자라 남 엿먹이는 사람, 후진 외모=자신을 반성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사람', 그러니까  내가 친구들로부터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다 내 외모 덕분인가보다. 

사실 난 멋지고 못된 것보다는, 안멋진 대신 착한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 착한 것이 안이쁜 외모의 부산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내 외모가 하위 5%라고 너무 좌절만 할 일은 아니다. 그 외모 덕분에 내가 겸허할 수 있고,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 영화를 보고나서 내 겉모습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진 것이 영화의 소득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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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2004-04-24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11살 짜리 여자 조카애땜에 이 영화를 5번 이상은 봤을거예요. 적어두 부분 부분. 제 조카는 대사까지 다 외우더군요. 그래 그렇게 영화 공부 하는것두 좋지 하면서 나두 같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이걸 누구한테 추천받지도 않고 고르는 어른들이 있을까 했는데.. 혹시 "영계" 가 제목에 들어가서 고르셨나요?^^